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 농부 그리고 계절노동자

2010-11-05     크리스토프 방튀라

농사철이 돌아오면 로사르노의 작은 마을 칼라브리아는 계절노동자를 맞이할 채비를 한다. 이 계절노동자들이 지난 1월 폭동을 일으켜 마을에서 추방됐다. 그러자 모든 미디어가 일제히 주민들의 ‘인종차별’을 규탄했다. 필자는 그 현장을 찾아가 다른 해명을 들어봤다.

낡은 ‘오페라 실라’ 건물의 철문 근처에 버려진 까맣게 탄 자동차 뼈대가 필자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낡은 올리브 가공공장의 흉측한 문이 최근의 ‘로사르노 폭동’을 짐작게 한다. 지난 1월 7일, 토고 출신의 젊은 계절노동자 에이바 사이부가 산탄총에 다치면서 주민 1만6천 명이 사는 작은 농촌마을 칼라브리아는 폭동의 장으로 변했다. 사이부는 이주노동자 900명이 열악한 환경에서 빼곡히 얹혀 사는 오렌지 농장으로 귀가하는 중이었다. 이 노동자들 중 한 명은 “해도 너무 했다. 그래서 우리가 봉기한 것이다. 그런데 일부 주민들이 배신하고 우리를 공격했다”고 진술했다. 사태가 막대기와 철봉, 화염병이 난무하는 폭력적인 전투로 번지며 통제가 불가능해지자, 이탈리아 정부는 1월 10일 버스를 동원해 이주노동자 700여 명을 크로톤과 바리시 쪽으로 긴급 대피시켰다.(1)

농촌마을, 이주노동자와 농민 충돌

‘로사르노 사태’는 왜 발발했을까? 이탈리아와 세계 언론은 이 집단 사태를 외국인혐오증에 대한 반응, ‘인종차별 폭동’, 이를테면 ‘이민자 사냥’이라고 보도했다. 그래서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1월 10일 “이탈리아는 인종차별을 통해 하나로 뭉쳤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인종차별만으로는 당시 상황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노동자 95%가 불법 노동자

칼라브리아의 농촌마을은 다른 집약농업 지역, 특히 안달루시아 지역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2) 평균 토지 1.8ha를 소유한 1600개가량의 농장이 칼라브리아 지역에서 농업지대를 형성했다. 이탈리아국립농민경제연구소(INEA)에 근무하는 지울리아나 파치올라는 이런 형태의 농장에서는 “계절노동자의 존재가 구조적인 문제가 된다. 칼라브리아 지역 노동자의 95%가 불법 노동자다”라고 했다.

2009년 이 지역에서 합법 혹은 불법으로 일하는 가나·세네갈·코트디부아르·나이지리아·말리 출신의 이주노동자들과 최근 유럽연합(EU)에 편입된 동유럽 출신 노동자는 1989년 800명에서 2009년 1만500명을 훌쩍 넘었다. 2009년에만 30%나 증가했다.

대부분 노동허가증이 없는 불법 노동자들은 이 지역의 정규 노동자가 받는 일당의 절반 수준인 20~25유로를 받거나, 오렌지 한 상자당 1유로를 받으며 새벽부터 해질 녘까지 일한다. ‘카포’라 부르는 작업반장이 이들을 하루하루 고용하며 이들의 노임 중 일부를 떼간다. 고용 시스템의 중심에는 지주와 노동자 간에 중개 역할을 담당하는 작업반장이 있다. 이 시스템은 특히 아프리카 일용직 노동자인 브락시안티(Braccianti)를 주로 고용하는 거대 농장들과 연루된 범죄조직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죽어라 일하고 마피아에 돈 뜯겨

2008~2009년 마피아 조직 은드란게타(Ndrangheta)가 지오이아 타우로 평야에 집중된 노동자들을 계속 착취하는 가운데, 이탈리아 오렌지산업은 위기를 맞았다. 칼라브리아 지방의 이탈리아농민연맹(CIA) 회장인 안토니노 이누소는 “주스 가공에 들어가는 이 지역의 오렌지 가격이 계속 떨어져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kg당 1유로던 가격이 5센트까지(100센트=1유로) 추락했다”고 했다. 2009년도 2분기에만 이곳 평야지대 농민의 평균소득이 25% 감소했다.

세계 오렌지 가격의 하락, 외국산(특히 브라질산) 오렌지와의 격심한 경쟁, 농림부(PAC)의 가격보장제 철폐 등이 오렌지 재배의 수익성을 악화하는 원인이 됐다. CIA의 지역본부장인 주세페 만곤은 총 3만2천ha에 이르는 이탈리아 오렌지 농장 중 칼라브리아 지역의 4천ha가 곤경에 처했다고 한다. 이누소는 “심지어 순박한 이 지역 농부들은 브락시안티에게 월급도 못 줄 처지가 됐다”며 곤혹스러워했다.

오렌지 가격도 마피아가 통제

‘로사르노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특별위원인 도메니코 바그나토는 손에 담배를 쥔 채 시장 소파에 편안하게 앉아서 우리를 상냥하게 맞았다. 2008년 12월 10일 이후, 로사르노 지역의 문제는 더 이상 시의회의 소관이 아니었다. 당시 로사르노 시의회는 대통령령에 따라 반마피아법이 제정되면서 18개월간 해산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 12곳의 시의회도 똑같은 운명을 겪었다.(3) 바그나토는 시의회의 해산 이유는 “이곳의 시정 활동이 범죄조직에 종속됐다는 증거가 확보되고, 여기 있는 우리 이름이 그 속에 거명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피아 조직 은드란게타는 전통이 되다시피 한 관행에 따라 시장과 시의원 친구들의 선거, 시정 활동과 회사들의 서비스 관리를 통제하고 있다. 은드란게타는 오렌지 재배 농장주들에게 판매 가격을 제시하며 운송을 비롯한 판매와 가공 부문까지 통제하고 있다. 마피아의 독점이 오렌지 재배 전반에 피해를 주고 있다. 바그나토는 “현지 생산자는 상인에게 오렌지를 kg당 50센트에 넘긴다. 유통과 시장을 통제하는 마피아가 제시한 가격이기 때문이다. 어떤 농부도 자신이 생산한 오렌지를 별도 가격으로 판매할 수 없다. 그게 법이다. 이 가격에는 8센트의 인건비(불법 노동자에겐 4센트)가 포함됐다. 이 오렌지가 유통 과정을 거치며 슈퍼에서 kg당 2~2.5유로에 팔린다”고 말했다.

달콤한 EU 보조금 따먹기, 끝내 동티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지오이아 타우로 평야 지대를 관할하는 팔미 법정의 주세페 크레아조 베테랑 반마피아 투쟁 검사는 은드란게타가 지역·국가·유럽의 공공 기금을 유용하는 방식을 낱낱이 소개했다. 그는 침착한 어조로 “마피아가 농업 부문, 특히 올리브와 오렌지를 재배한다지만 이들이 독점한 토지를 보면 그 탐욕을 가늠할 수 있다. 이들은 취득한 토지에 농사를 지으며 자본을 ‘세탁’하거나 주로 유럽연합에서 공적 자금을 받아낸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수익성이 높은 사업을 하는 것이다. 2007년 이탈리아 정부가 칼라브리아 지역에서 적발한 사기 행위(유럽과 이탈리아 정부의 공금 횡령 사건)는 451건에 달했고, 횡령 액수는 1억2500만 유로에 달했다.

2년 전 유럽연합은 농민의 수익을 우선 보장하기 위해 보조금 할당 기준을 바꿔, 오렌지 생산량보다는 농장의 면적과 오렌지나무 그루 수를 중시한다. 파치올라는 “이런 조치가 로사르노의 경제와 사회 시스템을 바꿨다. 1ha의 경작지에서 수확하는 오렌지가 거의 2500kg에 달한다. 2008년 1월 1일 이전에는 유럽연합이 오렌지 100kg당 10유로의 보조금을 할당했지만, 수확량이 늘어난 지금 농장이 ha당 받는 보조금은 거의 2500유로로, 편법을 쓸 때보다 더 많다. 이제 모든 농장은 800~1200유로 정도의 보조금을 받지만 더 이상 속임수는 통하지 않는다.”

지오이아 타우로 평야 지대에서 한 농부가 농사철에 51일간 일해도(자연재해로 5일만 일해도), 그는 그해 남은 기간은 실업자 수당을 받게 된다. 마피아와 일부 소규모 지주들은 농부도 아닌 자신을 농부(가짜 브락시안티)로 신고한 뒤, 다른 사람을 시켜 대신 농사 지으며 실업자 수당까지 횡령했다.

온갖 모순 중첩… 약자끼리 분노 투사

국가사회보험청(INPS)에 신고한 노동자 13만5천 명 중 75%가 실업수당을 받고 있고, 칼라브리아는 이탈리아에서 실업수당 수혜자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파치올라의 말에 따르면 급기야 “혼수상태에 빠졌던 INPS가 제정신을 차리고 실업수당 수혜자 명단을 재검토하면서 2008년부터 그 수가 반으로 줄었다”고 했다. 또 그녀는 “정상적인 체류증을 지녔지만 북부 산업의 침체로 갑자기 실업자 신세가 된 많은 이주노동자가 등 떠밀려 남부로 갔는데, 하필 그때 지오이아 타우로 평야 지대가 필요로 하는 오렌지농장의 일손이 크게 줄었다”고 했다.

그 결과 2008년부터 서로 연관도 없는 로사르노에서 중첩된 4가지 요소가 경제적·사회적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첫째는 오렌지산업의 위기(이것이 지역 생산을 위축시키고 농민 소득을 감소시켰다), 둘째는 유럽연합의 보조금 할당 기준 변경(이 조치로 은드란게타의 활동이 감소한다), 셋째는 INPS의 결정(일부 주민들이 가짜 서류로 일정 소득을 챙기던 시스템이 흔들렸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에 닥친 세계 경제위기의 초기 효과 등이다. 이런 요소가 다양한 사회 그룹, 특히 소규모 지주와 이주노동자 간에 격렬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르사르노 사태는 단지 인종차별 문제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은드란게타는 여전히 칼라브리아 지역을 통제하며, 모든 사람을 상대로 수익을 챙기고 있다.

글•크리스토프 방튀라 Christophe Ventura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조은섭 chosub@ilemonde.com
파리7대학 불문학 박사. 주요 역서로 <착각>(2004) 등이 있다.

<각주>
(1) 이탈리아 언론사 <안사>(Ansa)가 칼라브리아 경찰서의 보고서를 인용해 지난 4월 26일 보도한 내용을 보면, 로사르노 사태로 속출한 부상자 53명 중 이주노동자가 21명, 경찰 18명, 주민이 14명이었다.
(2) 피에르 돔, ‘토마토 잔혹사’, <르몽드 디플로 마티크> 2010년 3월호 참조.
(3) Antonello Mangano, <Gli africani salveranno l’Italia>, BUR Rizzoli, Milan, 2010.
(4) Rizzo Sergio, Stella Gian Antoni, <I cinque martiri e i centomila falsi braccianti>, Corriere della Sera, 2010년 5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