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수가 된 히포크라테스
[Spécial] 나쁜 명령과 질긴 저항
병원 기업화는 ‘직원들의 결근 오용 및 남용 방지’를 목표로 하지만, 결국 ‘의료서비스 생산의 최적화’를 추진하는 길이다.
2008월 9월 어느 아침, 생드니 병원 원무과 직원인 수피안 베크티를 예기치 않게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에르노 의사입니다. 메드베리프사에 고용됐고, 베크티씨의 고용주를 대신해서 업무 중단과 관련해 베크티씨의 상태를 진단하러 왔습니다.”(1) 에르노 의사는 이렇게 말하고는 사무실로 들어와 질문을 시작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베크티는 발목을 삔 상태였다. “제게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무릎인가요?” 무릎이 아니라 발목이라고 대답했건만. 에르노 의사가 빠르게 다리를 만졌고, 베크티는 아파서 신음 소리를 냈다.
병가 중에 들이닥쳐 강제 진단
민간기업은 근로를 중단한 임직원에게 수당을 지급하는데, 1978년 임금관련법은 기업이 근로 중단 상태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의료진단을 할 수 있도록 했다.(2) 이 법은 1986년에야 공공부문에까지 확대해 적용됐다. 비록 공공부문에서 도입은 늦었지만 현재 민간기업과 큰 차이는 없다. 생드니 병원도 숄레, 비엔, 블르와나 알프뒤쉬드 병원센터들과 나란히 ‘고용주를 위한 병가 오용 방지 의료검진서비스계의 리더’인 메디베리프사의 ‘모범 고객’ 명단에 올라 있다.
메디베리프사의 프랑크 샤르팡티에는 의학적 측면에 대해서는 크게 근심하지 않는 듯하다. “우리 회사는 고용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고객사를 대신해 잦은 결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수익을 가져다주는 일이지요.” 잠재 고객들이 처한 어려움을 잘 이해하고 있는 메디베리프사 영업담당자들은 어떻게 이것이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 설명했다. 이 회사의 한 직원은 자사의 서비스 효과를 확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파도 아스피린 한 알로 해결
“우리가 보유한 의사 3천여 명이 병가로 출근하지 않은 직원들의 집을 정규 근무시간 중에 예고 없이 방문해, 병가의 타당성을 판단합니다. 만약 부재 중이거나, 문을 열어주지 않거나, 주소지 불명이거나, 초인종이 망가졌을 때 병가가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리고 해당 직원은 수당 혜택에서 제외됩니다. 한발 더 나아가, 고용주는 의사의 진단서 복사본을 사회보험에 보내 병가 기간 중 지급된 재해보상을 취소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효과가 배가된다고 볼 수 있지요.”
생드니 병원의 2008년 사회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 내 평균 결근율은 약 5%지만, 생드니 병원 결근율은 11.7%에 이른다. 하지만 현재 추진 중인 개혁은 의료기관이 ‘활동 내역에 따라 재정 지원을 받도록’ 하고 있다. 골드스테인은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병원 기업화 추진과 함께 재정 지원도 의료서비스 생산 여부에 따라 결정됩니다. 다시 말해, 서비스를 생산하려면 생산인력의 참여가 필요하겠지요.” 병원도 일종의 ‘노동집약적 기업’인 셈이다.
이런 여건에서 메디베리프사의 서비스는 고객에게 충분히 매력적이다. 메디베리프 공동경영자인 카트린 피에란토니에 따르면, 메디베리프사의 서비스 사용 후 고객사의 결근율이 30% 감소했다. 이는 강압적인 측면도 있지만, 직원에게 사소한 일로 결근하는 것을 경각시킨다. 즉, 아스피린 한 알로 충분한 증상이면 정상 출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숙지시킨다는 얘기다.
장애 안고 퇴직하는 간호사들
아스피린과 직무 복귀, 바로 에르노 의사가 베크티에게 내린 진단이다. “다행히 발목 부상이 심각해 보이지 않습니다. 피하일혈도 없고 부종도 없습니다. 이런 상태로는 오히려 병가가 좀 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베크티에 대한 에르노 의사의 판단은 (환자당 40유로의 비용이 소요되는) 그날 방문한 다른 모든 직원들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업무 중단이 타당하지 않음’이었다.
의사직무윤리위원회의 장자크 리옹 의사는 “의료윤리에서는 처음 진단서를 발행한 의사와 동료로서 설명을 들으려는 차원에서 전화 통화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에르노 의사는 베크티가 즉각적인 업무 복귀가 가능하다고 판단했고, 바로 다음날부터 베크티의 ‘의료서비스 생산’은 재가동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베크티의 발목을 초기 진단한 응급진료팀은 얼마 뒤 베크티를 다시 환자로 맞았다. 그는 이번에는 절름거리기까지 했다. 정말로 삐었던 발목 부상이 악화된 것이다. 베크티는 다시 근로 중단에 들어갔고, 이번에는 더욱 장기화됐다.
생드니 병원 응급실의 장미셸 베나제라프 의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결근을 일종의 근무태만으로 여기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결근이야말로 증상의 심각함을 나타내는 신호이니까요.” 결근이 잦은 직원은 다른 사람보다 증상이 더 심각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간호사의 4분의 1과 준(準)의료종사자의 40%가 장애를 안고 퇴직한다.
글•르노 랑베르 Renaud La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김윤형 hibou98@naver.com
<각주>
(1) 이 기사는 2008년 11월 12~13일 <프랑스 앵테르> 방송에서 방영된 다니엘 메르메의 <라바시지쉬>(Là-bas si j’y suis) 프로그램에서 다룬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2) 월급제법 시행령이 공포되지 않았지만, 이것이 임직원에 대한 고용주 쪽 의료검진 실시를 금지하지는 못한다고 파기원은 판결했다.
민영병원이 구할 것이다?
프랑스 내 거의 모든 개인병원이 회원으로 가입한 민영병원협회(FHP)의 홍보 캠페인을 보면, 공공병원은 동일한 진료의 의료비용이 민영병원보다 27%가량 높다고 한다. 환자가 종합병원이 아닌 개인병원에서 수술을 받는다면 150억 유로(약 23조4천억 원)에 달하는 의료보험료가 절약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FHP의 결론은 시급히 ‘의료비 단일화’를 실시하자는 것이었다.
공공병원과 단순 비교 잘못
FHP가 어떤 산술적 기준에 근거해 이런 계산을 도출해냈는지 좀더 명확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진료비나 의사의 보험료를 고려했는가라는 문제 말이다. 공공병원에서는 병원 예산에 포함된 이 비용을, 개인병원은 청구 요금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2007년 개인병원(전체 병원의 25%)의 환자 부담 진료비 총액이 4억 유로에 달한 반면, 공공병원은 1억 유로에 불과했다.(1) 1인실 입원비 등 입원 관련 비용도 추가로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파리에 소재한 비앵 네트르 산부인과(지난 3월 법정 파산에 들어가기 전까지 장 루 뒤루세 FHP 회장의 소유였다)는 하루 입원료가 150유로에 달한다. 좀더 포괄적으로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나머지 비용은 민영병원이 공공병원보다 3배 많다고 보면 된다.
이런 상황에서 민영병원과 공공병원의 의료비 단일화(정부는 2018년까지 단일화를 마무리하겠다는 구상이다)는 합리적인 주장이 못 된다. 이는 양 병원의 업무 특성을 무시한 처사다. 민영병원과 공공병원은 환자의 종류도, 치료하는 질병의 종류도 다르다.
전체 응급환자의 80%는 종합병원을 이용한다. 그런데 응급실행은 수술 스케줄을 엉망으로 만들고, 추가 검사를 하게 하고, 입원 기간을 연장시키며, 상시적으로 병상과 인력이 대기할 수밖에 없게 한다. 그러므로 예약 입원에 비해 63%가량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병원이 예약 수술을 하면 보충 검사(스캔, 채혈)는 입원 전에 하고, 의료기기나 의료용품 등은 사전에 구매하므로, 여기에 드는 비용은 전체 비용의 10~15%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업무를 외주로 돌리면 병원은 제반 비용을 직접 지출할 필요가 없고, 따라서 당연히 이 비용을 셈에서 제외한다. 그 결과 ‘의료보험’ 쪽에서 이중으로 지급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1910년 헨리 포드도 이 점을 잘 인식했다. 그는 표준화가 수익성을 향상시킨다고 믿었다. 이런 논리를 의료 분야에 적용해보면, 아침 8시에서 오후 6시까지 백내장 수술만 전문으로 하며 8월에는 휴업하는 개인병원은, 종합병원 안과에 비해 (경제적으로) 높은 수익을 거둘 가능성이 높다. 종합병원에서는 백내장 말고도 진료해야 할 질병의 종류가 많고, 1년 365일 주야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비용 적고 돈 되는 병만 골라 치료
개인병원의 진료 영역은 매우 한정적이다. 개인병원에서는 95개 질병 진료가 전체 수익의 67%를 차지한다. 반면 공공의료기관에서 이 비율은 전체 수익의 36%에 불과하다. 설령 표준화하기 힘든 환자를 만나더라도 염려할 필요는 없다. 이식수술이나 중환자 시술은 종합병원에 맡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에 상응하는 추가 비용과 함께 말이다.
공공의료기관은 개인병원 원장이 보기에 사회적·정신적·의학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놓인 환자들도 담당해야 한다. 한 예로 75살 이상 고령 환자 10명 중 8명이 종합병원에서 치료받는다. 게다가 노숙자, CMU(Couverture Maladie Universelle·직업이나 소득이 낮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국가 의료보험) 수혜자 등 고용이 불안한 처지에 놓인 환자 대다수도 종합병원의 몫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이 경우 30%가량의 추가 입원 비용이 발생한다. 이들은 돌아갈 집이 없거나 의료보조보험(Mutuelle·공제조합이 제공하는 보충보험)이 필요한 후속 치료 기관을 이용할 형편이 안 되기 때문에 대개 입원 기간이 길다. 하지만 이런 추가 요금은 요금단일제를 실시하면 부분적으로 환불이 가능한 비용이다.
한편, 개인병원에서는 기이하게도 과잉 진료 비율이 높은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뮤에트 개인병원(파리16구)의 제왕절개율은 무려 43%에 달한다. 뇌이쉬르센의 생트이자벨 개인병원은 그보다 조금 낮은 36%를 기록했다. 파리 서부의 임산부는 고위험 사례가 많기 때문에 이 지역 개인병원이 다른 공공병원(17.7%)에 비해 제왕절개율이 2배나 높은 것일까?
세금이 민영병원 돈벌이에
그렇다면 2007년 이런 종류의 개인병원들이 올린 재정수익률이 13%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놀라야 할까? 이런 수익성 덕분에 민영병원은 투자금을 유치하거나, 쉽게 대규모 병원그룹을 설립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제네랄 드 상테(이탈리아 자본이 대거 투입), 비탈리아 그룹(미국 블랙스톤 연기금 소유), 카피오(미국 및 유럽 기금 소유) 혹은 메디 파르트네르(22개 병원이 연합한 영국 투자자 소유의 그룹)다.
하지만 이렇게 국가의 돈이 고액 배당금으로 변질된 위험(병원이 청구한 비용을 환자에게 환불해주는 역할은 의료보험의 몫이므로)이 다가 아니다. 또 다른 위험도 있다. 제라르 라르셰 상원의장은 2007년 “몇몇 지역에서 독점화된 이 기금들이 어느 날 3~4년 안에 자기가 소유한 개인병원들을 전부 재매각하겠다고 나온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2)라며 우려를 금치 못했다. 의료비 단일화 투쟁의 선봉에 선 FHP는 최근 가입한 프랑스 경영자협회(MEDEF)로부터 지원사격을 받고 있다. FHP의 뒤루세 회장은 경영자협회 가입이라는 해괴한 결정에 대해 “로랑스 파리조가 이끄는 이 협회가 의료비 단일화를 위한 우리 투쟁을 지원할 것”이라고 둘러댔다.(3)
글•안 제르베 Anne Gervais
앙드레 그리말디 Andre Grimaldi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각주>
(1) 의료보험의 미래를 위한 상급위원회의 2009년 연례보고서.
(2) <의사 일간지>, 이시 레 물리노, 2008년 1월 24일.
(3) www.aef.info, 2010년 4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