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사활을 건 탄자니아

2019-02-28     장-크리스토프 세르방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2019년 1월 16일, 케냐 나이로비 호텔에서 발생한 테러로 20명이 넘게 사망했다. 투자 유치를 놓고 탄자니아와 경쟁관계인 케냐는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있다. 때마침 중국-아프리카 협력을 이끌어온 탄자니아에서, 동아프리카로의 진출을 꾀하는 중국과 미국 간 경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탄자니아 연안에서 중국 광둥성(광저우) 출신 어부 3명이 나무그늘에서 담배를 피우며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다. 담배 연기가 천천히 소용돌이처럼 올라간다. 인도양 연안에서 중국판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는 듯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들은 복수심에 찬 주먹을 파란 하늘을 향해 뻗으며 시진핑 중국주석과 ‘바가모요’라는 이름을 내뱉는다. 

다르에스살람에서 북쪽으로 70km 떨어진 작은 어항, 바가모요항은 향후 10년 내 아프리카 최대 항구로 등극할 것이다. 중국 최대의 국영항만운영업체인 차이나 머천트 홀딩스(China Merchants Holdings, 招商局)는 바가모요 항구 개발에 착수했다. 에코핀 에이전시(Ecofin Agency: 아프리카 경제전문 보도기관-역주)는 이곳을 ‘지난 40년간의 탄자니아와 중국의 관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설현장’(1)이라고 평가한다. 중국 정부는 바가모요항 개발에 100억 달러를 투자했다. 투자금의 일부는 오만 국부펀드와 중국 엑심뱅크(Exim Bank)가 부담한다. 이로써 해안가 20km에 걸친 부두에 중국의 선전(심천) 모델을 본뜬 경제특구가 더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연간 컨테이너 물동량은 2천만 TEU에 달할 것이며(네덜란드 로테르담항과 같은 수준), 탄자니아 정부에 의하면 인구의 80%가 빈곤선 이하에서 살고 있는, 농촌 비중이 높은 탄자니아에 ‘산업혁명’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한다.(2) 

아프리카에서는 드물게 안정적인 국가인 탄자니아는 1977년 줄리어스 니에레레(하단 박스기사 참조)가 창당한 이후 집권을 이어온 탄자니아 혁명당(Chama Cha Mapinduzi, CCM)의 존 마구풀리 대통령이 2015년 말부터 이끌고 있다. 다우디 무캉가라 다르에스살람 대학교 정치학 교수는 “CCM의 본래 노선은 ‘국가주의의 개념조차 민영화로 이해한 1980~1990년대 말의 신자유주의의 맹공’을 견뎌내지 못했다”고 분석한다. 아프리카대륙에서 가장 경제성장률이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인 탄자니아는(2018년 5.8%, 2019년 6% 예상, IMF) 이에 힘입어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프로젝트를 광범위하게 벌이고 있다.

오만은 특히 걸프만 국가들에 흑인노예를 팔면서 1861년까지 영화를 누렸던 잔지바르에서 멀지 않은 바가모요에 다시 발을 디뎠다. 한편, 중국은 중국-아프리카 협력관계의 오랜 기둥인 탄자니아에서 시작해 동아프리카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19세기 중반까지 세계 두 강대국이 눈독을 들였던 작은 어항, 바가모요는 코프라·상아·노예무역의 중심지였다.

영국의 리처드 프란시스 버튼, 헨리 모튼 스탠리를 포함한 수많은 원정대들이 아랍의 노예상인들이 열어놓은 길을 따라 바가모요를 기점으로 하여 아프리카 내륙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어 가톨릭 선교사들이 동아프리카 선교를 위해 이곳으로 파견됐다. 바가모요는 아주 잠시 독일의 동아프리카 식민지의 수도가 됐다가 다시 영국의 손아귀에 넘어갔다. 탕가니카 독립 3년 후인 1964년 탕가니카와 잔지바르가 합병해 탄자니아합중국이 탄생했다.

 

중국자금에 기대는 주요 인프라 사업
  
중국은 바가모요에서 터키, 이집트, 인도, 걸프만의 항만운영업체들보다 먼저 아프리카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탄자니아를 시작으로 두 번째 아프리카 공식 순방에 나선 2013년 3월, 신(新)항구 건설사업 협정이 공표됐다. 시 주석은 집권 이후 지금까지 총 4회 아프리카를 방문했는데, 1978년 덩샤오핑 주석이 개방정책을 시행한 이후 아프리카를 가장 많이 방문한 중국의 국가수반이다.

니에레레 전 대통령이 소련을 한 차례 방문한 것에 비해 중국은 30회나 방문했다고 그의 마지막 개인 수행원이었던 찰스 상가가 회고했다. 상가는 2000년 9월 제1차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 베이징 정상회의 당시 중국 주재 탄자니아 대사였다.(3) 9년 전부터 중국은 미국에 앞서 아프리카의 제1 교역 상대국이다. 2018년 9월 ‘일대일로’ 전략 차원으로 열린 ‘제8차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 베이징 정상회의에서 중국은 600억 달러 지원을 약속했다. 지원금은 무상원조 150억 달러, 신용대출 200억 달러, 중국-아프리카 개발 금융펀드 100억 달러, 아프리카산 수입품 융자 펀드 50억 달러, 중국기업의 투자 100억 달러로 구성된다. 

이때 시 주석은 ‘무의미한’ 사업에는 지원하지 않겠다고 천명하면서, ‘아프리카의 개발을 저해하는 병목 현상을 없앨 인프라에만’ 투자하겠다고 밝혔다.(4) 워싱턴에 있는 중국 아프리카 리서치 이니셔티브(China Africa Research Initiative)의 자료에 따르면, 2000~2016년 중국의 대(對)아프리카 차관이 1,25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2017년 중국-아프리카 교역액은 1,800억 달러로, 그중 753억 달러는 수입에 해당한다. 한편, 아프리카-미국 교역액은 390억 달러에 불과하다.

다르에스살람 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한 르웨카자 무칸달라 정치학 교수는 “마구풀리 대통령은 2015년 서구 투자자들에 대항해 탄자니아의 경제 주권을 회복하자는 분위기에서 당선됐다. 마구풀리는 중국이 이 일에서 탄자니아를 도울 최적국이라고 여긴다”고 설명했다. 옥타비안 므시우 탄자니아 농상공회의소 회장도 이에 의견을 같이한다. 그는 ‘탄자니아를 ‘일대일로’정책에 굳건히 붙들어 매고, 일부 중국 제조기업을 동아프리카로 이전시키는데 교두보 역할을 할’ 바가모요의 전략적 역할을 강조한다. 

한편 동아프리카 내륙 국가들의 판로자리를 놓고 탄자니아와 경쟁하는 이웃나라, 케냐는 중국의 골칫거리다. 케냐는 미국의 전략적 아프리카 파트너로 미국의 영향권에 놓여 있으며, 테러 위험과 부족사회 전통이 상존하는 불안정한 국가다.

탄자니아의 제1교역국인 중국은 마구풀리 대통령의 독재 행위가 인권 및 경제에 미칠 위험성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한 반면, 미국과 서구 국가수반들은 이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들은 언론·집회 자유의 제한, 사이버보안에 대한 도를 넘은 규제, 정부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통계수치를 공표할 수 없도록 하는 통계법(Statistics Act) 발포, 정적암살 시도, 그리고 2017년 말에 발생한 언론인, 아조리 그완다의 실종 등과 관련해 마구풀리 대통령을 비난하고 있다.

2018년 11월 공자학원 인근에 중국자본으로 건설된 우아한 건축물인 다르에스살람대학교 도서관 개관식 때, 마구풀리 대통령은 명확한 내용의 담화문을 발표했다. “중국은 조건 없이 도움을 주는 진정한 우방국이다. (…) 대가 없는 선물은 매우 소중하다. 특히 특정 국가의 선물이 더욱 그렇다. 조건이 따르지 않는 유일한 선물은 중국이 주는 것들이다.” 2016년 미국은 탄자니아의 정치적 탄압에 대응해, 미국 정부의 빈국지원 정책자금인 ‘밀레니엄 챌린지 기금(Millennium Challenge Account)’의 4억 7천만 달러 지원을 취소했다.

 

미국과 중국의 아프리카 쟁탈전 

탄자니아와 인접국, 잠비아에서는 ‘세계 경제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아프리카 쟁탈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5) 중국과 미국은 서로 다른 접근방식을 취한다. 국가들 간 게임규칙의 테두리 밖에서 중국은 자신들이 규정한 무역협정의 대가로 조건 없는 지원을 제공하는 반면, 미국을 위시한 서구국가들은 민영화, 공공지출 감축과 같이 정치적, 사회적 조건이 수반되는 차관(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을 제공한다. 

지난 12월 13일 존 볼튼 국가안보보좌관이 워싱턴 헤리티지 재단 앞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제 공개적으로 “미국보다 우위를 점하기 위해 거리낌 없이 아프리카 지역에 투자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난받는 중국을 저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중국은 또한 “뇌물공여, 불투명한 협정 체결, 차관을 전략적으로 이용해 아프리카국가들이 중국의 야욕과 요구를 들어주도록 만든다”고 비난받고 있다. 자칭 ‘윤리적 국가’를 천명하는 미국의 비난에 대해, 중국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은 “자국의 발전을 디딤돌로 삼아 아프리카의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약속을 발표했다.(6)

미국의 새로운 아프리카 전략에 관한 담화에서 볼튼 보좌관은 동아프리카를 언급했다. 동아프리카가 공공기업 채무(특히 잠비아)로 중국의 영향권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미국은 이제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에서 중국과 공개전쟁에 나섰다. 탄자니아는 2015년 에티오피아, 케냐, 이집트와 함께 중국 기업을 이전하는 아프리카 4개국에 공식적으로 선정됐다. 마구풀리 대통령은 탄자니아를 2025년까지 ‘반산업화’ 국가로 변모시키겠다면서, 최소한 국부의 40%가 제조부문에서 나오기를 희망한다(현재 10% 미만).

탄자니아 정부는 관련 재원 마련을 위해 부패 및 공적자금 낭비뿐 아니라 광산업계에서 확인된 ‘대규모 탈세 사태’에 대해 전면전을 선포했다. 아프리카대륙에서 금 생산 4위국인 탄자니아는 금광채굴회사에 대한 금광사용계약 할당 관련법을 개정했다. 탄자니아 정부는 계약 재협상권과, 탈세 사실이 드러날 경우 계약을 파기할 권리를 스스로 부여받았다. 개정법은 금광채굴회사가 국제중재재판소에 도움을 요청하는 권리도 막아버렸다. 수십억 달러의 사용료와 세금을 아끼기 위해 수년간 금 채굴량을 적게 신고했다고 기소된, 캐나다의 거대 광산기업, 베릭 골드의 자회사, 아카시아 마이닝(Acacia Mining)사와의 세금관련 분쟁이 결국 합의로 끝났고, 이제 그 해결방식 결정만 남았다. 탄자니아는 베릭 골드가 소유한 3개 금광의 지분(16%)과, 여기서 나오는 수익의 50%를 받게 될 것이다.

현지 언론인의 표현을 빌리면 다르에스살람의 젊은 지식인층은 처음에는, ‘불안정하고 예측 불가능한’ 마구풀리 대통령의 도발적인 정책을 열광적으로 지지했다. 야당인 민주발전당(CHADEMA) 내에서 좌파성향의 ‘변화와 투명성을 위한 동맹’을 이끄는 전 의원 지토 카브웨(42세)는 “이후 2016년부터 탄자니아 정부가 강권주의로 흘러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는 ‘탄자니아인들의 일상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는 정부의 애국적 수사’를 비판한다. 그는 “자원에 대한 정부의 인위독점은 광산업의 성장을 약화시키고, 탄자니아 법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투자자들을 위축시켰다”고 지적한다. ‘타보라 선언’으로 지칭되는 민주발전당의 강령은 ‘우자마(Ujamaa, 아프리카 전통의 가족애 정신에 입각한 아프리카식 사회주의-역주)’를 제창한 1967년 아루샤 선언에서 영감을 얻었다.” 

카브웨는 ‘21세기 탄자니아에 적합한 사회주의’의 초석을 놓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는 ‘다국적 채굴회사에 유리한 1998년 광산법을 도입해 탄자니아를 빚더미에 앉힌’, 브레튼 우즈 체제하의 기관들(세계은행, IMF)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그러나 그는 또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전속력으로 아프리카에 진출하는’ 중국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브웨는 서구의 이익에 부합하는 단순한 반(反)중국 감정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탄자니아 공공부문의 대외채무는 IMF, 세계은행 같은 다자기구의 차관이 60%를 차지하고 있으며, 중국 관련 채무는 10%에 불과하다.”

1990년대 말 탄자니아에 정착한 세무 컨설턴트인 앤드류 황은 탄자니아 정부의 광산업 관련 조치가 ‘세금을 내지 않는 이들에게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일부 중국 기업인의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황은 “마구풀리 대통령처럼 단호함을 보여주는 것이 탄자니아에 좋은 일”이라고 덧붙였다. 황은 또한 모터사이클 제조업, 농산물 가공업 부문으로 중국 기업들이 몰려올 것으로 전망한다. “탄자니아 발전은 이제 시작이다. 바가모요항 덕분에 탄자니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프리카의 두바이가 될 것이다.”

 

아프리카 사회주의

1961년 영국에서 독립 후 탄자니아 초대 대통령을 역임한 줄리어스 니에레레(1922~1999)는 스와힐리어로 넓은 의미의 ‘가족’을 뜻하는 ‘우자마’ 사회주의를 창시했다.(1) 니에레레는 1977년 ‘탄자니아 혁명당(Chama Cha Mapinduzi, CCM, 이후 계속해서 집권 중)’을 설립했다. 반제국주의적 성향에, 가톨릭으로 개종한 니에레레는 1967년 아루샤 선언을 통해 국유화, 마을 단위 농업공동체 설립, 광범위한 교육정책을 포함하는 비전을 선포했다. 니에레레 사후 탄자니아는 국제금융기구가 강제한 가혹한 구조조정을 견뎌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이라는 뜻의 ‘음왈리무(mwalimu)’라고 불린 니에레레의 업적은 탄자니아의 정치권에 끊임없는 영감을 주고 있다.

마오쩌둥이 집권하던 1960~70년대 중국은 탄자니아의 최대 지원국 가운데 하나로, 우자마 사회주의의 철학적 근원 일부를 제공했다. 혁명당의 이념과 홍보를 책임지는 험프리 폴레폴레는 다르에스살람의 역사적 중심지에 위치한 당사에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중국 정부가 건설한 당사 건물에는 중국 공산당 대표단이 정기적으로 방문한다. 혁명당 고위간부들도 모두 중국에 다녀왔다. 폴레폴레 사무실에는 세계 경제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탄자니아에 진출한 세월(‘전부 합쳐 60년’)을 비교하는 곡선 도표가 자리하고 있다. 

데스크에는 오래된 니에레레의 저서 사본들이 성경, 코란과 함께 놓여있고, 또한 <파이낸셜 타임스>의 기자 탐 버지스의 『약탈 기계(The Looting Machine)』와 시진핑의 『국정운영을 말하다(The Governance of China)』가 나란히 놓여있다. 폴레폴레는 형광펜으로 강조해놓은 문장을 보여준다.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자가 승리한다.” 그는 “서구의 아프리카 개발 모델은 실패했다. 중국이 제시한 경제개발안이 아프리카 현실에 가장 잘 맞는 듯하다. 우리 사회주의의 기반이 중국과 달리 과학적 가치가 아닌 아프리카의 문화적 가치라 해도, 보호주의 등의 분야에서는 연관이 있다”고 설명한다. 

폴레폴레는 이제 탄자니아인들이 ‘경제 자유화’라는 과제를 스스로 깨닫게 할 수 있도록, 그리고 탄자니아가 ‘니에레레 집권 시절 그랬듯이 다시금 미래의 아프리카를 위한 실험장’으로 만들기 위해 예전의 지적‧도덕적 수준으로 혁명당을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다. 혁명당은 이를 위해 중국에서 4,500만 달러를 지원받아 다르에스살람 인근 키바하에 ‘므왈리무 니에레레 리더십 스쿨(Mwalimu Nyerere Leadership School)’을 건립하고 있다. 시공은 중국 레일웨이 지옌창 엔지니어링 컴퍼니(中鐵建廠工程局)가 맡았다. 

서아프리카의 5개(탄자니아는 동아프리카 국가이므로 제외-역주) ‘(민족)해방운동’ 정당(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프리카민족회의 ANC, 짐바브웨의 아프리카 민족 연맹-애국 전선(ZANU-PF), 나미비아의 남서아프리카 인민기구 Swapo, 앙골라 인민해방운동 MPLA, 모잠비크 해방전선 Frelimo)의 당원들이 이곳에서 수학하게 된다. 폴레폴레는 이 ‘정치학교’가 “‘미래의 리더’를 양성할 것”이라고 덧붙인다. 존 마구풀리 탄자니아 대통령도 학교 기공식에서 “우리는 경제발전을 보장할 강력하고 윤리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이 기공식에 리더십 교육 관련 전문강사 제공을 약속한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참석했다. 

 

(1) Christiane Chombeau & Pierre Haski, ‘Espoirs et difficultés d’un socialisme africain(아프리카 사회주의의 희망과 역경)’,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975년 11월호.

 

글‧장-크리스토프 세르방 Jean-Christophe Servan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주로 아프리카 관련 글을 쓰고 있다. 

번역‧조승아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La Tanzanie entame la construction d’un port et d’une zone économique spéciale pour 10 milliards de dollars(탄자니아가 100억 달러 규모의 항구와 경제특구를 건설하고 있다)’, <Ecofin>, Paris, 2015년 10월 19일.
(2) Nick Van Mead, ‘China in Africa: win-win development, or a new colonialism?’, <The Guardian>, London, 2018년 7월 31일.
(3) ‘La Chine à l’assaut du marché africain(중국, 아프리카 시장 공략)’,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5년 5월호. 
(4) Christian Shepherd & Ben Blanchard,  ‘China’s Xi offers another $60 billion to Africa, but says no to “vanity” projects’, <Reuters>, 2018년 9월 3일.
(5) Sébastien Le Belzic, ‘L’Afrique devient un échiquier où les États-Unis et la Chine avancent leurs pièces(아프리카가 돈을 들이미는 미국과 중국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르몽드>, 2019년 1월 9일.
(6) ‘La Chine contribuera au développement de l’Afrique(중국이 아프리카 발전에 기여할 것)’, <FrenchXinhuanet>, 2018년 5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