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베네수엘라 특사의 어두운 과거, 에이브럼스는 누구인가?

2019-02-28     에릭 알터만 l 언론인

중남미의 독재정권들과 협력해 수만 명을 살상하는 데 앞장선 저승사자, 엘리엇 에이브럼스가 도널드 트럼프 정권의 남미 정책을 주도하는 자리에 다시 발탁돼 세계 인권단체들의 악몽을 되살리고 있다.    

 

 

네오콘 세력에 장악된 미 대외정책 

미국 정부가 엘리엇 에이브럼스 전 국무부 차관부를 베네수엘라 위기를 해결할 특사로 임명하고, 베네수엘라에 대한 무력개입 불사를 다짐하고 가운데,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칠레, 에콰도르, 브라질, 페루, 콜롬비아 등의 좌파 정당이 2월 14일, 미국의 베네수엘라 개입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 서명한 좌파 정당들은 미국의 공세에 동조하는 미주기구(OAS)와 리마 그룹이 라틴 아메리카 민중의 자결권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앞서  지난 1월 25일, 마이클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신보수주의자(네오콘) 엘리엇 에이브럼스를 미국의 베네수엘라 특사에 임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조용히 넘어갈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의 퇴진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에이브럼스를 파견한 이번 결정을 두고, 언론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폼페이오 장관의 선언적 행보”라고 해석했다. 사실 2018년 3월 경질된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전 엑손모빌 CEO) 역시 에이브럼스를 영입하려 했었으나, 극우파 후원 세력(으로 트럼프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것은 다 얻어내는 듯했던)인 셸던 애덜슨의 로비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반대에 부딪혀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트럼프가 그를 반대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2016년 공화당 경선에서 에이브럼스가 다른 네오콘 세력과 합세해 트럼프를 깎아내렸기 때문이다.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의 노력도 별 소용이 없었는데, ‘세계화주의자’로서 에이브럼스의 명성이 트럼프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것이라고 귀띔한 스티븐 배넌 전 수석 보좌관의 조언에 트럼프가 설득된 까닭이다.

<블룸버그>에서는 에이브럼스의 이번 승진을 하나의 ‘전환점’으로 봤다. “에이브럼스는 (오래전부터 트럼프가 반대해온) 이라크전에 대한 지지입장 등을 포함, 대선 기간 내 트럼프 대통령이 필사적으로 반대한 대외정책들을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이브럼스도, 대통령도 달라진 것 같다.”(1) 이런 변화는 ‘이란 게이트(이란-콘트라 스캔들)’에 대한 에이브럼스의 설명에서도 드러난다. 과거 레이건 행정부가 이란 측에 몰래 무기를 판매한 돈으로 니카라과의 반군세력 콘트라에 자금을 지원한 이 사건에 대해 그가 ‘무의미한 일’이라고 소명했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그 당시 이 사건으로 발목이 잡혔던 에이브럼스는 정보은닉 혐의 2건의 장본인임을 시인해야 했다. 에이브럼스는 이 일로 컬럼비아 특별구 변호사 명단에서 제명됐다. 그리고 조지 H. W. 부시의 사면을 받았는데, 최근에는 “이 일은 전혀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는 1980년대에 일어났던 일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2019년에 벌어지고 있는 일에 관심을 둔다”는 견해를 피력했다.(2) 

그러나 에이브럼스의 과거 행적으로 미뤄볼 때,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2019년은 고난의 한 해가 될 수도 있다. 의회에서 하급 보좌관으로 일하던 에이브럼스는 레이건 정부에서 중미권의 인권 관련 직책을 두루 맡았었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2기 행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한 후 싱크탱크 ‘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와 다수의 유대인 보수 조직에서 활동가로 활약해온 인물이다. 헨리 키신저와 리처드 딕 체니를 제외하면 미국의 고위 공무원들 중 ‘민주주의’라는 미명 하에 이토록 대량살상과 고문의 칼을 휘두른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란 게이트 이후 그가 미국의 대외 정책을 좌우하는 인물로 부상하고 언론에 유명세를 떨치며 거물로 성장한 것을 보면 이 좁은 세계의 실정이 잘 드러난다. 특히 그는 미국의 정치인들이 응당 지켜야 할 가치에 관심조차 없는 인물이다. 

맨 처음 정계에 입문하던 시기, 민주당 상원의원 헨리 ‘스쿱’ 잭슨과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한 밑에서 일을 했던 에이브럼스는 1970년대 민주당의 정책을 군사 개입주의로 전환하려던 신보수주의 세력의 노력에 손을 보탠다. 그러나 제임스 카터 대통령에 의해 정부 요직에서 밀려난 이들은 곧 방향을 선회한다. 에이브럼스는 “우리 모두가 배제됐다”면서 “우리는 특별 협상가라는 무의미한 직책만을 얻게 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3)

레이건 행정부 내에서 편한 보직 하나를 차지한 그는 곧 국무부 내에서 고속승진 행보를 이어간다. 국제조직에서 국무차관직을 맡은 뒤, 이어 (역설적이게도) 인권업무와 미주 업무 관련직도 역임했다. 특히 미주 업무를 보는 동안 중미지역에서 (대리로) 일련의 분쟁들을 조장함으로써 그는 소련과 전쟁을 벌이려던 레이건 지지자들의 집중 공격으로부터 조지 슐츠 국무장관을 지켜낸다. 

남미 극우세력에게 에이브럼스는 둘도 없을, 든든한 미국 쪽 지원군이다. 살바도르와 니카라과, 과테말라, 그리고 (조지 H. W. 부시가 결국 침략하고만) 파나마 등지에서 무고한 농민들 수백 명, 아니 수천 명을 대상으로 자행된 대량학살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에이브럼스는 늘 면피용 희생자를 찾아냈다. 기자들과 사회정의를 위한 활동가들, 심지어 피해자들까지도 자신의 책임회피를 위한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1982년 3월, 과테말라의 에프라인 리오스 몬트 장군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했는데, 당시 인권 국무차관이었던 에이브럼스는 기본권 문제에 있어 “상당한 진보를 가져온 것”에 대해 그에게 찬사를 보냈다. “무고하게 죽은 시민들의 수가 차츰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 것인데(4), 한 기밀문서에 의하면, 당시 국무부에는 “낙후지역의 토착민 남성과 여성, 아이들을 상대로 자행한 군의 대규모 학살과 관련해 근거 있는 주장”이 접수된 바 있었다. 하지만 에이브럼스는 이를 전혀 개의치 않은 채 과테말라 군대에 고성능 무기를 제공해달라고 의회에 요청했다. “상황이 진보한 만큼 격려와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이유였다. 2013년, UN의 지휘하에 창설된 역사규명위원회에서는 끼체 지역 마야-익실 부족의 “집단학살 행위”에 대한 리오스 몬테 장군의 혐의를 인정했다.

1985년 미주 국무차관으로 승진한 에이브럼스는 독재자 리오스 몬트 장군과 그 뒤를 이은 오스카르 움베르토 메히아 빅토레스, 비니시오 세레소 아레발로 등이 자행한 집단학살 혐의를 고발하는 단체들을 끊임없이 구속시켰다. 1985년 4월에는 실종자 가족의 어머니들이 만든 단체 그루포 데 아포요 무투오의 대표인 과테말라 여성운동가 마리아 로자리오 고도이 데 쿠에바스가 그의 형제와, 세 살짜리 아들과 함께 사고 차량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과테말라 정부에서 사고의 가설이라고 내놓은 것이 (별로 신빙성이 없어) 못마땅했던 에이브럼스는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는 이들 모두를 고소해버렸다.

<뉴욕타임스>에서는 집단학살 문제와 관련해 국무부에서 내놓은 수치에 반박하는 공개서한을 내보냈는데, 과테말라 시티에서 환한 대낮에 벌어진 약식처형 광경을 직접 목격한 여성이 작성한 서한이었다. 당시 이 사건에 대한 언론보도는 이뤄지지 않았으나, 에이브럼스는 제멋대로 거짓말을 지어내어 <뉴욕타임스> 주필에게 편지를 보냈다. 심지어 이 사살 건이 실제로 언론에 보도됐음을 입증하기 위해 있지도 않은 가짜 신문까지 동원해 허위 기사를 인용하는 작태까지 보였다. 

1982년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에서는 엘살바도르의 엘모소테 지역에서 미국식 무기를 갖춘 미군 부대가 1년 전 저지른 학살사건에 대한 기사를 내보냈다. 학살 주동자를 살리고자 뛰어든 에이브럼스는 상원의 한 위원회에서 해당 기사들이 “믿을 만한 기사가 못 되며”, 반군에 의해 “날조된 사건”임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93년, UN진상규명외원회에서는 엘모소테에서 민간인 5천 명이 “의도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사살된 것으로 결론지었다. 

1985년 파나마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가 게릴라 후고 스파다포라를 고문하고 참수형에 처하도록 지시했을 때, 에이브럼스는 국무부와 의회 앞에 나가 이 사건에 대한 침묵을 요구했다. “노리에가는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 그가 하는 행동은 크게 문제 될 만한 게 없으며, (…) 파나마인들은 ‘반군’을 물리치는 데 우리와 공조하기로 약속했다. 만약 계속해서 수사를 진행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저들에게 기대를 걸 수 없다”(5)는 설명이었다.

에이브럼스는 다방면으로 이란게이트 사건에 연루된 인물이다. 1986년, 니카라과 반군에게 불법무기를 운반하던 미국인 용병 조종사 한 명이 격추됐는데, 이에 에이브럼스는 CNN에 출연해 미 정부는 그 어떤 식으로도 이번 사건에 개입되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그랬다면 그건 불법이 아닌가. 우리는 그런 일을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는다. 이는 어떤 식으로든 미 정부의 작전이 될 수가 없다. (…) 미국인이 죽고 비행기가 격침되는 등 이런 식으로 상황이 돌아가는 이유는 의회에서 (니카라과 반군에게 자금을 대기 위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어 그는 의회의 두 위원회 앞에서 이번 사건이 “미 정부의 조직적인 지시 하에 이뤄진 것도, 그 자금을 받은 것도” 아니라고 반복했다. 그리고 “(반군 지원과 관련해) 미 국무부가 하는 일은 자금을 거두는 게 아니라 의회에서 이를 더 얻어내려 노력하는 일”이라고 의회에서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그가 하는 말은 모두 거짓의 연속이었다. 사실 무기 운반에 돈을 댄 것은 CIA와 올리버 노스 중령이었으며, 게다가 에이브럼스는 브루나이에서 파라과이 반군에 대한 자금을 거둬들인 직후에 미국에 와서 이런 말을 한 것이었다. 1991년 이 같은 거짓 조작이 들통나면서 그는 의회에 대한 정보 은닉죄로 기소된다. 

클린턴 정권하에서는 정부에 몸을 담지 못한 에이브럼스는 이후 조지 W. 부시 정권에 기용돼 NSC로 들어가 이스라엘 및 팔레스타인 관련 문제를 담당한다. 데이빗 로즈가 <버네티 페어>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당시 그가 일군 업적 중 가장 화려했던 건 2006년 선거 당시 요르단 서안 지방 및 가자 지구에서 하마스-파타 연합세력이 연립내각을 구성하지 못하도록 손을 쓴 것이었다. 그는 파타와 손을 잡고 하마스가 장악한 내각이 가자에서 추방되도록 만들었다.(6) 

이로써 하마스와 파타 사이는 한없이 멀어졌고, (이스라엘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 이스라엘과의 지속적인 평화협상의 길도 요원하게 됐다. 게다가 영국 주간지 <더 가디언>의 한 취재 결과에 의하면(7), 에이브럼스는 2002년 베네수엘라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우고 차베스 정권에 반하는 군사 쿠데타를 부추겼을 것이라는 혐의도 받고 있다(차베스 대통령은 상당한 대중적 인기를 얻었으나,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지병으로 사망했다). 

군사문제가 얽힌 이 모든 사건에도 불구하고 2009년 미 외교협회에서는 기꺼이 에이브럼스를 상임위원으로 받아들였다. 이로써 그에게 적법한 ‘전문가’ 지위를 부여해준 이 권위 있는 싱크탱크는 오바마 대통령이 (그의 말마따나) “유대인과 문제를 만들고 싶어 하는 듯한 반유대주의자”인 찰스 헤이글을 국방장관에 임명한 것을 두고 이 신입위원이 비난을 퍼부을 때도 약간의 당황한 기색만을 내비쳤을 뿐이다(국영라디오 National Public Radio, 2013년 1월 7일). 외교협회 회장인 리처드 하스는 이 같은 발언에 대해 “비상식적”이라는 평을 내놓았지만(ABC, 2013년 1월 13일), 회원들 가운데 그 누구도 에이브럼스가 선거조작과 집단학살에 개입한 일에 별로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이렇듯 어두운 이력을 지닌 에이브럼스가 외교협회 회원이 된 것에 뒤이어 미국의 베네수엘라 특사로까지 파견된 것이다. 이런 사실은, 미국의 대외정책 분야가 신보수주의(네오콘) 세력에게 완전히 장악됐음을 방증한다.  
 

 

 

글·에릭 알터만 Eric Alterman
언론인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역대학원 졸업. 『22세기 세계』 등의 역서가 있다.


(1) Jennifer Jacobs & Nick Wadhams, ‘“Never Trumpers” can get State Department jobs with Pompeo there’, <Bloomberg>, New York, 2019년 1월 31일.
(2)  Grace Segers, ‘US envoy to Venezuela Elliott Abrams says his history with Iran-Contra isn’t an issue’, <CBS News>, 2019년 1월 30일, www.cbsnews.com
(3)  Samuel Blumenthal, 『The Rise of the Counter-Establishment. The Conservative Ascent to Political Power』, Union Square Press, New York, 2008(초판: 1986)
(4) Samuel Totten(감수), 『Dirty Hands and Vicious Deeds. The US Government’s Complicity in Crimes Against Humanity and Genocide』, University of Toronto Press, 2018에서 인용.
(5) Stephen Kinzer, 『Overthrow: America’s Century of Regime Change from Hawaii to Iraq』, Times Books, New York, 2006.
(6) David Rose, ‘The Gaza bombshell’, <The Hive>, 2008년 3월 3일, www.vanityfair.com
(7) Ed Vulliamy, ‘Venezuela coup linked to Bush team’, <The Guardian>, London, 2002년 4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