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성당에는 동양이 있다

2010-10-08     안제이 스타시우크/작가

1960년 바르샤바에서 출생한 안제이 스타시우크는 ‘경계인’이라 할 수 있다. 유럽 근대성의 질서를 뒤집는 무질서를 찾으면서도 ‘호모에코노미쿠스’(경제인)의 합리주의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을 과거의 꿈을 추구한다. 흔히 폴란드인을 ‘유럽의 우둔아’로 부르지만, 이는 사실 폴란드인에 대한 애정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저 멀리에 그것이 보인다. 광활하고 번쩍이는 들판 한가운데에 그것이 서 있다. 마치 기적을 보는 듯하다. 시골의 한 사제가 15여 년 전에 꿈에서 본 그것, 사람들은 사제가 꿈을 현실로 실현해줄 수 있도록 도왔다. 사제가 꿈에서 본 것은 바로 ‘리헨 성당’. 폴란드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꼽히는 리헨 성당은 유럽에서 8번째, 세계에서 12번째로 큰 성당이기도 하다. 나는 리헨 성당 근처에 있으면 꼭 둘러보고 간다. 꾸밈없이 독특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성당이다. 찬란한 금빛의 거대한 돔이 달린 리헨 성당은 너비 160m, 높이 70m를 자랑한다. 슬라브의 ‘타지마할’이라 할 수 있다. 꿈의 성당이 빛을 뽐내며 현대 건축을 비웃는다. 기둥·코니스·열주·조각상은 바빌로니아의 바로크, 이집트의 로코코 양식을 아우른다.

역사적 조상들의 조각상 전시

성당 안에는 폴란드의 역사와 신화를 말해주는 조각상들이 있다. 돌로 된 유물은 러시아와 독일에 희생된 폴란드 사람, 즉 시베리아 강제 추방, 바르샤바 폭동, 강제수용소 희생자를 추모한다. 존경할 만한 폴란드 영웅들의 조각상도 볼 수 있다. 신부와 주교, 특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등이다. 폴란드가 독립한 이후에 건립된 리헨 성당은 현재 폴란드의 신전이다. 이 성당의 신은 폴란드인이다. 리헨 성당은 옛날 폴란드의 역사를 들려준다. 기독교 이전의 폴란드 역사를 생각나게 한다. 리헨 성당에서 폴란드인은 역사를 숭배하는 뜻에서 조상을 모신다.

폴란드의 유명 에세이스트 중 한 명인 마리아 야니온은 몇 년 전 저서 <남다른 슬라브인들>(1)에서 폴란드인은 “세례를 잘못 받았다”라고 표현했다. 흥미로운 주장이었다. 실제로 폴란드인은 강제로 세례를 받긴 했다. 기독교 문화가 아닌 것은 이교도 문화로 취급돼 파괴됐다. 선교사와 신부들은 이교도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도록 애썼다. 이미 당시에도 권력의 기본 원칙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들은 알았다. 과거를 다스리는 자가 현재는 물론 미래를 다스린다는 원칙 말이다. 슬라브인으로서 우리의 고유 신앙은 전설로만 남게 되었고, 총칼 앞에 파괴됐다. 폴란드의 기독교는 폭력, 그리고 옛 세계의 파괴를 바탕으로 세워졌다. 그와 함께 우리는 폴란드의 옛 신들이 당하는 수모와 죽음을 지켜봐야 했다.

폴란드가 기독교를 선택한 것은 순전히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 서양의 영향권에 들어가려면 기독교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서였다. 기독교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폴란드인은 보러시아인처럼 사라졌을 수 있다. 과거 프러시아에 살았던 보러시아인은 현재 이름만 남아 있다. 만일 폴란드인이 세례를 받지 않았다면 로마 가톨릭 정치가, 선교사, 식민 지배자, 게르만족 정복자에게 학살당했을 것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기독교를 선택하면서 폴란드의 중요한 정체성 가운데 하나인 동양에서 멀어졌다. 로마와 비잔틴 사이에서 우리는 선택을 했다. 물질적으로 보면 로마, 그러니까 서양을 선택한 것이 여러모로 폴란드에 이익이었다. 그 대신 평생 정체성의 위기를 겪어야 하는 쓰라린 대가를 치렀다. 러시아인이 우리를 가리켜 ‘슬라브족의 배신자’라고 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어쨌든 러시아인은 슬라브족의 유일한 대표 민족으로서 정당성을 갖고 있다. 러시아인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다. 우리는 특수한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으니까. 세속화된 현대 유럽에서 폴란드는 가톨릭을 맹신하는 국가는 아니어도 대단히 종교적인 나라였다. 하지만 우리가 특별히 종교적인 국가가 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 성인은 언제나 폴란드인이었고 이교도나 이교 창설이 없었을 뿐이다. 물론 우리에게는 교황도 있었다. 교황은 폴란드의 국가 토템 중 하나가 되었고, 우리는 교황을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교황이 폴란드의 종교 사상에 기여한 것은 거의 없었다. 교황은 폴란드만의 세계관을 가지라고 하기보다는 폴란드는 예외적인 입장이라는 확신만 공고히 해주었다. 교황은 폴란드의 영웅을 생각하는 척했는데 목적은 오직 하나였다. 폴란드인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려는 것. 기독교가 피상적일수록 우리는 기독교를 더욱 소리 높여 외치곤 했다. 우리는 정체성의 위기를 겪으며 내면의 분열을 겪었고, 이를 잠재우기 위해 더욱 기독교에 매달렸다.

강제 개종… 비잔틴 버리고 서양으로

기독교 이전의 폴란드 유산은 뽑혀버렸다. 우리는 역사적 상황에 따라 필요에 의해 비잔틴에서 등을 돌렸다. 한마디로 동양을 배신한 셈이다. 옛날에 폴란드는 터키와 크림반도의 칸과 이웃이었는데 말이다. 참 이상하다. 우리는 서양을 택하면서 열광했고, 우리 삶으로 받아들였다. 현재 서양은 우리를 같은 일원으로 받아주고 있다. 그와 함께 우리는 ‘오리엔탈적 성격’, ‘아시아’를 야만적으로 치부하며 몰아내고 있다. 그러나 저녁에 불 앞에서 얼근히 취하면 자신도 모르게 러시아어나 우크라이나어로 노래를 부른다. 독일어나 프랑스어로는 노래하지 않는다. 가끔 영어로 부르기도 하지만 아무런 감정 없이 부른다.

동양-서양, 정체성-배신 사이 방황

왜 우리도 모르게 이럴까? 폴란드의 영혼이 아직 평화를 찾지 못해서다. 폴란드의 영혼은 동양과 서양, 정체성과 배신 사이에서 방황한다. 폴란드는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알지만 세례가 영원불멸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아마 우리는 과거에 몰두하지만 미래를 별로 생각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부활절이 오면 우르르 성당으로 향하지만, 사실 우리의 진정한 축제는 11월 2일 ‘모든 영혼의 날’이다. 가톨릭교회는 조상을 숭배하는 옛 전통을 대신해 ‘모든 영혼의 날’을 세워주었다. 옛 전통에 따르면, 우리는 자정이 되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모여 조상신에게 기도를 드리고 마실 것과 먹을 것을 바쳤다. 조상을 숭배하는 전통이 폴란드에 강하게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가톨릭교회는 이를 없애는 대신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는 부활을 믿지 않았다. 대신 과거는 완전히 죽지 않고 1년에 한 번, 11월 밤에 영혼의 형태로 다시 나타난다고 믿었다.

우리는 ‘모든 영혼의 날’이 되면 가족이나 친지의 무덤에 묵념을 하러 간다. 이 순례에는 고풍스럽고 매력적인 뭔가가 있으며, 기쁨도 기약도 없다. 상업적인 면도 없다. 하지만 폴란드 사람은 수천 명씩 가족이나 친지의 무덤 위에 초를 밝히러 순례를 떠난다. 도시에는 묘지까지 가는 특별 버스가 마련돼 있다. 폴란드 전국은 초와 국화 냄새로 진동한다. 밤에 불이 밝혀진 묘지는 고풍스럽고 매력적인 장관을 만들어낸다. 죽은 이들의 도깨비불이 평평한 들판에서 가끔 너울거린다. 검은 연기가 밤하늘로 올라간다. 돌로 된 타일은 깨끗이 청소돼 꽃으로 장식됐다. 모두 천천히 아무 말 없이 무덤 사이로 미끄러지듯 들어간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이들은 마치 유령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무덤을 지나치며 고인의 존재를 느낀다. 잠깐이지만 사람들은 고인의 외로움을 달래준다. 사람들은 묵념과 기도로 조상을 만난다. 조상 숭배는 폴란드의 가장 오랜 신앙이다.

부활 대신 영혼의 방문을 믿다

이 소박한 오랜 신앙이 국가 종교처럼 됐다. 지난 4월의 일이다. 폴란드 대통령, 정치인, 장관, 주교 몇십 명이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가다 변을 당한 스몰렌스크 참사 이후였다. 스몰렌스크 참사는 ‘운명의 징후’라는 소리가 나왔다. 폴란드 전역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일이라는 것이다. 폴란드 전역이 장례 분위기에 잠겼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예전에는 별 인기도 없고 관심도 받지 못했던 정치인과 공무원이 이 참사로 인해 신비로운 영웅, 국가 신전의 신과 같은 반열에 올랐다. 시민은 대통령 관저 같은 상징적인 곳에 발 디딜 틈 없이 모여들었다. 시민은 촛불을 밝히고 꽃다발을 놓았다. 미디어마다 사람들이 오열하는 모습이 비쳤다. 마치 세상이 슬픔으로 폭발할 것만 같았다. 중국이 미국에 전쟁을 선포하거나 반대로 미국이 중국에 전쟁을 선포하는 뉴스가 나와도 폴란드 언론은 전혀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폴란드는 참사로 희생된 고인을 추모하는 일에만 관심을 가졌다.

운명의 희생에 대한 깊은 두려움

분열된 폴란드 사회는 이번 참사를 계기로 며칠 동안 하나로 뭉쳤다. 모두 똑같이 오열했고 똑같은 고통에 흐느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 때도 모두가 슬퍼했지만 스몰렌스크 참사 때만큼 충격에 휩싸이지는 않았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자연사했고 그의 서거는 희망을 전하는 것이지 절망을 주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스몰렌스크 참사는 달랐다. 우리 마음속에 있던 두려움을 건드렸다. 다시 운명에 희생됐다는 느낌을 준 것이다. 이미 폴란드는 외부의 박해 속에 복잡한 상황과 얽히면서 여러 번 운명에 희생되지 않았는가. 이번 스몰렌스크 참사는 우리를 더욱 뭉치게 했다.

이제 우리에게는 과거밖에 없다. 오직 과거만이 우리의 정체성이다. 살아남으려면 과거를 돌아보고 조상의 무덤에 불을 밝혀야 한다.

근대화된 유럽 국가에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으로 비칠지 모르겠다. 기독교는 쇠퇴하고 있다. 기독교가 특별히 중요한 정체성이고, 과거에 정체성을 이뤘다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근대국가 혹은 포스트모던 국가는 어디서 정체성을 찾을까? 축구? 틀린 말은 아니다. 유럽 챔피언스 리그에서 독일인만 국기를 흔들고 기뻐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기술?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노키아는 조금씩 핀란드와 동의어가 돼가지 않는가. 역사나 전설로 정성껏 포장된 이미지?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에게 프랑스는 무엇보다 ‘아스테릭스 전설’(로마제국에 맞서 승리한 작은 시골 마을 사람들의 영웅서사)의 나라이니까.

폴란드인은 폴란드인이다

그렇다면 폴란드는 어디서 정체성을 찾아야 할까? 축구 실력도 변변치 못하고 기술도 그리 발전하지 않았고 역사도 거창하지 않은데 말이다. 폴란드는 유럽에서 특수한 처지라고 생각한다. 폴란드는 기독교를 완전히 포용하지도 조상 숭배 전통을 포기하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살아남았다. 나 역시 그 무엇도 아닌 폴란드인으로서만 살아가리라.

글•안제이 스타시우크 Andrzej Stasiuk 
1960년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시인·극작가·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 저서로 <나의 독일>(2010)이 있다.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르몽드 세계사2>(공역·2010) 등이 있다.

<각주>
(1) <Niesamowita Slowianszczyzna>(Wydawnictwo Literackie·Krakêw·2006). 프랑스어로는 아직 발간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