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사상의 뿌리, 계몽주의

2019-01-31     안토니 뷔를로 Anthony Burlaud

계몽주의란 무엇인가? 1784년 임마누엘 칸트가 던진 이 질문이 지금까지도 반복돼 제기되고 있다. 수년 전, 역사학자 조나단 이스라엘은 걸작 저서 3부작에서 네덜란드의 황금 시기부터 프랑스 혁명까지 계몽주의 사상운동의 흐름을 광범위하게 다루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1) 

 

이스라엘은 계몽주의가 원래 완전히 다른 두 개의 파로 나뉘었다고 주장했다. 하나는 ‘온건’ 계몽주의(존 로크, 몽테스키외, 볼테르…)로 비판적인 사상이 맞지만 근본적으로 군주제와 사회 질서를 옹호했다. 또 하나는 ‘급진’ 계몽주의(드니 디드로, 폴 앙리 디트리히 돌바크, 클로드 아드리앙 엘베시우스, 토머스 페인…)로 바뤼흐 스피노자의 사상에서 영감을 받아 물질주의와 합리주의의 구분, 강한 평등의식, 공화제와 민주주의 지지가 특징이다. 오랫동안 억압을 받았으나 은밀하게 퍼져나간 급진 계몽주의는 1770~1790년대에 온건 계몽주의를 누르고 승리했다. ‘정신 혁명’이라 불리는 급진 계몽주의는 세기말 정치 혁명을 준비하고 있었다.(2)

 

철학가 베르트랑 비노슈는 확실히 조나단 이스라엘과 반대 행보를 걷는다. 비노슈는 계몽주의의 다양한 사상을 광범위하게 다루지 않고 계몽주의가 당시의 시대적 편견에 맞서 싸운 모습을 따로 조명해 밝힌다.(3) 비노슈에 의하면 계몽주의의 투쟁은 편견에 맞서기 위한 것이다. 계몽주의는 미신과 종교 교리를 문제 삼으며 섭리주의(4)의 고리를 끊고 역사와 사회를 인간에게 돌려주자 주장했다. 그렇기에 불평등, 지배와 기타 ‘노예 상태’를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 해결하고 비판해야 할 문제로 봤다. 비노슈는 계몽주의의 내부 대립과 분열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소개하면서도 계몽주의를 ‘투쟁하는 철학’이라는 일관된 모습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버트 단턴은 다른 길을 간다. 18세기 전문가인 미국 철학가 단턴은 유명 철학이론을 재해석하기보다, 수십 년 전부터 계몽주의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묘사하려 노력하며 출판계 상황을 예로 들며 금서를 다뤘다.  

 

단턴은 최근의 저서(5)에서 금서를 공급한 스위스 출판사 뇌샤텔인쇄협회의 옛 자료들을 소개하며 서점 방문과 도서 배치 담당으로 일한 장 프랑수아 파바르제가 1778년에 했던 프랑스 일주를 재구성한다. 파바르제는 각 도시를 다니며 머무는 동안 ‘혁명 전야의 출판계’ 현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금서를 프랑스로 들여온 밀수 시스템, 출판사간의 치열한 경쟁, 정부와 당국의 느슨한 통제 등이 그가 목격한 상황이었다.

 

단턴은 묘사와 일화 소개에만 그치지 않고, 금서(파문을 일으키는 철학서, 포르노 문학)가 유포될 수 있었던 구조도 다룬다. 금서 덕에 ‘정신 혁명’이 가능했다고 본 것이다. 단턴의 책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이념의 역사? 사회 역사? 출판계의 구체적 역사? 다행히 독자는 굳이 대답을 찾을 필요가 없다. 이 모든 내용을 아우르는 단턴의 저서는 철학서이자 역사서다. 단턴의 책은 계몽주의에 보내는 뻔한 찬사도, 계몽주의에 대한 진부한 비판도 아니다. 또한 베스트셀러처럼 지나치게 단순화된 내용도 아니다. 계몽주의를 좀 더 냉철하고 풍부하게 다룬 책을 찾는다면 스티븐 핑커의 『계몽주의의 승리』(6)도 추천한다.  

 

 

 

글·안토니 뷔를로 Anthony Burlaud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한불과 졸업. 한국방송대 일본학과 재학

 

(1) 제1권만 프랑스어로 출간됐다. Jonathan Israel, 『Les Lumières radicales. La philosophie, Spinoza et la naissance de la modernité(1650-1750)(급진 계몽주의. 철학, 스피노자, 그리고 모더니티의 탄생(1650~1750)』, Éditions Amsterdam, Paris, 2005. 

(2) Jonathan Israel, 『Une révolution des esprits. Les Lumières radicales et les origines intellectuelles de la démocratie moderne(정신 혁명. 급진 계몽주의와 근대 민주주의를 탄생시킨 지성의 기원)』, Marseille, 2017.

(3) Bertrand Binoche, 『Écrasez l’infâme! Philosopher à l’âge des Lumières(몹쓸 것을 부수자! 계몽주의 시대에 철학하기)』, La Fabrique, Paris, 2018.

(4) 모든 일의 결과는 피조물을 위한 신의 의지라는 견해

(5) Robert Darnton, 『Un tour de France littéraire. Le monde du livre à la veille de la Révolution(프랑스 출판계 일주. 혁명 전야의 출판계)』, Gallimard, Paris, 2018.

(6) Stephen Pinker, 『Le Triomphe des Lumières(계몽주의의 승리)』, Les Arènes, Paris,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