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경계 그랑제콜의 정형화

2019-02-28     모리스 미데나 l 저널리스트

상경계 그랑제콜은 그랑제콜 준비반(예비교육과정) 학생들과 재학생들을 관리자로 양성하기 위해 학생들의 교외활동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은 학교생활과 관련된 온갖 요구사항을 따르면서 학문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프랑스의 유명한 상경계 그랑제콜 중 한 곳인 그르노블비지니스스쿨(GEM)에서 2016년 학위를 받은 에티엔 바다루(25세)는 졸업 동문들과 함께 차로 발칸반도를 여행했다. 10개월간의 여행을 끝내고 프랑스로 돌아온 바다루는 “앞으로는 정장차림으로 일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바다루는 2017년 여름부터 바텐더로 일하고 있다. 책상 앞에서 일하는 모습보다 카운터 뒤에서 일하는 현재의 모습이 바다루에게 더 잘 어울려 보였다. 바다루의 사례는 정장착용 같은 형식을 넘어, 그랑제콜 과정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잘 보여준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계속 ‘프레파(Prépa, 그랑제콜 준비반, 예비교육과정)가 가장 빠른 왕도다’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무엇에 대한 왕도일까요? 기업에 취직하게 되면 평생 제품을 팔면서 제품 1개당 벌 수 있는 푼돈이나 셀 텐데, 경제이론과 철학이론이 굳이 필요가 있을까요?”
바다루는 GEM에 들어오기 전, 그 유명한 상경계 그랑제콜 예비교육과정을 거쳤다. 10년 전부터는 매년 약 2만 명이 몰리는 그 유명한 ‘HEC(상경계 그랑제콜 중 한 곳인 고등상업학교-역주) 프레파’다. 학생들은 이 예비교육과정에서 철학·경제학·수학의 기본 개념을 배우고, 중동의 지정학적 문제에 대해 고민하며, 삶의 본질과 존재론적 정체성에 대해 토론한다. 한마디로 이곳에서는 학문적 지식이 가장 중요하다. 

학생들은 이 예비교육과정에서 2년간 엄청나게 공부를 한 후에 입학시험(Concours)을 치른다. 그리고 시험점수와 각자의 희망에 따라 bac +2(프랑스의 고등학교 졸업인증시험이자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 합격 후 2년을 더 공부한 것. 기술전문대학 정도의 학력 - 역주) 이상의 학력을 가진 학생들을 모집하는 총 26개의 상경계 그랑제콜 중 한 곳에 들어간다(그랑제콜에 낙방한 학생들은 일반대학의 3학년으로 편입할 수도 있다). 이 명성 있는 그랑제콜들은 미래의 기업 간부를 양성하는 곳이다. 일반 대학에서도 ‘경영대학’ 또는 ‘매니지먼트(상경계 그랑제콜들도 학교명에 ‘매니지먼트’라는 단어를 채택함)’가 붙은 학과가 있지만, 졸업 후에 그랑제콜 수준의 일자리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그랑제콜은 예산 중 50% 이상의 자금을 고액 수업료(2018년 9월 신학기를 기준으로 연간 평균 1만 2,080유로)로 조달한다. 그 밖에도 기업들이 부담하는 직업훈련세(Apprenticeship tax)와 상공회의소(CCI) 보조금을 받으며 민간자본의 비중도 계속 커지고 있다. 상경계 그랑제콜을 졸업하면, 초봉이 연 약 3만 5,000유로(세전 기준)이며, 금융·컨설팅·마케팅 분야에서 앞날이 보장된다. 이런 혜택들을 바다루처럼 거부하는 이들은 드물다. 

하지만 바다루가 느낀 실망감은 특별한 게 아니다. 그랑제콜 1년 차 학생들은 낮은 수업수준에 불만을 가지는데, 특히 마케팅이나 조직관리 첫 수업에서 종종 실망한다. 낭트에 있는 상경계 그랑제콜인 오덴시아 비지니스스쿨을 졸업한 카트린 갈티에는 상식적인 기초지식을 개념화하는 수준에 그치는 수업과 경영서적들을 떠올렸다. 이렇게 학생들의 지적 수준을 무시하는 현상은 강사들의 수업에서도 나타났다. 

“강사들은 우리가 공허함을 느낀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어요. 수업 내용은 별 의미가 없었고요.”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BTS(고등전문기술 자격증: bac +2에 해당-역주) 학위를 받은 후 2014년에 알프마리팀의 소피아 앙티폴리스 캠퍼스에 있는 또 다른 상경계 그랑제콜인 스케마 비지니스스쿨에 입학한 알반 메테이예는 “수업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학위 취득을 위해 학교에 돈을 지불한 거지, 수업 내용에 돈을 지불한 게 아니다”라고 털어놓았다. 

이런 불만은 대부분 교육과정 도중 희미해지기는 하지만,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이브-마리 아브라함은 HEC에 대한 연구에서 ‘학교 내 학생들의 이탈’을 예고하기도 했다.(1) 아브라함은 학생들이 동아리 등 학업 외적인 요소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교육에 필요해보였다고 지적했다. HEC 학생들은 학업에 충실한 ‘좋은 학생이기를 포기두면 훌륭한 관리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케마 비즈니스스쿨의 그랑제콜 프로그램 책임자인 소피 게는 아브라함의 연구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프레파 과정과 그랑제콜 과정 간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목표가 완전히 다르죠. 그랑제콜의 교육은 관련 지식과 사고 학습훈련도 요하긴 하지만 현장중심적입니다.” 

학업성적이 좋다고 해도 성적이 이 미래 관리자들의 진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외국의 어느 대학에서 교환학생 과정을 보냈는지, 또 전문분야(또는 ‘전공’)로 무엇을 선택하는지가 더 중요하다(아브라함의 표현에 의하면, 전공이란 졸업장 한켠에 적히는 문구에 불과하다). 스케마 비즈니스스쿨의 게 책임자는 “학교에서의 성공은 점수가 아니다. 역량을 인정받는 것이다. 점수보다 어디를 다녔고, 개인적으로 어떤 경험을 쌓았고, 어떤 인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런 점 때문에 학교 수업에서 학생들의 흥미가 떨어지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2016년 세르지 퐁투와즈 소재 상경계 그랑제콜인 Essec(고등경제상업학교)을 졸업한 쿠엔틴 피에로(26세)는 강의실과 강당의 모습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저마다 맥북 노트북을 펼쳐두고 있지만 모두 필기를 하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깊이 있게 공부하지 않아도 시험을 패스(프랑스의 시험은 20점 만점 중 10점 이상이면 패스다. 10점 미만이면 탈락해 재수강을 해야 한다-역주)한 이후 대부분 성실한 태도를 요구하지 않는다. Essec 출신인 브륀 랑쥬도 이렇게 말했다. “1학년 때 거시경제와 미시경제 수업을 들을 때 다른 시각으로 보려고 시앙스포(사회과학 중심의 그랑제콜인 파리정치대학의 줄임말-역주)에서 책을 여러 권 빌려왔어요. 그런데 시험에서 패스를 못 했죠. 그다음 해에 재수강을 할 때는 그냥 예전 시험 문제들만 보고 수업 시간에 나온 내용만 공부했죠. 그다음에는 문제가 없었어요.”

 

‘학교생활’도 자본을 보유한 남성이 지배

학생들 사이에서 ‘학교생활에서의 일탈’이나 ‘자랑할 만한 가십거리’는 학기 초부터 가장 중요한 요소다. 학생들의 동아리 모임에선 계단식 강당에 학생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수치심이나 사생활에 대한 일말의 배려도 없이 파티에서 누가 술에 취했고 또 누가 프렌치 키스를 했는지에 대해 떠든다. 선배들이 지나치게 술을 먹인다든지 신입생들을 괴롭히는 등 종종 비난을 받는 일들을 넘어서 그랑제콜의 여러 전통행사(MT, 스포츠 시합, 무제한 알코올 파티, 와인 시음, 스키, 세일링 크루즈 등)는 입학 전 2~3년간의 예비준비과정에서 공부 때문에 자유로운 생활을 억눌러온 학생들의 감정적 충동을 부추긴다. GEM의 장 프랑수아 피오리나 부국장은 “1학년 때 강력한 공통의 경험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공통의 경험은 학교에 대한 애착을 가질 수 있게 하고, 그 애착은 교육과정이 끝난 이후에도 수년간 지속된다.”라고 강조했다. 

학우들 간 돈독한 관계를 지속시키는 동아리 모임은 학교생활 속 사회관계를 구조화하기도 하는데, 이 모임들은 학생들 간 서열 매기기에 영향을 준다. 1999년 사회학자 질 라주에쉬는 “모든 동아리 모임이 동등한 가치나 지위를 가지지 못한다”라고 지적했다.(2) 가치가 높다고 인정받는 동아리 모임이 있는 반면, 학교에서 ‘낙오자’ 딱지가 붙은 부원들이 모인 동아리도 있다. 모임의 영향력은 공공의 유용성과 반비례한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상경계 그랑제콜인 ESCP(파리고등상업학교)에서는 매년 스키 여행을 조직하는 ‘스크룹(Skloub)’이라는 동아리가 가장 인기가 많다. 반대로 인문학이나 봉사 목적의 동아리는 인기가 없다.

라주에쉬는 남성과 여성 간의 차이도 지적했다. 모임 내 책임이 큰 간부직 대부분을 남성이 맡는 등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네트워크 아니마팍(Animafac)이 실시한 연구에 의하면, 2013년 상경계 그랑제콜 내 모임 중 59%에서 남성이 대표를 맡고 있었다. 또한 사회적인 차이도 있었다.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자본을 가장 많이 보유한 학생들이 모임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했다. 라주에쉬는 “학교 외 활동 영역에서 생기는 학생들 간 내부서열 구조는, 기업 간부들이 속한 직장 내 분열과 대립으로 이어지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학생 동아리에서의 경험은 관리자가 되는 데 중요한 요소다. 이 ‘제도 안의 제도’는 학생들에게 기업에서 겪을 상황에 대비할 수 있게 하고, 대인관계 노하우를 터득하게 한다. 예를 들어서 동아리에서 재무를 담당하는 학생은 회계 업무에 익숙해질 수 있고, 다양한 부문에 예산을 할당하면서 협상력을 기를 수 있다.

상경계 그랑제콜은 졸업생들이 기업 현장에 바로 투입될 수 있도록 하는 실무교육과 예비교육과정을 통한 학문 탐구 사이에서 항상 고민해왔다. 이는 20년간 크게 성장한 경영학 연구에서도 볼 수 있다. 

 

연구를 위해 높은 학비를 감당하는 학생들

이런 고민은 프랑스 교육기관 및 해외 교육기관의 경쟁력 추구 에서 비롯된다. 유럽경영대학협의회의 EQUIS 인증(유럽 MBA를 대상으로 MBA 교육활동 전반에 대해 평가를 함-역주)이나 미국의 경영대학 학장들의 협의회인 AACSB(국제경영대학발전협의회) 인증 등 양질의 교육을 공인하는 영향력 있는 주요 인증기관은 평가에 있어 대학 연구를 중요시한다. 이들 교육기관에서 강의와 연구를 겸하는 이들에게 높은 보수를 지급하려면(신임 박사의 세전 연봉은 5만 유로 이상이다) 기업에서 자금을 조달받거나 학생들이 내는 수업료에서 공제해야 한다. 학교들이 제공한 수치에 따르면 지난 3년간 학비가 14% 상승했다. 

사회학자인 마리안 블랑샤르는 “추세가 대학 연구를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면서 학교의 재정적 부담이 상승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최근 이뤄진 연구 투자를 보면 우선순위가 확실하게 변했다”고 설명했다.(3) 하지만 연구가 막상 교육의 질에 기여하는 바는 그리 크지 않은 듯하다. 블랑샤드는 “학생들은 ‘실용적인’ 교육을 원하지만, 활발하게 연구 활동을 하는 강사들은 연구결과를 공유하라는 요구도, 학생들을 가르치라는 요구도 받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대학 연구와 실용성 사이의 이런 대립은 오랫동안 갈등의 원인이 돼왔다. 1806년 이후 파리에 상업교육기관(훗날의 ESCP)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프랑스상업심의회는 “실용 지식을 필요로 하는 상인들에게 학문으로서의 상업은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것”이라고 단언했다.(4) 1988년 경영학의 대가로 불리는 헨리 민츠버그는 “‘학문’이라는 게임을 하기에 우리 기업들은 너무 우월하다”고 말했다.(5) 여기에서 ‘게임’이란 대학, 사고, 연구 및 경제적 이익이 없는 지식을 말한다. 반대로 미국의 경제학자인 소스타인 베블런은 1918년부터 이런 글을 썼다. “실용성만을 추구하는 이런 종류의 대학은 (목회자 양성을 목적으로 삼는) 신학 학부에 비유될 만하다. 이들 학문은 우리 대학들이 존재하는 이유인 ‘사고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6) 

상경계 그랑제콜들은 학생들 개인의 발전을 장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확신하지만, 민간기업의 운영 관리자를 양성한다는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는 것은 금물이다. GEM의 피오리나 부국장은 “우리는 이제 학생들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가 내보내는 ‘완성품’은 학교 밖에서 일어날 모든 일들에 대한 일련의 기술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랑제콜협의회에 따르면 2017년을 기준으로 60%의 학생들이 졸업 전에 이미 일자리를 찾았다고 한다. 관리자를 만들어내는 생산영역은 아주 잘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글·모리스 미데나 Maurice Midena
저널리스트, 경영대 졸업생.

번역·이연주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Yves-Marie Abraham, ‘Du souci scolaire au sérieux managérial, ou comment devenir un ’HEC’(학업에 대한 걱정에서부터 진지한 관리자에 되기까지, 또는 ‘HEC’ 출신이 되는 방법)’, <Revue française de sociologie>, vol. 48, n° 1, Paris, 2007.
(2) Gilles Lazuech, 『L’Exception française. Le modèle des grandes écoles à l’épreuve de la mondialisation(프랑스의 예외. 세계화에 직면한 그랑제콜 모델)』, Presses universitaires de Rennes, coll. ‘Le sens social’, 1999.
(3) Marianne Blanchard, 『Les Écoles de commerce. Sociohistoire d’une entreprise éducative(상업학교들. 교육기업의 사회사)』, Classiques Garnier, Paris, 2015.
(4) Cédric Poivret, ‘L’enseignement commercial en France durant le XIXe siècle: évolution et impact sur le développement de savoirs explicités à l’intention des~를 위한 gestionnaires(19세기 프랑스의 상업 교육: 관리자를 위한 명시적 지식 개발의 변화 및 영향)’, <21e Journées d’histoire du management et des organisations(제21차 경영 및 조직 역사의 날)>, Lille, 2015년 3월, https://hal.archives-ouvertes.fr
(5) Henry Mintzberg, ‘Formons des managers, non des MBA! (MBA가 회사를 망친다!)’, <Harvard-L’Expansion>, n° 3, Paris, 1988-1989 겨울호.
(6) Thorstein Veblen, 『The Higher Learning in America: A Memorandum on the Conduct of Universities By Business Men』, B. W. Huebsch, New York, 1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