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에서 벌어지는 주사위놀이

유럽의 또 다른 실험실

2019-02-28     폴 더크스 l 로렌대학교 연구교수

벨기에에서 네덜란드어권 지역의 분리독립을 주장해온 플랑드르 민족주의자들은 권력을 손에 넣자, 여론의 관심이 시들해진 플랑드르 분리독립 계획에 대해 함구하는 모습이다. 이들은 분리주의보다는 ‘연방주의’라는 표현을 선호하면서 새로운 전략에 공을 들여왔다. 바로 ‘예산절감의 필요성을 주장함으로써, 벨기에를 와해시키고 프랑스어권 진영에 불화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플랑드르 분리주의 운동은 매번 중대한 장애물에 부딪혀 왔다. 학계의 연구가 증명하듯, 벨기에인들 대다수(프랑스어권의 약 95%, 네덜란드어권의 90%가 반대. 1995년 이후 큰 변동이 없는 비율)가 분리독립에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4년 벨기에의 민족주의 제1정당으로 출범한 ‘신플랑드르연대(Nieuw-Vlaamse Alliantie, N-VA)’는 이런 장애에 맞서 돌파구 마련에 나섰다. 

신플랑드르연대는 몹시 ‘좌파적’이라고 평가돼온 자치주의 정당이 물러난 자리에서 2001년 벨기에 북부의 신흥 금융 엘리트들이 추진해 탄생했다(신플랑드르연대의 전신은 1954년 창당한 국민연합당(Volksunie)이다. 1999년 이후 내부적으로 우익 성향과 좌익 성향으로 당이 양분됐고, 우익 성향은 신플랑드르연대를, 좌익 성향은 사회자유당을 창당했다-역주). 그 후 2010년부터는 벨기에왕국에서 가장 비중 있는 정당으로 자리를 굳혀왔다. 신플랑드르연대의 보수적 강령은 벨기에의 상황이 “미로처럼 복잡한 탓에 사회가 경직될 수밖에 없다”고 규탄하면서 ‘효율성’을 내세운다. 여기서 이들이 말하는 ‘효율성’ 역시 연방주의를 뜻한다. 즉 사회보장제도나 사법제도 등 중앙정부가 쥔 모든 권한을 플랑드르 및 왈로니아 지방정부에 양도하고, ‘효과 없는’ 보조금 제도 등은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1)

신플랑드르연대는 2014년 총선거를 통해 벨기에 전역에서 연방주의를 실행할 기회를 얻었다. 이 투표에서 확실히 신플랑드르연대는 네덜란드어권에서 32.4%, 전국에서 20.33%의 득표율을 기록함으로써 1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5위를 기록한 프랑스어권 정당 혁명운동(Mouvement réformateur, MR)이 플랑드르 분리주의자들과 연립정부를 구성함으로써, 연립정부에 프랑스어권 정당으로서는 유일하게 참여해온 사회당(5개 정당 가운데 유일하게 프랑스어권 유권자를 대표하는)이 26년 만에 연정에서 제외됐다. 

신플랑드르연대와 혁명운동의 연정은 두 네덜란드어권 정당인 플랑드르 자유민주주의(플랑드르 자유민주당, Open VLD)와 플랑드르 기독-민주주의(플랑드르 기독민주당, CD&V)의 지원으로 성사됐으며, 이 연립정부는 2019년 총선거까지 ‘공동체를 보류하겠다’고 약속했다. 즉 프랑스어권과 네덜란드어권 ‘공동체’ 대표들 간에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보류하겠다는 의미다. 플랑드르 민족주의자들은 정부 요직을 차지하는 대신, 총리직은 혁명운동 당수인 젊은 샤를 미셸에게 양보했다(그러나 2018년 말, UN이주협약 문제로 갈등이 빚어져 연립정부가 붕괴되면서 샤를 미셸 총리가 사의를 표명했다-역주). 

그들이 보기에 이 민족주의 정부는 정부의 성공보다는, 벨기에가 네덜란드어권과 프랑스어권 ‘두 개의 민주주의’로 구성돼 있어 통치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데 더 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네덜란드어권 주요 일간지의 말마따나 샤를 미셸 총리는 “신플랑드르연대의 허수아비”(2)로 보였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3), 벨기에에서도 ‘한 종족이 곧 하나의 국가’라고 생각하는 ‘종족민족주의자들(Ethnonationaliste)’은 모든 것이 시간과 인식의 문제임을 잘 알고 있다. 신플랑드르연대의 당수이자 안트베르펜(앤트워프) 시장인 바르트 드 베버는 언론 현혹 보도의 수혜자이며, 이 정부의 실세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연방제의 기능장애’를 지적한 그는, 매번 이 ‘기능장애’야말로 신플랑드르연대의 강령이 격찬하는 ‘연방주의’로 전향해야만 하는 이유라고 주장한다. 

 

연방주의는 분리주의를 내포한다

벨기에의 다수 유권자들은, 정치평론가들이 수도 없이 입에 올리지만 제대로 분석한 적은 없는 이 ‘연방주의’라는 개념이, 벨기에라는 국가를 유지해줄 담보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신플랑드르연대가 구상하는 연방주의가 내포하는 것은 분리주의다. 이들은 의화나 상원 같은 벨기에의 민주주의 제도를 철폐하고, 두 개의 주권국가를 창설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두 주권국가는 수도 브뤼셀을 공유하고, 간단히 ‘벨기에의회’라는 기괴한 명칭의 월 정기 외교협의체 하나만을 조직할 것이다. 이 협의체의 업무는 몇 가지 문서를 공동관리하는 것뿐이다.(4)

신플랑드르연대는 자기 당 의원들을 따돌리면서까지 계속해서 이렇게 말장난을 하고 있다. 2016년 바르트 드 베버는 자당 소속 연방 하원의원 두 명이 당의 ‘전술’을 비판하고, 언론에서 ‘분리주의’를 직접적으로 거론했다는 이유로 이들을 당에서 제명했다. 

민족주의자들은 분리주의 같은 금기어를 사용하기보다는 ‘공공 재정의 정상화’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1960년대 벨기에의 경제적 무게중심은 발롱(혹은 왈롱)의 낙후된 산업지구에서 플랑드르의 신항만지구로 옮겨가는 큰 지각변동을 겪었다. 이후 경제정책은 한결같이 국가를 양분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처럼 현 정부의 경직된 정책들은 기계적으로 분리주의의 의도를 내비친다. 그러다 보니 발롱 지역과 이웃한 플랑드르 지역과의 갈등이 부각되고, 상대적으로 열악한 발롱 지역이 특히 타격을 입는다. 

남부지역(프랑스어권 발롱)은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고 북부지역(네덜란드어권 플랑드르)은 풍요로운 상황이니, 신플랑드르연대는 이런 경제적 상황을 내세워, “벨기에 전체가 ‘공동체적 보류’의 재개를 원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바르트 드 베버가 “프랑스어권 공동체를 그들의 은신처에서 쫓아내겠다”(5)고 한 것은 이런 계획을 염두에 둔 말이었을 것이다.

동시에 민족주의 정당은 사실상 국가로서의 벨기에를 와해시키기 위해 정당이 장악한 지위들을 이용하고 있다. 국가보안부, 내무부, 연방경찰의 업무 대부분은 민영화(공공건물 보안, 수감자 관리 등)되고 있는 반면, 국제범죄(특히 정보 및 금융 관련)를 전담해야 할 필수 부서들은 ‘지방분권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방관련 설비투자 예산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요구한 기준에 따라 상향조정한 반면, 인력 예산은 병력의 19.5%, 군 참모부의 32%를 감축할 예정이다. 

이미 심각하게 훼손된 연방 문화기관 및 과학기관들은 최근 예산이 20% 삭감돼, 설상가상으로 타격을 크게 입었다. 결국 기독민주당에 넘어간 사법부는 동료들이 ‘국가에 호소’한 이듬해인 2016년 재정적으로 매우 열악해졌으며, 한 최고위직 판사는 법치와 국가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사법체계 전체의 고질병’은 ‘경제 논리’의 책임이라고 비난했다.(6)

 

민족주의자들의 협박

현재 유일한 문제는 이것이다. 유권자들이 지지 정당을 바꾸는 문제에 대해 신플랑드르연대가 강력한 조치를 취했음에도, 다양한 조사를 통해 드러나는 것처럼 현재 신플랑드르연대의 유권자들 상당수가 모(母)정당인 블람스 벨랑(Vlaams Belang, 네덜란드어권 극우정당)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신플랑드르연대는 자신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유권자들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7)고 결정하고,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정당’으로 처신 중이다.

신플랑드르연대는 극우 분리주의 진영이라는 색채(드 베버와 다수의 측근들은 당의 뿌리가 극우 분리주의임을 잘 알고 있다)를 지우기 위해 당의 메시지를 계속해서 다듬고, 벨기에 망명·이민부 장관 자리에 대중적인 이미지의 테오 프랑켄을 지명했다. 또한 2017년 3월 지중해에서 활동하는 비정부기구(NGO)를 비방한 경우처럼, 신플랑드르연대는 번번이 샤를 미셸 총리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아울러 ‘공동체 보류’에 대한 약속도 마지못해 지키고 있는 상황이다. 벨기에 부총리 겸 내무장관인 얀 얌본은 이제 “우리는 발롱이라는 해먹에 누워있는 그들을 쫓아낼 것이다!”와 같은 말을 삼가고 있다. 하지만 2016년 3월 브뤼셀 테러가 일어났을 때 “이슬람 공동체는 다 같이 춤을 췄을 것”이라는 그의 발언은 그 무엇으로도 막지 못했다. 

오래전부터 분리주의자들은 벨기에라는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사회보장제도를 주요 목표로 삼아왔다. 과거 사회당(PS) 당수 엘리오 디 뤼포가 주도한 이전의 연립정부는 이미 자녀수당이나 의료 서비스 등의 권한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분리주의자들은 고용자 분담금을 대폭 삭감하는 정책을 내놨으나, 부가가치세가 높아 삭감 효과가 상쇄됐다. 이처럼 분리주의자들의 정책 결정에 분쟁의 소지가 커질수록, 현 정부는 사회 동반자 간 합의에 기반한 벨기에식 협의체제 모델을 피해갈 궁리만 하고 있다. 

연방화가 국가 내 강력한 조합들의 결속을 깨뜨리는 데 실패하자, 신플랑드르연대는 남부(프랑스어권)의 반대자들과 북부(네덜란드어권)의 협조자들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끈질기게 강조하고 나섰다. 그들의 이런 주장은 이 정부가 지난 20년을 통틀어 가장 잡음이 많은 정부라는 사실 앞에서도 변함이 없다. 이 정부 들어서 발생한 시위들, 예컨대 2014년 11월(13만 명), 2015년 10월(10만 명), 2016년 5월(6만 명)의 시위들이 전부 수도에서 벌어졌다는 점이 이 정부의 현주소를 극명히 보여준다.

그러나 신플랑드르연대는 언론의 힘을 이용할 수 있다. 이슬람 테러에 대해 벨기에 정부가 안일하게 대응했다며 국제 언론이 계속해서 분노를 표출하자, 이에 자극받은 벨기에 언론은 이런 논란을 ‘실패한 국가’의 징후들로 분류하고, “벨기에는 망해간다”(8)는 식의 논조를 담은 기사를 늘렸다. 2017년 3월 바르트 드 베버는 2019년 연방선거가 끝난 뒤 연방주의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겠다고 공표했다. 그는 그의 저서에서 자신의 전략을 상세히 서술했다. 즉 비타협적인 개혁정책을 통해, 그리고 헌법이 중재하는 모든 새로운 개혁안뿐 아니라 모든 국민투표를 금지함으로써, 프랑스어권 벨기에의 ‘공동체적 욕구’를 지속적으로 자극한다는 것이다. 엘리오 디 뤼포의 사회당은 이런 ‘협박’을 거부하고, ‘국가의 소멸로 이어질’ 연방주의에 반대한다.(9) 

프랑스어권 사회당은 상대당인 네덜란드어권 사회당과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좌익세력에서 위세를 몰아가는 벨기에노동당(PTB-PVDA)으로부터 위기를 느끼는 만큼, 모든 시민들의 사회적 연대를 지켜내는 편을 선택하겠다고 한다. 벨기에노동당은 자신들의 정치색이 스페인의 좌익정당 포데모스(Podemos)나 프랑스의 강경좌파 프랑스 앵수미즈(La France insoumise)와 비슷하다고 주장하고, 네덜란드어권과 프랑스어권 두 언어권 모두에서 후보를 내는 정당이며, ‘하나의 벨기에’를 지향한다. 

벨기에노동당은 플랑드르-발롱 공동체에 반대하고 있다. 그들은 이 공동체가 노사관계, 빈부격차 등 불편한 사회적 대립관계를 덮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몇 달 전부터 벌인 여론조사는 특히 발롱 지역에서 벨기에노동당의 무서운 상승세를 점치고 있다(<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7년 12월 호 ‘극좌파에 오염된 벨기에 발롱 지역’ 참조).

 

신플랑드르연대, 결실을 맺기 시작하다

이처럼 신플랑드르연대는 ‘두 개의 민주주의’라는 이슈를 꾸준히 밀어붙여, 연방주의라는 시나리오가 그렇게 어불성설은 아니라는 의식을 심어줬다. 2016년 10월, 사회당이 이끄는 발롱 및 브뤼셀의 세 의회가 ‘EU 및 캐나다 간 포괄적 경제무역 협정(CETA)’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당시 민족주의자들의 반발을 잠재울 방법은 아예 언론을 봉쇄하는 길밖에 없을 정도로 그들의 반응은 격렬했다. 

어떤 기사들은, 이 협정에서 폴 마그네트 왈로니아 지방정부 총리가 한 일이라곤, 오로지 “연방주의에 생명을 부여한 것”(10)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어쨌든 신플랑드르연대는 플랑드르 민족주의자들의 요구에 따라, 엄연히 벨기에 헌법에 명시된 거부권을 행사한 정치조직에 망신을 줌으로써 우위를 과시했다.

신플랑드르연대의 전략은 프랑스어권 벨기에에서 그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도가 지나친 ‘플랑드르’의 안하무인격 행태를 두고, 프랑스어권 지역의 결정권자들과 평론가들이 벨기에의 타당성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애국심이란 말을 가장 많이 들먹이는 것은 바로 플랑드르다. 연방의회 녹색당(프랑스어권 및 네덜란드어권)의 젊은 당수이자 야당의 핵심 인물인 크리스토프 칼보는 벨기에의 새로운 애국심을 제안한다. (신플랑드르연대와 블람스 벨랑을 제외한) 모든 정당들은 이제 특정 역량을 갖춘 ‘재연방화’ 가능성을 검토하는 중이다.    

 

 

글·폴 더크스 Paul Dirkx
로렌대학교 연구교수이며 저서로 <민족 경쟁. 벨기에, 유럽 그리고 신자유주의(La Concurrence ethnique. La Belgique, l’Europe et le néolibéralisme)>(Editions du Croquant, Bellecombe-en-Bauges, 2012)가 있다. 

번역·조민영
서울대학교 불문학과 석사 졸업.

(1) 2014년 1월의 강령, www.n-va.be.
(2) <De Standaard>, Groot-Bijgaarden, 2016년 8월 2일.
(3) ‘États en miettes dans l’Europe des régions(유럽국가들, 지역으로 산산조각 나나)’ 참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4년 11월호/한국어판 2014년 12월호.
(4) 당의 3개국어 사이트에서 ‘협의회 최종본(Definitieve congresbrochure)’ 참조. 
(5) www.n-va.be, 2016년 9월 21일.
(6) 벨기에 프랑스어 공동체 방송(RTBF), <La Première>, 2016년 5월 15일.
(7) 신플랑드르연대의 당수가 하원에서 위와 같이 언급함(www.knack.be, 2016년 8월 31일).
(8) <Le Soir>, 브뤼셀, 2016년 3월 3일.
(9) <De Morgen>, 브뤼셀, 2017년 5월 4일.
(10) <De Morgen>, 2016년 10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