지정학, 국가관계 이해의 새로운 도구들

2018-12-31     미셸 갈리

 

오랫동안 정치학은 국가 행위자 간의 관계에만 국한하지 않고, 단체나 교회, 사회운동 등 다른 행위자들도 주시해왔다. 그럼에도 언론과 정책 결정자들은 국가 간 관계들을 고리타분한 시각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오래전 그 이론적 종말을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해묵은 ‘지정학’에서도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다.

정치학 교수인 기욤 드뱅이 기획한 이 책이 교과서적 성격을 지녔다면, 베르트랑 바디의 책은 호기심이 가장 왕성한 정치학자들이 다른 학문 분야에 열려있음을 잘 드러낸다.(1) 사회학, 특히 국제관계 사회학이 등장한 이래, 예를 들면 의례나 구조, 변화나 폭력 같은 개념들을 둘러싸고 획기적인 ‘학문적 도구’를 제공하기 위해 동원된 것은 다름 아닌 인류학이었다. 장 프랑수아 바야르의 국가 연구를 시작으로, 아프리카 학자들의 연구는 오래전부터 이 분야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기 위한 인류학적 접근방법들을 통합해 왔다. 반면 조르주 발랑디에는 여러 지역 연구들을 국가적인 규모에서 종합함으로써 정치인류학의 기반을 다시 세웠다.

이런 시도를 통해 드뱅과 공저자들은, ‘국가 없는 사회’라는 문제를 제기한 피에르 클라스트르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모리스 고들리에의 분석과 자신들의 분석을 대조한다. 아르놀트 반 헤넵이 정치적 관습에 대해 질문하거나, 발랑디에가 사회 변화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동안, 우리는 지라르가 분석한 보편적 폭력에 대해서는 여전히 반신반의한다. 언론이 그토록 높이 평가했지만, 인류학자들이 한결 같이 거부했던 지라르의 분석에 대해서 말이다.

정치학자 베르트랑 바디는 정치학의 대상과 개념들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는 작업들을 시도했는데, 특히 저자는 아프리카 및 중국과 관련한 최신 연구영역에 강하다. 한 가지 주제나 한 국가, 혹은 기껏해야 한 대륙을 다루는 틀에 박힌 프랑스어권 연구 분야에서는 보기 드문 방식이다.(2) 바디는 먼저 1945년 이후 국제기관들의 설립 과정을 긴 호흡으로 되짚어보면서, 식민지화의 폭력과 탈식민지화의 폭력을 동시에 주목했다. 여기서 그는 한 국가의 정치적 건설보다는 해방에 역점을 둔다. 한 국가를 ‘정치적’으로 건설한다는 것은 강대국을 통해서만 가능한 행위이기 때문에, 결국 그 국가에 대해서는 (강대국의 체제를 이식한) ‘수입된 국가’라는 취약한 정의를 내릴 수밖에 없게 된다. UN은 서구의 강대국들과, 극도로 무력하고 늘 지배당하는 신생 ‘수입된 국가’들을 동일선상에서 바라보기에, 이질성과 괴리감이 한층 부각된다.

베르트랑 바디의 책은 남반구 사회들의 특징인 ‘무력화’ 전략을 핵심적으로 다룬다. 이 ‘무력화’는 정치적 수단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강대국으로 구성된 안전보장이사회가 행사하는 결정권을 포함해 UN 체제 내에서까지, 근본적으로 불평등한 국제 질서를 교란하는 것이 바로 이 ‘무력화’이기 때문이다. 서구의 군사적 개입은 이 ‘무력한’ 지역들에서 일어나는데, ‘국가 간 평등’에 반하는 공공연한 위반은 관련 국가의 국민들을 ‘전쟁 집단’으로 변모시킨다. 점점 더 많은 무기를 갖추고 영토에서 벗어나는(탈영토화) 이 집단들은 폭력을 일상화하고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며, 결국에 가서 이들의 힘은 무력화된다.

남반구에 대한 다양한 학문 분야의 성찰은 사실상 서구 중심적인 시대 내내, 국제관계에 대한 시각들을 뒤바꿔놓았다. 이 같은 성찰은 인류학에 다시 봄이 돌아올 것이라 예견하고, 남반구 사회들의 미래를 다양한 관점에서 볼 기회를 열어준다. 

 

글·미셸 갈리 Michel Galy
번역·조민영
서울대학교 불문학과 석사 졸업.
(1) Guillaume Devin et Michel Hastings(기획), 『10 Concepts d’anthropologie en science politique(정치학에서 10가지 인류학의 개념들)』, CNRS Éditions, coll. ‘Biblis’, Paris, 2018년.
(2) Bertrand Badie, 『Quand le Sud réinvente le monde. Essai sur la puissance de la faiblesse(남반구가 세계를 재발견한다면. 무력함의 힘에 관해)』, La Découverte, coll. ‘Cahiers libres’, Paris,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