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치노선이 바뀌나

오바마 승리로 본 '6가지 조짐'… 젊은층·히스패닉 등 인구 구성과 정치 판도

2008-12-01     제롬 캐라벨 | 사회학자

 지난 한 세기 동안 미국의 정치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선거는 두 번 밖에 없었다. 하나는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승리하며 민주당의 등장을 알린 1932년의 선거였고, 다른 하나는 로널드 레이건이 승리한 1980년의 선거로서 이때부터 공화당이 국내 정치를 지배하는 29년이 시작됐다. 

 속단일 수 있지만, 버락 오바마의 승리는 미국의 정치 흐름을 바꾼 세 번째 선거로서, 훗날 역사학자들이 민주당  다수 지배가 시작된 선거로 평가할 가능성이 높다.
 
 오바마 승리,'정치방향 바꿀 물꼬'
 물론 오바마가 6% 차이로 승리했기 때문에 압승이라 말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압승이 미국의 정치 노선을 바꾸고 특정한 정당에 장기적 승리를 안겨주는 필수 조건은 아니다. 1964년 린든 존슨은 배리 골드워터에게 23%를 앞서며 승리하고, 1972년에 리처드 닉슨도 맥거번에게 거의 같은 차이로 승리를 거두었지만 4년 후에 야당에게 백악관을 넘겨줘야 했다.
 반면에 압승을 거두진 못했지만 정치 방향을 완전히 재편한 선거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1980년 레이건의 승리였다. 9%의 승리에 불과했지만 레이건은 연방정부를 '문제를 제기할 뿐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 정부'로 규정하면서 미국 정치를 바꿔놓았다. 그 후 사반세기 동안 레이건의 자유시장이 정치를 지배했고, 대통령직의 다툼은 주로 공화당끼리의 경쟁이었다. 1980년부터 2008년까지 백악관에 입성한 유일한 민주당원인 빌 클린턴조차 1996년에 "큰 정부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을 정도였다. 이런 점에서 버락 오바마가 지난 1월 "로널드 레이건은 미국의 궤적을 바꿔놓았지만, 빌 클린턴은 그렇지 못했다"고 한 지적은 민주당 내에서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지만 옳은 말이었다.
 그러나 1980년의 선거가 미국의 정치를 바꿔놓았다는 증거는 레이건이 월터 몬데일에게 18% 차이로 승리를 거둔 4년 후에야 확연히 드러났다. 따라서 2008년이 정치 개편을 위한 신호탄으로 여겨질 것이냐는 향후 4년에 달려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오바마의 역사적 승리가 압승은 아니지만 미국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조짐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오바마의 승리는 월가의 몰락에 대한 단순한 반발이 아니라, 향후 사반세기 동안 민주당이 미국 정치를 지배할 수도 있는 장기적인 조짐의 결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6 가지 조짐이 눈에 띈다.
 
 민주당 지배의 6 가지 장기적 요인
 먼저, 젊은 층이 유례없이 오바마를 지지했다. 특히 18~29세는 66% 대 32%로 매케인보다 오바마를 지지했다. 역사적으로 정치 개편은 젊은 층에서 시작되기 때문이고, 20대에 결정한 당이 거의 평생 동안 유지되기 때문에 이런 지표는 장기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시대에 이 연령에 속했던 세대의 민주당에 대한 충성도가 1960년대 중반까지 민주당의 정치적 지배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듯이, 레이건 세대의 공화당 성향이 그 후 사반세기 동안 공화당의 시대를 이끌었다. 1988년 아버지 조지 부시가 같은 연령층에서 5%의 승리를 거두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2008년은 민주당 시대의 도래를 위한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둘째, 급속히 증가하는 히스패닉 계의 대다수가 민주당의 손을 들어주었다. 오바마는 히스패닉 계에서 66% 대 32%로 승리를 거두었다. 58% 대 43%로 승리한 케리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증가다. 이민 문제를 임기응변으로 다룬 공화당의 정책에 대한 분노가 히스패닉 계에 만만치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현상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을 듯하다. 히스패닉 계의 충성도는 향후 정치 판도의 결정적 변수로 여겨진다. 2000년 총인구의 12.5%에 불과하던 히스패닉 계가 2020년에는 20%, 2050년에는 30%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히스패닉 계의 젊은 층이 오바마를 76% 대 19%로 지지했다는 사실은 공화당의 미래에 악몽일 수 있다.
 셋째, 오바마는 선거인단 수에서 약세인 주에 편중돼 있던 민주당의 전통적 패턴을 완전히 탈피했다.1) 그러나 상대적으로 더딘 성장 때문에 뉴욕, 펜실베이니아, 일리노이, 미시건, 매사추세츠 등과 같은 민주당 아성이 2012년의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패배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런 변화가 공화당 세력의 급속한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민주당의 강세를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오바마는 공화당·민주당이란 전통적 분할 구도를 흔들어 놓으면서 플로리다, 버지니아, 콜로라도, 네바다 등 공화당의 세력이 확대되는 주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전통적인 공화당 강세 주에서도 박빙의 승리를 거두었다. 공화당 세력이 급속히 증가해온 남부와 서부를 비롯해 전국 모든 지역에서 민주당이 경쟁을 벌였다는 사실은 장기적 관점에서 무척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반면에 공화당은 뉴잉글랜드, 중부 대서양 연안의 주, 서부 태평양 연안의 주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넷째, 인구 학자들이 흔히 말하는 '세대교체'로 공화당의 기반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매케인의 최대 강점은 65세 이상의 연령층인데, 이 세대에서 오바마를 53% 대 45%로 눌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연령층은 옅어지기 마련이다. 그들의 뒤를 잇는 45~64세층은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다. 나이가 들면서 보수화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이 세대가 공화당 지지 세력으로 연결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섯째, 앞으로 민주당이 집중 공략해야 할 부동층에서 오바마는 선전했다. 유권자의 29%를 차지하는 '무당파'에서 52%를 얻었고, 온건 개혁파의 60%를 차지했다.2) 1980년 선거에서 무당파의 55%, 온건 개혁파에서는 49%밖에 얻지 못한 레이건과 비교하면 유리한 편이다. 물론 무당파와 온건 개혁파의 지지가 2012년과 그 이후까지 유지되더라도 민주당 다수 시대를 공고히 해줄 것이라 장담하기는 어렵다.
 마지막으로, 대학을 졸업한 계층이 얼마 전부터 공화당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런 추세는 2008년에 두드러지면서 오바마는 이 계층에서 53%의 지지를 얻었다. 1988년 선거에서는 공화당이 13%의 차이로 민주당에 승리를 거두었다(56% 대 43%). 공화당이 전통적으로 중산층과 중상층에서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20여 년 전부터 나타났고, 2008년에 전환점을 맞은 듯하다. 대학 졸업자가 현재 총유권자의 45%를 차지하고 다른 집단에 비해 투표율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화당이 쉽게 포기해서는 안될 집단이다.
 
 2008선거, '근본적 이데올로기 변화'
 이런 6가지 조짐을 종합할 때, 민주당의 2008년 승리는 앞으로도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부시 행정부의 인기 하락, 때맞춘 듯 한 월가의 몰락, 오바마 개인의 카리스마 등 오바마의 승리에 기여한 요인들 모두가 다른 민주당 후보들에게도 적용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상승 원인은 인구 변화를 넘어, 반정부적 성향을 근본적인 원칙의 문제로까지 비화시키며 현재 공화당이 당면하고 있는 이데올로기 위기에서도 찾아진다. 최근의 사건들은 신자유주의 세계관에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시작해서 월가의 몰락까지, 한 세기전부터 진보주의 정책의 핵심 원리였던 공익을 우선시하는 효율적인 정부의 필요성이 여느 때보다 분명해졌다.
 오바마와 민주당이 한 세대 만에 맞은 이번 기회를 활용해 미국 진보주의 역사에서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느냐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그런 기회가 찾아온 것만은 틀림없다. 그들이 성공한다면, 긴 역사적 안목에서 2008년은 압도적 승리는 아니었지만 미국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꿔놓기 시작한 승리였던 1980년과 곧잘 비교될 것이다. 

   번역 | 강주헌 2nabbi@ilemonde.com *

 


 

* 미국 버클리 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대학교의 지원자와 합격생을 다룬 <선택받은 학생>을 썼다. 이 책은 <뉴욕 리뷰 오브 북스>, <네이션>, <아메리칸 프로스펙트>, <뉴욕타임스>, <로스엔젤레스 타임스> 등에 소개됐다.

1) 최근의 인구조사로 인구가 증가한 주는 하원의원 수와 대통령 선거인단 수가 비례적으로 늘었지만, 인구가 감소한 주에서는 상대적으로 줄었다. 전체 하원의원 수(435명)와 대통령 선거인단 수(538명)는 고정돼 있다. 반면에 상원의 경우는 인구수에 관계없이 각 주에서 2명씩 선출한다.
2) 무당파는 선거인 명부에 등록하고 소속 정당을 선택할 때 어떤 의견도 밝히지 않은 사람을 뜻한다. 한편 온건 개혁파는 여론 조사 때마다 보수 혹은 진보로 의견이 바뀌는 사람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