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20%의 소외감
‘티파티’의 시대착오적 반공

[Horizon]

2010-11-05     월터 벤 마이클스

미국의 가장 위험한 적은 누구일까? 이 문제를 놓고 지난해 미국 우파를 대표하는 두 스타 사이에 격렬한 설전이 벌어졌다.

<폭스 뉴스> 인기 프로그램 진행자인 오레일리는 “알 카에다”라는 아주 빤한 답변을 내놓는 데 그쳤다. 부시 행정부 시절, 문명의 충돌은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세계관을 대변했다. 불법 이민 같은 문제를 논할 때도 주된 쟁점은 사카고 호텔의 주차요원이나 아이오와주 육류 포장 공장의 직원에까지 빈 라덴의 마수가 뻗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였다.

하지만 <폭스 뉴스>의 라이벌이자 동료인 글렌 벡(1)은 엉뚱한 의견을 내놓는다. 그는 “미국을 무너뜨리려는 것은 지하디스트(이슬람 극단주의자)가 아니라 공산주의자”라고 답했다. 벡이나 그와 교분이 두터운 티파티(Tea Party) 소속의 우파 운동가들에게 테러는 사회주의만큼 우려스러운 위협이 아니었다.

9·11을 넘어서 냉전시대로

이른바 ‘적색공포론’은 9·11 테러 이후보다는 냉전시기에 더 적합하게 느껴진다. 베이비붐 세대 기자가 이제 와서 새삼스레 반공주의 공포를 퍼뜨리는 것도 어딘지 생뚱맞다. 소련 진영은 몰락했다. 그런데도 티파티 조직원들은 줄기차게 민주당 내부에 ‘잠입’해 있는 공산주의 첩자를 색출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아마존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가장 잘 팔리는 정치 에세이도 다름 아닌 오스트리아 극보수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저술한 <노예의 길>이다. 또 유명한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인 러시 림보는 “푸틴을 위해 일하는 공산주의 첩자를 조심해야 한다”며 경고의 목소리를 높인다.(2)

공산주의 회귀는 이민자 탓?

대체 웬 공산주의 타령일까? 그것도 지금? 지하디스트에게 희생된 수천 명의 미국인에게서 비롯된 이슬람 공포증과는 달리, 근자의 반공주의는 어떤 실체적 요소에도 근거하지 않는다.

세계무역센터 건물과 충돌한 항공기에 탑승한 것은 볼셰비키주의자가 아니었다. 더구나 미국 땅에는 단 한 명의 공산주의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러시아에조차 공산주의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오바마가 푸틴과 일치하는 면이 있다면, 기껏해야 “자유로운 모험 정신”에 대한 푸틴의 호소(그것도 다보스 포럼에서!)에 깊은 공감을 나타내며 환호한 게 전부였다. 하지만 유대인이 빠진 반유대주의처럼, 공산주의자가 없는 반공주의는 오늘날 우파, 더 구체적으로는 ‘반신자유주의 우파’라고 부르는 보수주의자 사이에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정치판에 몸을 담그기 전에 벡이 유명세를 탄 것은 그의 예리한 마케팅 감각 덕분이었다.(3) 하지만 그를 비방하는 사람들은 그가 견지하는 보수적 견해에는 이상하게도 알맹이가 없다고 비난한다. 깊은 신념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닌, 단순히 이재가 밝은 데서 비롯된 주장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난 30년이란 세월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이 있다면, 마케팅도 그 자체로 하나의 정치라는 사실이다.

벡은 철저한 신자유주의의 ‘자식’이다. 신자유주의는 공산주의 붕괴로 완숙기를 맞았고, 오늘날에는 대규모 경기침체로 과거의 악몽을 되살리며 번영기를 누리고 있다. 벡에게나 그를 지지하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나, 오늘날 우리가 겪는 문제의 원인은 자본주의의 승리가 아닌, 공산주의의 회귀에 있다. 그리고 이렇게 공산주의가 회귀하도록 부추긴 것은 다름 아닌 “이민자와 사회주의자”(다시 말해 항공기에 탑승한 사우디아라비아인이 아니라, 미국 땅으로 걸어 들어오는 멕시코인)다.

그러나 구호 속엔 ‘반신자유주의’

‘오바마 케어’(미 대통령이 힘겹게 성사시킨 의료개혁)와 의료의 ‘사회화’에는 격렬히 반대하면서도 노령자 의료보장 시스템인 ‘메디케어’는 존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티파티 운동은 이런 논리와 맥을 같이한다. 인글리스 공화당 상원의원은 “나는 그들에게 의료보장을 제공하는 것이 국가라는 사실을 친절하게 설명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도무지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티파티 지지자들은 메디 케어와 사회보장연금(Social Security·공공연금시스템)이 붕괴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런데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 제도들을 파탄으로 내몬 것이 암암리에 확산되는 민영화나 재원 부족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들이 원하는 것은 신자유주의(메디 케어를 포기하지 않는 것)와 사회주의로부터 보호받는 것(오바마 케어를 철폐하는 것)이다.

물론, 오바마 정부가 실시 중인 의료보장 시스템에는 티끌만큼의 공산주의도 내포돼 있지 않다. 하물며 이민법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티파티 운동가들과는 달리, 시카고학파 경제학자들은 ‘개방된 국경이란 곧 자유무역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또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에 상응하는 것은 이민 자체가 아닌 ‘이민 통제’라고 여긴다. 그뿐 아니라 철저히 경제적인 시각에서만 살펴볼 때, 불법 이민은 “합법적 이민에 비해 시장의 힘에 더 잘 부응”하고 있으며, “미국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불법 노동자와 값싸고 유연한 인력을 원하는 고용주 양자에게 모두 이익을 가져다준다”. 그러므로 불법 이민에는 그다지 공산주의를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신자유주의자들은 강조한다.(5)

이런 의미에서 벡이 “이민은 예스, 불법 이민은 노”라는 티파티의 구호를 부르짖었을 때, 그가 반대한 것은 공산주의라기보다는 오히려 신자유주의라고 볼 수 있다. 결국 티파티가 자본주의에 가장 위협이 된다고 여기는 것은 자본주의 자체인 것이다.

부유층의 시위 “엘리트 반대”

미국이 불법 이민을 관리하는 방식, 즉 국경수비대처럼 말하고, 행동은 고용사무소 직원처럼 하는 것은 막대한 부가 가장 부유한 소수자에게 집중된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국경 폐쇄가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을 막고 있다면, 새롭게 등장한 자본과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은 그와 반대되는 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여기저기 유랑하는 임금노동자, 자유로이 표류하는 자본, 그리고 이런 경향을 부추기는 규제 완화는 데이비드 하비의 표현대로 “사회 불평등 증가를 계획의 요체로 삼는 신자유주의의 특성”이기도 하다. 그러니 국가의 부를 함께 누릴 수 없는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미국 내에서 볼멘소리가 터져나오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레이건 정부 출범 초기, 미국 전체 인구의 80%에 해당하는 빈곤층과 중산층의 소득은 전체 국가 소득의 48%를 차지한 반면, 오늘날 이 수치는 39%로 하락했다.

그렇더라도 글렌 벡과 티파티의 분노에는 좀 의아한 면이 있다. 그들은 대개 가장 부유한 미국인 20%에 속한다. 사실 신자유주의는 그들에게 그리 손해나는 장사가 아니었다.(7) 불법 이민은 그들에게 번영을 가져다준 원동력 중 하나다. 빈곤층끼리 대립하는 것은 종종 봤어도, 부유층이 자신에게 번영을 가져다준 정책에 반기를 들고- 그것도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는 광경은 본 적이 없다.

이런 현상은 외견상으로만 엉뚱한 것일 뿐이다. 지난 30년간 가장 부유한 20% 인구의 소득이 전체 국가의 부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꾸준히 증가해왔다. 그러나 나쁜 소식은 이런 혜택이 최상위층 극소수에게만 한정됐다는 점이다. 1982년 가장 부유한 미국인 1%가 전체 국가 부의 12.8%를 차지했다면, 2006년에는 거의 두 배에 달하는 21.3%를 독식하고 있다. 상위 20%에게 할당된 파이 조각은 고작 39.1%에서 40.1%로 늘었을 뿐이다. 티파티 지지자들은 막연하게나마 현재 생활방식의 근간이던 구조적 불평등이 이제는 자신들의 이익 범위를 벗어나고 있음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승자를 생산한 자본주의가 이제는 그 승자를 위협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그동안 미국 정치판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당혹스러운 반엘리트주의의 시뮬라크르를 생산해냈다. 일반적으로 공화당의 백만장자들은 민주당의 백만장자보다 더 대중친화적으로 보이기 위해 카우보이 부츠를 신거나, 낙태를 격렬히 비난하거나, 주야장천 예수를 들먹여왔다.(8)

하지만 최근 뉴욕이나 델라웨어, 알래스카 등에서 열린 예비경선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이제는 예수만으로는 부족하다. 티파티 소속의 후보자인 크리스틴 오도넬이 델라웨어주에서 공화당의 상대 후보를 압도할 수 있었던 것은 무조건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내세운 때문은 아니었다(그녀는 성 절제를 장려하고 자위 행위를 금하는 복음주의 이단 종교단체인 SALT의 회장이다). 그녀를 승리로 이끈 것은 ‘지도층’을 격렬히 반대한 덕분이었다. 그녀는 한 집회에서 “엘리트는 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우리를 미치광이로 여긴다. 하지만 우리, 우리는 대중이다!”라고 외치며 청중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미국인구조사국(US Census Bureau)은 최근 미국인 440만 명이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사는 반면, 전체 인구의 1%가 국가가 생산한 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가난한 자에게는 빈곤의 책임을 묻지 않으면서 부유층의 특권에는 반기를 들 수 있는 정당, 그런 정당이야말로 미국 정치사에 새로운 페이지를 열게 될 것이다.

글•월터 벤 마이클스 Walter Benn Michaels
시카고 일리노이대학 문학 교수. 주요 저서로 <평등에 반한 다양성>(레종 아지르 출판사· 파리·2009)이 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각주>
(1) 베테랑 진행자 오레일리의 시청자는 300만 명에 달한다. 신참 글렌 벡의 경우는 200만 명이다.
(2) ‘Limbaugh : “Russian communist” spies easily blend in with journalists, academies - “a communist is a communist”’, MMTV, 워싱턴, 2010년 7월 8일, http://mediamatters.org
(3) 글렌 벡은 잡지 발행과 자신의 이미지를 내건 상품 판매 및 서적 추천 일을 하고 있다. 자신의 사상을 전파할 ‘대학’을 설립했으며, 유료공공회의(지난 7월 티켓값이 147달러에 달했다)에도 참여한다. 전체 소득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폭스 뉴스>에서 받는 연봉은 250만 달러에 달한다. (출처 : 2010년 9월 29일 <뉴욕타임스 매거진>)
(4) 필립 리커, ‘S.C. Senator is a voice of reform opposition’, <워싱턴 포스트>, 2009년 7월 28일.
(5) 리처드 하스 외교협회회장, 고든 핸슨이 저술한 <The Economic Logic of Illegal Immigration>의 서문, 외교협회출판부, 뉴욕, 2007년.
(6) 데이비드 하비, <A Brief History of Neoliberalism>, 옥스퍼드대학출판부, 뉴욕, 2007년.
(7) 티파티 회원 중 평균 소득 5만 달러 이하의 연봉을 받는 이는 35%에 불과하다. 20%는 연간 10만 달러 이상을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8) 톰 프랭크, ’조지 부시에게 투표한 미국인‘, 세르주 알리미 ‘조지 부시의 서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4년 2월,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