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죽음을 돈과 바꿔드립니다” - 목숨과 맞바꾼 사망 채권

2019-03-29     실뱅 르데르 l 경제학자

 

“라이프라인은 딱 나를 위한 것 / 한 뭉치의 서류도 손가락 한 번이면 처리가 끝나지 / 지금도 여전히 섹시한 건 누구? / 그건 바로 나야!” 뮤직비디오 속에서 번쩍이는 황금색 반바지를 입은 장정들에게 둘러싸인 베티 화이트는 올해 91세의 여배우다. 드라마 <사랑, 영광, 그리고 아름다움>의 배우 베티 화이트는 뮤직비디오 속에서 장정들에게 둘러싸여 쉴 새 없이 몸을 흔들며 (음악애호가들보다는) 클럽 애호가들을 유혹한다. 중간중간 음악이 끊기며 포즈가 생기면 베티 화이트가 나와 계속해서 후렴구를 반복한다. “지금도 여전히 섹시한 건 누구? 그건 바로 나야!” 

2011년에 방송을 탄 이 뮤직비디오는 (‘생명줄’을 뜻하는) 라이프라인(Lifeline) 보험사에서 제작비를 후원했다. 경쟁사인 콘번트리 퍼스트(Conventry First), 마그나 라이프 세틀먼트(Magna Life Settlements), 아바커스(Abacus)와 마찬가지로 투자사 라이프라인은 미국의 노인들에게 생명보험을 되팔라고 권유한다. 베티 화이트를 위해 만든 노랫말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라이프라인에서는 그녀에게 운명의 시간이 곧 다가오고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기에서 돈줄을 찾아냈다. 
1980년대 초 에이즈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갈 때, 미국의 금융권에서는 기발한 발상의 전환을 해냈다. 사실 전 지구적인 공조가 절실한 상황이었는데, 에이즈는 치료법도 없고 보건의료 시스템이 취약해 환자들에 대한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다 치료비 부담도 계속해서 늘어갔기 때문이다. 환자들의 수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일부만 생명보험의 혜택을 받고 있던 그때, 보험사들은 무언가 냄새를 맡는다. 사망채권, 즉 목숨을 담보로 한 ‘사망채권’이라는 사냥감을 찾아낸 것이다. 

 

‘생명보험을 이용해 암 치료비를 마련하는 법’

원래 생명보험은 가입자가 납입한 보험료를 쌓아뒀다가 가입자 사망 시 그 권리 소유자에게 지급하는 방식으로, 가입자가 죽기 전에 해약하면 그만큼 손해를 보게 돼 있다. 그런데 사망채권은 자신의 보험증권을 제삼자에게 되팔 수 있게 한 상품이다. 보험계약의 판매금액은 계약만료일, 즉 사망 후에 받는 금액보다 낮지만 해지 시 받는 금액보다는 2~3배 많다. 그리고 보험가입자가 사망하면 이 보험을 산 투자자가 원래 보험계약에 고지된 금액을 받게 된다. 생명보험증권의 매입은 인수자가 매월 가입자에게 납입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이 금액은 보험가입자의 기대수명에 따라 달라진다. 라이프라인 웹 사이트에도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보험만기일인 사망일이 언제 올지는 아무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습니다. 만기일자가 연간 수익률을 결정하기 때문에, 가입자의 수명이 시한부일수록 수익률은 높아집니다. 정확한 기대수명에 대한 평가치를 제시하고자 노력을 하고는 있으나, 일부 보험증권은 10년 안에, 나아가 더 먼 시일 안에 만기일이 도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생명보험의 인수과정에 있어 제일 위험한 투자 요인은 바로 시간입니다.”

따라서 말기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면, 병이 있되 완치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 2000년대 초 미국의 주요 투자사들은 생명보험의 이런 빈틈을 파고들었다. 2018년 미국의 한 보고서에서는 이런 미국 내 사망채권 시장이 연평균 34%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2017년 기준 누적 매출액은 3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즉, 사망채권 시장이 “그 잠재력을 예상한 이들의 기대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이 분야의 사업이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확실히 미래가 매우 밝을 것으로 전망된다.”(1) 

사업의 놀랄 만한 성장동력이 돼준 것은, 다름 아닌 ‘암’이다. 미국의 보험회사 히든 젬(Hidden Gem) 웹사이트 ‘생명보험을 이용해 암 치료비를 마련하는 법’에 기재된 설명에 의하면, “보험가입자라도 자신이 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 시점에서 재정상태가 불안해질 수 있다.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치료비가 쌓여가는 상황에서 의료비 환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2) 

히든 젬은 웹 사이트 메인 페이지에 머리가 하얗게 센 노부부가 같이 유람선 뱃머리에 앉아 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을 걸어두고 있지만, 또 다른 보험중개사 윈저 라이프 새틀먼트(Windsor Life Settlements)에서는 보다 실리적인 전략을 취하고 있다.(3) 환자가 앓는 질병 유형과 연령에 따라 그 기대수명을 제대로 연구한 자료를 투자자들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이 회사의 계산에 따르면 췌장암에 걸린 85세 노인이 5년 후에도 살아있을 확률은 1%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같은 사실을 안 환자는 베티 화이트처럼 자신의 생명보험을 되팔아, 남은 생애 동안 여유자금을 마련하려 들 것이라는 게 보험사의 계산이다. 

그러므로 생명보험을 판다고 해서 누구나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다. 2017년 <뉴욕타임스>의 여기자 폴 스팬은 아바커스 라이프 세틀먼트(Abacus Life Settlement) 사에 연락해서 자신의 보험계약을 되팔 수 있는지 알아봤다.(4) 그러자 지극히 친절하고도 상세한 조사가 시작됐다. 연령과 흡연습관, 결혼 및 동거 여부, 사망 당시 부모의 연령, 주간 운동량, 지난 6개월간의 현기증 또는 기절이력 등에 대해 묻는 질문지였다. 그 결과 아바커스의 알고리즘이 계산해낸 스팬 기자의 기대 수명은 280개월, 즉 23년 이상이었다. 그 어떤 회사도 이렇게 긴 보험 만기를 기다려주려고 하지 않았다.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건 암 전문의가 비관적인 소식을 전해주는 것뿐이었다. 

 

맞춤형 제조가 가능한 ‘사망 포트폴리오’

하지만 투자자들에게 있어 ‘비관적인 소식’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이들에게 악몽과도 같은 소식은 바로 보험가입자의 사망일을 늦추는 신약개발이나 새로운 치료법의 발견 소식이다. 자신들에게 보험을 판 가입자에게 다달이 돈을 지급해야 하는 기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어제의 확실했던 투자처가 이제는 돈만 잡아먹는 골칫덩이로 전락하고 만다. 

캘리포니아 팜스프링스의 클리브 존스는 2000년대 초만 해도 “길 떠날 나그네의 마을에 온 걸 환영하오”라는 식의 인사를 했다고 한다. 남은 수명이 2년도 채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권유되는 생명보험 판매상품을 이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클리브 존스처럼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의 보험을 되팔고 생을 마감하기 위해 이곳으로 이사 왔다. 하지만 1990년대에 치료법이 개발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클리브 존스는 “이제 사람들이 다시 자기 집을 꾸미기 시작했다”며 좋아했다.(5)

다행히도 금융권에서는 이 같은 ‘악재’에 대비할 방편을 마련했다. 2007년 서브 프라임 사태 때 세상에 그 존재가 알려진 ‘자산 유동화’는 자신이 보유한 유가증권을 다양하게 구성하는 전략이다. 따라서 췌장암 증권과 백혈병 증권, 당뇨병 증권, 심장병 증권 등으로 나누어 보험증권을 구성할 수 있다. 칵테일 바에서 음료를 주문할 때처럼 무엇이든 다 섞는 게 가능하다. 투자자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위험수준을 다차원적으로 구성하는 것 외에도 보험사들은 이런저런 질병들을 치료해줄 신약개발에 성공한 과학적 쾌거가 나오더라도, 투자자들의 자산가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편의’를 제공한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각자 자신의 ‘사망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면서, 무한정 보험상품을 사고 되팔 수 있다. 

안타깝게도 프랑스의 투자자들은 이 기발한 금융상품을 아직 이용할 수 없다. 정부는 40여 년 전부터 줄곧 프랑스 보건의료시스템의 빗장을 풀어놓으려 애를 써왔지만 아직은 견고한 보호막이 유지되고 있어, 가난한 환자들을 투자대상으로 삼는 데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전 프랑스경제인연합회 부회장 겸 유럽 보험연합회(유럽 보험료의 95%를 차지하고 백만 명의 인력을 고용하고 있는 유럽보험연맹) 회원인 드니 케슬레르 스코르(Scor) 사 사장은 “현재 프랑스의 제도 아래에서는 보험사가 부담하는 비용이 늘어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6) 

즉, 민간보험사는 사망채권에 대한 새로운 리스크로부터 프랑스 투자자를 보호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프랑스에서는 의료과학 분야의 진보보다 더 큰 위험요소가 투자자의 발목을 잡는다. 약제비를 부담하고 보험사에 일정 부분 의료비용을 전가할 공공시스템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타인의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벌어보겠다는 투기꾼들의 발길이 프랑스로 향할 리 만무하다. 

 

글․실뱅 르데르 Sylvain Leder
경제사회학 교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단행본 『비판 경제 교과서』(Manuel d'économie critique, 2016) 집필진으로 참여한 바 있다.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번역위원.

 

((1) ‘Life Settlement Industry Report 2018’, Magna Life Settlements, www.magnalifesettlements.com
(2) www.hiddengemls.com
(3) https://windsorlifesettlements.com
(4) Paula Span, ‘Wringing cash from life insurance’, <뉴욕타임스>, 2017년 10월 13일.
(5) David Groff, ‘Keeping up with the Jones’, <POZ>, 2000년 9월 1일, www.poz.com
(6) Denis Kessler, ‘Confronting the challenge of long-term care in Europe’, <CESifo Dice Report>, 제8권 제2호, Munich, 2010년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