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쫓기는 미국의 불안감

2019-03-29     키쇼어 마부바니 l 전 싱가포르 유엔대사

처음에는 미국이 포문을 연 데 이어 다른 대부분의 서구 국가들도 대중국 공세에 하나둘 가세하고 있다. 중국이 상품, 스파이, 군사적 야심 등을 앞세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된 세계질서를 뒤흔들려 한다는 것이다. 물론 중국 정부도 방어에 나섰다. 3월 21~26일 유럽 순방길에 오르는 시진핑 주석이 이탈리아, 프랑스, 모나코의 환심을 살 구애작전을 미리 마련했다. 진정 ‘중국의 위협’이라는 실체가 있기는 한 것일까?

 

15년 후면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제일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한다. 시시각각 미국에서 중국으로 균형추가 기울어짐에 따라, 미 정부 내에는 중국이 미국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공감대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조지프 던포드 합참의장도 “2025년 중국은 미국 최대의 위협이 될 것”이라고 직설적으로 지적한 바 있다(2017년 9월 26일 상원 청문회).  2018년 미국의 국방전략에도 중국과 러시아는 “다른 나라의 경제적, 외교적, 안보적 결정에 대해 거부권한을 행사하며 자신들의 권위주의적 모델에 부합하는 세계를 창조하려 시도하는 수정주의 세력”이라고 표현돼 있다.(1)  한편 크리스토퍼 레이 미국연방수사국(FBI) 국장도 “중국의 위협은 정치적인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므로 전 사회적 차원의 해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런 생각은 미국 내에 널리 퍼져 있다. 심지어 온건한 편에 속하는 척 슈머 민주당 상원의원 같은 인물도, 2018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을 선포한 것을 환영할 정도다.

미국의 불안감은 두 가지 문제에서 기인한다.  첫째, 경제문제다. 즉 기술이전 요구, 지적재산권 침해, 자국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비관세장벽 도입 등 온갖 불공정한 무역행태를 통해 중국이 미국의 위상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둘째, 정치문제다. 중국이 경제발전에만 급급할 뿐, 미국 등 서구국가들이 예견한 자유민주주의 개혁을 수반하고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 중국은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에서 매우 저돌적으로 나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런 분석을 근거로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도 저서 『예정된 전쟁』(2)에서 두 나라 간 무력충돌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크다는 암울한 전망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상 중국이 미국을 위협하거나 침입할 수준의 군사력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 대한 내정간섭을 시도하려 하는 일도 없다. 또한 미 경제를 무너뜨릴 목적의 작전을 펼치는 경우도 없다. 일각에서는 10여 년 후 경제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세계제일의 국가로 발돋움할 나라, 중국을 위협적인 존재로 보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과 평화적으로 교섭할 수단을 찾을 수 있다. 그것도, 충분히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는 선에서 가능하다. 설령 그 방법이 중국의 이익에 위배된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려면 우선, 중국의 정치시스템에 대한 낡은 통념부터 버려야 한다. 소련 붕괴 후, 미국의 지도자들은 중국의 공산당도 조만간 소련공산당의 뒤를 이어 무덤행 신세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정치 스펙트럼의 맨 좌측에서 우측까지 모두 1992년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이론을 자명한 진실처럼 받아들였다. “우리는 지금 단지 냉전의 종식만 목격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 역사의 종언도 함께 목격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인류의 이데올로기 진화과정에서의 종착점과, 인류통치의 최종형태인 서구 자유민주주의의 보편화를 지켜보고 있다.”(3)

2000년 3월 윌리엄 클린턴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지지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뱀의 꼬리는 뱀의 머리를 뒤따르듯, 정치의 자유화가 경제 자유화의 뒤를 잇게 될 것”이라고 확언했다. 그는 수많은 세계 국가수반들 앞에서, “여러분이 만일 중국의 국민을 위해 한층 자유롭고 개방된 미래를 꿈꾼다면, 이 협정을 승인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클린턴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조지 W. 부시도 같은 신념을 공유했다. 2002년 <국방 전략>에서, 부시는 말했다.
“시간이 흐르면 중국도 차차 사회적, 정치적 자유만이 한 나라를 위대하게 만드는 유일한 원천임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힐러리 클린턴의 태도는 그보다 한층 확고했다. 클린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공산당의 집권기가 길어지면, 중국인들은 변화의 흐름을 막으려 시도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부질없는 일이 될 것이다. 결국에 그들은 변화를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어떻게든 최대한 변화의 속도를 늦추려고는 할 것이다.”


미국의 금권주의 vs. 중국의 능력주의

그러나 우리는 중국정부에 ‘좋은 정치’에 대한 조언을 서슴지 않는 미 정책결정자들의 확고한 신념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물론 미국만큼 강력한 경제력, 정치력, 군사력을 쌓아 올린 제국은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렵다. 하지만 미국이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1776년으로부터 250년도 지나지 않았다. 그에 비해 중국은 수천 년의 역사를 구가한다. 중국인은 오랜 역사 속에서, 중앙정부의 힘이 약화되거나 분열되면 엄청난 고통을 겪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외세의 침입, 내전, 기아 등으로 시달리던 아편전쟁(1842년) 이후의 세기처럼 말이다. 

사실상 중국은 1978년 이후 무려 8억 명의 사람들을 빈곤의 늪에서 구제했다. 그런가 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두터운 중산층을 형성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그레이엄 앨리슨도 중국 관영매체 <차이나 데일리>에 기고한 한 사설에서 “우리는 40년 만에 놀라운 성장과 함께, 지난 4천 년 중국의 역사에서 살펴본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중국인들의 삶이 더욱 안락해졌다고 단언할 수 있다”라고 썼다. 이 모든 변화는 중국공산당의 집권기 동안에 이뤄졌다. 중국공산당은 소련공산당의 몰락이 러시아 내에 기대수명 하락, 유아사망률 증가, 소득수준 추락 등의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했다.

일반적인 미국인들은 흔히 정치시스템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대결구도를 그저 국민이 자유롭게 자신의 정부를 선택하고, 뜻하는 바대로 의견을 표명하며, 자신이 선택한 종교를 자유롭게 믿을 수 있는 민주주의 시스템 대 이런 모든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전제정치시스템 간의 대결이라고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비교적 냉철한 전문가들은 두 정치시스템의 차이를 그와는 다른 식으로 이해한다. 

즉, 대중의 권익은 무시한 채 부자들을 위한 방향으로 모든 정치적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미국의 금권주의체제와 당의 선택을 받은 유능한 책임자들이 모든 정치적 의사결정을 진행하며 빈곤층을 현격히 감소시키는 데 기여한 중국의 능력주의 체제 간의 대립이라고 바라보는 것이다. 실제로도 미국 노동자의 중위소득은 지난 30년간 제자리걸음을 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1979~2013년, 미국의 시간당 중위 실질임금은 단 6% 인상되는 데 그쳤다. 연간 0.2% 인상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4)

하지만 그렇다고 중국의 현행 정치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니다. 중국 내 인권유린, 특히 위구르족 수십만 명에 대한 구금조처(5) 등의 행태는 여전히 중대한 문제로 남아 있다. 중국 내에서도 점차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학계를 향해 고언을 서슴지 않는 쉬지린이다.(6) 그는 지나치게 국민국가를 중심에 놓거나 서구의 정치모델과 중국 간의 문화적, 역사적 차이를 강조하는 동료학자들의 방식에 대해 매서운 비판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이처럼 중국의 특수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태도가 오히려 중국의 전통문화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천하’ 사상이라는 역사적 개념에서 살펴볼 수 있듯, 중국의 전통문화는 오히려 보편적이고 개방적인 시스템을 구현해왔다는 것이다. 그는 일부 “극단적 민족주의” 성격의 동료학자들이 “서구가 만들어낸 모든 것”을 무조건 거부하는 태도를 비판하는가 하면, 중국의 성공이 언제나 개방성에서 비롯돼왔음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쉬지린 같은 진보주의자도, 중국이 미국의 정치시스템을 답습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신 천하사상”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자국의 고유한 문화적 전통에서 길을 찾아내야” 한다고 역설한다. 먼저 국내적으로는 “한족과 수많은 소수민족이 각기 동등한 사법적 권리와 지위를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하고, 각 민족의 다양한 문화적 특수성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 또한 외교적 차원에서도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타국의 독립적 주권 인정, 동등한 처우, 평화적 공존을 기본원칙으로 삼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정치시스템은 경제적, 사회적 상황과 더불어 동시 발전해야 한다. 물론 많은 측면에서 이미 중국의 정치시스템은 현저한 변화를 이룩했다. 가령 과거보다 더 개방적으로 변한 것이 사실이다. 일례로 1980년만 해도 중국인에게는 관광객 자격의 해외여행이 금지됐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약 1억 3,400만 명의 중국인이 해외를 자유롭게 오갔다. 수백만 명의 중국 청년들이 미국의 캠퍼스를 자유롭게 체험했다. 또한, 2017년 유학길에 올랐던 중국 학생 10명 중 8명은 귀국을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 가지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만일 그처럼 만사가 순조로운 것이라면, 도대체 시진핑 주석이 공산당원들에게 예전보다 더 엄격한 규율을 적용하고, 주석 임기를 철폐한 이유는 무엇일까?(7) 물론 중국의 눈부신 경제발전은 후진타오 전 주석의 공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럼에도 그의 집권기간 내 중국에는 온갖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파벌주의가 판을 치는 부작용도 많았다. 특히 충칭시(인구 3,500만 명) 당서기 보시라이와 매우 막강한 권력을 누린 전 중국 공안부 부장 저우융캉 등이 대표적인 파벌세력이었다. 시 주석은 이런 경향이 공산당의 미래에 큰 걸림돌이 돼 중국의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이런 끔찍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권력을 다시 복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런 견해에도 불구하고(어쩌면 오히려 그 덕분에) 시 주석은 지금도 여전히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서구에서는 많은 이들이 중국정권의 힘이 거대해지는 것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며, 이를 무력충돌의 전조로 인식한다. 그러나 중국 수뇌부의 변화는 중국의 장기적인 지정학적 전략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중국은 언제나 어떻게든 불필요한 전쟁을 피해가고자 애써왔다. 미국은 운이 좋게도 평화로운 두 이웃(캐나다와 멕시코)을 곁에 뒀지만, 반면 중국은 인도·일본·한국·베트남 등 여러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막강한 이웃들과 복잡다단한 관계를 맺어왔다. 

 

편한 이웃을 둔 미국, 막강한 이웃을 둔 중국

UN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 가운데 중국은 유일하게 1988년 잠시 베트남과 해전을 벌인 이후 지난 30년 동안, 단 한 번도 국경 너머에서 총성을 울린 적이 없었다. 반면 이른바 평화주의를 표방하던 버락 오바마 정권하에서는, 불과 1년 사이에 미군이 무려 7개국에 2만 6,000개의 폭탄을 투하했다. 아마도 중국은 전략적 인내의 기술을 아주 훌륭하게 구사할 줄 아는 것이리라.

물론 때때로 중국이 전쟁 직전의 상황까지 치달은 적도 있었다. 가령 센카쿠 열도를 둘러싸고 일본과의 사이에 전운이 감돌기도 했다.(8) 한편 매년 세계 해양운송의 1/5이 지나다니는 것으로 유명한 남중국해에서 무력충돌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일부 해양을 둘러싼 영유권 분쟁이 치열해지자, 중국인들은 여러 고립된 암초나 얕은 바다를 군사시설로 전환시키는 작업에 돌입했다 그러나 서구의 분석과 달리, 정치적으로 해당 지역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중국은 사실상 군사적인 측면에서 예전보다 훨씬 더 공격적으로 돌변한 것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은 원하면 언제든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 같은 소규모 라이벌 국가들은 거뜬히 몰아낼 힘이 있다. 다만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않은 것뿐이다. 

틈만 나면 해양 영유권 분쟁지역 내 ‘중국공격’이라는 소재가 반복되지만, 정작 미국이 수차례에 걸쳐 이 분쟁지역의 긴장을 완화할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는 사실을 거론하는 경우는 드물다. J. 스테이플턴 로이 전 주중 미국 대사는 2015년 9월 25일 오바마 대통령과 공동으로 개최한 한 기자회견에서, 시 주석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10개 회원국의 지지를 받는 성명 내용이 담긴 남중국해에 관한 해결방안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또한 시 주석은 대형 공사가 진행된 스프래틀리제도(난사군도)를 전혀 군사화할 뜻이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이런 타협안을 실질적으로 진행시키기 위해 이후 아무런 후속조처를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미 해군의 정찰활동을 더욱 강화했다. 그러자 이에 대한 맞대응으로 중국 역시 이 제도에 대한 방어시설 건설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 것이다.

경제문제도 군사문제, 외교문제만큼 능수능란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선택한 길은 그것이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온갖 미심쩍은 이유들을 내세워 중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을 개시했다. 그리고 그 덕택에 대중의 큰 지지를 얻었다. 이런 현상은 어쩌면 중국의 실수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인지 모른다. 어찌하여, 중국은 불공정한 무역관행에 대한 비판이 점차 거세질 것에 미리 대비하지 못했는가?

하지만 중국의 불공정한 행태만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모든 행동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사실 중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그 같은 의구심이 날로 커지고 있다. 사실 미국 정부는 무엇보다 기술 선도국으로 도약하려는 중국의 야심을 저지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로널드 레이건 정부에서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마틴 펠드스타인이 지적한 것처럼, 물론 미국은 당연히 자국 기술의 도용을 막기 위한 보호책을 시행할 권한이 있다. 그럼에도 ‘메이드인 차이나 2025’와 같은 일국의 전략사업을 가로막을 권리는 없다. 사실상 ‘메이드인 차이나 2025’는 중국이 전기자동차, 첨단로봇공학, 인공지능 등 미래신산업의 발전을 목적으로 구상한 계획일 뿐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맞서기 전, 미국이 풀어야 할 과제

미국이 항공우주, 로봇공학 등 첨단기술산업 분야에서 계속 우위를 점하고 싶다면, 상대국에 관세장벽을 강제하는 데만 만족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고등교육분야나 연구개발 분야에도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즉, 중국에 맞대응할 장기적인 비전의 자국 고유의 경제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것이다. 수사학적 측면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중국정권은 자국경제와 국민의 미래에 대해 명확한 비전을 잘 보여준다. ‘메이드 인 차이나 2025’ 프로그램이나 각종 인프라 건설사업을 필두로 한 ‘신 실크로드’(일대일로) 사업은 신산업 분야에서 최고의 주역을 꿈꾸는 중국의 의지를 또렷이 보여준다. 

더욱이 중국의 지도층은 불평등이나 환경오염 등 사회적 비용을 무시하고는 더 이상 지금과 같은 성장 질주를 계속 이어갈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시 주석도 2017년 “부적절하고 불평등한 개발과 점점 더 높아지는 시민들의 더 나은 삶을 향한 욕구 사이”(9)에 긴장을 해소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했다. 물론 중국정권이 정말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중국정부가 당면한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미국도 중국처럼 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과 같은 장기적 전략을 수립하려면, 먼저 자신들이 세운 원칙 속에 내재한 근본적인 모순부터 해결해야 한다. 미국의 경제석학들은 국가주도 산업정책은 결코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며, 자유시장에 입각한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한다. 그들의 신념이 진정 옳다면, 트럼프 행정부에서 미 무역대표부 대표를 맡고 있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는 중국이 자국의 기술역량을 높이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에 대해 굳이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다. 그저 편안히 앉아서 중국 정부가 주도하는 산업정책이 저절로 힘을 잃고 마침내 중국이 실패극을 공연할 순간을 차분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이다.

반면 만일 라이트하이저 대표가 중국의 2025 사업이 성공할 것이라 예견한다면, 그때는 미국의 이념적 전제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자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리고 미국도 중국의 2025사업에 상응하는 장기적인 비전의 전략을 구상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세계제일의 산업강국으로 통하는 독일도 이미 ‘인더스트리 4.0’이라고 불리는 그와 유사한 로드맵을 갖추지 않았던가.

운명의 장난이라고 할까. 사실 미국에 가장 큰 이익을 가져다줄 방안은 중국과의 협력에 있을지 모른다. 중국은 3조 달러에 달하는 자국의 외환보유고를 풀어 미국이 일대일로 사업에 동참할 수 있도록 대미투자를 늘리기를 누구보다도 바라고 있다. 사실상 미국의 참여는 중국의 힘이 지나치게 커지는 상황을 견제하기를 바라는 일대일로 유관국들에는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에는 여기저기 잡을 기회가 널려 있다. 과거 보잉과 제너럴 일렉트릭 같은 회사들이 중국 항공시장의 폭발적 성장의 수혜를 톡톡히 누렸듯, 오늘날 캐터필러나 벡텔 같은 기업들도 일대일로 유관국의 대규모 건설공사로부터 많은 이익을 누릴 수가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경제분야에 대한 국가개입을 극도로 꺼리는 미국의 이념적 거부감이 이런 시나리오를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물론 미국이 다른 나라를 전부 따돌릴 정도로 우세한 경제력을 자랑했을 때에는 세계최대 규모의 국방비를 지출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세계 2위의 경제국으로 밀려난 뒤에도 미국이 계속 세계최대 규모의 국방 예산을 할애하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혹 세계 최고의 국방력 유지에 혈안이 된 미국의 태도는 오히려 중국에 전략적으로 반가운 선물이 돼주지 않을까? 중국은 소비에트 진영의 붕괴로부터 큰 교훈을 얻었다. 경제성장은 무조건적으로 군비지출에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정부는 미국이 쓸데없이 무분별하게 국방비를 낭비하는 모습에 쾌재를 부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이 중국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중국의 질주에 제동을 걸면서도 자국에 한층 이익이 될 새로운 전략수립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03년 예일대학교 연설에서 이런 전략을 암시하는 철학관을 밝힌 적이 있다. 그는 차기 슈퍼파워의 등장을 견제할 유일한 방법은 다자체제의 규범을 세우고, 슈퍼파워를 억제할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 치하에서도 여전히 중국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국제연합(UN), 세계무역기구(WTO) 등 미국이 만든 세계 다자체제를 강화하는 데 호의적이다. 사실상 중국은 그동안 다른 4개 안전보장이사회 상임국들에 비해, 훨씬 많은 수의 평화유지군을 파견해왔다. 다자간 포럼의 경우에도 앞으로 더 많은 협력의 기회를 마련해줄 수 있다. 그럼에도 그런 기회를 붙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미국의 지도층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중국(그리고 인도)의 귀환이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받아들여만 한다.   
 

 

글·키쇼어 마부바니 Kishore Mabubani
전 싱가포르 유엔대사, 싱가포르국립대 공공정책학 교수. 저서로 『L'Occident (s')est-il perdu?(서구는 패배(혹은 파멸)했는가?)』(파야르·파리·2019)를 저술했다. 본 기사는 2019년 2월 <하퍼스>지에 실린 글을 발췌한 것이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번역위원.

 

(1) ‘Summary of National Defense Strategy of the United States 2018', 미 국방성, 워싱턴 DC, http://dod.defense.gov.
(2) Graham Allison, 『전쟁을 향하여. 미국과 중국은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졌는가?(Vers la guerre. L'Amérique et la Chine dans le piège de Thucydide?)』, Odile Jacob, 파리, 2019년.
(3) Francis Fukuyama,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La Fin de l'histoire et la dernier homme)』, Flammarion, 파리, 2009년(초판: 1992년).
(4) Lawrence Mishel, Elise Gould, Josh Bivens, ‘Wage stagnation in nine charts’, <Economic Policy Institute>, 워싱턴 DC, 2015년 1월 6일, www.epi.org.
(5) Remi Castets, ‘중국의 ‘더불어 사는 삶’의 시험대에 오른 위구르족(Les Ouïgours à l'épreuve du “vivre-ensemble” chinoi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3월.
(6) Xu Jilin, 『Rethinking China's Rise: A liberal Critiqu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8년.
(7) 2018년 3월 이전까지 주석직은 2회 이상 연임이 불가능했다.
(8) Richard McGregor, 『Asia's Reckoning: China, Japan, and the Fate of US Power in the Pacifique Century』, Viking, 뉴욕, 2017년.
(9)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 연설, 신화, 2017년 10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