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론, 21세기판 ‘러시아 이념’인가?

2019-01-31     쥘리에트 포르 l 시앙스포·국제연구소(CERI)·프랑스국립과학원(CNRS) 소속 박사과정

소련 몰락 이후, 러시아 엘리트층은 공산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이념 모색에 분주했다. 그렇게 잿더미 속에서 재탄생한 것이 ‘우주론’이었다. 기독교 신앙과 이성주의, 불멸에 대한 꿈으로 빚어낸 이 21세기 사조는 과학정책의 추진과 전통가치의 수호를 병행할 이론적 틀을 새 신도들에게 제공했다.  

 

올여름 모스크바 소재 전러시아박람회장(경제업적박람회장(VDNKh)의 후신)은 구소련 전성기를 누리던 관광명소의 위용을 당당히 되찾았다. 국력과시의 장으로서 전러시아박람회장은 강대국 러시아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는 중요한 명소 중 하나로 간주된다. 1934년 건립된 박람회장은 처음에는 농업집단화를 자축하는 장으로 기능했다. 이어 1960년대에는 소비에트 경제가 이룩한 기술·산업의 업적을 치하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하면서 박람회장도 서서히 해체의 길을 걷게 된다. 전시회장의 꽃이라 부를 수 있는 우주관은 어느새 시장에 자리를 넘겨줬다. 사실상 시장은 경제민영화가 한창이던 1990년대를 대변하는 상징물에 해당했다.

2014년 모스크바 시장의 주도로 37개 전시관 복원, 11개 박물관 신설 등을 포함한 대규모 개발계획이 시행됨에 따라 마침내 박람회장도 과거의 위상을 되찾게 된다. 4년 뒤 러시아 월드컵을 보기 위해 발걸음한 방문객들은 볼셰비즘 시대의 간판 예술가인 베라 무히나가 1937년 완성한 유명 조각상 ‘노동자와 집단농장의 부녀자’와 주교회의 문화위원회가 마련한 전시회 ‘러시아, 나의 역사’를 천천히 둘러볼 기회를 누릴 수 있었다. 

전시회장 내부에는 관람객들이 구경할 수 있도록 곳곳에 차르 시대의 역사를 복원한 홀로그램과 인터랙티브 스크린들이 설치됐다. 그런가 하면 슬라브주의, 유라시아주의, 혹은 기독교 성향을 띤 사상가들의 말이 벽면을 빼곡히 장식했다. 이 모든 것은 하나의 명확한 메시지로 환원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연설도 이런 메시지에 확고한 힘을 실어줬다. “과거 러시아에 있어, 발전을 향한, 문화와 교육과 계몽정신의 발현을 향한 강력한 추동력이 돼온 것이 바로 러시아정교였다.”

전시회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한 사이버 테마파크도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현실이라 믿기 힘든 꿈같은 감동”을 선사했다. 안내 데스크의 직원은 외국 관광객의 질문에 별안간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그러자 즉석에서 스마트폰이 우아한 빅토리아풍의 영어로 직원의 답변을 통역해줬다. “로봇 전시관은 민족우호분수 근방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방문객들은 서둘러 초상화를 그리는 예술가 로봇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예술가 로봇의 곁에는 바이올린 연주 로봇과 시를 낭송하는 푸시킨 로봇도 설치돼 있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러시아 최초의 로봇 카페가 나옵니다.” 다시 출구로 나오자 블라디미르 소로킨의 소설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인상을 주는 안내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소로킨은 전위적인 최첨단 현대 러시아 작가로, 주로 신기술을 토대로 한 신중세적 신권정치체제를 묘사한 SF 소설들을 써왔다.(1)

러시아에서는 과학과 종교의 결합이 19세기 서구주의 대 슬라브주의라는 거대한 이념논쟁의 두 항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당시만 해도 서구의 과학과 기술을 신봉하는 서구주의자와 러시아의 전통과 러시아정교의 가치를 중시하는 슬라브주의자 사이에 팽팽한 대립구도가 형성돼 있었다. 세기 말, 러시아는 민족 이념, 즉 이른바 ‘러시아 이념(Russian Idea)’을 모색하는 데 혈안이 됐다. 단순히 러시아인의 민족적 정체성과 운명만이 아니라, 세계 역사 속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역할, 인류를 통합하고 변화시킬 주역으로서 러시아의 소명까지 규정지어줄 이념을 찾아 헤맸다. 혁명가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가 던진 저 유명한 물음 ‘무엇을 할 것인가’로 대변되는 정치적 행동의 필요성이 요청되는 분위기 속에서, 마르크스 유물론을 지지하는 부류와 종교·민족·반서구 교리를 표방하는 부류가 극렬하게 대립했다. 

 

‘우주론’의 창시자 표로도프의 제3의 길

그러나 이에 대해 오늘날 ‘우주론’의 창시자로 통하는 니콜라이 표도로프는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로 두 이념 노선을 결합한 제3의 길을 주창하기에 이른다. 아웃사이더이자 금욕주의자로 유명한 표도로프(1829~1903)는 본래 모스크바 중앙도서관에서 한 달에 몇 루블을 받고 일하던 말단 직원이었다. 그는 철학자와 학자들은 이미 세계에 대한 해석을 충분히 할 만큼 했으니, 이제는 세계를 변혁해야 할 때라고 주장한 마르크스의 견해에 동의했다. 그는 당대 실증주의자들이 보여준 과학과 기술에 대한 견해에 긍정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의 개념에 대해서만큼은 반기를 들었다. 그에게 진보란 미래의 행복을 위해 전 세대를 희생시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진보란 엄밀히 말하자면 죽은 것들의 생산을 뜻한다. 진보는 살아 있는 자들의 축출과 한 짝을 이룬다. 그런 의미에서 진보란 진정한 지옥, 참된 지옥이라고도 볼 수 있다.”(2)

표도로프는 진보의 예찬 대신, 그와는 정반대로 선조의 숭배를 표방했다. 그는 매우 독특하게도 오로지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 ‘공동의 과업’을 위해서만 과학이 쓰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게는 죽은 자의 부활이 곧 사회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도덕적 과제였다. 그는 “부활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산 자들’을 한 데 결속시키는 것은 형제들을 창조하고, 영혼을 창조하고, 생명을 창조하는 행위인 반면, 재가 된 제 아버지들로부터 그 아들들을 멀리 떼어놓는 것은 생명과 영혼이 없는 사회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간주했다. 

그는 이미 흙으로 분해된 선조들의 유해 입자들을 한데 모아 생명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식으로 상당히 구체적인 제안을 했다. 또한 이 불멸의 인류가 살기에 지구는 너무나도 작기 때문에 인간은 우주를 정복하고 우주에 정착해야 한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그리고 이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기술 진보를 ‘자연의 무분별한 힘’을 길들이고 그것을 “집단의 이성, 하나로 통합된 집단의 의지를 이루는 도구”로 삼고자 했다.

표도로프는 실증주의자인 동시에 시대를 앞서간 트랜스휴머니스트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사상가이기도 했다. 그는 ‘신적인 인간’이야말로 스스로의 구원을 책임지는 원인이자 요인이라고 간주했는데, 이런 사상은 부활한 그리스도의 이미지와 그가 이룩한 자연의 변화라는 기적적 행위에 대한 독창적 해석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그는 부활을 토대로 구축된 사회를 모범적인 사회로 간주했다. 부활이란 곧 “물리학적 필연성을 상대로 거둔 도덕법칙의 완승”을 의미하는 동시에, “삼위일체와 완전히 똑같거나 혹은 흡사하게도”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관계를 맺어주는 일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는 이처럼 자연에 대한 도덕적, 기술적 변화를 요하는 과학적인 성격의 기독교를 표방했다. 그런 의미에서 구원이란 더 이상 인간이 신에게 간절히 이뤄주기를 기대하는 기적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지구 너머로까지 노력을 전개함으로써 우주적 책무를 다할 때 이뤄낼 수 있는 인류의 과업으로 간주됐다.

표도로프는 금세 동시대인의 관심과 칭송을 한 몸에 받았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사상을 칭송했고, 레프 톨스토이는 그를 성인으로 추대했으며, 신학자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는 그를 스승으로 섬겼다. 이어 1922년 소련에서 추방된 철학자 니콜라이 베르자예프도 표도로프의 사상에 대해 “기독교에 대한 믿음과 과학 및 기술의 힘에 대한 믿음이 한 데 결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은 많은 부분에서 러시아 이념에 흡수되고 포함될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썼다. 그러면서 “나는 이보다 전형적인 러시아 사상가는 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3)

 

기술 혁신을 영적 탐구에 활용하다

표도로프 말고도 수많은 지식인과 예술가가 기술 혁신을 영적 탐구나 우주적 명상에 활용했다. 가령 제정 러시아에서 소비에트 시대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등장한 전위적인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대표적인 예였다. 이를테면 알렉산드르 스크랴빈(1871~1915)은 교향시 <프로메테우스>를 통해 엄숙한 음의 질서를 탈피한 ‘신비’ 화음과 합성음을 토대로, 불협화음으로 구성된 상징주의적인 음악 언어를 탐색하고자 했다. 그는 각각의 음을 색채나 빛과 연계시킴으로써, 우주의 비물질성과 가벼움을 상징하는 ‘빛을 내뿜는’ 하모니를 추구하려고 했다. 

그는 미완성작 <신비>(스크랴빈은 ‘우주’, ‘인류’, ‘정화’ 3부로 이뤄진 총 세 시간의 음악, 춤, 시각적 색채, 향기 등을 결합한 멀티미디어 작품을 구상했지만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끝내 작품을 완성하지 못했다-역주)를 구상하는 과정에서도, 인류와 우주를 하나로 통합해 일종의 황홀경 속에 그것들이 전부 소멸되는 순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모든 감각을 총동원한 총체적인 작품을 창조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중력과 물질로부터의 해방, 우주의 기원과 창조에 대한 사유는 미술가 칸딘스키(1866~1944)의 작품세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그가 기하학적 추상화를 추구하는 데 영감을 제공했다. 뿐만 아니라 문학 분야에서도 작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1899~1930)가 ‘인간적인 기술’에 의해 정복된 ‘인간화된’ 우주를 구상하는 단초가 됐다.

볼셰비키 혁명 직후, 우주론은 인간이 적극적으로 우주를 제어하고, 발전된 기술을 사용해 인간의 조건을 개선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것을 요구하는 철학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소비에트 사회가 지향하는 낙관론이나 과학주의에도 잘 맞아떨어졌다. 1920년대 많은 바이오 기술 연구가 기술을 통해 인간의 능력을 배가한 슈퍼 인간의 창조에 매진했다. 새 피를 주입해 신체를 재생시키는 연구를 진행한 의사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도 표도로프처럼 과학이 인간의 타고난 능력을 향상시킬 능력이 있다고 굳게 믿었다.

한편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에게서도 우리는 과학을 통해 인류를 더욱 완벽한 경지에 이르게 하고, 인간을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현대 우주비행의 창시자이자 소련 우주개발프로그램의 아버지인 치올코프스키는 일찍이 우주정착의 가능성을 예견하며, 미래에는 인간이 개체성과 물질성을 탈피해 “시간적인 측면에서는 불멸하고, 공간적인 측면에서는 무한한” 특징을 지니는 일종의 ‘방사선’의 상태로 변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4) 이와 같은 불멸의 유토피아는 레닌의 석관을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 건축가 콘스탄틴 멜니코프의 여러 구상에도 영감을 불어넣었다.(5) 한편 표도로프의 사상은 정치계까지 파고들었다. 표도로프의 이름은 심지어 1928년, 당시 소련 공산당 정치국원이자 훗날 소련의 국가원수가 될 미하일 칼리닌의 연설에까지 등장했다.

20세기 초 과학혁명에 힘입어 우주론은 러시아 국경 너머로까지 널리 전파됐다. 프랑스에서는 성직자이자 고생물학자인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댕이 소르본 대학에 강연 차 방문한 우주론자인 러시아의 지구화학자 블라디미르 베르나스키와의 만남으로부터 깊은 감흥을 받았다. 테야르 드 샤르댕은 ‘우주적 그리스도’(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리는 우주의 섭리자와 지배자로서의 예수를 의미한다-역주)의 이미지를 토대로, 다양한 과학적 발견과 기술을 통한 인간 능력의 향상을 신학적인 차원에서 해석하고자 했다. 그는 “미래를 구성하는 두 가지 요소인 초월성과 초인성을 한 데 통합한 십자가에 열렬히 매료됐고, 그것에서 기쁨을 느꼈다”(6)고 털어놓았는데, 이는 사실상 훗날 우생학 이론가이자 생물학자인 줄리언 헉슬리가 구상하게 될 ‘트랜스휴먼’ 개념의 전주곡에 해당했다.

스탈린주의는 1920년대 소련의 왕성한 창조적 물결에 돌연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우주론적 유토피즘만큼은, 1957년 세계 첫 위성 발사, 1961년 유리 가가린의 세계 첫 우주비행 등 소련이 눈부신 우주정복 시대를 구가하는 동안에도 과학기술지상주의적인 색채가 가미된 새로운 버전으로 재탄생했다. 표도로프의 철학은 온갖 검열에도 불구하고 거의 유일하게 혁명적인 단절을 훌쩍 뛰어넘어 살아남았다. 그는 종교 철학자로 유일하게 소비에트 시절에 마지막까지 호명됐을 뿐만 아니라, 1970년대 이후로 다시 저술이 재출간되는 영광을 누린 최초의 철학자였다. 마침내 대학교수와 지식인들은 ‘우주론’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표도로프의 작품과 연계된 수많은 예술가와 과학자, 신학자 등 서로 이질적인 성격을 지니는 부류들을 한데 모았다.(7)

소련 붕괴 후, 우주론에 대한 관심이 부활한 것은 새로운 ‘러시아 이념’을 모색하는 과정과도 관련이 깊었다. 유라시아주의나 슬라브주의와 마찬가지로 우주론도 1990년대 공산주의의 대를 이을 민족 이념을 재정립하는 데 동원됐다. 그러나 독일의 표도로프 전문가인 미하엘 하게마이스터는 우주론을 이념적인 도구로 삼으려는 시도를 비판했다. “소비에트 시대에는 표도로프가 ‘순수 유물론자’로 간주됐다면, 지금은 신봉자들 사이에 종교 사상가로 각광받는다. 그의 가르침이 구약과 신약 이후, 제3의 길, 다시 말해 행동중심의 기독교 단계로 향하는 길을 활짝 열어줬다고 간주되는 것이다.”(8) 

강대국 러시아의 국력 유지를 위해 불철주야로 연구 중인 가장 상위의 국책연구기관도 종종 우주론에 관심을 보이곤 한다. 1994년 국방부는 국방부 산하 군사대학 내에 누코스몰로지(Noocosmology: 정신우주학) 연구소를 신설했다. ‘우주적 위계질서’와 더 나아가 ‘고도의 이성’, 다시 말해 우주의 의미와 목적을 연구하겠다는 것이 연구소의 설립 취지다. 그런가 하면 1995년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러시아연방 안전위원회의 한 일원은 우주론을 러시아 국가 정체성의 토대로 삼자는 제안을 했다.(9)

오늘날 굳이 직접 우주론자를 자처하지는 않더라도, 일부 애국민족주의 성향의 이념가들도 기술의 발전을 도덕이나 종교적 전통과 연계하는 일에 많은 관심을 쏟아붓고 있다. 이런 경향은 싱크탱크 이즈보르스크 클럽이 내세우는 ‘역동적 보수주의’와도 일맥상통한다. 이 국책연구기관은 특히 대통령 자문관인 세르게이 그라지에프, 민족주의 성향을 지닌 지식인 알렉산드르 두긴,(10) 그리고 파리에 러시아정교회 계열의 연구소를 설립한 나탈리야 나로츠니츠카야 전 하원의원 등이 소속돼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즈보르스크 클럽의 부대표인 비탈리 아베리아노프는 “우리가 제시하는 이념과 개혁정책의 목표는 러시아정교와 혁신경제를 바탕으로, 다시 말해 고도의 영성과 고도의 기술을 바탕으로, 일종의 켄타우로스를 창조하려는 데 있다. 이렇게 탄생한 켄타우로스가 21세기 러시아의 얼굴을 대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11)

국가 상층부에서는 대체로 전통 가치의 수호와 과학기술개발의 장려가 손쉽게 조화를 이룬다. 푸틴 대통령은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종교’, 더 나아가 ‘전통적인 성 문화’를 권장하면서도,(12) 또 다른 한편으로는 기술의 초현대화에 박차를 가하자는 호소도 서슴지 않는다. 2018년 3월 1일 차기 정부의 정책방향을 발표한 대권 출사표 성격의 연설에서 푸틴 대통령은 “로봇 장비, 인공 지능, 무인자동차, 온라인상거래, 빅데이터 처리기술 등을 발전시키기고 널리 보급하는 데 장애가 되는 모든 걸림돌을 제거”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러시아의 기술개발을 진흥하기 위한 각종 정책을 대대적으로 마련했다. 가령 소콜코보나 아카뎀고로도크를 비롯한 혁신도시를 조성하는 한편, 로스나노(나노기술공사), 로스텍(국영방위산업체) 등을 비롯한 신기술 개발에 매진할 국영기업을 육성하고, 국정사업 ‘메가 사이언스’의 일환으로 대규모 연구 인프라 건설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다.

이처럼 기술 혁신이라는 화두를 주로 주창하는 계층은 1990년대 정치 엘리트층의 계보를 직접 계승한 자유주의적이면서 기술관료적인 권력층이다. 특히 보리스 옐친 대통령 시절 탈소련 경제 민영화 정책을 이끌었던 아나톨리 추바이스 러시아 전 부총리가 로스나노(나노기술공사)의 사령탑을 맡았다는 사실부터가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그러나 동시에 기술과학의 발전은 특히 국방이나 우주정복과 같은 막강한 산업 분야에서 자주 나타나는 일종의 민족주의적인 낭만적 수사학과도 제법 잘 어우러진다. 

드미트리 로고진 로스코스모스(러시아 연방우주국) 사장은 “우리의 조국은 이미 국가가 탄생하는 순간부터 우주 강대국이 될 운명을 타고났다. 러시아는 민족의 국민성부터가 이미 우주 강대국이 되기에 적합하다. 러시아 민족은 총체적인 사고에 익숙할 뿐만 아니라, 대의를 위해서라면 개인의 삶을 희생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 우주는 (…) ‘러시아적인 세계’와 동의어다. 그런 의미에서 러시아는 결코 우주의 바깥에서는, 우주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러시아는 미지의 세계를 정복하려는 꿈을 억누를 수가 없다. 미지의 세계가 러시아의 영혼을 매혹한다.”(13)

같은 맥락에서 2018년 봄 전러시아박람회장도 대규모 우주개발프로그램의 재개를 몸소 증명하듯 그동안 문을 닫았던 우주관을 새롭게 재개관했다. 러시아는 새로운 우주개발프로그램에 따라, 2016~2025년 태양의 활동과 우주의 기상상태를 제어할 우주복합센터를 설립하는 한편, 차세대 유인우주선을 개발하고, 더 나아가 달 정착 프로그램의 첫 번째 단계에 돌입하기 위해 자동 우주왕복선 5대를 발사할 예정이다. 한편 새롭게 개장한 우주관은 우주론 물리학자이자 사상가인 치올코프스키의 어록으로 우주관 내부를 도배하다시피 했다. 말하자면 그런 식으로 이 사상가가 지닌 이성과 영성의 양면성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사상, 판타지, 동화가 먼저다. 그다음 과학적인 계산이 뒤를 잇는다.”

 

우주인 훈련센터와 예배당의 공존

기술적 혁신과 종교적 전통의 결합을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예가 최근 러시아 우주인 훈련센터인 스타시티 안에 러시아정교 예배당이 건설된 사례다. 2010년 준공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키릴 총대주교는 우주가 함의하는 종교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자세하게 설명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행성과 더 나아가 우주 전체를 터전으로 삼고 정복할 것을 원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별을 향해 높이 올라가려는 인간의 욕망은 결코 일시적인 변덕, 환상, 혹은 유행이 아니다. 신께서 인간의 본성 속에 심어놓으신 일종의 프로그램이다.”(14)

니키타 흐루쇼프 시대에는 항공학이 국가무신론주의의 첨병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종교계마저 열렬히 수호하는 과학과 신앙의 융합을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로 간주된다. 우주에서 귀환한 직후 자신은 우주에서 ‘신을 보지 못했다’고 선언한 가가린은 오늘날 스탈린 정권하에 파괴된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을 복원하자고 주장한 신앙인으로 소개되곤 한다. 스타시티 성당에 배속된 이오프 부속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우주를 연구하고, 우주의 법칙과 구조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한 모든 위대한 과학자들은 대개 신실한 신앙인이거나 혹은 처음에는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결국에는 믿음의 길로 인도되곤 했다. 종국에는 오로지 지적 창조주만이 세계를 관장할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우리는 단언컨대 소련 우주개발프로그램을 창시한 엔지니어인 세르게이 코롤료프가 신앙인이었다고 분명히 확언할 수 있다.”(15) 

한편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현재 젊은 우주비행사 훈련을 담당하는 지휘관인 우주인 발레리 코르준도 “신은 죽었다”고 선고한 가가린의 진단을 열성적으로 반박하기에 바쁘다. 그녀는 한 러시아정교 잡지를 통해 “나는 우주를 여행하면서 결코 신을 보지 못하거나 신의 존재를 느끼지 못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선언했다.(16) 그녀는 로스코스모스(러시아 연방우주국)와 러시아정교는 더없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령 이오프 신부는 로스코스모스에서 일하는 한 임원의 요청을 받아 바이코누르 발사기지에 로켓들을 축성해주기 위해 다녀가기도 했다.

기술 발전과 종교의 결합은 핵 분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보수주의 성향의 이념가인 이고르 콜모고로프는 ‘핵 러시아정교’를 표방하며, 푸틴 대통령의 앞선 선언에 큰 힘을 실어줬다.(17) 가령 2007년 2월 기자회견에서 푸틴은 러시아정교와 러시아의 핵전략은 “서로 관련이 깊다. 러시아연방의 전통적 종교들과 국가를 수호하는 핵은 두 가지 모두 러시아를 더욱 강고히 해주는 요소를 이루고 있으며, 국내외적인 안보에 필수적인 조건을 형성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이런 현상은 특히 사로프 시에서 더욱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사로프 시는 사실상 차르 제국 최후로 시성식이 열린 러시아정교의 성소이자, 동시에 러시아가 핵 개발에 매진한 비밀도시이기도 하다. 2012년 키릴 총대주교는 당시 로스아톰(러시아 국영원자력공사)의 사장이자 현재 대통령 행정실 제1부실장을 맡고 있는 세르게이 키리옌코와 함께, 과학자·대학교수·러시아정교대표들·정부 인사·사업가 등을 한 데 끌어모아, 사로프시에 과학·기술·종교의 관계를 논의하기 위한 영성과학센터를 설립했다. 2016년 센터는 ‘신앙과 과학의 결합, 러시아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상호작용’이라는 우주론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좌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키릴 총대주교는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은 종교와 과학 간에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18)고 선언했다. 이와 같은 일치주의적(Concordism: 과학과 성경내용을 일치시키려는 시도-역주) 정신을 이어받아, 연방핵연구센터의 과학자문관인 그는 1990년대 교계가 핵 개발 프로그램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던 사실을 거론하며, 앞으로도 교계는 과학계와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확언했다. 아울러 이런 파트너 관계가 없다면 “러시아의 미래도 결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일갈했다.(19)

 

“기술개발과 정신 개발의 시너지 효과”

종교와 과학 간의 협력관계는 대학 차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오늘날 세속대학 50개 이상이 학내에 신학과를 개설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2013년 명문 핵물리 전문대학 모스크바엔지니어링물리학연구소(MIFI) 안에 개설된 신학과는 러시아정교회 대외협력위원장이기도 한 힐라리온 대주교가 책임을 맡고 있다. 힐라리온 대주교는 취임 연설에서 “신학과 핵 연구는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MIFI의 특수성과 이 대학이 우리 교육제도에서 차지하는 독특한 역할을 감안해 볼 때, 이 특별한 대학 내에 개설된 우리 신학과는 분명 종교와 자연과학과의 대화를 촉진하며 철저히 혁신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오늘날 두 분야 간의 대화는 과학적 지식의 소유자만이 아니라 종교적 전통의 소유자에게 있어서도 필요한 일이다”고 말했다.(20)

더욱이 이런 학문의 혼종성은 교계 내부에서도 발견되곤 한다. 오늘날 러시아 교계는 구소련 기술과학대학들에서 교육을 받은 세대의 인사가 곳곳에 포진해있다. 러시아정교는 신앙과 이성의 분리를 거부하는 우주론의 시각에는 동의하면서도, 지금도 여전히 신의 일을 인간의 일로 대체하려는 표도로프의 과격한 인간중심주의에 대해서만은 비판적 시각을 고집한다. 그런 의미에서 러시아정교는 사실상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우주론에 입각해 표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이념’을 기술애호적으로 해석하는 데는 확실히 반대되는 입장에 서 있다. 사실 이런 해석은 우루론만이 아니라, 러시아 재벌(올리가르히) 드미트리 이츠코프가 발족한 ‘2045 이니셔티브’ 운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츠코프는 생명 연장, 인간의 뇌와 접속이 가능한 인간의 의식을 갖춘 인조인간 개발을 목적으로 분자유전학, 신경과학, 신경보철(인공신경) 등의 연구에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우주론과 확실히 연계된 이 운동은 선언문에서부터 ‘신인류’의 도래를 기원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신인류의 특징은 무엇보다 “기술개발과 정신 개발의 시너지 효과”, “단 하나의 거대한 집단정신, 즉 누스페어(인류가 오랫동안 집적해 온 공동의 지적 능력과 자산을 바탕으로 사이버 공간에서 이루어가는 세계를 뜻하는 사회철학 용어-역주) 속에 하나로 통합될 수 있는” 능력으로 대변된다. 말하자면 영성과 과학, 신기술이 ‘미래지향적 현실’의 토대로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2011년 이츠코프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 프로젝트의 유용성을 다음과 같이 예찬했다. “불멸성이야말로 우리의 민족적 이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21)   

글·쥘리에트 포르Juliette Faure
시앙스포·국제연구소(CERI)·프랑스국립과학원(CNRS) 소속 박사과정 연구원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Vladimir Sorokine, 『Journée d'un opritchnik(오프리치니크의 나날)』, 파리, 2008년; 『Le Kremlin en sucre(설탕 크레믈린)』, L'Olivier, 2011년.
(2) 이 글과 후속 글은 『유럽 문학 유산: 프랑스어 선집. 제12권. 유럽의 세계화 : 1885~1922년 』(Jean-Claude Polet 엮음·De Boeck 대학·브뤼셀·2000년)에 실린 니콜라이 표도로프의 글 ‘공동의 과업에 관한 철학(Philosophie de l'oeuvre commune)’에서 인용했다. 
(3) Nicolas Berdiaev, 『L'Idée russe(러시아 이념)』, Mame, 투르, 1969년.
(4) Michael Hagemeister, ‘Konstantin Tsiolkovskii and the occult roots of Soviet space travel’, 『The New Age of Russia: Occult and Esoteric Dimensions』(Michael Hagemeister, Bernice Glatzer Rosenthal, Brigit Menzel 공저·Peter Lang·베를린-뮌헨, 2012년) 중에서
(5) Léonid Heller, Michel Niqueux, 『Histoire de l'utopie en Russie(러시아 유토피아 역사)』,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파리, 1995년.
(6) ‘Croix d'expiation et croix d'évolution(속죄의 십자가와 진화의 십자가)’, Attila Szekeres, 『Le Christ cosmique de Teihard de Chardin(테야르 드 샤르댕의 우주적 그리스도)』, Seuil- Uitgeverij de Nederlandse Boekhandel, 파리-안트베르펜, 1969년.
(7) George M. Young, 『The Russian Cosmists: The Esoteric Futurism of Nikolai Fedorov and His Followers』, Oxford University Press, 뉴욕, 2012년.
(8) Andrey Shental, ‘The Hybrid Ideology’, Michael Hagemeister와의 인터뷰, Inrussia, http://inrussia.com
(9) Michel Hagemeister, 『Y a-t-il un cosmisme russe, et a-t-il jamais existé?(러시아 우주론은 존재하는가? 존재한 적이 있기는 했는가?』, 미출간 원고, 2012년.
(10) Jean-Marie Chauvier, ‘Eurasie, le choc des civilisations version russe(유라시아, 러시아판 문명의 충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4년 5월호‧한국어판 2014년 6월호.
(11) Vitali Averianov, ‘Il faut d'autres gens(다른 사람들이 필요하다)’, 『Zavtra』, 모스크바, 2010년 7월 14일.
(12) Anaïs Llobet, ‘Echange de bons procédés entre le Kremlin et l'Eglise orthodoxe(크렘린과 러시아정교의 원윈전략)’,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3월호‧한국어판 2018년 4월호
(13) Dmitri Rogozine, ‘La Russie sans le cosmos ne peut pas réaliser ses rêve(우주가 없는 러시아는 꿈을 실현할 수 없다)’,『Rossiyskaia gazeta』, 모스크바, 2014년 4월 11일.
(14) 주예수변모교회 웹사이트(러시아어), http://zvezdnyi.moseparh.ru
(15) 이오프 신부와의 인터뷰, 주예수변모교회 웹사이트, 2013년 12월 4일, http://zvezdnyi.moseparh.ru
(16) Nikita Filatov, ‘Avec Dieu dans le cosmos(우주 속 신과 함께)’, Valeri Korzoune과의 인터뷰, 2016년 4월 12일, http://www.pravoslavie.ru
(17) Maria Engström, ‘Contemporary Russian messianism and New Russian foreign policy’, 『Contemporary Security Policy』, 제35권, 제3호, 마스트리히트, 2014년.
(18) ‘키릴 총대주교의 사로프 과학자 접견 연설’(러시아어), 2016년 8월 1일, http://www.patriarchia.ru
(19) 러시아정교 총대주교 웹사이트에 게재된 접견 보고서, www.patriarchia.ru
(20) 힐리라온 대주교 연설, 2012년 10월 16일, www.mospat.ru
(21) www.2045.r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