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없는 생태학

2019-02-28     제롬 라미 Jérôme Lamy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이어가겠다는 취지로 30년에 출간한 <자연계약론>으로 언론의 스포라이트를 받은 철학가 미셸 세르가, 인간은 사물과 생명체를 포함해 세상의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권리를 주장했다. 세르는 개정된 <자연계약론>의 서문에서 ‘동등한 상황과 공평한 법’을 언급하며 이 새로운 권리를 자세히 설명했다.(1) 

당시에는 파격적이었으나 이제는 익숙해진 개념이다. ‘공생과 상호성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자연계약론’을 위해 세르는 과학과 법의 관계를 유지할 합의조건을 찾았고, 자연을 대상이 아닌 권리가 있는 주체로 삼았다. 세르는 둘 다 진실을 규명하는 분야인 과학과 법이 불확실하게 대립하기보다는 전반적인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인간과 인간 외 동물, 식물 등 생태계를 구성하는 요소들 사이에 존재하는 항상성(2)이 자연의 기본적인 원칙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연계약론은 경각심을 선사하는 세르의 이론 전개과정에서 빛난다. 하지만 과학적 진실과 법적 진실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은 피할 길이 없다. 이에 관한 예시는 그리스 학자들에 대한 소송에서 리센코 사건(3)까지 셀 수 없이 많다. 세르는 독자가 어지러울 정도로 이 시대 저 시대를 오가면서, 갈릴레이의 “그래도 지구는 돈다!”같은 대사들을 내세우면서 주장을 펼쳐나간다. 화려한 논리 전개 속에서 구체적인 역사는 설 자리가 없다. 화려한 문체가 정확한 사실보다 중시된다. 결국 문체가 지나치게 기교를 부린 탓에 자명한 이치가 묻힌다. 예를 들어 기후를 묘사할 경우, 극심한 태풍으로 인해 순식간에 황폐해진 상황이나, 해류의 순환이 가장 완만할 때나 보편적 원리가 녹아 있어야 하는데, 그런 분석은 찾아보기 어렵다.

경제 분야도 잠시 스쳐가며 언급되는 정도다. 그렇다면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감소 등은 시장경제와 무관하다는 것인가? 세르가 왜 사회과학에서 정책을 부차적인 것으로만 인식하는지 알 수 있는 허점이다. 실제로 『자연계약론』은 1980년대부터 환경파괴가 정책에 끼치는 영향과 현재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조건을 상세히 조사한 수많은 사회학을 등한시한다.(4)

최근에 미셀 세르는 짧게나마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했다. 『예전이 나았다!』(5)처럼 과거가 더 좋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비판한 것이다. 세르는 의학과 보건위생 분야의 발전, 과거 농업인들의 혹독한 상황 등을 강조했다. 그는 보수적인 견해를 보이는 사람들 앞에서 과거의 사회적 조건과 정치적 조건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언급했다.

그러나 현재가 과거보다 낫다는 식의, 단순비교를 통해 결론을 내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일례로 원산지추적 시스템은 전염사태를 피하는 데는 상당 부분 도움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농약과 유전자 변형물질을 다량 사용하는 농업비즈니스가 표식으로 삼는 것이기도 하다. 세르는 과거와 현재를 대결 양상으로 놓으면서 지배관계의 지속, 강화 등 많은 문제를 간과함으로써 다시 한 번 현대의 경제를 등한시한다. 과거를 무조건 미화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현시대를 “전반적인 해방이 이뤄진 시대”라고 무조건 긍정하는 태도도 위험하다.  

 

 

 

글․제롬 라미 Jérôme Lamy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한불과 졸업. 한국방송대 일본학과 재학


(1) Michel Serres, 『Le Contrat naturel(자연계약설)』, Éditions Le Pommier, 파리, 2018
(2) 변화에 저항하고 균형 있는 상태를 유지하려는 생태계의 특징 
(3) 러시아의 농업생물학자, 트롬핀 리센코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리센코의 유전자 이론은 1948년 구소련에서 공식적으로 진실임이 밝혀졌다. 
(4) Donald Worster, <Nature’s Economy: A History of Ecological Idea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7/ Richard White, <Land Use, Environment, and Social Change: The Shaping of Island County>, Washington, University of Washington Press, Seattle, 1980/ Ted Benton, ‘Marxism and natural limits: An ecological critique and reconstruction’, <New Left Review>, n° 178, London, 1989년 11~12월/ James O’Connor, ‘Capitalism, nature, socialism: A theoretical introduction’, Capitalism Nature Socialism, vol. 1, n° 1, Abingdon, 1988.
(5) Michel Serres, 『C’était mieux avant!(예전이 나았다)』, Éditions Le Pommier,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