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강국, 인도의 야심과 고민…

미국·중국 등과 새로운 관계, 위상 걸맞는 경제·외교 전략 모색

2008-12-01     싯다르트 바라다라잔 | 언론인

2008년 9월 6일에 핵공급 그룹은 입장을 바꾸어 인도를 회원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핵공급 그룹은 핵무기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는 물질, 장비, 기술 등의 수출 및 이전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설립된 국가간 협의체이며, 45개국이 가입돼 있다. 아직 인도는 비핵 확산 금지 조약에 서명하지 않았고, 국제 핵사찰을 거부하고 있긴 하지만 핵공급 그룹에 가입하게 된 것이다. 이는 구소련 해체와 중국의 부상 이후 국제 질서에 불어 닥친 지각변동이라 할 만큼 큰 변화다. 경제적 변천을 시도한 인도가 이번에는 국제 외교적 변화를 기하고 있다는 증거다. 물론 미국의 입김이 있었기에 핵공급 그룹도 이러한 결정을 했을 것이다. 인도를 핵공급 그룹의 일원으로 받아 들여 향후 전략적인 동맹을 구축하고 중동에서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아시아 지역, 그리고 태평양 지역에서 헤게모니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계산이 숨어 있다.

 인도의 부상과 미국에 대한 '불신'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부 장관도 "미국은 아시아에서 꾸준히 영향력을 발휘하는 태평양 국가"라고 한 바 있다. 그는 또 아시아 안보 구도에서 향후 미국이 제외되는 건 원치않는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인도는 핵공급 그룹이 자국을 기존의 회원국들과 동등하게 대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막연히 짐작하면서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미국이 아시아를 안정적으로 지켜주는 한, 상관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이 과연 아시아를 안정적으로 지켜주고 있는 것인가.
 실제론 어디서든 부시 행정부가 개입하기만 하면 어김없이 일이 터졌다. 재앙에 갈음할 만한 전쟁(이라크)이 일어나거나, 또 다른 분쟁의 그림자(이란)가 어른거렸으며, 새로운 핵강국(북한)이 등장하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의 경우만 해도 미국이 과연 올바른 정책을 펴고 있는지 의심을 살 만했다. 인도는 반 탈레반 정부를 지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파키스탄군과 새로운 탈레반 정권이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도,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무엇이든 군사력에만 의존하는 미국에 대해 인도의 믿음은 점차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역학관계, 지정학 등 '5대 외교전략'
 분명 미국과 중국은 인도의 향후 전략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인도는 완전한 친미 혹은 친중국으로 기울어져 있지는 않다. 국제 무대에서 중요한 존재로 부상하고 있는 인도의 외교정책은 다섯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인도는 바로 근처에 있는 서남 아시아와의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서남 아시아 이웃 국가들과 물리적, 경제적으로 더욱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비록 카슈미르 분쟁으로 협력의 폭이 다소 좁아지기는 해도, 인도는 서남 아시아 이웃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다행히 파키스탄을 포함한 인접 국가들과 인도의 관계는 날로 좋아지고 있다.
 그러나 서남 아시아는 인도가 경제적으로 성장하기에는 그리 좋은 텃밭이 아니다. 인도는 점차 서남 아시아로 수출을 늘려가고 있긴 하지만, 그 비중은 인도 전체 수출량의 5.5%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인도가 동북아시아에 수출하는 비중이 15%,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수출 비중이 21%에 달한다.
 둘째, 인도는 세계 강국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미국 및 중국과의 긴밀한 관계에 만족하지 않고, 유럽연합, 특히 프랑스, 영국과도 친하고 러시아 및 일본과도 친해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한 인도는 브라질, 남아프리카 등 신흥국가들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브라질과 남아프리카는 '인도ㆍ브라질ㆍ남아공(IBAS) 정상 포럼'의 일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인도는 RCI(러시아-인도-중국)의 트로이카에 속하기도 한다. RCI에서는 해당 국가 외무부 장관들이 매년 모임을 갖고 정치 및 경제 문제를 논한다.
 2008년 5월, RCI의 3개국 외무부 장관들은 제1차 브릭스(BRIC.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정상회담에서 브라질 외무부 장관을 만났다. 이는 세계 경제 강국들이 마련한 '쇼'에서 신흥 국가들이 들러리로 전락할까 우려하던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외무부 장관이 2007년 G8 정상회담에서 러시아, 인도, 중국에 제안해 이루어진 모임이었다.
 셋째, 인도는 최근 벌어진 여러 국경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무역, 테러리즘, 기후변화, 에너지, 식량안보 부문에서 다각적인 동맹을 구축해야 한다.

 

 대외진출 자본·아시아 중시
 넷째, 인도는 세계 시장에서 자국의 자본을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 인도의 인달 사가 철강 부문에서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볼리비아에서부터, 타타 사를 비롯한 여러 회사들이 진출한 유럽에 이르기까지, 세계 시장에서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는 외국 정부들이 내세우던 이런저런 경제적 요구에 그럭저럭 말려들지 않고 버텼으나 이제는 다르다. 석유, 가스, 강철, 제약, 정보기술, 운송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 진출한 자국의 다국적 기업을 위해 로비를 벌여야 한다.
 다섯째, 인도는 아시아라는 지정학적 지역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네루 수상을 비롯한 인도의 지도자들은 영국에서 인도가 독립한 이후로 아시아 대륙을 특별히 중시해 오고 있다. 1955년에 인도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반둥 회의에 서둘러 참가해 비동맹국 운동에 나섰다. 그러다 보니 인도 외교정책에서 아시아의 비중이 다소 줄어들었다. 심지어 인도의 지도자들도 '아시아' 하면 중국을 떠올리기만 했다.
 그러나 이제 인도는 남아시아가 아시아 지역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아시아에 평화와 안정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인도에게 전략적으로 득이 될 건 없었다. 미국도 남아시아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아시아 에너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싶다는 인도의 제안에 묵묵부답이며 상하이 협력 기구에도 참여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국제적 협력 반경, 어디까지?
 현재 인도에서는 중국 및 미국과의 관계에 대한 토론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의 급성장은 인도에게 커다란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미국과  협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인도는 국제 문제에서 중국과 많은 협력을 하지만, 오히려 미국과는 그보다 못하다. 그래서 균형을 잃지 않으려 복잡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인도의 엘리트층은 서아시아에 미국이 관심을 갖고 개입하는 것에 찬성한다. 그러나 중앙아시아 같은 기타 지역에 대해서는 미국과 협력을 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다. 자칫 러시아나  이란과 같은 중요한 국가들과의 관계를 재고해야 하는 사태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 정부는 인도 정부에게 아시아 문제 전반에 대해 긴밀하게 협력할 것을 설득하고 있다. 인도로선 미국과 협력할 수 있는 지역이 어딘지 선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 셈이다.
 가령 이란의 경우, 인도의 화학비료 및 에너지 분야에서 70억 달러의 가스공급관을 설치,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가 있다. 이에 대해 현재 이란 및 파키스탄과 협상 중이다. 그러나 인도와 미국이 핵협정에 서명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인도의 맘모한 상 수상은 가스 공급관 설치 프로젝트에 공개적으로 나서길 주저하고 있다.
 인도와 미국의 전략적인 협력이 어려운 또 다른 분야는 국방이다. 2005년 6월에 인도가 미국과 체결한 국방 프레임워크 협정은 양국의 군사관계를 발전시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는 군사 장비를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데 필요한 첨단기술을 습득하는 데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반면, 미국은 주요 군사 강국인 러시아를 견제하는 데에만 급급할 뿐 기술 이전엔 소홀하다. 이에 반해 미국은 인도군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인도의 항구를 쉽게 이용하고 싶어 한다. 이에 대해서는 인도도 적극적이다.
 미국의 어느 대학 교수가 최근 "냉전 시기 인도와 구소련의 군사 관계는 지금의 인도와 미국의 군사 관계엔 비교조차 할 수 없다."라고 얘기할 만큼 미국과 인도의 군사협력은 긴밀해졌다. 그럼에도 인도는 미국과의 군사 협력에 대해 조심스런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미국이 요구하는 물류 지원 협정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다.
 
 복잡한 인도·미국·중국 삼각관계
 인도의 중산층과 군부에서는 미국과의 전략적인 협력을 지지하고 있다. 이는 1962년 무력 충돌에서 중국에게 당한 패배 때문이다. 인도는 경제적·군사적으로 강해질수록 중국의 아성에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품고 있다. "지금의 중국은 30년 전의 중국과는 다릅니다. 인도도 달라졌습니다. 그 사실을 간과하는 것 같더군요. 이제 인도는 외교에서 새로운 위치를 점할 수가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어느 인도 정치인의 말이다.
 이는 인도의 공식적인 입장이 점차 변하고 있다는 증거다. 게다가 인도는 아시아가 자국과  중국의 급부상에 적응할 수 있을 만큼 안정적인지 의문을 갖고 있다. 이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결국 인도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에게 손을 내밀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처럼 현재 미국-인도-중국의 관계는 복잡하다. 미국 덕분에 핵기술에 대한 제재가 풀린 인도는, 미국보다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프랑스와 러시아 같은 국가로부터 핵시설을 구입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인도가 '은혜'도 모르고 미국으로부터 수 십억에 이르는 핵시설을 수입하지 않겠다고 나올 것인가? 아니면 아시아 지역의 안정이 위태로워진다 해도 경제, 군사, 정치 부문에서 미국에게 공을 넘겨주며 협력할 것인가? 두고 볼 일이다.
 번역 | 이주영 ombre2@ilemonde.com*


 

* <더 힌두> 논설위원, 인도 뉴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