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도박, 국가와 언론의 올인
다소 합법적인 형태의 도박이 인터넷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제 남은 건 오직 다른 ‘활로’를 개척해 당당히 ‘산업’으로 발돋움하는 일뿐이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게임이 끝난 상태다. 스포츠 경기와 오락물의 주요 배급사들이 벌써 자신의 의도를 강하게 내비쳤다. 이제 게임은 모든 매체에서 우리 삶을 ‘재미있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설 자리는 없다.
<르몽드> 웹사이트(1)에 올라온 이 사례에 프랑스 언론은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모양이다. 지난 6월 인터넷 도박에 관한 법이 발효된 뒤 스포츠 베팅 및 포커 사이트뿐 아니라 TV·라디오 등 언론매체도 앞다퉈 대중을 사로잡으려 들고 있다. 약 50억 유로가 ‘순조롭게 항해 중’인 것으로 보이는 온라인 도박 시장에 군침을 흘리는 건 비단 카지노나 경마계만이 아니다. 이제 쇼비즈니스 업계도 최소한 그만큼의 군침을 흘리고 있다.
로비스트들에 의한 합법화
온라인 게임 및 스포츠 베팅의 자유화는 권모술수와 이권다툼으로 각축전을 벌이는 로비스트들이 인고의 노력을 기울여 얻어낸 결과다. 지난 5월 12일 ‘복권 및 도박 부문의 경쟁 개방 및 규제에 관한’ 법이 성급하게 채택됐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과 함께 본격적으로 도박시장이 개방되고, 방송사 <TF1>의 자회사인 ‘EurosportBET’ 같은 스포츠 베팅 사업자는 많은 축구팬을 끌어모을 것으로 기대한다. 해설위원인 크리스티앙 장피에르는 경기를 치르는 동안 각 팀의 승률을 알려주고, EurosportBET 사이트 접근이 용이한 <TF1> 홈페이지로 방문을 유도한다.
지난 7월 11일 남아공 월드컵이 끝나자 온라인 스포츠 베팅 사이트에는 120만 신규 계정이 열렸고, 온라인 게임 규제 당국의 허가를 받은 15개 사업자가 거둬들인 매출액은 8300만 유로에 달했다. 이는 프랑스복권공사가 공식적인 독점 지위를 부여받은 2009년에 기록한 매출액 4300만 유로의 두 배 수준이다. 프랑스복권공사는 “수요가 그만큼 급격히 증가한 게 아니라 합법적인 서비스로 옮겨간 것”이라고 본다.(2)
2009년 3월, 예산부 장관 에리크 뵈르트는 법안을 제출하면서 이 법안이 “정부의 세수를 보전하고 사업자에게 매력적인 사업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것”임을 명시한다. (스포츠 베팅 및 경마의 경우 7.5%, 포커 사이트의 경우 2% 수준인) 취약한 세율의 현행 세제로는 정부 재정을 충당하기에 무리가 있다는 뜻이다. 1539년 프랑수아 1세의 칙령에 따른 독점이 없어지면서, 손실을 메울 길은 분명 온라인 게임 수요의 과다한 활성화밖에 없다. 2008년 프랑스복권공사는 수입의 27.7%인 25억 유로를 국고에 헌납했다. 이에 견줘 마권 상호공제조합인 장외마권제도는 매출액의 12%인 11억 유로를 정부에 내줬다. 정부가 살길은 세금이 부과되는 온라인 도박시장이 눈에 띄게 성장하는 것뿐이다.
게임 업계의 로비를 받은 유럽연합(EU)이 정부 독점 해제 지령을 내렸다는 얘기가 널리 퍼지고 있다. 하지만 포르투갈 정부의 사행산업 독점권을 인정한 유럽사법재판소의 2009년 9월 8일 판결 이후 브뤼셀의 ‘서비스’ 지침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경쟁 도입 의무가 배제됐다. 도박 산업은 보건이나 공공질서를 위해 정부 통제 아래 둘 수 있는 분야다. 지난 7월 8일, 스웨덴에서는 온라인 도박의 언론 홍보 활동을 금지하며 국영 복권 사업을 지킬 수 있게 한 또 다른 판결을 내렸다.
세금에 눈독 들이는 정부
그러나 프랑스 법은 온라인 도박의 언론 보도에 따른 위험을 무시하고 있다. 법조문에서는 단지 미성년자 대상 프로그램에 삽입되는 광고에만 미성년자가 노출되지 않도록 명시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프랑스 방송위원회는 리얼리티 TV쇼같이 청소년이 볼 만한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방송사가 ‘내부적으로 알아서 통제’해줄 것을 부탁했다. 영국은 (스포츠 중계 방송을 빼고는) 새벽 5시부터 밤 10시30분 사이에는 온라인 도박의 TV 광고가 금지되며, 라디오는 오후 5시부터 자정까지 금지된다. 프랑스 방송위원회도 처음에는 영국의 사례를 도입하려 했으나, 방송사들의 막대한 로비를 받고 뜻을 접었다.
이에 따라 언론매체들은 연간 2억5천만 유로 이상 광고 수익을 올리게 됐다. 게다가 방송사 <TF1>과 베팅 사업자 EurosporBET의 관계라든지, (스포츠 전문지 <레키프>를 발행하고 자전거 경주 투르드프랑스 및 자동차 경주 파리∼다카르 랠리를 조직하는) 아모리 그룹과 베팅 및 도박 사이트 ‘사주’(Sajoo.fr)의 관계에서처럼, 언론매체는 온라인 사업자와 제휴 관계에 있다. 방송사 <RTL>는 경마 예측 관련 방송을 하기 위해 온라인 게임 사업자인 PMU와 손을 잡았다. 본격적인 도박 및 베팅의 세계가 펼쳐지는 인터넷 공간으로 연결해주는 시스템을 통해 언론매체는 판돈을 나눠갖는다. 쌍방형 TV 시대가 도래하면서 시청자는 스포츠 중계방송을 보는 중간에 온라인에서 직접 도박을 할 수 있게 됐다. 케이블 사업자 ‘뉘메리카블’은 온라인 게임 사업자인 ‘벳클릭’과 계약을 맺었다. 휴대전화 업계도 기회를 엿보고 있다.
특권층에게만 혜택
이제 프랑스는 온라인 도박의 나라로 변모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국고가 바닥을 드러내면 으레 도박 업계 쪽으로 눈을 돌리게 마련이다. 국고를 채우고 사회 갈등을 완화하는 데 유용한 간접세이기 때문이다. 빵과 서커스, 즉 먹을거리와 유흥거리만 있으면 국민은 일단 만족하고 본다는 뜻이다. 하지만 도박 산업의 자유화 조처는 일부 특권층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 2007년 5월 사르코지의 대통령 당선 축하연이 열린 음식점 ‘푸케’의 이름을 따서 그곳에 모인 업계 사장들을 지칭한 ‘푸케 클럽’ 소속의 특권층이 그 대상이다. 여기에는 사르코지의 오랜 친구이자 사치명품 기업주인 베르나르 아르노를 비롯해, 스포츠 베팅 및 도박 전문업체 ‘비윈’에서 일하는 그의 아들 앙투안 아르노, 기업인 스테판 쿠르비, 마르탱 부이그뿐 아니라 이 법을 만든 장본인의 아내 플로랑스 뵈르트도 포함된다. 플로랑스 뵈르트는 경마계에서 그리 낯선 인사가 아니다. 그녀는 각계 사장 부인들과 함께 ‘담스’라는 마사를 창설해 경주용 말을 보유하고 면세 컨설팅 업무도 한다.
유흥 부문의 민영화는 한 사업자가 경기를 중계하는 매체이거나 해당 경기 자체를 조직한 경우,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이 빚어질 소지가 있다. 경기 해설자의 해설만으로도 사람들의 결과 예측이 한쪽으로 쏠리게 할 수 있다. 그런데 벳클릭 대표인 니콜라 베로가 강조하듯이, 스포츠 베팅 사이트는 ‘런던 더 시티의 트레이더’와 유사한 마권업자가 운영한다.(3) 이들은 마권을 실시간으로 관리하고, 자신의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다양하게 승률을 조작한다. ‘카지노 경제’를 대중화하면서 자본주의의 도덕성을 운운하는 것만이 정부의 모순은 아니다. 정부의 행각은 버나드 매도프식 사기와도 거리가 멀지 않다. 포커 게임은 인터넷에서 다운받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뜨내기’의 돈으로 다수의 가상 갬블러의 게임을 조정할 수 있다.
돈세탁 창구로 쓰일 수 있어
돈세탁의 위험도 빼놓을 수 없다. 2007년 3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 보고서는 이미 온라인 도박으로 돈세탁을 시도한 정황을 입증한 바 있다. 지난 6월 4일 유럽사법재판소는 사기 및 범죄 척결을 위해 네덜란드에서 인터넷 게임 사이트가 금지된 것이 법적으로 유효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공중 보건 차원에서의 위험은 더욱 크다. 1980년 이후 도박은 행동 질환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규명됐고, 도박이 활성될수록 발병 빈도도 높아진다. 프랑스에서 게임을 즐기는 사람 가운데 1~3%가 병적인 게임 중독 현상을 보이는 상황에서, 게임 인구의 확산은 그 자체로 문제를 야기한다. 파리 마르모탕 병원의 수석의사 마르크 발뢰르는 도박 업계의 경쟁 도입이 “게임의 중독 및 남용을 더욱 증대시킬 것”이라고 판단한다. “해당 게임과 관련한 광고가 많아지기 때문”이다.(4)
영국 노팅엄대학 마크 그린피스 교수는 온라인 게임과 오프라인 게임 이용자를 비교·관찰해본 결과, 온라인 게임이 더 높은 잠재적 의존성을 유발한다는 결론을 내렸다.(5) 온라인 게임에는 ‘익명성’이라는 특성이 있고, 게임 이용자의 외로움이 더해질 뿐 아니라 시간적 제한도 비판적인 사회적 시선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를 예방하는 유일한 길은 게임 제공 자체를 제한하는 게 아니겠는가?
사회당 출신 오렐리 필리페티 의원은 하원에서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국립보건의학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게임은 빈곤 계층에게서 사회적 문제를 더 많이 유발하는 것으로 입증됐다. 게임에 들이는 돈은 더 적을지라도 지출 비중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윳돈이 없는 상황에서는 도박을 할 수 없다고 보면서도, 법은 회전 대출과 과다 부채의 길로 빠지는 걸 차단하지 않는다.
오프라인보다 중독성 강해
니콜 키드먼과 벤 애플렉 (혹은 프랑스의 파트리크 브뤼엘) 같은 유명 연예인들은 포커를 미국과의 ‘문화적 가교’로 비치도록 하며 포커 합법화에 힘을 보탰다. 포커가 “상대의 약점을 이용하고 조작하기 위해 테이블에서 행하는 권력의 광기”라는 사실은 이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도박은 팀으로 하는 놀이가 아니라 혼자서 하는 놀이며, 물주가 아니라 자신과 똑같은 사람들과 싸우는 놀이다. 공격성이 제1의 자질이며, 술수와 책략이 ‘속임수’라는 미명 아래 환영받는 놀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중 “나는 결국 실성한 사람처럼 노름판을 떠났다”던 노름꾼 알렉세이 이바노비치처럼 한숨을 쉬며 결국 만신창이가 되어 나오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글•마리 베닐드 Marie B?nilde
<뇌를 사는 사람들: 광고, 언론 그리고 업계>(On ach?te bien les cerveaux: La publicit?, les m?dias et le patronat·Raisons d’Agir·Paris·2007) 등의 저서가 있다.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각주>
(1) 2009년 10월 8일.
(2) <AFP>, 2010년 7월 14일.
(3) 2009년 7월 16일 온라인 도박 산업에 대한 공문(Igamingfrance.com) 참조.
(4) <르몽드>, 2010년 7월 2일.
(5) 마크 그리피스, ‘Gambling online ?problem gamblers more susceptible, research shows’, Nottingham Trent University, Ntu.ac.uk, 2009년 9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