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레미 코빈의 당면과제는 무엇인가?

브렉시트에 찬성하는 좌파의 엇갈린 길

2019-02-28     크리스 비커튼 l 정치학자

일부 보수진영의 위협으로 간주됐던 브렉시트(Brexit)는, 노동당이 집권할 경우 노동당원들에게는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유럽연합이 정해놓은 신자유주의 조약의 속박에서 벗어나, 한층 자유롭게 정책을 시행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브렉시트를 우익의 전유물로 알고 있는 당원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있다.
 

몇 달 전부터 일부 영국 노동당 활동가들이 입은 티셔츠에는 “제레미 코빈 당수는 좋지만, 브렉시트는 증오한다”는 슬로건이 적혀 있었다. 브렉시트가 영국 좌익과는 대립한다는 역설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제레미 코빈이 당수로 선출된 이후, 노동당은 민영화된 공기업을 다시 국영화하고, 고용이 창출되는 산업분야에 공공투자를 확충하며, 국민들의 부담을 낮추는 방향으로 국가재정을 관리하는 등 미뤄뒀던 업무들을 수행해 나갔다. 수년간 잊혔던 좌파의 이데올로기가 다시금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몇 달 만에 노동당은 유럽 내에서 가입자 수가 가장 많은 정당 중 하나로 꼽히게 됐다.(1)

하지만 코빈 당수가 유럽의 신자유주의 사상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음에도, 노동당의 새로운 지지자 대다수가 2016년 6월 23일에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에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브렉시트에 반대한 사람들은 주로 대도시에 거주하고, 유럽연합이 내세우는 국제주의를 습득한 젊은 층이다. 이쯤에서, 과연 영국은 유럽연합에 잔류하면서도 코빈 당수의 경제 및 사회 정책을 유지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EU 조약들을 이행하면서도 영국경제 운영방식이 ‘코빈 식’으로 바뀔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 것이다. 

 

EU와 진보주의는 친해질 수 없는 관계

이 질문에 EU 잔류 찬성자(브렉시트 반대자)들은 “그렇다!”고 답한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바로 유럽연합은 영국이 경제자유화를 신속하게 진행할 경우에만 경제 질서 변화에 눈감아줄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EU가 진보주의 정책에 곧바로 제재를 가하지는 않지만, 꽤 엄격한 제약을 두고 있다. 이는 놀랄 일이 아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공산당이 지켜내고자 했고, ‘철의 장막’을 능가하는 국가주의와 사회주의를 방지하고자 EU가 탄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이론상으로는 중립적이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시장개방에는 매번 옹호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한편, 이탈리아 남부나 오드프랑스, 혹은 웨일즈의 과거 광산마을과 같은 지역경제를 재건하려는 목적으로 수립된 정책은 유럽의 공공지원 규제에 저촉될지도 모른다. 또한 EU는 국가차원에서 자유경쟁 및 공정경쟁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만 공공지원을 허락하고 있다. 사실 공공지원 부문에 대해 유럽 각국은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2016년에 프랑스의 경우 GDP의 0.6%를 공공지원에 할애한 반면, 덴마크는 GDP의 1.63%를 할애했다.(2) 따라서 EU는 지역 인프라를 개선한다거나 ‘추억의 장소’를 보존한다는 등의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국가재정을 투입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를 무시하고 경기침체에 시달리는 지역경제 재건에 공공지출을 감행하는 정부는 차별적 정책이라며 유럽연합의 질책을 받게 된다. 

노동자 이동의 자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좌파에서 이 자유를 비난하는 것은 금기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난할 경우, ‘외국인 혐오자’, ‘인종차별주의자’, ‘극단주의자’로 낙인찍힌다. 사실 이 ‘자유’는 1950년대에 실업자들을 타국으로 보내려고 했던 이탈리아 정부에 의해 생겨났다. 오늘날 영국의 노동시장 개방과 유연성 덕분에 고용주들은 직업교육에 대해서 근심할 필요가 없어졌고, 이미 양질의 노동력을 갖춘 이주 노동자들이 유입됨으로써, 국내의 새로운 인재를 영입하기 위한 임금인상은 불필요해졌다. 

브렉시트 결정으로 영국의 노동시장은 이미 변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고용주들에게 불안감을 안기고 있다. 실제로 유럽연합 회원국 출신의 노동자 비율이 유독 높은 건축업에서는 (런던과 잉글랜드 남동지역은 35%에 달함) 브렉시트 결정 이후 신규 이주노동자의 감소로 기존 노동자의 임금증가율이 평균을 훨씬 상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2018년 5월~8월 건축업 종사자 임금증가율 4.6%, 동기간 평균증가율 3.1%).

한편, 유럽연합으로부터 해방되면 영국은 경제성장 모델에 대해 재고해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영국경제는 소비에 의존하고 있는데, 오랜 기간 제조업의 붕괴에 따라 낮은 생산성으로 임금이 점차 줄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부동산에 대부분을 투자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집값 상승은 1990년대에 집을 미리 구매한 베이비부머들에게나 유리하며, 1980~2000년에 태어난 세대들에게는 박탈감만 안겨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제조업 관련 부문을 발전시키고자 부동산․금융 등에 치중된 현재의 경제구조를 끊어버린다는 것은 자본의 흐름을 방해하는 장치일 뿐이며, 이는 EU에서도 금지하고 있는 방안이다. 그래서 영국 부동산은 오래전부터 거주보다는 투기를 위해 이용되고 있다. 

산업체제 재정비 역시 현대의 가치사슬모형을 급작스럽게 변화시킬 뿐이다. 오늘날의 가치사슬모형은 소수 대기업들의 임금삭감 압력을 하위 용역업체인 중소기업이 감당해야 하는 구도다. 따라서 관련 산업을 새롭게 개발하기 위해, 지역생산 보호와 장기투자를 접목한 산업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고서는 이 같은 권력관계를 바꾸기는 힘들 것이다. 더군다나 공공부문 투자나 보호무역은 유럽연합이 금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코빈 당수가 자신의 경제정책은 지지하면서 브렉시트는 반대하는 유권자들을 배척한 것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노동당은 유럽연합이 정한 규율은 준수하면서 민영화나 간섭주의 등 영국의 정책은 그대로 유지할 관세동맹을 체결하도록 협상하겠다고 약속했다.(3)

현재 기자, 경영인, 유럽연합 지지자들은 브렉시트에 관한 2차 국민투표를 진행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코빈 당수는 지금 이 혼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조기 총선을 시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2019년 1월 10일 발표한 담화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브렉시트를 찬성하는 사람들이나 반대하는 사람들 모두 유럽연합 시스템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유럽이 이들을 불확실성과 불안감으로부터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쪽에서는 불확실성과 불안감 속으로 이들을 밀어 넣은 엘리트 집단의 일부가 바로 유럽이라고 말합니다. (…) 브렉시트에 관한 지난 국민투표를 통해 영국은 교역 상대국들과의 관계를 되짚어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수십 년간 우리가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토로하고, 최상의 미래를 설계하는 방안을 표현한 계기가 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브렉시트에 대해 보도하는 언론매체들은 흥분한 나머지 영국인들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왜곡하고 있다. 영국인들은 “EU를 지지하는가? 반대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답하기 어려워하고, “1979년 마가렛 대처가 집권한 이후 시행된 정책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는 질문에는 쉽게 답할 것이다. 두 질문 중 첫 번째 질문에 답을 듣기 위해서는 다른 국민투표가, 두 번째 질문의 답을 위해서는 새로운 선거가 필요하다. 문제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불신임안 표결에서 영국 집권 보수당과 함께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북아일랜드 연방주의 정당인 민주연합당(DUP)의 찬성표를 얻어야 한다는 점이다.

 

노동당의 균열, 보수집단의 일관적 태도

브렉시트 찬성자들은 “관용을 베풀 줄 모르고”, “인종차별주의자”거나 “섬나라 근성”을 지닌 사람들인가? 유럽을 지지하는 매체에서는 브렉시트 찬성자들을 이같이 묘사하고 있다. 사실, 브렉시트 찬성자들은 심도 깊은 사회적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2016년 6월 23일에 치러진 국민투표는 높은 투표율을 자랑했다. 72% 이상의 투표율을 기록했으며, 2017년 총선은 68%, 2015년 총선은 66%에 달했다. 또한, 수십 년 동안 투표를 하지 않았던 유권자들을 투표소로 향하게끔 했다. 

투표 결과를 살펴보면, EU 잔류에 찬성하는(브렉시트에 반대하는) 표가 가장 많이 나온 선거구는 대도시인 런던과 젊음의 도시인 램버스(78.6%), 이즐링턴(76.4%) 등이었으며,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룩하고 있는 케임브리지(73.8%)나 옥스퍼드(70%)에서도 브렉시트 반대표가 대거 쏟아졌다. 반면, 산업화 이후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지역에서는 브렉시트 찬성표가 대다수였다.(4)

1960~1970년대 북해에 위치한 해수욕장으로 명성이 자자했지만 현재는 잊힌 도시, 클랙턴온시(Clacton-on-Sea)가 대표적인 지역이다. 과거에는 활기찬 도시였지만 현재는 정부와 유럽연합의 보조금에 의존하는 신세가 됐다. 2014년, 영국 독립당(UKIP) 소속 의원이 처음으로 배출되면서 이 지역이 정치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 서부 더비셔(West Derbyshire)에서 주 의원을 지낸 매튜 패리스는 “클랙터온시 시로부터 ‘등을 돌려야 한다’는 독립당의 의견을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서 그는 “이 도시는 미래가 없으며, 이 지역의 유권자들 역시 미래가 없다”며 “이건 마치 운동복 차림에 운동화를 신은 영국이 목발에 의존해 서 있는 형상이다. 클랙턴온시 시나 다른 비슷한 처지에 놓인 지역의 거주민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들의 의견이 우리의 미래를 막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5) 2016년, 클랙턴온시 주민의 70% 이상이 브렉시트에 찬성했다. 

하지만 노동당 당원으로서 사회문제 때문에 브렉시트를 찬성한 일부와, 브렉시트를 찬성하는 사람은 외국인 혐오증과 편협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간주하는 대다수의 코빈 당수 지지자들 간의 균열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제 우파의 입장만 남은 셈이다. 이들은 국민투표에 따른 브렉시트 찬성 결과를 철회하고 2차 투표를 진행하라고 요구했고, 일부 노동당 의원들의 지지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한편, 코빈 당수는 총선에서 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2차 국민투표 시행을 고려해야만 한다. 

그러나 1월 18일, <가디언(Guardian)> 지는 노동당에 새로운 위협을 알렸다. 바로 제레미 코빈 최측근인 의원들이 줄줄이 사임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들은 이제 민주주의 원칙을 무시하고, 유럽연합에 적대적인 사람들을 확실하게 차단하겠다고 나섰다. 사실 이런 모순은 지난 30년간 노동당이 보여준 사회학적, 이데올로기적 변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브렉시트로 하여금 이들이 갑작스럽게 결집하게 된 것이다.  한편, 보수집단은 그래도 일정하게 원칙을 고수하는 것처럼 보인다. 토리당은 영국 메이 총리에게 가장 모욕적인 순간을 안겨줬다. 브렉시트 합의안을 놓고 1월 15일 인준투표를 실시한 결과 찬성 202표, 반대 432표로 부결된 것이다. 노동당은 즉각 정부 불신임안을 냈다. 불신임안이 가결되고 새 내각에 대한 신임안이 또 부결되면 영국은 조기 총선을 치러야 한다. 

강경 브렉시트 찬성자이자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안에 반대하는 마크 프랭코이스 보수당 하원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했다. “유럽 문제에 있어서, 우리 의견이 다소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을지는 몰라도 저는 단연코 보수주의자입니다.”  
 

 

 

글·크리스 비커튼 Chris Bickerton
정치학자, 케임브리지 대학
 
번역·장혜진 hyejin871216@gmail.com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KT, KOICA, SBS 등에서 통번역을 했다.
 
(1) Allan Popelard et Paul Vannier, ‘Renaissance des travaillistes au Royaume-Uni(제레미 코빈 주문에 부활한 영 노동당)’,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4월호, 한국어판 2018년 5월호.
(2) ‘State Aid Scoreboard 2017’, 유럽위원회, http://ec.europa.eu
(3) Renaud Lamber, ‘Un sourire derrière la barbiche(코빈은 구제불능의 사회주의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4월호, 한국어판 2018년 5월호.
(4) Paul Mason, ‘“Brexit”, les raisons de la colère(제노포비아만으로 설명 불가능한 브렉시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6년 8월호.
(5) Matthew Parris, ‘Tories should turn their back on Clacton’, <The Times>, 런던. 2014년 9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