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클리셰에 푸시킨은 없다

2010-10-08     에블린 피에예

‘2010 프랑스-러시아의 해’를 기리기 위해 마련된 여러 행사는 “프랑스와 러시아의 심장을 동일한 박동으로 고동치게 만든다”(1)는 포부를 품고 있다. 상투적 어구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행사의 목표가 결코 이성에 호소하는 데 있지 않음을 분명히 표명한 것만큼은 의미가 깊다. 실제로도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한다면, 이성에는 절대 호소하지 않는다는 소기의 목적은 아주 훌륭히 완수될 가능성마저 엿보인다. <성스러운 러시아> <러시아의 대위법, 성상에서 박물관까지> <낭만주의의 정수>는 물론이요, 오페라·체스경기·발레극(2)까지  ‘러시아적 영혼’을 기리느라 분주하다. 분명 러시아적인 영혼은 신비롭고, 시적이며, 이국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점은 소비에트 시절의 일화를 환기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문 보기>>

프랑스에서 열린 어떤 전시회

불멸의 러시아가 활짝 피어나고 있다. 풍부한 서정성과 정신성에 의한 감정 표출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는 요소는 과감히 거둬들이고, 높은 상품적 가치를 지니거나 후원자의 구미를 당길 만한 매혹적인 클리셰(Cliche·예술이나 문학작품 속의 상투성)만 가득 남겨놓은 꽃으로 말이다. 그러니 ‘2010 프랑스-러시아의 해’를 기리는 공식 행사 일정에 ‘삽화를 통해 만난 푸시킨’이란 전시회가 빠진 것도 일견 이해가 간다. 푸시킨이라니 뜬금없다.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러시아 속담 중에 “신께 기도하려면 얼마든지 하라. 하지만 노 젓는 일만은 멈추지 마라”라는 말이 있는데, 만일 푸시킨이 살아 있었다면 이 말에 무릎을 탁 쳤을지도 모른다. 사실 푸시킨은 간결한 문체와 촌철살인적 반어법의 정수를 보여준 작가이자, 열렬한 추종자의 말을 빌리면 “극도로 거만하고, 극도로 개인주의적이며, 극도로 원색적인 시를 쓴 시인”(3)이며, 형이상학적 회의로 고민한 적이 없는 예술가다. 이 말은 곧 그가 러시아의 성스러운 클리셰에 전혀 걸맞지 않는 작가임을 의미한다.

스트라스부르대학 국립도서관이 주최한 전시회 ‘삽화를 통해 만난 푸시킨’은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은 물론이고, 작가로부터 영감을 받은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화가와 삽화가의 작품까지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이번에 전시되는 목판화, 수묵화, 수채화, 목탄화, 오페라 무대장식 스케치, 영화 포스터, 책 삽화 등은 푸시킨이 실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음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뿐 아니라 세련된 형태로 재창조된 서민적 예술양식과 모던함이 넘치는 강건한 스타일처럼 푸시킨의 영향을 받은 시각예술의 두 조류를 번갈아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예가 20세기 초 푸시킨의 동화에 러시아 민속예술의 전통미를 차용한 삽화를 그려넣은 바 있는 거장 이반 빌리빈과 1930년대 환영을 이용한 극사실주의 기법을 그래피즘에 도입한 알렉산드르 알렉세이예프다.

러시아 제정 시대에서 소비에트 사회주의의 실현과 종말로 이어지는 기나긴 역사의 줄기를 관통하며 100
년도 넘는 예술양식의 추구 과정을 좇거나, 삽화라는 부차적인 영역과 푸시킨 작품 사이의 힘찬 대화를 음미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푸시킨과 그림의 대화를 온전히 만끽하려는 이라면 푸시킨의 작품을 미리 조금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푸시킨의 작품은 과거 앙드레 지드나 루이 아라공에 의해 번역됐지만, 순응주의라는 지배적인 조류에 의해 그동안 정중하면서도 단호한 방식으로 경시돼왔다.

러시아 제정 반대한 ‘현대’적 작가

하지만 최근 때마침 재출간된 <표트르 대제의 흑인>(5)은 푸시킨의 작품세계에 즐거운 안내자가 돼줄 것이다. 이 책을 저술하기 시작한 1827년, 푸시킨의 나이는 28살이었다. 세상을 뜨기 불과 10년 전이었다. 당시는 니콜라이 1세가 황제에 즉위한 지 2년째 되는 해였고, 전제주의를 전복하려는 청년 장교 ‘데카브리스트들’의 반란 진압으로 어수선하던 시대였다. 푸시킨도 데카브리스트와 친분이 두터웠고, ‘체제에 반하는’ 시를 쓴 혐의로 6년간 유배 생활을 떠나는 처지가 된다. 그 뒤 푸시킨은 새 황제로부터 ‘사면’을 받았지만 국가는 이 젊은 시인의 글을 검열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국가가 옳았다. 푸시킨은 분명 불온한 자였다. 그는 일생에 걸쳐 위대한 반란자들을 향한 부단한 관심을 거두지 않았다. <스텐카 라진>에서는 돈 코사크 기병대의 전설적인 반란 지도자 라진을 “러시아 역사상 가장 시적인 인물”로 표현하기까지 했다.

민중과 권력, 순응과 봉기 사이의 팽팽한 긴장은 또 다른 길항관계로 연장된다. ‘유럽’으로 확대할 것인가 아니면 ‘정통 슬라브주의’에 입각한 정체성을 고집할 것인가, ‘현대성’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전통 가치를 고수할 것인가라는 두 방향을 놓고 오랫동안 러시아는 혼란을 겪었다. 열정과 냉정, 생략과 부연설명이라는 모순 사이를 줄타기하는 푸시킨의 문체는 이런 길항관계의 결정체인 동시에, ‘현대’ 개인의 복잡성을 향해 열린 자세를 견지하라는 훌륭한 교훈이기도 하다.

‘성상 숭배’의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푸시킨에게 경의를 표하도록 하자. 그러면 그가 우리에게 따뜻하면서도, 지혜롭고, 은밀한 즐거움의 은혜를 내려주리니.

글•에블린 피에예 Evelyne Pieiller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각자>
(1) 퀼튀르프랑스, ‘2010 프랑스-러시아의 해’ 안내문.
(2) 350여 개 문화행사.
(3)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고골, 투르게네프, 도스토옙스키>, 파리, 스톡 출판사, p.264, 1999.
(4) 줄리앙 콜롱주, 드미트리 쿠드리야쇼프, ‘삽화를 통해 만난 푸시킨’ 카탈로그, 소모지 출판사, 파리, p.255, 28유로, 2010.
(5) 알렉산드르 푸시킨, <표트르 대제의 흑인>, 귀스타브 오쿠튀리에 역, 시몬 상츠 미셸 감수, 갈리마르 출판사, p.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