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장에 나타난 티라노사우루스
경매에 부친 공룡 화석
미국에서는 광물이나 화석, 운석 등을 경매에 내놓는 일이 흔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최근에야 시작됐다. 크리스티도 프랑스에서 몇 차례 경매 행사를 열었다. 지난 12월 열린 드루오-몽테뉴 경매에서 경매인 베르트랑 코르네트 드 생시르는 “이번 경매는 일종의 시험행사다. 장기적으로 이 시장을 더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틀간 진행된 이 경매 행사는 난쟁이 캥거루 박제에서부터 우주비행사 겐나디 스트레칼로프가 우주 유형을 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까지 다양한 품목을 선보이며 호기심에 찬 고객들을 끌어모았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매 행사는 연구담당 직원이나, 필요할 경우 외부에서 초빙된 연구자들의 참관 아래 진행된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소속 고생물학자 에리크 뷔프토는 “유물에 대한 기술(記述)은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 모든 요청에 협조하려고 노력하지만 역부족이다. 그래서 우리 자문 없이 경매가 진행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수집가는 연구자가 좀더 심도 깊은 연구를 위해, 혹은 너무 바쁘거나 의욕이 부족해서 너무 오랫동안 자신의 소장품을 가지고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연구자와 수집가의 관계는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한편 새롭게 발견된 표본은 공식 자료로 인정받아 대중에 공개되기에 앞서 공식적인 기관의 검증을 받아야 하며, 적절한 조건 아래에서 보존돼야 한다고 법률에 명시돼 있다. “전문 리뷰는 법률에 저촉될 수 있는 내용은 게재하지 않는다. 내용 게재를 요청하려면 각 유물의 행적과 자연사박물관이나 그밖의 공식기관이 부여한 인증번호를 제시해야 한다.” 자연사박물관에서 컬렉션 책임자로 일하는 미셸 기로의 설명이다.
이번 드루오 경매에서는 질 파코 수석 학예연구원이 각 유물이 출토된 국가의 법 규정을 일일이 조사했다. 알제리처럼 자연유물의 국외 반출을 금지하는 국가가 있는가 하면, 경제적 이익을 위해 큰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화석을 한꺼번에 컨테이너에 쓸어담아 외국으로 수출하는 국가도 있기 때문이다. 모로코 동남부의 켐켐 지역 곳곳에 설치된 지하갱도에서는 몇 달러 안 되는 돈을 벌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화석 채굴 작업을 한다. 이런 작업환경에서 사고가 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2009년 타프라우트에서는 작업 중이던 부자(父子)가 갱도 속에 매몰돼 실종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모로코 국영 인광석공사(OCP)의 채석장에서는 화석 유골 발굴을 위해 불도저 여러 대가 동원됐다.
전문가 검증도 거치지 않은 채
자연사 유물의 여정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다. 파리 시테 섬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알랭 카리옹은 비꼬는 투로 “모로코에서 프랑스로 엄청나게 많은 운석이 온다”고 말한다. 이 중에는 정확한 채굴 날짜조차 모르는 것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2009년 10월, 오트프로방스 지질학 자연보존 지역에서 출토된 암모나이트 화석이 경매에 출품돼 지역 주민들의 분노를 산 적도 있다. 이 보존 지역에서 출토된 자연 유물은 수집이 엄격히 금지돼 있다. 그러나 에르베 자크맹 보존 지역 책임자는 “해당 유물이 보존 지역 설정 전에 출토된 것인지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라고 반문한다.
예술품 시장은 갈수록 상업적 잠재성을 지닌 고대 자연 유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쥬라기 공원>이 개봉된 지 4년 후인 1997년, 시카고 필드자연사박물관은 맥도날드와 디즈니의 후원으로 세계에서 복원 상태가 가장 좋은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를 사들였다. 이 박물관은 8600만 달러의 가격을 불러 경쟁 입찰자 9명을 제치고 낙찰에 성공했다. 덕분에 다른 거대 육식동물들의 몸값이 덩달아 뛰었다.
정부 지원금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국제적 수준의 소장품을 갖추기 원하는 박물관은 돈 많은 수집가와 경쟁하기 위해 메세나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메세나 지원금의 상당 부분은 세금 면제 혜택으로 돌아온다. 국보로 지정된 스피노사우루스 구입 자금을 지원한 토탈은 90% 면세 혜택을 받았다.
모로코에서 밀려오는 운석들
그러나 가치가 의심스러운 유물도 있다. 앞에서 언급한 스피노사우루스 공룡 화석에 대해 고생물학계 전문가들은 “예술작품으로 간주한다면 또 모를까 인공 모형이나 다름없는 공룡 화석의 가격이 지나치게 부풀려졌다”고 지적한다. 드루오 경매장의 카탈로그에는 이 복원 모형이 모로코 켐켐 지층 곳곳에서 거의 25년 가까운 발굴 작업으로 얻은 실제 유골 조각 50%를 기초로 제작됐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200만 년 동안 형성된 켐켐 지층 각각에 묻힌 화석들은 진화 단계상 서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카탈로그에는 “스피노사우루스 종(種)에 속하는 뼈 조각들”이라고 명시돼 있어 전문가들이 토를 달 수 없게 해놓았다. 2005년에는 이 공룡의 ‘두개골’을 구입한 프랑스 자연사박물관이 계약을 취소하겠다고 나서는 일이 생겼다. 두개골은 크리스티에 의해 수수료를 제외한 가격 8만1천 유로에 팔렸다. 그러나 소송이 복잡해지자 원고인 자연사박물관은 소송을 취하하기에 이른다. 애초에 카탈로그에 명시된 설명이 모호한 이유도 있지만 일이 너무 커지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다양한 연구자들이 과학적 연구를 수행한다. “지질학의 경우, 아마추어 연구자들이 연구기관에는 별로 수익성이 없는 분야를 담당한다.” 피에르 & 마리 퀴리 대학(UPMC-La Sorbonne)의 세계적인 광물 컬렉션을 책임지는 장클로드 부이아르의 말이다. 계몽의 시대에는 자연사와 천문학이 기존 질서를 전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화석을 통해 지구 나이를 계산할 수 있게 되면서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나이를 통한 계산법을 반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시까지 사람들은 지구 나이를 6500년 정도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 뒤 고생물학에 대한 열정은 시들해졌고 대규모 자연탐사도 드문 일이 되었다.
거대 육식동물 화석의 비싼 몸값
UPMC에 전시된 다양한 형태의 수정처럼 맑은 색깔을 띤 광물을 보면 아마추어 연구자의 열정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열정에 학술적 욕구가 결합돼 자신의 여가시간 전부를 ‘보물찾기’에 투자하는 사람도 많다. 보물찾기는 때로 자연사 유물의 발견으로 결실을 보기도 한다. 이런 발견은 기술적 용어로 ‘인벤션’(Invention)이라고 부른다. 지난해에는 ‘우아요낙스 박물학회’(SDNO) 회원 두 명이 프랑스 앵 지방의 플라뉴에서 역사상 가장 큰 공룡의 흔적을 발견하는 쾌거를 올렸다. 이미 훌륭한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는 협회는 이제 확실한 전문성까지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 이 협회의 회원들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루디스트(멸종된 연체동물) 화석이 묻힌 지역과 사우로포다(용각류) 공룡의 흔적이 남아 있는 중요한 지역을 찾아냈다.” 사우로포다의 흔적을 발견한 지질공학자 파트리스 랑드리의 설명이다.
보물찾기에 나선 사람들
이런 종류의 협회들은 때로 대학 연구자의 격려에 힘입어 작은 박물관을 세우기도 한다. 휴가철에 관람객이 몰려 지역 경제에도 보탬이 된다. “공룡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이용해 진화·유전학·지질학·생리학 등과 관련된 다양한 지식을 전달할 수 있다.” 플라뉴 지역의 공동 발굴자 마리-엘렌 마르코 전직 초등학교 교사의 말이다.
현재 발굴 지역을 공원화하는 계획이 검토 중이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와 리옹 베르나르 클로드 대학이 이 계획에 참여하고 있다. 계획 규모도 규모지만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 즉 ‘대중을 통한 정보 수집’이라는 원칙을 생각하면 연구자들에게 우아요낙스 박물학회는 참으로 든든한 조력자다.
이제는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 애호가와 장사꾼, 연구자와 수집가 사이의 경계가 갈수록 불분명해지고 있다. 발굴 지역 불법 침입과 훼손에 대한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게다가 매년 관광객까지 몰려와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상당수 연구자들은 몇 개의 그럴싸한 복원품을 만들기 위해 발굴지가 황폐해질 것을 염려한다.
반대로 상업주의적 발상이 자체적으로 수그러들 것이라고 내다보는 이들도 있다. 일각의 현상을 일반화해서 볼 필요는 없을뿐더러 상업적 목적의 발굴자들도 어쨌든 현장에 대한 지식에 보탬이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거의 이상주의에 가까운 입장을 들 수 있는데, 이를테면 장사꾼과 ‘술래잡기’를 하는 연구자가 있다. 유물을 팔려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유물의 과학적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연구자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이로 인해 연구자가 일정한 개입 권한을 획득하게 된다.
유물 둘러싼 국제 분쟁도
전반적인 가격 급등으로 자연사 유물의 가치가 올라가자 그중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여기는 유물의 반환 요구도 빈번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2년 전부터 브라질은 아라리페 분지에서 발견된 화석 전부를 되돌려 받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 화석들은 현재 뉴욕의 미국자연사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미국은 2002년, 중국에서 불법으로 유출된 14t에 달하는 화석을 되돌려주었다.
글•앙리 조트루 Henri Jautrou
과학전문기자.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