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채굴과 투쟁하는 아르메니아

2019-02-28     옌스 말링 l 언론인

지난 12월 총선 승리로 더욱 단단히 입지를 다진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는 자신의 집권에 힘을 실어준 사회혁명세력의 열망에 부응해야 한다. 지금 아르메니아 국민들은 조국을 피폐하게 만든 무분별한 광산개발의 원흉으로 해외수출신용기관을 지목하고 있다. 국제무역의 주역으로 널리 활약 중인 이 기관은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고 있음에도, 그 존재를 아는 이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

 

 

 

아르메니아 로리 지역의 울창한 경관 위로 흰 상흔이 거대한 속살을 드러냈다. 산허리에 휑하게 패인 거대한 구멍을 따라 구불구불한 도로가 산 아래까지 쭉 이어졌다. 노천 구리 광산이었다. 광산 너머로 공장 몇 채의 실루엣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거대한 기기들마다 ‘에프엘스미스’라는 명칭이 새겨져 있었다. 이 덴마크 엔지니어링 기업은 덴마크수출신용기관인 EKF의 지원을 받아 2014년 개장한 테그아웃(Teghout) 광산개발에 대대적으로 참여 중인 업체다. 이 사업에는 덴마크연금기금(펜션덴마크)도 3억 5천만 크로네, 약 4천 7백만 유로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했다. 사실상 이 지역 광산에는 약 1백 60만 톤의 구리와 10만여 톤의 몰리브덴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광산개발, 해외자본의 빨대가 되다

애초 이 사업은 EKF와 덴마크연금기금이 에프엘스미스, 러시아대외무역은행(VTB), 아르메니아 광산업체 발렉스와 서로 연계되도록 아주 영리하게 재정 매커니즘이 설계됐다. 결과적으로는 덴마크 시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세금과 연금이 환경과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사업에 자금줄로 흘러 들어가도록 말이다. EKF는 덴마크 산업통상재정부 산하 기관으로 외무부와도 긴밀히 소통하며, 덴마크 기업이 저비용으로 안정적인 해외 투자를 보장받도록 지원하는 일을 맡고 있다. 그 일환으로 EKF는 덴마크연금기금과 에프엘스미스가 참여 중인 아르메니아 사업을 지원해왔다. 덴마크 정부의 보증을 받아 덴마크연금기금은 자신들이 4천5백만 덴마크 크로네(6백만 유로) 규모로 지분을 보유 중인 에프엘스미스 사의 생산 장비 3억 5천만 덴마크 크로네를 발렉스 사가 구매해주는 조건 하에, 이 사업에 자금 지원을 결정했다. 약정에 의하면, 덴마크연금기금이 선납한 투자금은 10년 뒤 러시아대외무역은행(VTB)이 상환해야 한다.

기관의 웹사이트 소개글에 따르면, EKF는 해외활동 기업의 책무가 적시된 ‘규범과 기본원칙’, 그중에서도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지켜야 할 “수출신용기관의 환경적, 사회적 지속 가능성에 관한 공동원칙이 명시된 공동의 접근법(2016년 개정)을 준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EKF는 2004년 ‘적도원칙’에도 서명했다. 적도원칙이란 금융기관들이 채택한 일련의 위험관리조처로, “자금 투자 전 모든 사업의 환경적, 사회적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는 각종 방법을 규정”해놓은 규약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4년 뒤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자발적 국제협약인 ‘UN 글로벌 콤팩트’에도 가입했다.

환경단체와 지역 주민들은 EKF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나 2013년 가을 검토 단계에서부터 시민운동 ‘테그아웃을 구하라’는 덴마크 외무부와 덴마크수출신용기관 EKF를 상대로 덴마크연금기금의 아르메니아 사업을 지원하기를 중단하고, 에프엘스미스의 테그아웃 광산개발 참여를 종결시켜줄 것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근거자료를 제시하며 어떤 환경재앙이 일어날 수 있는지, 그리고 관련 기구가 어떤 식으로 권력을 남용했으며, 토지수용 관련 법규를 위반했는지를 줄줄이 적시한 20면에 달하는 탄원서를 작성했다. 2014년 12월 광산이 개장되자마자, 48명의 지역 주민도 일제히 새로운 탄원서 준비에 나섰다. 하지만 그들의 탄원은 덴마크 정부에 그다지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

사실 주민들의 불안은 타당했다. 광산개장은 지역의 환경과 농업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쳤다. 다수의 멸종위기종이 보금자리를 튼 수백 헥타르의 산림이 훼손됐으며, 공장에서 흘러나온 폐수가 인근 하천을 오염시켰다. “하천가에 땅이 있지만 더 이상 경작이 불가능하다”고 슈노그흐 지역 주민 레본 알리크하냔이 볼멘소리를 냈다. 사실상 그곳은 발렉스 사가 토지수용에 나선 뒤로 그에게 남은 마지막 땅이었다. 그는 이제 양봉업으로 근근이 생계를 잇고 있는 실정이다.

 

3,600여 명의 목숨을 위협하는 폐기물

“지역 주민들에 의하면, 하천에서 끈적끈적한 물질이 섞여 나오는 탓에, 경작지에 물을 대고 나면 작물에 먼지나 진흙이 묻어난다고 한다.” EKF의 사회적 책임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클라우스 프림달 쇠렌슨이 한 덴마크 신문에서 시인했다.(1) 게다가, 광산에서 배출된 수백만 톤의 유독 폐기물을 저장한 댐도 내진 설계가 돼 있지 않아, 댐이 무너질 경우 슈노그흐 마을에 살고 있는 3,600여 명의 주민들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

2017년 10월 덴마크 언론이 수차례 비판보도를 내보낸 후에야, EKF는 부랴부랴 발렉스 사와의 계약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EKF는 계획 철회를 알리는 성명서에서, “은행 대출금을 공동으로 보증했던 EKF와 덴마크연금기금은 둘 다 전혀 손실이 없다”고 자화자찬하기 바빴다. VTB 은행은 일찌감치 덴마크 채권자들의 돈을 돌려주기 위해 광산을 차압했다. 또한 발렉스 사가 담보로 설정한 인근 알라베르디 소재 옛 구리 제련소에 대해서도 차압 절차에 들어갔다. 사실상 덴마크연금기금은 덴마크 국민의 혈세로 자본을 충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작 자세한 수익 규모는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다. 울리케 에켈 홍보 담당자는 “개별대출금 회수 관련 정보는 절대 제공할 수 없다”며 잘라 말했다.

대개 수출신용기관은 불투명한 거래로 악명이 높다(20면 기사 참조). 유럽개발부채네트워크(EURODAD)에 의하면, 수출신용기관은 일반적으로 과거나 현재의 재정 거래 내역을 비밀에 부치고, 오로지 전체 보증 규모나 회수 및 미회수 채권의 총액만 공개할 뿐이다. 아르메니아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EKF 홍보부장 모겐스 아게르 탕은 “사업의 경제성에 대해서는 자세한 답변을 드릴 수 없다”며 선을 그었다. 

“정부 규정에 따라, EKF는 모든 상업활동에 대해 비밀을 유지할 의무가 있다. 우리 고객과 파트너들이 경제성이나 경쟁력 등 민감한 정보가 누설될 위험 없이 편안하게 자사의 경제적, 상업적 상황을 우리에게 공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KF는 덴마크 공공문서 열람에 관한 법률에도 적용받지 않는다.”

시민운동 ‘테그아웃을 구하라’와 아르메니아 환경보호전선은 EKF가 광산사업을 포기하도록 결국 법적 조치에 들어갔다. 먼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연락사무소(NCP)라고도 불리는 기업 책임준수 관련 중재 및 불만처리 기구에 제소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덴마크의 경우, 코펜하겐에 소재하고 있는 이 OECD 국가연락사무소는 OECD 회원국 어디에든 설치돼 있다. 이 기구는 다국적기업과 관련한 OECD의 지침이나 해외투자 및 다국적기업 관련 의사결정 사항, 그리고 2011년 개정된 OECD 선언에 부속된 일련의 권고사항을 준수하지 않는 문제와 관련해 각국의 불만을 접수하고 처리하는 일을 맡고 있다. 예비조사를 끝낸 덴마크 연락사무소는 결국 2018년 5월 최종적으로 “해당 문제에 대해서는 상세한 조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수년간 수출신용기관에 몸담아온, 빈 소재 루트비히 볼츠만 연구소의 법률 연구 담당자 바바라 린더는 이에 대해 “전혀 놀라울 것 없는 결과”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2) “사실상 문제의 사업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본 희생자들에 대해 수출신용기관이 책임을 진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을뿐더러, 인권침해로 처벌받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코펜하겐 소재 국가연락사무소는 EKF와 마찬가지로 통상부 산하에 종속돼 있다. 린더는 “사실상 이것은 숱한 비판의 대상이 돼온 이익 충돌의 가장 전형적인 사례다. 다른 나라의 연락사무소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들이 활용한 또 다른 통로는 유럽인권재판소였다. 가령 광산개장에 따른 토지수용건과 관련해 총 8건의 사건을 제소했다.(3) 마을의 대표 변호사 카렌 투마냔은 “테그아웃 광산사업의 토지수용 절차는 법률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다. 내 의뢰인들은 공정하지 못한 절차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 이는 유럽인권협약 제6조에 위배된다”(4)고 지적했다. 

지역 단체들은 지진이 발생할 경우, 댐에 저장된 액체 폐기물이 인근 마을을 덮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였다. 이를 위해 먼저 세계인권선언 제3조에 명시된 ‘생명, 자유 및 신체의 안전에 관한 권리’를 거론했다. 또한 마지막으로 테그아웃 광산의 지역 하천 오염 문제에 대해 2010년 UN 총회에서 기본권으로 인정한 주민들이 안전한 식수를 마실 권리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10월 유럽인권재판소는 1헥타르 미만 토지 강제 수용건 1건에 대해 최종판결을 내렸다. 유럽의 재판관들은 애초 정부 법령이 명시한 409유로보다 많은 1만 유로의 배상금을 판결했다. 그러나 재판소는 사업의 공익성을 판단하는 것은 현지 당국의 권한이라며, 정부가 토지수용의 명목으로 내세운 “경제 및 인프라 개발”이라는 명분은 타당하다고 판결했다.(5)

 

몸을 사리는 총리, 제소하겠다는 광산업체

테그아웃 사업에 대해 덴마크 정부는 한 발 물러났지만, 여전히 다른 외국인 투자나 공공기관들의 지원에는 전혀 영향이 없는 상태다. 가령 엔지니어링 업체 샌드빅, 광산업체 리디안(실제로는 콜로라도에 소재하지만, 유명 조세회피처인 영국령 저지섬에 법인이 등록돼 있음)과 함께 사업에 참여 중인 덴마크의 EKF에 해당하는 스웨덴의 수출신용기관 EKN은 아르메니아 남동부 아물사르 지역 제르무크에서 앞선 사업과 유사한 광산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덴마크인이 구리 채굴에 관심을 보인다면, 스웨덴인은 아르메니아산 금에 군침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장기간의 허가 절차를 거친 끝에 리디안은 2016년 첫 삽을 떴고, 이어 2018년이 저물기 전 첫 금강석 채굴을 시작했다. 특히 이 광산 사업은 미국과 영국 정부의 지원도 함께 받고 있다. 아르메니아 주재 미 대사는 “아르메니아 광산개발은 국가 경제를 다각화하고, 고임금 일자리를 확대할 기회임이 분명하지만, 환경 보존과 관련한 주요 국제규약을 제대로 준수해 사업이 진행돼야 할 것이다”라고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아르메니아는 현재 자국에서 채굴한 비철금속과 금의 50% 이상을 해외에 수출하고 있다.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고 했던가. 제르무크 광산개발 반대자들도 금광개발의 부정적 영향을 정리한 문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EKF처럼 EKN의 경영진도 이들의 민원을 무시한 채 일찌감치 3천3백만 달러의 자금을 투입했다.

2018년 봄 아르메니아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나면서, 환경단체들의 활동도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6) 시민혁명으로 세르지 사르키샨 대통령이 퇴진하고 5월 8일 니콜 파시냔이 총리로 선출된 데 이어 12월 9일 그의 소속당이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 중요한 정치적 사건의 여파와, 광산산업을 상대로 거둔 작은 승리로 제르무크 광산개발 반대자들은 다시금 희망에 부풀어 올랐다. ‘혁명’이 일어나고 수일 만에 그들은 법원에서 거리로 활동을 재개했다. 

6개월 넘게 인근 마을 주민과 환경운동가들은 광산으로 향하는 도로를 차단하고 광산개장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헌법에 명시된 합법적인 시민운동 절차를 거친 3천 명의 서명이 담긴 탄원서가 12월 정부에 제출됐다. 이 탄원서의 서명자들은 말했다. “기업 리디안과 역대 정부들은 항상 우리를 무시했다. 우리가 실수를 하도록 유도하거나 우리를 겁박했다. 우리는 새 정부만큼은 민중의 의지를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 이런 새로운 희망에 기대어 탄원서를 제출하는 바다.” 

총리직에 오른 이후 파시샨은 광산산업과 정면으로 충돌하지 않기 위해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다. 7월 그는 아물사르를 방문한 데 이어, 기자회견 자리에서 금광의 미래에 대해 “감정보다는 사실에 기초한”(7)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호소했다. 정부는 직접 전문가의 검토를 의뢰하며 시간 벌기에 나서고 있다. “우리가 만일 이 사건과 관련해, 조금이라도 국제적 기준에서 적법하지 않은 조처들을 취한 바가 있다면, 심각한 문제를 겪게 될 것이다”라고 총리가 경고했다.

만일 정부가 광산 문을 닫기로 결정이라도 한다면, 리디안은 국제기구 제소를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2018년 여름 아이크 알로얀 리디안 대표는 현지 언론들에게 말했다. “물론 우리는 그런 상황을 원치 않는다. 그것은 극단적인 시나리오다. 하지만 우리 기업에 투자한 수많은 주주들을 외면할 수 없다. 최악의 경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8)

해외 의존적인 경제 구조를 지닌 아르메니아 정부는 그런 결정이 가져올 파장을 심각하게 우려한다. 만일 최악의 상황이 정말 현실이 된다면, 상당한 불이익에 처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결국엔 해외 투자자들이 전부 보따리를 싸서 다른 투자처를 찾아 떠나는 상황을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그 사이 덴마크연금기금 가입자(동시에 주주)들은 어쨌거나 자신들의 노후 대비를 지속하고 있다. 

EKF의 홈페이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EKF는 단순히 자금을 지원하는 기업만이 아니라 덴마크 경제 전반에 혜택을 주고 있다.” 그러니 결국 아르메니아인들은 향후 수세대에 걸쳐 황폐화된 환경에 점차 익숙해져야만 하는 것일까. 

 

 

 

글·옌스 말링 Jens Malling
언론인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Arbejderen(노동자)>, Copenhague, 2017년 8월 18~20일.
(2) Barbara Linder, 『Human Rights, Export Credits and Development Cooperation: Accountability for Bilateral Agencies』, Edward Elgar Publishing, Cheltenham, 2018년.
(3) 아르메니아가 2001년 1월 35일 유럽의회에 합류함에 따라, 아르메니아 시민들이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4) <Arbejderen(노동자)>, 2017년 8월 25~27일. 
(5) 오스마냔, 아미라기안 C. 아르메니아 사건, 사건번호 71306/11, www.hudoc.echr.coe.int
(6) Tigrane Yegavian, ‘Le second printemps arménien 제2의 아르메니아의 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6월호‧한국어판 2018년 7월호.
(7) Radio Azatutyun, 2018년 7월 6일, www.azatutyun.am
(8) Peter Liakhov, Knar Khudoyan, ‘How citizens battling a controversial gold mining project are testing Armenia’s new democracy’,  <Open Democracy>, 2018년 8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