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도피처에 숨은 넷플릭스의 화려한 성공

2019-01-31     티보 에네통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기자

1997년 탄생한 우편형 DVD 배달 서비스업체. 훗날 이 작은 회사가 전 세계 190개국에 무려 1억 4천만 명의 가입자를 거느린 넷플릭스라는 거대한 VOD 플랫폼으로 변신한다. 넷플릭스는 일정 요금만 부담하면 무한정 광고도 없이 개인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해준다. 이제는 모든 디바이스가 새로운 게임 체인저로 통하는 넷플릭스와 하나로 연결된 세상이 열렸다.

 

역사는 기술혁신에서부터 시작된다. 가장 먼저 넷플릭스가 목표로 삼은 것은 불법 다운로드 시장을 추월하는 데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놀라운 속도로 동영상 정보를 전송할 수 있는 스트리밍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언제 어디서나 잠재적인 이용자의 접속까지 고려한 빠른 전송속도를 실현함으로써 고객들이 좋은 화질의 콘텐츠를, 화면이 끊기는 현상 없이 편리하게 이용하게 하는 데 있었다. 

넷플릭스가 이런 ‘확장성(Scalability)’을 실현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보다 자사 프로그램인 ‘오픈 커넥트’와 아마존 클라우드 서비스를 잘 이용한 덕분이었다. 비록 월 3,000만 달러에서 8,000만 달러까지 하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야 했지만, 불법 다운로드 시장에 발을 담그고 있는 잠재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투자였다. 다음 과제는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 매력적인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2000년대 말 이후로 넷플릭스는 할리우드 제작사들과 배급권을 확보하기 위해 협상을 벌였다. 전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드라마 열풍(<프렌즈>, <종이의 집> 등)도 적극 활용했다.(1) 사실상 넷플릭스에 편성된 프로그램 중에서 이런 종류의 세계적인 흥행 드라마의 방영편수나 시청 수는 전체 편성 시간 대비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초기부터 틈새 고객을 공략하는 데도 전혀 소홀하지 않았다. 한 프랑스 배급사에서 일하는 뱅상 마라발은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어느 날 넷플릭스 직원들이 찾아와 묻더군요. 이란 영화가 있나요? 그래서 대답했죠. 네, 이란 영화 있죠. 이란 영화는 이게 재밌어요. 물론 저것도 괜찮고요. 그러자 직원들이 대답하더군요. 아니, 그런 것은 관심 없어요. 한 30편 있나요? 저희가 전부 살게요.”(2)

이후 넷플릭스는 리스크가 높은 시장에서 빚까지 져가며 더 많은 콘텐츠를 사들이는 데 모든 자금을 쏟아부었다. 초기 아마존과도 흡사한 전략이었다. 가입자가 쇄도하자 투자자들의 신뢰가 높아졌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보유한 영상은 전체 영상 중 8%에 불과했기에, 대형 제작사로부터 확보한 라이선스 계약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는 상태였다(20%가 NBC유니버설, 디즈니, 워너의 소유였다). 

언제든 대형 영화사들 스스로가 직접 주문형 비디오 서비스(월정액 주문형 비디오, SVOD)를 마음먹는 순간, 순식간에 넷플릭스의 밑천이 사라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넷플릭스는 자체 개발 콘텐츠를 늘리는 데도 더욱 전력투구했다.

2013년 넷플릭스는 프로그램 제작에 뛰어들었다. 2016년부터는 아예 자체 제작사를 설립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한편 구글의 본거지, 스탠퍼드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넷플릭스의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 리드 헤이스팅스도 사용자들이 남긴 흔적을 최대한 이용할 줄 아는 영리한 인물이었다. 요컨대 사용자의 행동 패턴을 관찰하고, 취향을 분류해, 고객에게 딱 들어맞는 콘텐츠를 제안하는 등, 요컨대 알고리즘을 널리 발전시키는 데 능란한 능력을 선보였다.

넷플릭스는 최적화된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다시 말해 타깃 가입자의 취향을 파악하기 위해 강력한 도구를 만들어냈다. 덕분에 브라질에서는 독일의 코미디가 인기라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고, 어떤 장면이 시청자의 마음을 빼앗아 ‘드라마 폐인’이 되게 만드는지, 어떤 주제나 배우를 영입하는 것이 좋은지 등을 효과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한편 이 다국적기업은 스타배우를 캐스팅한 뒤 타깃 국가의 언어로 현지에서 콘텐츠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현지 미디어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해당 국가로 진출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가령 넷플릭스는 43개 라틴 아메리카 국가와 카리브해 연안 국가에 진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11년, 콜롬비아의 인기 드라마 <스니치 마약과의 전쟁>에서 영감을 얻은, 마약 카르텔 조직을 다룬 매우 현실감 넘치는 드라마 <나르코스> 시리즈를 대형제작사 고몽과 함께 공동으로 제작하는가 하면, 드라마의 3/4을 스페인어로 촬영했다.(3)

 

재능 있는 감독들을 빨아들이는 기계

넷플릭스는 자체 콘텐츠를 제작하기에 앞서 가령 멕시코의 경우처럼 SVOD 서비스 규제가 미비한 나라들의 상황을 유리하게 활용할 줄 알았다. 넷플릭스는 라틴아메리카의 대형 배급사들(미국의 텔레문도, 아르헨티나의 텔레페, 콜롬비아의 RCN 같은 방송사)을 상대로 현지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작품들의 저작권을 따내기 위해 협상을 벌였다. 가령 수천 시간에 달하는 <텔레노벨라>가 대표적인 예였다. 사실상 이런 작품들은 현재 넷플릭스 전체 콘텐츠의 15~20%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거나 혹은 어둠의 경로 등을 통해 이미 많은 이들이 다운로드해서 본 적이 있는 할리우드 유명작품들이 나머지 80%를 차지했다. 

한편 넷플릭스는 초기 가입자들이 아이디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을 방임했다. 물론 아이디 공유를 금지하는 편이 회사입장에서는 훨씬 더 편리했지만, 넷플릭스는 이 부분에 대해 매우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그것은 자사의 이미지만이 아니라 기술적인 면에서도 유익한 전략이었다. 넷플릭스의 서버에는 가입자 외 집단에 대한 방대한 정보가 쌓였다. 넷플릭스는 이 정보들을 분석해 전반적인 시청자의 취향을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넷플릭스는 이 미세한 정보들을 가지고 큰 위험 부담 없이 자체 드라마 제작에도 나설 수 있었다. 가령 2015년 그런 식으로 탄생한 것이 <나르코스>였다.

한편 넷플릭스는 영화 제작에도 뛰어들었다. 2018년 80여 편의 영화를 제작했는데, 사실상 디즈니와 워너브라더스의 제작 편수를 합친 것보다도 2배나 많은 영화를 제작한 셈이었다. 그중 일부는 유명 영화제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다. 가령 2018년 9월 베니스 영화제에서 무려 두 편의 영화가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알폰소 쿠아론 아르헨티나 감독의 <로마>가 황금사자상을 거머쥐는가 하면, 조엘 코엔과 에단 코엔 형제 감독의 <카우보이의 노래>가 각본상을 수상했다. 권위 있는 상을 받은 경력은 이 신출내기 사업자에게 예술적인 자격을 부여해주는 동시에, 기존 세력에게는 불안감을 안겨줬다. 

이런 사실은 오히려 넷플릭스의 이미지를 좋게 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넷플릭스는 대개 제도권으로부터 홀대받는 재능 있는 젊은 신예들을 위해 메세나 역할도 자청했다. 가령 넷플릭스는 젊은이들이 주축이 돼 세트장이 아닌 파리 시내에서 영화를 촬영해 프랑스 내에서 이미 많은 관심을 받은 바 있는, 청춘의 초상을 담은 영화 <파리는 우리의 것>의 배급을 맡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수개월을 기다려 영화촬영 결과를 확인하던 영화인들이, 넷플릭스와 함께하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다니엘 미릭, 에두아르도 산체스 감독의 <블레어 위치>(1999년)를 필두로, 흥행에 성공한 저예산 작품들을 줄줄이 배출해내는 것으로 유명한 영화사 블룸하우스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넷플릭스는 재능 있는 감독들을 빨아들이는 기계와 비슷하다.” 넷플릭스는 일단 제작비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을뿐더러, 영화선정에 매우 과감하고, 예술가들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경향이 강하다. 단 엄격한 비밀유지 지침만 위반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만일 제작사와 배급사가 조금만 더 똑똑하고, 전투적이고, 개방적이었다면” 쿠아론 같은 감독이 굳이 넷플릭스에 손을 내미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뤼미에르 기념관 관장이 쿠아론의 편을 들어줬다(Première.fr, 2018년 10월 19일). 

“문제는 할리우드 영화사들이 죄다 쿠아론의 영화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오로지 넷플릭스만이 스페인어 대사에 흑백으로 스타배우도 없이 자전적 이야기를 촬영하는 것을 수락했다.” 쿠아론 감독과 판박이인 듯, 마틴 스콜세지 감독도 넷플릭스의 대대적인 투자를 받아 차기작 <아이리쉬맨>을 찍기로 했다. 이 영화도 극장에서 찾아보기는 힘들 것이다. 이에 대해 스콜세지 감독은 “물론 기술과 여건을 최대한 잘 이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영화를 계속 만들 가능성이다”(프랑스 TV 앵포, 2018년 5월 9일)라고 말했다.

물론 구구절절 옳은 소리다. 하지만 프랑스는 영화의 다양성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각종 규제책을 마련해놓고 있다. 가령 ‘각 매체의 순차적인 개봉’ 같은 규제가 대표적인 예다. 말하자면 영화가 개봉된 뒤 다른 매체를 통해 배급되기까지 일정한 시간 차이를 두는 것이다. 대개 영화관 외의 매체의 경우, 배급사의 지원금 규모에 따라 얼마나 일찍 영화를 방영할 수 있는지가 달라진다. 즉 배급사가 영화나 동영상 제작 예산에 더 많은 재정을 부담한 경우일수록, 일찍 TV나 인터넷에서 영화를 방영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같은 차등적인 개봉 시스템을 재고해야 한다면, 영화의 재정조달 시스템도 함께 손봐야 하는 것이다.

사실 2014년 프랑스 진출을 앞두고, 넷플릭스는 오렐리 필리페티 당시 문화부 장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런 규칙을 지킬 의향이 전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매우 적극적인 로비 공세로 나왔고, 무성한 논란 덕에 공짜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그런가 하면 한술 더 떠, 유럽의 지사를 세금부담이 낮은 암스테르담에 두기까지 했다. 게다가 여러 조세도피처를 활용하고 온갖 금융기법을 동원한 덕에 아주 편리하게, 이미 낮은 세금을 훨씬 더 낮췄다.(4) 

그로부터 4년 뒤 넷플릭스는 다른 많은 기업들의 경우처럼, 프랑스 정부로부터 부가가치세와 프랑스국립영화센터(CNC)에 대한 2% 영화발전기금도 면제받았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프랑스에서 올린 수익에 대해 단 한 푼도 세금을 낸 적이 없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의 극장(입장료 수익의 일부를 CNC를 위해 지원)이나 TV 방송사들이 부담하고 있는, 영화발전을 위한 각종 재정지원 의무도 전혀 지고 있지 않다.

12월 영화산업계가 맺은 새 협정에 의하면, 본래 넷플릭스도 극장 개봉 이후 15개월이 지나기 전에는 인터넷상에서 영화를 방영할 수 없게 돼 있다. “10개월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기한이 아니다. 열흘도 마찬가지다.” 2017년 헤이스팅스가 비웃으며 말했다. 결국 넷플릭스는 이 협정에 서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해외 가입 고객들은 이런 상황을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일부는 드디어 만인이 영화를 즐길 세상이 왔다며 반기기까지 한다. 이런 견해에 반기를 드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대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아니겠냐고 망슈 지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프레데릭이 빈정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현재 SVOD 관련 소식을 전해주는 팟캐스트, ‘넷플릭서’를 운영 중인 그는 “파리에는 106km2당 무려 1,092개의 개봉관이 존재하지만, 노르망디에는 평균 1개”라고 지적했다.

 

콘텐츠보다 목록을 보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면 넷플릭스가 보유한 콘텐츠의 질은 어떠할까? “1994년 이후 <르몽드>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100개 걸작(LeMonde.fr, 2017년 12월 22일)” 중에 넷플릭스 프랑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영화는 단 3편뿐이었다. 더욱이 프랑스보다 더 많은 영화를 보유한 것으로 유명한 미국 넷플릭스의 경우에도 그보다 더 적은 2편에 그쳤다. 그래서 미국의 독설가들은 종종 “콘텐츠를 보는 것보다 프로그램 목록을 훑는 데 더 많은 시간이 든다”고 꼬집기도 한다. 한편 콘텐츠의 양만이 아니라, 너무 천편일률적인 콘텐츠도 문제다. 대표적인 예가 시리즈물이다. 가령 넷플릭스는 아직 케이블채널 HBO의 흥행 대작들에 준하는 작품이 없다. 가령 HBO는 <오즈>, <소프라노>, <더와이어>, <식스 피트 언더>에서부터, 1970년대 초 포르노산업의 탄생을 다룬 최근 방영작 <더 듀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대작들을 낳았다.

최근에 방영된 <더 듀스>의 일화 중에 포르노영화 제작사를 소유한 한 남자가 비디오테이프의 최신 모델을 검토하는 장면이 있었다. 과거 비디오기기 제조사들이 벌였던 치열한 ‘규격 전쟁’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당시의 기술혁신은 훗날 사람들의 문화생활 양식을 바꾸고, 모든 작품을 각 가정의 안방에서 즐길 수 있는 시대를 열어줬다. 그리고 비디오 대여 산업이 탄생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당시 영화관들은 이런 새로운 혁신에 적잖게 긴장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비디오테이프는 퇴물이 됐고 영화관은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과연 미래에도 지금처럼 인터페이스 겸 제작사로 계속 존속할 수 있을지 여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사실 넷플릭스는 현재 막강한 경쟁자들을 상대하고 있다. 이른바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로 불리는 인터넷 거인들의 자회사, 페이스북 와치, 유튜브 오리지널(구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애플 TV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훌루와 그리고 조만간 선보일 디즈니 플러스에 이르기까지, 대형 제작사들의 자회사까지 가세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터넷망을 지배하는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들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 프랑스의 SFR·오랑주, 미국의 컴캐스트·ATT가 대표적인 예다. 특히 이 두 미국기업들은 방대한 양의 콘텐츠까지 보유하고 있다. 가령 유니버설-드림웍스와 워너-HBO를 소유하고 있다. 그러니 ‘스트리밍 전쟁’은 이제 막 전초전을 시작한 셈이다.  

 

글·티보 에네통 Thibault Henneton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기자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Écrans et imaginaires(스크린과 상상의 세계)’, <Manière de voir(마니에르 드 부아)>, 제154호, 2017년 8-9월.
(2) ‘Des films pour les cinéphiles(영화광들을 위한 영화), Vincent Maraval과의 인터뷰, <La Septième obsession(라 세티엠므 옵세시용)>, 제 19호, 파리, 2018년 11-12월.
(3) Elia Margarita Cornelio-Marí, ‘Digital Delivery in Mexico: A Global Newcomer Stirs the Local Giants’, Cory Barker(저자이자 편집자), Myc Wiatrowski(편집자), 『The Age of Netflix: Critical Essays on Streaming Media, Digital Delivery and Instant Access』, McFarland&Company, 제퍼슨(노스캐롤라이나), 2017년.
(4) ‘Comment Netflix cache ses profits aux îles Caïmans(넷플릭스는 어떻게 캐이맨 제도에 수익을 숨겼는가)’, BFMTV.com, 2018년 10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