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서비스, 기본소득의 다른 버전

2019-01-31     폴 아리에스 l 정치학자, 국제무상서비스관측소 소장

기본소득제도는 어떤 이들에게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들 중 대다수는 기본소득제의 형평성과 자비심을 통해 동기 부여를 받는다. 하지만 기본소득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이 강한 진짜 이유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일자리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노동위기’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무상서비스 vs. 기본소득, 비용은?

기본소득이냐 무상서비스냐는 것은 ‘시민들에게 돈을 주는 편이 나은지, 무상서비스를 제공하는 편이 나은지’라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위해 세 가지 사항을 고려해볼 수 있다. 2017년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은 영국에서 기본소득을 실시할 경우에 드는 비용과 보편적 복지(주택, 식료품, 건강, 교육, 교통 서비스, 컴퓨터 서비스 등)를 무상으로 시행할 경우에 드는 비용을 비교했다.(1) 보편적 복지를 무상으로 시행할 경우의 비용은 420억 파운드(약 480억 유로)였으며, 기본소득을 실시할 경우에 필요한 비용은 2,500억 파운드(약 2,840억 유로)였다. 전자는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2.2%에 상응하는 금액이고, 후자는 13%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프랑스의 경우를 살펴보더라도 결과는 유사할 것이며, 따라서 첫 번째 관찰 결과는 다음과 같다. “무상서비스가 기본소득보다 일단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한층 ‘현실적’으로 보인다.”

기본소득은 비용 외에도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일정 금액의 돈으로 삶의 수준을 끌어올리고자하는 소비사회 행태를 계속 유지하거나 확대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부모들에게 자녀 교육비를 주고, 학생들에게 책값을 주고, 농부들에게 환경에 해를 끼친 비용을 보상해준다는 것은 결국 자본주의적 논리를 심화시키는 것이 아닐까? 철학자 앙드레 고르도 이런 생각 끝에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을 포기하고 무상서비스를 선택하게 됐다(그는 한때 기본소득을 “유급노동과 비영리 활동을 모두 최대한 폭넓게 재분배하기 위한 최고의 지렛대”라고 생각했다).(2)

기본소득제는 과연 온당한 것일까? 먼저 기본소득제로 할당된 돈이 생태적·사회적·민주적으로 가치가 있는 제품에 사용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그리고 기본소득이라는 장치는 수요에 대한 개개인의 정의, 즉 소비 사회라는 전제 하에서 유지된다. 

이에 비해 무상서비스는 인류와 지구를 위협하는 ‘묵시록의 4대 기사’, 즉 상품화, 화폐화, 공리주의 및 경제주의를 쓰러뜨릴 수단을 제공한다. 무상서비스는 욕구와 희소성의 논리를 넘어서도록 우리를 이끈다.

우리가 옹호해야 하는 무상서비스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먼저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자. 공립학교 교육이 무상이라면, 이를 위한 재정은 세금에서 나온다. 그다음 문화적인 면에서의 무상서비스는 재화와 서비스에 대해 마구잡이식 접근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규칙을 통해 지원된다. 

 

무상서비스의 세 가지 규칙

그 규칙 중 첫 번째는 ‘무상서비스는 물이나 최소한의 음식처럼 각자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상서비스는 공원과 정원, 놀이터, 도시의 환경 미화, (생존에 필요한) 필수 에너지, 건강, 주택, 문화, 정치 참여에 대한 접근 등 삶의 모든 영역과 관련이 있다. 여기에서 쟁점은 무상서비스의 규모나 범위가 지금은 작은 섬만 하지만 내일은 열도만큼, 모레는 대륙만큼 커질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그 크기를 키우는 것이다. 

두 번째 규칙은 모든 것이 무료로 제공된다면 무료에는 절제가 뒤따를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보자. 물과 같은 재화가 무료인 이유는, 좀 더 작은 상수도를 건설해 물의 손실을 줄인다거나(1/3 이상으로 예상), ‘물은 한 번 쓰고 버린다’는 시장 원칙에서 초래되는 사회적 우려나 환경 문제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에서는 건강상의 이유로 (생활용수에서 나온) 오수를 음용 목적으로 재이용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하지만 다른 국가(미국, 일본, 호주)에서는 허용되는데, 이들 나라에서 재활용된 물을 먹고 탈이 나는 경우가 프랑스에서의 경우보다 더 많지는 않다. 

개럿 하딘의 ‘공유지의 비극(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공자원은 사람들의 남용으로 쉽게 고갈될 수 있다는 이론-역주)’ 우화(3)에서는 무상서비스가 낭비를 일으키지만, 실제로 무상서비스는 환경파괴에 대한 책임을 더 무겁게 지우는 데 기여한다. 

세 번째 규칙은 ‘무상서비스로의 전환이 기존 제품과 서비스 형태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학교 식당에서는 해당 지역의 제철 식자재를 사용하고, 물과 육류의 사용을 줄이고, 즉석에서 조리하는 방식을 추구해야 한다.(4) 한편 유료 콘텐츠 서비스는 신규 구독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겠지만, 유료 콘텐츠 결제 자체로 모든 사람이 본전을 찾고 싶은 마음에 최대한 많이 대여하고자 소비한다. 무료 회원 카드를 발급하면 자료를 무작정 많이 대출하는 일은 줄어들 여지가 있고 결국 이는 사람들의 행동을 바꿔놓을 것이다. 

무료 장례 서비스는 유가족들에 대한 심리적 안정을 지원하는 동시에 개인별 묘지를 이용하기보다 공공성에 가치를 두는 공화주의식 장례 문화를 확립한다거나, (자연주의 장묘문화의 하나인 수목장처럼) 시신을 퇴비화하는 방법 혹은 빙장(5)을 합법화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소유가 아닌 존재의 즐거움 누리기

무료 서비스의 품질은 유료 서비스에 비해 떨어진다는 인식과는 달리, 관련된 어떤 분야에서도 무상서비스는 서비스 품질 저하를 초래하지 않았다. 오히려 실제 사례들을 보면 무상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도 시민들의 몰상식한 행동이 증가한다거나 품질 저하가 심각해지는 일이 늘어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은 소비와 상품화가 천연자원을 보호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석유가 희귀할수록 가격이 더 올라가므로 결국 사용이 제한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무상서비스를 낭비 구조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이것은 완전히 틀린 말이다. 에너지를 예로 들어보자. 모든 에너지를 무료로 하자는 것도 아니며, 생산능력을 최대화하자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석유를 계속 사용하면 지구온난화가 심해지기 때문에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는 지표 아래에 사용가능한 석유를 어느 정도 남겨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무료 에너지 사용을 일상화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생활방식에서 절제하는 생활방식으로의 빠르고 원활한 전환이 필요하다. 이런 정책은 다양한 사용 유형에서부터 원천적으로 에너지 수요를 줄이는 것에 기반한 네가와트(전력 단위 메가와트(Megawatt)와 네거티브(Negative)의 합성어로 ‘절약한 전기’라는 의미-역주) 시나리오와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2018년 10월 1일, 선언문 형식의 책 『무상서비스 vs. 자본주의(Gratuité versus capitalisme)』를 중심으로 시작된 ‘무료 문명을 향해’라는 호소는 많은 좌파와 생태학자들 및 정치 단체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단, ‘무료문명을 향해’는, 무료 돌봄 서비스 영역에 속하는 분야(예를 들어 ‘사회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에너지요금경감제도처럼 전기의 사용량 통제가 전혀 없는 영역)에는 반대한다. 

또한 생태계를 파괴하는 모든 요소와 확실하게 결별할 것을 제안한다. 무상서비스는 그야말로 ‘더 즐기기’ 위한 찬가다. 우리는 소비사회에 대해 수천 가지의 비난을 할 수 있다. 기본소득제는 더 많은 것을 소비하게끔 우리를 유혹한다. 이 ‘소유의 즐거움’을 끊는다는 것은 다른 것, 즉 존재의 즐거움으로 맞선다는 뜻이다.   

 

 

 

글·폴 아리에스 Paul Ariès

정치학자, 국제무상복지관측소(l’Observatoire international de la gratuité) 소장, 『Gratuité vs capitalisme 무상서비스 vs 자본주의』(Larousse, Paris, 2018)의 저자.

번역·이연주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Jonathan Portes(King’s College), Howard Reed(Landman Economics) and Andrew Percy (IGP), ‘Universal basic services’, Social Prosperity Network, Institute for Global Prosperity, London, 2017년 10월.

(2) André Gorz, 『Misères du présent, richesse du possible 현재의 참상, 가능한 부』, Galilée, Paris, 1997.

(3) Garrett Hardin, ‘The tragedy of the commons’, <Science>, vol. 162, n° 3859, Washington, DC, 1968년 12월.

(4) 폴 아리에스의 『Une histoire politique de l’alimentation. Du paléolithique à nos jours 식생활의 정치사-구석기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Max Milo, Paris, 2016)를 참고할 것.

(5) 부식토화(Humusation): 유해를 퇴비화 하는 것. 빙장(Promession): 유해를 액화질소로 급속동결해, 시신을 작은 입자로 분해하는 것(편집자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