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연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새로 쓰는 ‘비판경제 교과서’ (3) - 노사(勞使), 다리와 버팀목의 관계

『비판경제 교과서』연재순서 (1) 경제학은 과학인가? (2) 생산 증대, 무조건 더 많이! (3) 노사관계(다리와 버팀목의 관계) (4) 부의 분배 희망과 난관 (5) 고용, 어떠한 대가를 치러야 하나? (6) 시장을 따를 것인가 명증된 법칙을 세울 것인가? (7) 세계화 국민 간의 경쟁 (8) 화폐, 금전과 현찰의 불가사의 (9) 부채 협박 (10) 금융 지속 가능하지 않은 약속

2019-02-28     르디플로

‘대화’, ‘중재’, ‘합의’. 정치연설이나 언론분석에서 노동문제를 다룰 때면 ‘노사관계 유연화’라는 유일무이한 목표를 겨냥하는 듯하다. 왜냐하면, 직장은 삶의 질을 추구하는 노동자와, 이윤을 추구하는 고용주의 상반된 입장이 충돌하는 대립장이기 때문이다. 이런 갈등을 해소하려면 결국은 한쪽 진영이 자신의 입장을 포기하게 되는 상황이 부지기수다. 그래서 일부 회사들은 임금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나서 경영진의 입장에 반하는 노조활동을 회사보호 차원에서 미연에 차단하기도 한다.
 

 

1. 편견: “사회적 대화는 모두에게 득이 된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사회적 대화’라는 용어는, 기업이라는 장소가 협력과 타협의 장인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경제적 의사결정 중에 노사 공동결정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과연 노동자가 고용주와 대등한 위치에 서서 평화적으로 협상을 벌일 수 있을 것인가?

2015년 10월 19일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가 모인 자리에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사회적 대화는 절차나 의무가 아닌, 진보의 조건”이라고 못 박았다. 언론과 정치인들은 노동과 고용 문제에 있어 사회적 대화가 그 어떤 형태의 법이나 갈등보다도 나은 중재수단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사회적 대화에 수반되는 난항이 적지 않음을 노골적으로 호소하기도 한다. 

사회적 대화는 노동자와 고용주가 상호 협력적인 방식으로 생산과정에 참여함을 전제로 한다. 전제대로라면 노사는 기업의 건전성이라는 공동의 이해를 바탕으로, 창출된 부의 분배조건을 평화롭게 논하기만 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고용주와 노동자는 불평등한 관계에 있으며, 서로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 먼저 노동자가 고용주의 의사결정에 순응하도록 하는 고용계약은 종속적 성격을 띤다. 또한, 기업의 이윤추구가 반드시 임금인상, 고용안정, 노동조건의 개선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윤추구를 위해서라면 앞서 나열한 모든 조건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결국, 노사 간 대화는 평등에 기초하지 않기 때문에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다. 오히려 갈등의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흔히 노사분규의 전형으로 간주하는 파업은 기업의 경영진이 평소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문제를 수면 위로 부각시킨다. 힘의 균형을 재조정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통계 자료에 의하면 프랑스 비농산물 시장 부문 10인 이상 사업장 기준, 노동자 1,000명당 연간 파업일수가 2005년 168일에서 2013년 79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파업일수의 감소는 노사관계 개선의 결과가 아닌, 대량실업의 여파로 더 취약해진 노동조건에 기인한다고 봐야 한다. 파업일수는 줄었지만, 노사 간의 대립은 오히려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시위는 작업중단이나 탄원운동 등 온건한 방식을 취하기도 하고, 물리적 폭력, 자살, 위협 등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되는 등 때에 따라 방식을 달리할 뿐이다.

국가는 노동자의 취약한 여건을 고려해 고용주 앞으로 협상의 의무를 부여한다. 따라서 고용주는 해고를 빌미로 노동자에게 요구 철회를 강요할 수 없다. 이처럼 노사 간의 갈등은 충분한 상호 협의를 통해 해결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적 효력은 과연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고용 협박이나 진배없는 노사협상

일반적 조건에서, 노사 간의 의무를 추구하는 데 있어 국가, 즉 정부가 노사 간의 교섭에 섣불리 개입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노동자들의 입장에 더 가까운 방향으로 ‘대화’가 진행돼야 더욱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결국 노조를 제쳐두고 노동자들이 직접 교섭에 나서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 2015년에 자동차 제조업체인 스마트 사의 대표는 경쟁력 협약에 반대하는 견해를 밝혔지만, 같은 업체의 노동자 56%는 고용유지를 조건으로 급여인상 없이 주당 39시간 근무제로 회귀하는 데 찬성표를 던졌다. 그런데 이런 내용의 노사협의는 사실상 고용 여부를 내건 협박이나 다를 바 없다.

고용주와 노동자 간의 대립을 초래하는 불평등한 관계 내에서 노동자들이 내세울 유일한 강점은 수적 우위뿐이다. 그러므로 분열을 조장하려는 시도는 노동자 세력의 약화를 노린다. 이는 기업의 편의를 위해 단체협상이 아닌 개인 단위의 계약을 독려하는 각종 조치의 본질이기도 하다. 좀 더 정확히는 지난 2016년 봄, 미리암 엘 콤리 노동부 장관이 국회에 제출한 노동법 개정안의 기본 입장이 이 상황에 해당한다. ‘규범의 위계질서’를 전복시키는 것이 바로 콤리 장관의 의도다. 일부 특수 분야를 제외하면, 개인 대 회사 단위의 협상은 단체협상뿐 아니라 법적 효력까지도 능가할 수 있다. 기업 내에서 단체보다는 노동자가 단연 수적으로 우위를 점하기 때문이다.

 

2. 선의로 충만한 노예 구제 대책

18세기 후기에 접어들면서, 노예제도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시기 프랑스는 노예를 동원해 북아메리카와 카리브지역을 개척하고 점령하고 있었다.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요구에 맞서는 옹호론자들은 천성적으로 일하기 싫어하는 노예들을 해방한다면 이들은 필연적으로 빈곤에 빠지게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산업 붕괴를 일으킬 뿐이라고 응수했다.

1748년에 프랑스 철학자 샤를르 드 몽테스키외는 노예해방의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도덕적 접근이 주류 여론을 형성하는 와중에 프랑스에서의 논의는 점차 경제적 논리로 기울기 시작했다. 몽테스키외는 “플랜테이션 농업에 노예를 투입하지 않는다면 큰 폭의 설탕값 인상이 발생할 것”이라고 선동하듯 주장을 펼쳤다. 당시 일부 노예제 폐지론자들은 강제 노동이 자발적 노동보다 비효율적임을 입증하고자 했다. 그 근거로 노예제도에 수반되는 높은 비용 대비 저조한 생산성은 노예들의 후생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식민지를 유지하는 비용을 높이게 되며, 궁극적으로 프랑스 본토의 번영을 저해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런 공격에 맞서, 노예제를 주창한 이들은 노예제도 폐지의 ‘비효용성’과 ‘역효과’라는 두 가지 명제를 논거로 제시했다. 옹호론자들의 대응에 관해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은 전형적인 반동적 수사법이라고 꼬집어 지적한 바 있다.

우선, 첫 번째 명제인 비효용성을 살펴보자. 1788년에 피에르빅터 말루에 대령은 “나는 (돈을 치르고 흑인에 대한 소유권을 획득함으로써) 소유주와 무산계층을 연계하는 새로운 시장을 형성한 셈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나를 위해 일하면 먹고 살 수 있게 해주겠다”라는 단서는 빈곤층과 부유층 간에 통용되는 보편적 합의의 전제조건이다. 시대와 사회를 불문하고 가진 자는 가진 것이라곤 노동력밖에 없는 이들에게 결코 자신의 재산을 거저 나눠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당신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하는 기자를 고용하듯이, 나는 1천 500프랑에 달하는 비용을 덤으로 치르고 누군가에게 일과 숙식을 제공하는 권한을 획득했을 뿐이다. 노동시장의 암묵적 관행과 노예소유 간에 어떤 차이점이 있단 말인가? 게다가 나는 당신들과 달리 추가적인 의무도 수행한다. 나는 나의 흑인 노예가 병들면 치료를 해주고, 그가 노년에 이르면 자유를 준다. 더불어 나에게 비록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내 노예의 자녀를 손수 거둬 기르고 먹이기도 한다. 당신들이 비참하기 짝이 없다고 여기는 노예 중 그 누구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거리를 헤매며 독자의 동정심을 자아내기 위해 헛된 노력을 기울이는 가난한 일용직 기자들은 그 누구도 동정하지 않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피에르빅터 말루에 대령의 이런 두 가지 주장은 이후 노예제도를 옹호하는 수많은 이들의 글을 통해 답습돼 쓰였고, 다음과 같이 변형·재생산되기에 이른다. “세상에 만연한 사회적 억압은 그 자연적 특성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며, 자신의 안위를 책임지는 소유주 밑에서 일하는 노예는 기자나 가난한 농민보다 행복하다”라는 것이 그 내용이다.

 

최선은 선의 ‘적’

노예제 옹호론자들은 두 번째 명제인 역효과를 통해, 노예제도를 폐지할 경우, 노예제 폐지론자들이 추구하는 이상과는 상반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을 경고한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천성적으로 나태한 흑인 노예들은 결핍에 연연하지 않는다. 아울러 노예들이 자연의 풍요를 누리는 지역에서 자유를 누린다면, 필시 그들은 플랜테이션 농업을 포기하고 식물 채취나 식용작물 경작, 소규모 어업이나 사냥을 하며 살아갈 것으로 생각했다. 아울러 설탕, 커피 재배와 같은 농업의 붕괴는 비단 식민지의 몰락뿐 아니라 프랑스 무역과 산업의 약화로까지 번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게 해서 자유를 얻은 흑인들이 결국에는 더욱 열악한 여건을 감수해야만 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맥락에서 1843년에 식민지 참모를 지낸 보비스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내놓았다.

“노예를 비난하거나 모욕하고 싶지 않다. 단지 노예들의 본분을 상기하려는 것뿐이다. 노예제도는 사회의 기능이며, 그 기능은 흑인들의 능력에 따른 결과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와 동등한 수준의 지능을 보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노예제도를 폐지한다면, 소위 박애주의자라는 사람이 모든 이들에게 고통을 안기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선은 선의 적이다.” 1791년에 미 대륙 프랑스 식민지로 이주한 농장주들의 노예제에 관한 생각을 고발하고자 익명으로 제작된 전단에 적힌 이 금언은 당시 노예제 폐지론자들에 맞서던 옹호론자들의 시각을 여실히 드러낸다. 옹호론자들은 사실상 자신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현상 유지를 주장했으나 겉으로는 공공의 이익을 위하는 듯 행세했다.

 

3. 민주주의는 왜 회사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가?

기업이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 직원이 직접 참여하고, 경영진이 중대사안을 결정하기에 앞서 직원들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는 등 직원의 경영참여는 어째서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 것인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정치 분야에서 쟁취한 시민권과 비교하면, 경제 분야의 ‘민주주의’는 정해진 틀 안에서 제한적 방식으로 실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2016년 3월에 당시 프랑스 경제부 장관직을 맡고 있던 에마뉘엘 마크롱은 기업경영 풍토를 언급하며 “노동자의 경영참여라는 이상적인 방식을 다시금 도입해야 한다”고 열변했다. 전직 금융인인 마크롱이 여기서 언급한 노동자의 경영참여란 직원의 ‘소유권(예: 우리사주)’ 확대를 의미한다. 이 방식은 이미 과거 1960년대 샤를 드골 대통령 집권기에 시행된 바 있는데,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역학적’ 대립관계가 아닌, 회사의 경영실적에 따라 직원과 이윤을 나누는 제3의 대안에 해당된다. 단언하자면, 이런 식의 접근은 직원들을 오로지 급여명세서에 찍힌 숫자에만 연연하는 존재로 간주할 뿐이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이란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동과 생산 방식, 이윤 분배에 관한 논의와 결정을 비롯한 광범위한 차원의 문제에 폭넓게 관여하는 주체다.

사회학자 이사벨 페라는 저서 『자본주의는 세계를 제패했나? 이원화된 경제(PUF 출판사, 2012년)』를 통해 정치 분야는 18세기~19세기의 전제군주제의 종언과 투표권의 확대에 힘입어 민주화의 물결을 맞았지만, 경제 분야에서는 그런 계기가 없었음을 지적한다. 기업에서 자본(그리고 자본의 소유자)은 소위 무소불위의 권리를 행사하곤 한다. 노동자는 회사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시민으로서 누릴 각종 권리를 내려놓는다. 반면, 고용주는 고용계약의 틀 안에서 노동자들을 가두고 충성을 강요한다.

‘기업의 민주화’, ‘가치 창출의 원천인 노동의 가치 인정’과 같은 요구는 사안에 따라 그 표현을 달리했을 뿐, 19세기 후반 이후에 노동운동을 관통해온 공통의 주제였다. 전자는 직원들에게 의결권을 부여함으로써 생산의 영역까지 정치 민주주의를 넓히도록 요구한다. 프랑스는 이미 1차 세계대전 당시에 군비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대표를 선출하도록 허용한 바 있다. 그러나 해당 제도는 1936년이 돼서야 비로소 11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한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1944년의 레지스탕스 국민위원회 강령(Programme du conseil national de la Résistance)은 ‘진정한 경제와 사회 민주주의’를 요구하기도 했다.

노동조합의 참여에 힘입은 노동자들의 기업경영 참여 확대 움직임은, 곧 한층 조직적인 형태를 갖춰갔다. 이윽고 1946년에는 관련법이 제정되면서 노동위원회가 설립됐으나 그 활동범위는 자문으로만 한정했다. 이후 1982년에 도입된 ‘오루 법(Les lois Auroux, 당시 노동부 장관이었던 장 오루의 이름을 딴 법-역주)’은 해고를 비롯한 각종 기업경영 정보에 노동자들이 접근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노동자들이 관여할 수 있는 범위는 매우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주어진 권리에 만족하지 말고, 권리를 확장해 나갈 것

독일의 ‘공동 결정제도’ 모델은 흔히들 프랑스 모델의 비교 대상이 되곤 한다. 독일의 노조는 기업경영에 직접 참여할 권리가 없다. 대신 직원들이 사업장협의회를 구성해 대표를 선출하면, 협의회 대표가 기업 경영상 중요한 사안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정하고 있다. 직원의 복무 및 복지에 관한 사안(징계처분, 근무시간의 조정, 유급휴가의 지정, 보건 및 안전 문제, 상여금 기준)을 결정하기에 앞서 고용주는 반드시 사업장협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 밖의 사안(해고, 구조조정, 긴축 경영)의 경우 단순 협의 사항으로 처리한다. 그러나 전략적 결정권이 여전히 경영진의 손에 남아있는 만큼, 노사가 평등한 권한을 공유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독일식 모델’에 회의적인 일부 노동운동가들은 ‘노동자 자주 관리’ 방식을 옹호한다. ‘노동자 자주 관리’란 노동자들이 자율적으로 노동력을 동원해 사업장을 경영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이는 자본주의 경영방식의 틀 안에서 노사가 권한을 배분하는 접근을 넘어 새로운 원리를 적용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평등주의에 기반한 참여라는 점에서, 협동조합 역시 같은 취지를 공유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방식을 시장경제 안에서 실현하기에는 적잖은 제약이 따른다.

 

4. 연속공정은 정말 자취를 감췄나?

찰리 채플린이 <모던타임스>에서 보여준 모습을 과연 과거지사로 치부할 수 있을까? 이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반복적이고 부품화된 노동방식이 점차 사라져간다는 주장에도 역시 신중을 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신자본주의’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경제의 서비스화가 반드시 노동자의 자율성으로 연결되지는 않으며,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노동은 해외로 이전됐을 뿐 결코 자취를 감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5년 프랑스 생테티엔대학은 카지노그룹과 협력해 만족 경영 교육 과정을 개설했다. 프랑스 5대 대형유통업체인 카지노그룹 인사부장의 설명에 의하면, 이 교육의 목표는 직원들을 “더 낙관적이고, 가능하다면 더 행복하게” 만드는 데 있다. 사회학자 뤽 볼탕스키와 이브 치아펠로(1999)는 197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자본주의의 새로운 정신’이 생산업계를 관통하면서 제제와 감시가 아닌 노동자들의 자발적 참여가 기업의 실적향상을 도모하게 된 것에 주목했다. 그러나 새로운 경향에 힘입어 기업 내 기존 권력구조에 변화가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한 세기 동안 자본주의를 규정해온 조직 내 노동환경의 근간은 달라지지 않았다.

19세기 말 급격한 산업발달에 발맞춰 미국의 기계공학자 프레데릭 윈즐로 테일러(1856~1915)는 과학적 관리법을 고안했다. 과학적 관리법은 공장 노동자들의 작업을 요소별로 나누어 연구한 결과물로, 테일러는 새로운 관리법이 눈부신 생산성 향상을 보장하리라고 확신했다. 작업을 과업단위로 분류한 과학적 관리법 덕에 노동자는 더는 핀셋을 쓸지, 혹은 펜치를 쓸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관리사무국 엔지니어가 최적화된 방식(best way)의 실행동작, 실행시간과 이행목표를 작업지시서에 적시해 노동자들에게 지침을 내렸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약속

20세기 초, 역시 미국에서, 헨리 포드는 자신의 자동차 공장작업 과정을 고민하며 ‘테일러주의(Taylorism)’의 원칙을 재검토했다. 작업을 단순동작으로 나누는 기존방식에 소위 ‘포드주의(Fordism)’라 불리는 생산설비의 핵심요소인 컨베이어 벨트를 추가했다.

테일러주의와 포드주의*의 생산방식 도입은 일찌감치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됐다. 기실 이와 같은 생산방식은 노동자들의 인간성을 말살할뿐더러, 생산성의 향상을 반드시 가져온다고 볼 수도 없었다. 1970년대 이후 신속하게 이어진 세계경제의 변화는 노동자들이 작업 과정에 더 많이 관여하고 보다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는 도요타주의(일본기업 도요타의 생산방식에서 유래)를 비롯한 보다 다양한 형태의 노동방식을 모색하게끔 했다. 아울러, 기술혁신에 힘입어 일부 분야에서 적용되는 단순 업무의 상당 부분은 기계화 방식으로 전환됐다. 1980년대 초, 일부 경제학자들은 테일러주의와 포드주의가 곧 과거의 유물로 전락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런 주장은 의문을 남긴다. 우선 자동화는 항공기, 자동차 등 기술집약적인 생산 공정에 국한된다. 아울러 노동력이 생산의 주요 요소인 섬유나 전자분야의 경우, 과업이 세분되고 엄격히 구분되며 위계질서에 의해 통제되는 특성이 있다. 해당 산업은 임금이 저렴한 국가로 가장 손쉽게 이전되곤 한다. 이런 측면에서 테일러주의는 완전히 사라졌다기보다는 개발도상국으로 자리를 옮겼을 뿐이라고 봐야 옳다.

 

‘창의성과 동기부여’로 변신한 과거의 감시체제

흔히들 주장하는 바와는 달리, 1960년대 이후에 가파른 성장을 이룬 3차 산업의 발달이 테일러주의의 종언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콜센터의 경우, 상담사는 수직적 위계구도 하에서 개발된 ‘스크립트’에 담긴 대화지침을 엄격히 준수해야만 한다. 관리자들은 정기적으로 대화내용을 모니터링 하고 실시간으로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판매계약 성사 건수를 확인한다. 오늘날 노동자들은 테일러주의 원칙에 가까운 요소와 상대방의 기대를 잘 융합할 줄 알아야 한다. AOL 주식회사는 전화상담사를 평가하는 기준에 ‘창의성, 주도성’과 같은 항목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 테일러주의 틀 안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평가방식임이 틀림없다.

 

5. 카를 마르크스가 생각한 이윤의 원천

철학자이자 역사학자였던 카를 마르크스(1818~1883)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특징을 노동자에 대한 착취로 설명했다. 그의 주장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자유경제학자들은 고용주가 위험을 감수해가며 투자를 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때문에 이윤을 취할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 대한 경제적, 도덕적 통념을 바꾸는 접근논리를 제시했다. 

예컨대, 마르크스는 기업가, 상인, 은행가로 대표되는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착취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가? 마르크스는 한 시간의 노동에 대한 보상이 노동자가 산출하는 실제가치보다 적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때 ‘자본가’는 마르크스가 ‘잉여노동’이라고 부르는 잉여가치 일부를 사유화한다.


6. 이윤을 합리화하는 1,001가지 변명

이윤은 경제의 모든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대부분 이윤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투자하거나, 도전적으로 기업을 운영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이윤이란 그저 합당한 근거인 것처럼 이념적 논변으로 그럴듯하게 잘 포장한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은 노동에 대한 대가로 임금을 지급하듯, 이윤 역시 생산요소인 자본에 대한 보상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각각의 생산요소가 실제 기여하는 정도에 비례해 수입을 거둬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예기치 못한 난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첫 번째 난항은 자본이 일정한 물리적 성격을 띠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컨대, 빌딩과 컴퓨터는 성격이 다르며, 한 달간의 소요전력을 가재도구에 비교하기는 어렵다. 더불어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수단인 주식의 가치 역시 유동적이다. 주식 가치는 투기 요인이나 기업의 실적에 따라 달라지며, 악순환을 거듭한다.

 

높은 불확실성

두 번째 난항은, 생산의 필수요소인 인적 노동의 경우와 같이, 설비(일부 특수한 경우는 예외로 함)를 이용해 발생하는 이윤 또한 제반 설비에 대한 재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고스란히 고용주의 몫으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경제의 역설에 관해 주류경제학은 여러 가지 주장과 해석을 내놓는다. 우선, 이윤이 설비를 마련하기 위해 융통한 자금을 변제하는 데 쓰인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기업이 취하는 이윤의 비율은 자본가(은행 또는 주주)에게 변제하는 금액을 초과하기 마련이다. 

그다음으로는 기업이 취하는 이윤이 자본가의 재능에 대한 반대급부라는 주장을 꼽을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자본가의 재능이란 기업가정신, 혁신역량, 그리고 위험부담 능력에 해당한다. 실제로 2016년 1월 20일 당시 경제부 장관으로 있던 에마뉘엘 마크롱이 RMC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밝힌 다음과 같은 주장의 논거이기도 하다. “기업가의 삶은 대체로 임금노동자보다 더 고됩니다. 기업가는 모든 걸 잃을 수 있고,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역풍으로 모든 위험이 임금노동자에게 전가되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정규직 일자리의 감소, 노동쟁의조정위원회나 노동법에 대한 비난 등)에서도 이런 주장이 여전히 유효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그 밖의 주장으로는 흔히 ‘슈미트의 이론’으로 불리는 헬무트 슈미트 독일 총리의 1974년 11월 3일 발언을 예로 들 수 있다. “오늘의 이윤은 내일에 대한 투자이며, 모레의 고용을 창출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자본주의 현상을 보면, 앞의 주장들은 힘을 잃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출된 부에서 이윤의 비중이 커질수록 임금은 낮아지고 실업률은 높아진다. 잉여이윤이 주주들의 몫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투자의 비중이 커지는 일, 특히 고용을 창출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과연 이윤이 노력에 상응하는 응당한 보상인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불평등한 관계로부터 이윤이 발생한다고 본다. 노동자는 자본가를 위해 일하지만, 임금 수준은 노동으로 창출된 전체 가치에 미치지 못한다. 이런 상황은 이윤의 정당성에 관한 또 다른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즉, 소수의 사람이 생산수단을 점유하는 상황이 마땅한가다. 과연 현 상황이 사회의 효율성을 도모하는 최선의 길일까?
주류 경제 이론을 통해 이윤의 원천을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는, 철저히 경제적 논리에 근거해 합당한 설명을 제시할 방도가 도무지 없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은 불확실성도 재능도 아닌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에 근거해 이윤을 취한다. 노동자들은 생산에 직접 이바지한 대가로써 보상을 받지만, 주주나 고용주는 상속이나 취득을 통해 생산수단을 그저 소유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이 취하는 보상을 정당화한다.

아울러 고용주는 소유권을 근거로 노동자에게 고용, 해고 등의 권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윤은 투입된 노력에 대한 합당한 보상이라기보다는 고용주의 지배적인 위치를 이용해 기업 생산에 부과하는 공물이나 다름이 없다. 이윤이 만약 정당하다면 어째서 경제적 효율성의 척도로 자본의 수익성을 고려하겠는가? 달리 말하면, 기업의 주요사안을 결정하는 데 있어 사적 이해가 작용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 의문을 가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7. 고용주들은 마르크스를 읽었을까?

자신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상류층 부르주아지의 두드러진 특징은 정교한 조직화 방식에 있다. 이들은 사회집단으로서 세력을 형성하고 모범 관례를 구성원들끼리 공유한다. 겉으로는 현실적 목적에 기반한 듯한 집산주의의 이면을 들춰보면, 이들 구성원의 지위는 재능을 바탕으로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 대물림된 유산임을 알 수 있다.

프랑스 서부 연안에는 다른 여러 섬으로 둘러싸인 ‘레 포르트-엉-레(Les portes-en-ré)’라는 섬이 있다. 이 섬의 한쪽 끝자락은 여러 부르주아지 가문이 회합하는 장소로 주목을 받는다. 이곳에서는 모두 서로 인사를 나누고, 미사가 끝나면 다들 앞마당에 모여 긴 담화를 나눈다. 일요일이면 카페 바젠의 테라스에 삼삼오오 모여 다과를 즐기기도 한다. 유쾌함이 가득한 이 상류사회의 일원들은 서로를 환대하며, 외부 훼방꾼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기뻐한다.

항상 세심히 관리되는 이 상류층 사교집단의 구성원들은 서로 같은 장소를 드나들며 회동하곤 한다. 파리의 사교클럽, 해변의 빌라와 산장은 적절히 개방된 넓은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에 멋진 사교모임을 열기에 손색이 없다. 이곳에서도 흡사 파리 콩코드 광장의 ‘프랑스 자동차 클럽(Automobile club de France·ACF)’이나 포부르생토노레 거리의 ‘위니옹 엥테랄리에 서클(Cercle de l'union interalliée)’과 같은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부를 창출하는 집단’으로 변신한 과거의 ‘착취계급’

부르주아지는 겉으로는 강한 결속력을 자랑하는 집산주의 집단 같아 보인다. 그러나 이런 집산주의 역시 실용성을 추구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이곳은 기업인뿐 아니라 금융, 정치, 언론 분야의 모든 권력가가 협력을 도모하는 교류의 장이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이들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비판에 연연하지 않고 사회 관계망의 중심에서 활동하고 행동한다. 고용주로서 이들은 자신의 지배적인 사회적 지위를 이론화해야 하는 일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이들의 지위는 대부분 대물림되기 때문이다. 피에르 가타즈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프랑스 경제인연합회(MEDEF)의 회장을 맡고 있으며, 전기·전자 연결부품 생산 분야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는 업체인 라디알(Radiall)의 경영주이기도 하다. 피에르 가타즈의 부친은 프랑스 최초의 고용주 조합이자 프랑스 경제인연합회의 전신에 해당하는 프랑스 고용주협의회(CNPF)의 회장을 역임한 이본 가타즈다. 결국, 그는 아버지로부터 미래를 보장하는 유망한 직책을 상속받은 셈이다.

타인의 노동력을 착취함으로써 기반을 형성한 부르주아지는 처음에는 ‘즉자적(卽自的) 계급’을 형성한다. 중산계급이나 서민계급으로부터 이들을 구분하는 요소는 객관적인 부(富)의 크기다. 이후, 이들은 자신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그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고용주 조합과 같은 조직을 형성함으로써 ‘대자적(對自的) 계급’으로 발돋움한다. 프랑스에서 최초의 고용주 협의체는 제1 제정 시대에 형성됐다.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며 조직의 재편성을 거듭했고, 1936년에서야 비로소 프랑스 고용주협의회의 전신인 프랑스 제조사총연맹(CGPF)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그리고 1990년대 말, 고용주들은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야심을 드러냈다. 그런 연유로 기존의 명칭인 프랑스 ‘고용주’협의회를 포기하고 위화감을 덜어주는 프랑스 ‘경제인’연합회라는 새로운 이름을 택한 것이다. 그런 식으로 프랑스 경제인연합회의 첫 수장을 역임한 에르네스트-앙투안 세이에르 드 라보르드 남작은 철강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부흥한 뱅델 가문의 후손이다. 그는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노동법과 사회보장제도를 ‘현대화’한다는 명분으로 계약(위법임) 및 개별교섭(단체협약에 어긋남)을 골자로 하는 ‘사회재건’ 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세력화된 대자본가 계급의 이념 공세

자본가들은 계급투쟁을 공허한 수사로 전락시킨다. 이들의 요술 주문은 어제의 ‘착취계급’을 이른바 ‘부를 창출하는 집단’으로 거듭나도록 하고, ‘피착취계급’을 ‘노동비용’으로 탈바꿈시킨다. 고용주는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라는 자유주의경제의 상징적 구호로 치장한 ‘승자독식’의 칸막이 뒤로 조용히 몸을 숨긴다. 이 구호는 대부분 대물림돼 집단의 수호대상이 된 사회적 지위를 합리화하는 도구로 쓰이기도 한다. 이들이 무기로서 애용하는 단어는 ‘경쟁력’, ‘공공적자’, ‘사회보장제도의 허점’, ‘실업’ 등이다.

이 개념들은 최상위 부유층이 전 지구적 차원에서 벌이는 계급전쟁의 일환으로 각종 정보채널을 통해 광범위하게 전파되면서 오늘날 뭇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수용되고 있다. 2005년에 미국의 억만장자 워런 버핏은 “물론 계급전쟁은 실재합니다”라고 시인하면서 “그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쥐고 있는 쪽은 바로 우리 진영입니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8. 협동조합 – 이상향의 미래

반드시 경영자가 있어야만 기업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가? 19세기부터 협동조합 운동은 이와 같은 문제를 제기했고 그 답을 찾으려 애썼다. 노동조합은 감독관의 감시에서 벗어나고 노동의 결실을 노동자에게 되돌려주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시다. 그러나 이렇게 이상을 추구한 끝에, 과연 무엇을 얻어냈을까?

1910년 장 조레스는 “협동조합은 자본주의의 산물인 이윤을 제거하고, 구매와 판매가 동시에 이뤄지도록 하며,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경영진을 대체해 협동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운영되는 사회주의의 생생한 교훈이다”라고 칭송해 마지않았다. 20세기 초, 샤를르 지드와 마르셀 모스와 같은 여러 학자는 노동자계급이 경영 방법을 익혀 중개상을 거치지 않고 필요한 재화를 직접 거래해 취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봤다. 

그 당시, 일부 노동운동가들은 ‘협동조합에 기반한 공화국’을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들은 생산수단과 노동의 결실이 자본가의 소유가 아닌 노동자의 재량에 맡겨지는 새로운 경제체제가 도래해 임금노동 제도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 믿었다. 기독교사회주의자 필립 부셰를 중심으로 제시된 구상은 이윤 일부를 ‘침해할 수도 분리할 수도 없는’ 노동조합의 기금에 불입해 그 소유권을 조합원들이 갖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했다. 

1830년~185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 장치는 자본의 사유화에 대항하는 무기로 여겨졌다. 도시를 중심으로 생겨난 몇몇 상호부조뿐 아니라, 심지어 노동조합 반대 운동단체까지 가세해 노동자들의 파업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나섰다. 협동조합은 19세기 후반부터 특히 영국 로치데일조합(1844년)에 힘입어 점차 소비로까지 영역을 넓혀갔다. 노동자들은 재화를 일괄 공동구매하는 방식으로 높은 물가에 맞섰다. ‘조합원 1인 1표’라는 민주적 의사결정 원칙에 입각한 노동협동조합은 투자자본에 비례해 권한을 분배하는 전통적인 기업의 운영방식에 반기를 들었다. 경제영역에서 성공을 이룬 노동협동조합의 형태는 비록 영리추구를 제한한다는 한계를 지니지만, 오늘날까지도 다양한 협동조합 운동가들에게 힘을 불어넣고 있다.

 

무색해지는 사회연대경제의 본질

프랑스는 1867년 제정된 상사회사법을 통해 최초로 협동조합을 인정했고, 그로부터 몇 년 후인 1884년에는 노조활동을 비롯한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왈덱-루소법이 공포됐다. 반면, 자율적이고 합법적인 상호부조(구성원이 질병, 실업, 또는 산업재해의 위험에 처했을 때 서로 돕는 활동)는 1898년에 관련 헌장이 발표된 후에야 가능해졌다.

그러나 법적장치의 도입은 양면성을 지닌다. 조합원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는 면에서는 발전임이 분명하지만, 활동을 일반화하는 측면이 있다. 조합원들을 위한 활동에 전념하다 보면 당초에 구성원들이 결집하게 했던 ‘노동해방’이라는 취지가 다소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회연대경제’ 모델의 범주는 협동조합, 상호부조와 협회를 망라하며, 최근에는 민간재단들도 합류하는 추세다. 사회연대경제가 창출한 일자리는 프랑스 전체 고용의 10.3%를 차지하며, 기존의 기업이나 공공 부문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하거나 고려하지 않은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혁신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 그러나 사회연대경제의 발달은 동시에 복지국가의 약화를 가져왔다. 정부는 일부 사회정책을 비영리협회에 위탁함으로써 예산 절감을 꾀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사회연대적 경제활동 단체와 자본주의 단체 간의 차이가 허물어져 구분이 어려워졌다. 일례로 크레디아그리콜(Crédit agricole·농업협동조합) 금융그룹의 경우, 제3공화국 당시 농민을 지원하는 상호신용 협동조합으로 출발했으나, 2001년에는 지역은행의 자회사 형태로 크레디아그리콜 주식회사를 출범시켜 파리증시에 상장하는 등 변화를 거듭해왔다.

사회연대경제를 주도하는 이들은 정치적 변혁을 추구했던 초기 협동조합주의 활동을 계승하고자 노력한다. 초기 노동자협동조합이 사적 소유권의 개념을 재정립하고자 했다면, 현대의 사회연대경제 모델은 정치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시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 예로 무역이나 공정무역 운동가들은 책임 있는 소비라는 개념을 전파함으로써 세상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글·<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부

번역‧이푸로라 poorora@daum.net
연세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KDI 국제정책대학원 석사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