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병원, 지금은 세일 중!

[Spécial] 나쁜 명령과 질긴 저항

2010-11-05     안 제르베, 앙드레 그리말디

국민운동연합(UMP) 소속 의원이자 파리 코솅 병원 의료 책임자인 베르나르 드브레 교수가 공공의료 시스템의 위기를 경고했다. 지난 10월 3일, 그는 최근의 의료 개혁을 “공공의료원에 대한 사형 판결”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10월 중순 파업에 동참한 병원은 44곳에 달한다.

2009년 6월 25일 ‘병원, 환자, 건강, 의료구역’(HPST) 법안이 프랑스 국회에서 통과된 뒤, 로즐린 바슐로 보건체육부 장관은 앙제 대학병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의료 시스템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2008년 프랑스 병원들은 2만5천 명의 인원을 신규 채용했다”(1)고 말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15개월 뒤인 지난 10월 2일 파리의 트농 병원에서는 간호사 3명이 파업으로 일을 중지한 것만으로 주말 내내 응급실이 문을 닫아야 했다. 그 때문에 인근 생탕투안 병원과 생루이 병원은 이미 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터에 몰려드는 환자들을 감당하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이 법안이 통과됐을 때부터 이미 의료계 종사자들은 “공공의료를 죽이기 위한 충격요법”이라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2)

의료진 자르고 일자리 창출?

이 법으로 탄생한 26개 지역 보건국(ARS)은- 각 보건국 국장은 정부 각료회의에서 임명한다- 설치부터 난항을 겪었다. 각기 다른 조직(국가 의료보험, 병원 경영진, 사회보건 담당)에서 파견된 대표들 간의 문화적 충돌과 우선권 다툼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충돌은 단순한 싸움을 넘어 ‘관료주의적 국가주의’와 ‘공공의료의 시장개방’이라는 바슐로 의료 개혁의 두 가지 근본적인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 심지어 법안 내용 중 혁신적이라고 인정받은 ‘환자의 자기 치료 교육’조차 이 때문에 이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병원 의료진은 지역 보건국에서 필요한 허가를 얻어내기 위해 관료주의적 요구 사항들을 만족시켜야 한다. 가령 환자에게 스스로 치료 과정을 ‘관리’할 수 있도록 교육하려면 우선 환자에게서 ‘사전 동의서’에 서명을 받아야 한다. 의학연구에 참여하는 환자들의 경우와 거의 다를 게 없다! 이런 부조리함을 지적하면 지역 보건국은 “규정이 그렇다”는 대답만 반복한다. 그러나 허가를 얻어낸다고 해서 곧바로 필요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결국 민간 의료기업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정부는 공공의료와 민간 부문의 이런 ‘윈윈 파트너십’을 권장하지만, 공공의료기관이 항상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상업주의와 관료주의의 결합은 병원 경영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선 상업주의의 측면을 살펴보자. 공공의료기관들은 건물 관리, 세탁, 식당, 물품 보급과 관련한 일을 민간 기업에 맡긴다. 사무 인력을 외부 전문 업체에 의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예전에는 무료였던 영양사나 심리상담사와의 상담도 환자가 직접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내년부터는 입원실 독방을 사용하고 싶은 환자는 하루에 55유로(8만여 원)를 내야 한다(격리치료 제외).(3) 의료행위도 갈수록 수익성이 중요한 요소로 고려된다(백내장·흑색증· 손목터널증후군 치료 등). 또한 계약직 직원을 채용해 ‘유연하지 못한’ 노동 법규를 교묘히 피해가고 있다.

이번엔 관료주의의 측면을 살펴보자. 좋은 실적과 수치를 제시해야 하는 압력 속에서 각 병원들은 ‘가상’의 병원과 환자와 의료진이 존재하는 ‘실제’의 병원이 따로 있다. 둘 사이의 격차는 갈수록 커지기만 한다. 2010년 파리 공공원호센터(Assistance Publique) 책임자 브누아 르클레르는 공식적으로 행정직·의료관리직·간호조무사·위생담당 직원 783명을 감축했다. 대신 그는 “간호사 인원은 줄이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공공의료기관은 인력이 부족하다. 지금보다 더 많은 의료담당 비서와 사회복지사, 물리치료사가 필요하며 간호사는 두말할 것도 없이 부족하다. 간호사 부족 실태를 살펴보면, 피티에 살페트리에르 신경학 전문센터는 15명, 신경외과는 13명, 혈관·종양센터는 8명이 더 필요하다. 현재 파업 중인 트농 병원은 58명이 부족하다. 그러나 출산이나 장기 질환으로 결원이 생겨도 인원이 보충되지 않고 있다. 퇴직으로 인한 결원은 보통 6개월, 길게는 1년이 지나야 보충된다. ‘더 많이, 더 빨리’ 일하라는 압력에 시달리는 직원들은 오히려 예전보다 결근이 잦아지고 있다. 대부분 출퇴근 시간에 2시간 정도를 길에서 보내야 할 뿐 아니라, 매일 아이를 출근길에 탁아소에 맡기고 퇴근길에 들러 집에 데리고 가야 한다. 아이가 아프면 출근을 못하고 집에 머물러야 할 때도 있다. 그 결과로 파리 원호의료센터(AP-HP) 산하 공공의료원의 응급 서비스가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의료진 과로, 한계 다다른 서비스

바슐로 보건체육부 장관과 지난 4월 1일 일드프랑스 지역 보건국장에 임명된 클로드 으뱅은 이 문제에 대해 ‘만능’ 해법을 제시한다. 인원 부족을 불평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적절히 인원을 조직할지 고민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제시한 해법이 과연 효과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으뱅 국장은 저녁 6시 30분에서 아침 8시까지 운영하는 일드프랑스 지역 야간 당직 수술실의 8분의 1만 문을 열자고 제안했다. 다시 말해 54개 수술실 중 7개만 문을 열자는 것이다. 한 지역에 하나씩인 셈이다. 현장 의료진과 아무런 상의도 거치지 않고 마련된 이 제안은 거세게 비난받았다. 프랑스 보건 당국은 A형 백신 접종 당시 이미 뛰어난(?) 조직력을 검증받은 바 있다.(4)

보건 당국은 현재 병원들이 토로하는 불만은 순전히 파리 지역에만 국한된 문제며, 그중에서도 지금껏 ‘여유를 누려온’ AP-HP 산하 병원에서 나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비슷한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파리 이외의 지역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관측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0명의 인원 감축을 단행한 낭트대학 의료센터에서는 지난 7월 3주간 11개 수술실이 문을 닫았다. 파리 지역 병원이 특혜를 누려왔다는 주장이 신빙성이 있는지 확인하려면 몇 가지 통계 수치를 비교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2009년 파리의 AP-HP는 병상 2만3천 개에 예산 65억 유로를 지원받았다. 리옹의 경우 5400개 병상에 14억 유로, 마르세유는 2300개 병상에 11억 유로, 툴루즈는 2800개 병상에 8억5천만 유로를 지원받았다.

민영화 위해 의도적 적자 유도

현 정부의 의료 개혁은 점차 공공의료기관을 재정 적자 상태로 몰고 가 인원 감축을 유도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의료행위의 일부를 민간의료기관으로 이전시키는 것이다. 공공의료보험 당국의 처지에서는 그러는 편이 비용이 더 적게 든다. 반면 환자 부담은 그만큼 커진다. 공공의료기관에 지원되는 예산은 2011년까지 2.7%가량 증액될 예정이다. 그러나 병원 쪽이 부담해야 할 비용(의료비, 관리비, 치료비, 의학표준 실현, 정부 보건계획 추진)은 오히려 3.5% 증가할 예정이다.(5)

현재 추진 중인 의료 서비스 가격 일원화- 공공의료원과 사립병원을 막론하고 병원의 규모나 위상, 진찰 종목, 시설의 낙후성 등에 관계없이 일률적인 가격 부과- 로 공공의료원, 그중에서도 규모가 크고 낙후된 병원일수록 피해를 많이 입을 것이다. 예컨대 이미 적자가 9600만 유로에 달하는 파리 공공원호센터(AP)는 내년부터 더 큰 적자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이처럼 불공평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공공의료원 경영은 점점 사립병원의 방식을 닮아간다. 이제 공공의료원 의사들은 3년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하며, 실적에 따라 급여를 지급받는다.(6) 한마디로 해고가 더 용이해진 것이다. 민간 부문에서 공공의료 지식이 전무한 사람들을 불러다 병원장에 앉혀놓는 일도 허다하다. 가령 AP-HP의 책임자로 임명된 미레유 포제르는 지금까지 죽 국영철도회사(SNCF)에서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이들에게 할당된 임무는 오직 한 가지, 즉 병원의 수익성을 높이는 것에만 집중된다. 이들이 받는 보수도 그 결과에 달려 있다.

독일 역시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자유주의적 개혁을 단행했다. 그 결과 공공의료가 차지하는 비율이 46%에서 32%로 줄고, 영리의료법인 비율이 15%에서 30%로 증가했다. 심지어 함부르크와 지센-마르부르크 대학병원은 사기업에 매각됐다. 환자 의료비 부담률도 11%에서 13%로 늘어난 반면, 공공의료비 지원금은 2000년 79%에서 2007년 77%로 감소했다.

치솟는 환자 부담금, 누굴 위한 개혁?

프랑스의 의료 개혁도 같은 방향이다. 수익성 제고를 위해 공공의료원은 인원을 감축하고 의료행위의 일부분을 사립병원으로 이전시키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공공의료기관 내에 사설 진료실이 들어설 날도 머지않았다. 프랑스 사립병원연합 회장 장루 뒤루세는 실제로 산부인과에 사설 진료실 도입을 원하고 있다. 파리 생조제프 병원에서는 정형외과에 사설 진료를 곧 도입할 예정이다. 이런 ‘민관 파트너십’ 덕분에 역할 분담은 더 용이해졌다. 다시 말해 수익성 있는 의료행위는 민간이 담당하고 나머지는 공공의료기관이 담당하는 식이다. 보건 당국 입장에서 보면 이 덕분에 공공의료보험 예산 관리가 훨씬 용이해진다.

이미 질병보험 적용이 되지 않은 의료비 지출이 2002년 전체 5%에서 2008년 29%로 크게 늘었다. 또한 경제적 형편이 안 돼 치료를 단념한 경우가 23%에 이른다. 보충보험(공공의료보험과 별도로 추가로 가입하는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환자는 그 비율이 33%에 이른다. 보충보험 역시 조합보험과 사설보험을 막론하고 2001∼2008년 보험료가 44% 증가했다. 반면 환자에게 지급된 보험비는 27%밖에 오르지 않았다.(7) 그러나 장프랑수아 코페 국민운동연합(UMP) 원내총무는 더 멀리 가자고 주장한다. 그는 공공의료보험의 독점을 철폐하자고 제안한다.(8)

글•안 제르베 Anne Gervais 파리 비샤 병원 간장학 전문의
앙드레 그리말디 Andre Grimaldi  파리 피티에 살페트리에르 병원 당뇨병학 교수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각주>
(1) “로즐린 바슐로 장관, 병원이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고 주장”, <Ouest France>, 낭트, 2009년 6월 26일자.
(2) Andre Grimaldi, Thomas Papo, Jean-Paul Vernant,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충격 처방’,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8년 2월호.
(3) 이런 새로운 조치들은 파리 비샤 병원과 루앙 등 지방 병원 몇 군데에서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4) ‘H1N1 백신: 비판받는 보건부’, <Le Figaro>, 2010년 10월 15일자.
(5) <2010년 예산 인상률 추정 자료>, 프랑스병원연맹(FHF), 파리, 2009년 5월.
(6) <Journal officiel>, 2010년 9월 30일.
(7) ‘가계별 보건 지출 비용’, UFC que choisir, 2010년 9월.
(8) Jean-François Copé, ‘독일 의료보험제도는 왜 건강할까?’, 2010년 4월 14일, www.slate.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