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패닉도 싫고, 연방정부도 싫고
텍사스 티파티의 뜻모를 방언

[Horizon]

2010-11-05     로버트 자레츠키

텍사스에 거대한 이민자 물결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다. 엄청난 수의 유럽 이민자가 갤버스턴 항구에 상륙했다. 그러나 오늘날 텍사스로 유입되는 이민자 대부분은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출신이다. 이들은 대부분 불법적인 루트를 통해 국경을 넘는다. 남미 출신 이민자가 급격히 늘면서 인종적·문화적·언어적 충격이 텍사스의 정치적 풍경을 뒤흔들고 있다.

휴스턴은 텍사스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스티븐 클린버그의 조사 결과를 보면, 1980년 휴스턴 전체 인구의 15%를 차지하던 히스패닉계는 현재 40%까지 증가했다. 또한 앵글로색슨계 인구가 점점 고령화하는 데 반해, 히스패닉계 평균연령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히스패닉계가 휴스턴 거주 18~29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다. 곧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이 설치된다고 해도- 우파의 요청에 의한 것이다- 2040년께 히스패닉계 인구가 앵글로색슨계와 흑인 인구를 추월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텍사스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학생 수가 많은 주다. 그러나 교사 봉급 수준은 49위, 학생당 교육비 지출은 44위에 머물고 있다. 그럼에도 텍사스의 공화당원들과 ‘티파티’ 운동원들에겐 공공교육 시스템을 개선하자는 주장은 골칫거리일 뿐이다. 불법 이민자들의 체류 자격을 합법화하는 문제는 더 말할 나위 없다.

텍사스주 하원의원 데비 니들이 인기를 얻게 된 것도 교육과 이민 문제 덕분이다. 몇 년 전 그녀는 ‘미국의 공립학교가 모든 어린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런 이념은 모스크바에서 온 것이다. 한마디로 지옥불에서 탄생한 이념이다. 사람들을 호도하기 위해 관대함으로 포장된 이념일 뿐이다. 관대함은커녕 나라 전체를 망쳐놓을 게 분명하다.”(1)

휴스턴 인구 40%는 히스패닉계

데비 니들 의원은 올해 초, “반바지를 입은 꼬마 테러리스트들”이라는 말로 또 한 차례 논란을 일으켰다. 테러리스트들이 임신한 여성을 비밀리에 미국 영토로 들여보내 아이를 출산시킨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 ‘비밀요원’들이 어른이 되면 미국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테러 행위를 자행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텍사스주 하원의원 루이 고머트도 위험을 경고했다. “멕시코 국경 지대에 암약하는 테러리스트 그룹이 임신한 여성을 미국에 보내 무료로 아이를 출산시킨다. 미국 국적을 얻은 아이는 다시 남미로 돌아가 테러 기술을 배운다. 그 뒤 20~30년이 지나 미국으로 다시 돌아와 미국식 삶을 파괴하는 테러 행위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2) 고머트 의원이 의사당에 모인 의원들 앞에서 한 말이다.

텍사스 주지사 후보 선출을 위한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티파티 그룹이 추대한 데비 메디나 후보의 발언 역시 앞의 두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녀의 정치 경험은 공화당의 워튼 지역구(인구 4만 명) 책임자를 맡은 것이 전부다. 그러나 정치적 경험이 부족한 게 그녀에게는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했다. 그녀의 정치적 신념은 한마디로 ‘극단적 자유주의’(Ultra Liberalism)에 가깝다. 그녀가 존경하는 인물은 텍사스주에 출마해 하원의원에 당선되고, 2008년에는- 가능성이 적음에도- 용기 있게 공화당 대통령 후보에 도전한 적이 있는 론 폴이다. 또한 메디나는 자신의 복음주의 기독교 신앙을 숨기지 않는다. 자유주의와 기독교의 결합이 만들어낸 폭발력이 그녀를 단숨에 유명 정치인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임신부 밀입국해 테러리스트 출산”

그녀의 이념이 항상 일관적인 것은 아니다. 가령, 그녀는 국가가 총기류 판매를 통제하거나 부동산 소유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에 반대한다. 반면에 동성애자 결혼과 입양에 관련해서는 공공권력이 그것을 금지할 자격이 있는지 반문한다. 그러나 이런 모순 때문에 티파티 운동 내부에서 그녀의 인기가 떨어지는 일은 없다. <텍사스 옵서버> 기자 봅 모저는 “데비 메디나가 굳이 평당원에게 손 내밀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녀는 이미 평당원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의정활동을 해본 적이 없으므로 미묘한 사안에 누군가의 편을 들거나 논쟁이 되는 입법에 참여함으로써 욕 먹은 일도 없다.”(3)

한편 데비 메디나는 <폭스뉴스>의 진행자 글렌 벡과의 인터뷰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월터 벤 마이클의 기사 참조). 이미 언론은 “데비 메디나가 ‘9·11의 진실’의 주장에 동조한다”고 주장했다. ‘9·11의 진실’은 펜타곤과 세계무역센터에 가한 테러 공격이 모두 미국 정부의 음모였다고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글렌 벡이 데비 메디나에게 이에 대해 질문하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모든 증거를 검토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저는 9·11 테러에 대한 공식적인 설명을 공개적으로 부정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공식 버전에 대해 매우 설득력 있는 의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국민이 접할 수 있는 자료가 너무 제한적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자료를 검토할 수 없다면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기가 힘들어집니다. 따라서 저 또한 판단을 유보하겠습니다.”(4) 그녀의 대답이 서투르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종류의 주장 속에 티파티 운동을 떠받치는 이데올로기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미국이 겪는 모든 문제의 원흉이 연방정부라는 식의 사고방식이 내재되어 있다.

“주장은 우리가, 입증은 그들이 해야”

티파티 운동 내부에서 개인적 믿음과 사실을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데비 메디나만이 아니다. <CNN>의 한 기자가 루이스 고머트 하원의원에게 “이민자들에 대한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제시해달라”고 하자, 얼굴이 창백해진 고머트 의원은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왜 장본인들은 놔두고 나한테 그걸 묻는 거죠? 그렇게 할 일이 없으세요? 기자의 본분을 망각하고 있군요.”(5) 이 방송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때 연방수사국(FBI) 국제사건 책임자였던 톰 푸엔테스는 “테러리스트로 키우기 위해 미국에서 아이를 출산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어떤 징후나 증거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을 노리는 적이 국내외 곳곳에 암약한다는 상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이런 설명이 먹힐 리 없다.

오늘날에도 곧잘 인용되는 <미국의 편집증적 정치 스타일>(1964)을 쓴 리처드 호프스태터가 지금 텍사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크게 놀라지 않을 것이다. 데비 메디나와 루이스 고머트 의원은 머리가 돈 사람이 아니다. 이들은 ‘정상’이다. 호프스태터 책을 인용한다면, “지나친 과장과 진실로 간주된 의혹, 음모 이론 등이 뒤섞인 편집증적인 표현 방법을 사용할 뿐이다. 오직 권력의 효과만 주목한다. 더욱이 왜곡된 과정을 통해서 말이다.”

메디나, 리들, 고머트 그리고 그들의 지지자들을 둘러싸고 언론이 야단법석을 떠는 바람에 현 텍사스 주지사 릭 페리- 조지 W. 부시의 뒤를 이어 텍사스 주지사가 된 인물로 현재 3선을 노리고 있다- 가 오히려 절제된 인물인 것처럼 인식된다. 예전 같으면 생각도 못할 일이다. 지난 2월 메디나가 9·11 테러에 의혹을 제기하는 동안 페리 주지사는 텍사스의 주도 오스틴에서 조깅하고 있었다. 그는 조깅 코스를 지나가던 코요테 한 마리를 총으로 사살했다. 페리 주지사는 조깅하러 나갈 때 반드시 레이저 조준기가 달린 권총을 지닌다. 만약에 대비하기 위해서란다.(6)

페리 주지사는 애리조나주에서 입법 추진하는 인종차별주의적 성격의 반이민법을 비판하고 나섰다. 잰 브루어 애리조나 주지사는 멕시칸 갱들이 사람들을 사막으로 끌고 가서 참수형에 처한다고 주장하는 등- 근거 제시도 없이- 무리한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페리 주지사는 그런 브루어 주지사의 행보에 거리를 두려고 애써왔다. 페리 주지사는 이들처럼 굳이 멀리까지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제자리에 가만히 있어도 갈수록 그 수위를 더해가는 극우파들의 발언이 그를 온건우파로 보이게끔 해주기 때문이다. 그는 텍사스에서 히스패닉계 유권자들에게 외면당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안다. 심지어 조지 W. 부시도 텍사스 주지사 시절에는 그들에게 협조를 구했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릭 페리는 틈만 나면 현 정부를 거침없이 비난한다. 그는 이민 문제와 관련해 연방정부가 불법 체류자들의 상황에 관심을 갖기 전에 국경 ‘보안’을 확실히 해두길 원한다. 그에게 국경 문제는 이민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무기한 유보할 수 있는 방책이다. 민주당원의 지지를 받는 건강보험 개혁에 대해 그는 “텍사스 주민은 2500km 떨어진 곳에 사는 연방관료들이 텍사스주의 의료시스템을 제 멋대로 뜯어고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7)고 말한다. 여기서도 역시 릭 페리는 텍사스 주민, 그중에서 특히 티파티 운동원의 편견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이를테면 그는 연방정부를 외국의 전제군주로 간주한다. 보험회사로 하여금 수입이나 건강상태에 관계없이 모든 시민에게 보험 혜택을 주도록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전제군주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텍사스는 텍사스가 결정한다”

교육시스템 개혁과 관련해서(8), 페리 주지사는 국가가 제안한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교육부 장관의 심사를 통과한 각 주의 교육 프로젝트에 연방정부가 상당한 보조금을 지불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텍사스주는 7억 달러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페리 주지사는 “텍사스주 아이들을 어떤 방식으로 교육할지 결정하는 건 오직 텍사스 주민뿐”이라고 말하며 보조금을 거절했다.

2006년 가수이자 유명한 유머작가인 킨키 프리드먼은 텍사스 주지사 민주당 후보 선출을 위한 예비선거에 출마했다. 그는 “나라고 못할 건 없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라는 인상적인 슬로건을 들고 나와 16%의 지지를 얻었다. 그는 11월로 예정된 중간선거에서 자신만큼 특이한 후보(‘우드로’라는 이름의 개-역자)에게 투표할 예정이다. 이유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진심으로 존경하는 정치인은 몇 명입니까? 저도 한 번 세어봤습니다. 한 명도 없더군요.”(9)

글•로버트 자레츠키 Robert Zaretsky
텍사스 휴스턴대학 아너스 칼리지 역사학 교수. 저서로 <알베르 카뮈: 삶의 요소들>(Cornell University Press·2010)이 있다.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파리8대학 철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요 역서로 <프란츠의 레퀴엠> 등이 있다.

<각주>
(1) <El Paso Times>, 엘 파소, 2003년 3월 3일자.
(2) <The Texas Tribune>, 오스틴, 2010년 6월 28일자.
(3) <The Texas Observer>, 오스틴, 2010년 2월 8일자.
(4)<The Houston Chronicle>, 휴스턴, 2010년 2월 11일자.
(5)<The Huffington Post>, 2010년 8월 13일자. 고메트와 리들의 황당한 인터뷰는 인터넷 조회 수가 수백만 건이었다.
(6) <Seattle Times>, 2010년 4월 27일자.
(7) <The Texas Observer>, 2010년 4월 19일자.
(8)다이앤 래비치, ‘선택의 자유, 특권 교육의 다른 이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10월호 참조.
(9) <The Texas Observer>, 2010년 4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