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허구는 시장에 있다

2019-01-31     에블린 피에예 l 문학평론가

지구가 지내온 장구한 세월의 발자취를 역사와 과학으로 풀어내며, 지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고 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분석하려는 의도는 가히 야심 차다. 그것도 세 권의 책으로 말이다. 1976년생의 유발 노아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현재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역사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고, 대담했다. 유발 하라리의 인류 3부작 중 처음 출간된 『사피엔스』(1)는 전 세계에서 8백만 권이 판매됐다. 프랑스에서는 2015년 9월 2일에 출판된 이래 굳건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고, 그의 후속작들도 단숨에 정상에 올랐다. 

두 번째 작품 『호모 데우스』(2)도 4백만 권이 팔리면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빌 게이츠, 버락 오바마, 마크 저커버그, 카를로스 곤에 이어 예술가 데미안 허스트에 이르기까지 많은 유명 인사들이 『사피엔스』의 애독자임을 밝혔다. 『문명의 붕괴(갈리마르 발간)』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 역시 유발 하라리를 위대한 사상가로 칭송한 바 있다. 여하튼, 유발 하라리는 프낙(책, 음반, 전자제품 등을 판매하는 프랑스 대형매장-역주) 사이트의 한 줄 소개를 빌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3)로서, ‘우리가 인류에 대해 안다고 여겼던 모든 것들에 의문을 던지는 대담하고도 도발적인 기념비적 작품’을 집필했다. 확실한 것은, 그의 작품을 접하지 않는 사람은 분명히 손해를 볼 것이라는 점이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를 통해 ‘우리의 역사와 심리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4)를 찾고자 했으며, 이는 후속작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열쇠란, 존재하지 않는 개체를 명명하고 이를 공유하는 인간 종(種)의 능력을 뜻한다. 즉, 인간의 언어로 구현된 ‘인지 혁명’을 통해 집단적 허구를 탄생시킨 것을 의미한다. 이때부터 “서로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끼리 공동의 허구를 믿음으로써 성공적으로 협력할 수 있게” 됐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처럼 객관적인 현실과 상상의 현실이라는 두 가지 현실에서 공존하게 된다. 하지만 더 강력한 힘을 지닌 것은 종교, 조직(구글)과 같은 상상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보편적 원칙과 자유주의, 사회주의는 어떤 현실에 속할까? 이들 역시 상상의 현실이며 세상을 매우 빠르게 변화시킬 힘을 지녔다. 가령, “1789년, 프랑스 국민들이 하루아침에 그들의 믿음을 바꾼 것”처럼 말이다. 그중 정말 위험한 허구는 이성을 바탕으로 한 믿음과 자유의지다. 다시 말해서, 인류에게 “십자군 전쟁, 사회혁명, 인권수호운동을 선동하는 것”은 다름 아닌 “공동의 허구 속에서만 존재하는 법, 힘, 개체, 장소들”(5)인 것이다. 

그럼에도 인류의 역사가 주고자 하는 교훈은, 모든 것은 단지 신봉에 불과하고, 진실은 어디에도 없으며 하물며 보편주의는 더욱 실체가 없다는 진부한 이야기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즉, 객관적 현실은 우리가 만들어낸 허구 속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저자가 사적 유물론과 ‘공산주의’에 대해 다소 강박이 있으며, “공산주의 이상향을 실현하기 위해 핵무기 대학살까지 감행”(6) 하려 했던 맹신이 곧 비극적 과오임을 말하고자 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유발 하라리의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인간을 중점에 둔 종교의 또 다른 버전)를 통해 인간은 폭력을 줄이고, 관용과 협력을 확대해 나갈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기존 이데올로기와 부합한 사상이다. 이런 논점대로라면, 진정한 인권평등을 이루기 위한 해답은 ‘무소유(無所有)’일 것이다. 당연한 상식을 인지하지 못하는 무지에 대해, 유발 하라리는 어떻게 바라볼까? 예를 들면, 행복을 결정짓는 것은 유전적인 부분이며 따라서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행복에 관해서는 동등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사실 이런 허구가 어떻게 형체를 띄게 됐고, “객관적인” 현실 속에 자리 잡게 됐는지에 대해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더군다나, 이성을 바탕으로 한 과학이 어떻게 허구적 “이야기”에 속하지 않게 됐는지는 더더욱 알 길이 없다. 유발 하라리는 과학을 믿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언젠가 신경생물학에 획기적인 발견이 이루어지면, 공산주의와 십자군 원정을 엄격하게 생화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고 『호모 데우스』에서 밝힌 바 있다. 즉, 우리의 “생물학적 소프트웨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작가는 “우리의 DNA는 아직도 사바나 초원에 있다”고 말하며(이 당시는 우리가 아직 ‘생태학적 연쇄살인마’가 아니던 황금시대였다), 과학자들이 점점 더 “인간의 행동은 호르몬, 유전자, 시냅스(접합부)에 의해 결정된다는 설을 지지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인간이 역사를 깊게 파고들어 설명한다 해도,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타고난 기질과 뉴런(신경세포)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뉴런과 시냅스를 작동시켜서 단어와 사상 등을 생산해내는 걸까? 그것은 성찰이나 해방운동이 아닌, 유전자와 환경에 의해 확립된 ‘알고리즘’이다. 더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우리는 ‘프로그래밍’ 됐다는 뜻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이곳이 아니면 희망이 없어서, 우리는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이를 받아들일 유일한 방법으로 소개되는 것이 바로 위파사나 명상이다. 

얄궂게도 저자는 인류 3부작 완결편의 마지막 부분쯤에서야 자신이 위파사나 명상 신봉자임을 고백했다.(7) 이 명상을 통해 우리는 부처가 성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 또한 헛된 것”임을 깨닫고, 모든 허구의 개체와 마찬가지로 나라는 존재 역시 허구일 뿐이라는 사실을 수용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왜 유발 하라리는 “대량 실업의 위험과는 별도로, 우리가 훨씬 더 걱정해야 할 일은 인간의 권위가 알고리즘으로 옮겨가는 것”(8)이고,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을 융합해 소수 부유층만의 알고리즘을 제작하도록 하는 디지털 독재의 위협에 대해 왜 경고했을까? 이는 곧 사피엔스의 종말을 의미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실은 사피엔스가 군림했던 지구가 “아직까지 자랑스럽다고 여길만한 대단한 것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발 하라리는 자유주의 세계관에 부합한 공동의 공간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공간은 모두 상대적인 것이다. 궁극적 진리가 아닐 수도 있고, 인간의 본성을 포함하거나, 사실상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감정을 숨길 이성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공동의 공간’이라는 주제는 다보스포럼(세계경제포럼)에서는 결코 다룰 수 없는 주제다.    

 

글·에블린 피에예 Evelyne Pieiller

문학평론가

번역·장혜진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KT, KOICA, SBS 등에서 통번역을 했다.

 

(1) 유발 노아 하라리, 『사피엔스』, 인류의 짧은 역사, 알뱅 미셸, 파리, 2015년.

(2) 유발 노아 하라리, 『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알뱅 미셸, 2017년.

(3) 토마스 말러, ‘유발 노아 하라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Le Point, 파리. 2018년 9월 20일.

(4) 유발 노아 하라리, 『사피엔스』, 달리 언급된 것이 없으면 같은 작품 내 다음 인용문을 따른다.

(5) 유발 노아 하라리, 『호모 데우스』.

(6) 상동.

(7) 유발 노아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알뱅 미셸, 2018년.

(8) 상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