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를 분열시키는 민주콩고의 정치적 위기

2019-03-29     프랑수아 미세 l 언론인

콩고민주공화국에서 2년이나 미뤄졌던 선거가 실시됐다. 그러나 막상 선거의 결과는 실제 개표결과와 무관한 정치적 타협으로 만들어졌다. 드라마의 결말은 아프리카에 사상 초유의 분열을 초래했고, 이 균열은 아프리카 대륙 내 정치적 변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단 하나의 사건이었다. 2018년 12월 30일 콩고민주공화국(이하 민주콩고) 선거 조작 사건은 아프리카 전역에 분열을 일으켰다. 한쪽은 선거의 진실을 밝히려 하고, 다른 한쪽은 국가의 ‘주권적’ 결정을 존중하려 한다. 후자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이 선두에 섰다. 아프리카를 논쟁으로 들썩이게 만든 전대미문의 분열 사태는 이곳 대륙에 새로운 권력관계를 형성했다. 

1월 10일, 민주콩고 선거관리위원회(CENI)가 잠정적인 개표 결과를 발표하자마자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아프리카연합(AU)은 재집계를 요구했지만, 잇따른 민주콩고 헌법재판소의 2019년 1월 20일 판결에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사회진보연합의 펠릭스 치세케디 후보가 38.57%의 득표율로 또 다른 야당연합 후보인 마르탱 파율루(34.8%)와 조세프 카빌라 대통령의 후계자 에마뉘엘 라마자니 샤다리(23.84%)를 제치고 승리를 거뒀다. 

그런데 권위 있는 콩고가톨릭주교회의(CENCO)가 유권자 1,310만 명을 표본삼아 1월 18일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결과는 사뭇 달랐다.(1) 파율루 후보가 62.11%, 치세케디 후보가 16.93%, 라마자니 샤다리 후보가 16.88%를 득표한 것으로 추산됐다. 이미 수차례 입증된 집계방식을 적용했다. 이는 가나(2011년, 2016년), 나이지리아(2011, 2015년), 튀니지(2014년), 부르키나파소(2015년), 코트디부아르(2015년) 선거 때도 사용된 방식이다. 

사실 공식적인 수치는 카빌라 대통령과 치세케디 후보가 마지막 순간에 타협한 결과물이다. 카빌라 대통령은 자신이 내세운 후보가 당선에 실패하자, 2위를 차지한 치세케디와 협상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해 권좌를 넘겨준 것이다. 같은 시기에 CENI가 주관한 총선에서는 카빌라 대통령을 지지하는 연립여당이 총 500석 중 300석 이상을 차지하며 과반수를 훨씬 넘어섰다. 

치세케디 후보는 민주콩고 정치사에 큰 획을 그은 그의 아버지 에티엔 치세케디에 비해 영민함과 카리스마가 부족하고, 1위 후보인 파율루보다 유연한 성향을 가졌다. 자금과 학력이 부족한 탓에 수차례 카빌라 진영과 연합을 시도하기도 했다. 반면 엑손모빌 간부 출신인 파율루 후보는 통제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인물이다. 조세프 모부투(1965~1997년 집권)나 카빌라 가문과 타협하지 않는 정치행보를 고집한다. 모이스 카툼비 전 카탕가 주지사, 장 피에르 벰바 전 부통령 등 두 정치거물의 지지를 받고 있는 점 또한 그를 더욱 만만치 않은 상대로 만들었다. 권력이 누구를 선택할지는 자명했다.

정부가 선거공작을 은밀히 감추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다른 용의주도함으로 비현실적인 타협을 이끌어낸 사건이 발생한 셈이다.(2) 민주콩고 정부, 범아프리카 기구들, 남아공을 비롯한 아프리카 강대국들 사이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지에 대한 대대적인 토론이 불거졌고, 장-이브 르 드리앙 프랑스 외무부 장관이 공식수치를 비판하고 나서자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1월 10일에 잠정적 개표결과가 발표되자, 남아프리카개발공동체(SADC) 의장인 에드거 룽구 잠비아 대통령은 “심각한 의심”을 제기하며, “승자와 패자 모두 확신을 가지려면 재집계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대호수지역국제회의(ICGLR) 의장인 드니 사수 은게소 콩고 대통령도 민주콩고가 “투명한 결과를 보장하기 위해 재집계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고로 민주콩고는 SADC와 ICGLR에 모두 가입돼 있다. 한편 AU는 1월 21일에 의장인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과 대표단을 민주콩고로 보내겠다며, 명확한 입장표명을 유보했다.

이렇듯 회의적인 반응이 흐르는 가운데,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닌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이다. 그는 민주콩고가 “압력이나 내정간섭 없는” 평화적 선거를 치렀다고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다. 린디웨 시술루 남아공 외교장관은 “국제사회가 합법적 내부절차를 존중해야 한다”고 1월 14일 촉구했다. AU 대표단이 방문하기 하루 전날인 1월 20일, 민주콩고 헌법재판소는 치세케디 후보의 당선을 확정 지으며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자 남아공의 뒤를 이어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도 하나둘씩 민주콩고의 새로운 지도자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혼돈과 아픔으로 점철된 민주콩고의 역사

민주주의 관점에서 상당히 충격적인 그의 승리가 기정사실화될 수 있었던 것에는, 혼돈과 아픔으로 점철된 민주콩고의 역사적 배경이 자리한다. 민주콩고가 민주적 정권교체를 맞이한 것은 1960년 독립 이후 처음이다. 독립 이듬해에 루뭄바 총리가 벨기에 정보기관에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2001년 취임한 카빌라 대통령은 헌법에 따라 2016년 12월에 퇴임해야 했지만 ‘물리적 문제’를 내세워 대선을 2년이나 연기했다.(3) 이런 상황에서 현재로선 비록 논란이 있다 하더라도 선거가 개최된 것만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모른다.

민주주의도 중요하지만, 겨우 되찾은 안정을 유지하려는 열망이 더 컸던 것이다. 민주콩고는 규모나 현 상황을 고려했을 때 아프리카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다. 풍부한 자원만 봐도 그렇다. 아프리카 제1의 저수탑이라 할 만큼 수력발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 코발트 생산국이자 주요 구리 생산국이며, 전기차 배터리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리튬계의 사우디아라비아’가 될 몸이다. 그러나 이 유명무실한 자원대국에는 1997년, 2002년 분쟁이 남긴 깊은 상처가 새겨져 있다. 르완다, 우간다, 앙골라 등 이웃국뿐만 아니라 나미비아, 차드, 짐바브웨까지 연루돼, ‘아프리카 세계대전’이라 일컬었을 정도다. 

주변국들은 민주콩고의 인권과 안보정세가 악화되면 자국으로 난민이 몰려들 걱정에 시달리고 있다. 근거 없는 우려가 아니다. 민주콩고 키부 주는 국내외 무장단체들과 정부군(FARDC) 내 반항세력 때문에 선거를 치르기 힘들 정도로 불안정해졌다. 결국 베니, 부템보, 북부 키부 주는 선거를 치르지 못했다. 남부 키부 주에서는 부룬디 민족해방전선(FNL)과 부룬디 정부군과의 전쟁이 종종 일어난다. 인권운동가들은 이주민이 45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한다. 이 가운데 130만 명이 카사이 주민인데, 카사이 주는 FARDC와의 접전으로 2016년 이래 3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곳이다. 앙골라 쪽으로도 카사이 주민 수십만 명이 이주했는데, 특히 민주콩고 출신 ‘가림페이루(불법 금채굴업자)’가 들끓는 룬다노르트 주와 룬다술 주로 숨어들었다. 이에 앙골라는 2018년 9~12월에 자국 광물자원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이주민 40만 명 이상을 추방했다. 작전명은 ‘트란스파렌시아’(투명화)였는데, 추방된 이주민 대부분이 민주콩고 출신이었다. 

카사이 주의 루바 족 출신인 치세케디 당선자가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리란 희망이 민주콩고를 물들였다. 1월 말, 신임 대통령이 취임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때였다. 붉은 머리띠를 두른 민병대 600여 명이 AK-47소총, 엽총, 칼, 마체테(칼), 몽둥이 등의 무기를 버리고 심지어는 부적마저도 모조리 처분했다.

한편, 콩고도 콩고강 건너편 나라의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 인구가 민주콩고의 1/20에 불과한데도 난민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이민자 유입을 통제하고자 2014년 ‘음바타 야 바콜로’(연장자의 손찌검) 작전을 통해 민주콩고 출신 불법난민 17만 9,000명 이상을 강제 추방했다. 2018년 12월 중순, 민주콩고 마이은돔베 주의 윰비 지역에 분쟁이 발생하자 당시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이곳도 선거를 치르지 못한 지역이다. UN 난민고등판무관에 의하면, 이번 분쟁으로 최소 890명이 살해되고 1만 6,000명이 콩고로 피난했다. 르완다에서도 민주콩고 난민이 몰려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르완다는 2018년 12월 말에 민주콩고 난민 7만 9,000명 이상을 받아들였다.(4)

난민을 기피하는 분위기 속에서, 남아공은 민주콩고 선거를 인정함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국가주권을 중시하고 내정간섭 및 제국주의를 적대시하는 외교방침을 재확인한 것이다. 2019~2020년 임기 UN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출된 남아공은 내정불간섭의 원칙이란 명목을 내세워, 프랑스가 민주콩고 선거를 논의하기 위해 1월 4일 주최한 회의를 무산시켰고, 자연히 공동성명도 채택되지 못했다. UN 회원국 중에 남아공을 지지하는 나라는 코트디부아르, 적도기니 등 두 곳이다. 

이런 태도는 일종의 냉소주의가 아닐 수 없다. 치세케디 후보의 대통령 당선도 사실상 카빌라 전 대통령의 영향력 안에서 벌어진 일이다. 카빌라는 18년간 남아공과 타협적인 관계를 맺어왔다. 

2013년, 남아공 전력공사 에스콤에 잉가댐 3호가 생산한 전력 2,500mW 이상을 공급한다는 국제협약을 맺기도 했다.(5) 이는 총생산전력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규모다. 또한, 수많은 남아공 기업에 입찰도 거치지 않고 석유개발권을 허가했다. 이중 살롱가국립공원을 침범하는 개발권도 있었다. 이렇게 남아공은 중국에 이은 제2의 수출국 자리를 지켜왔다. 민주콩고에서 생산한 구리와 코발트는 지금도 남아공을 거쳐 수출된다. 앙골라의 벵겔라 항구와 나미비아의 웰비스베이 등 충분히 경쟁력 있는 대안이 있는데도 말이다. 

민주콩고 드라마의 결말은 AU 입장에서 명백한 모욕이다. 1963년 창설된 아프리카통합기구(OAU)의 맥을 잇는 AU는 “투명하고 신뢰성 있는 선거는 참여적·민주적 거버넌스의 기본권과 보편적 권리를 보장하는 열쇠”라고 2002년에 선언했다.(6) 또한 선거위원회의 독립성, 선거의 원만한 진행, 공공자금 사용을 평가할 사찰단을 파견한다는 계획도 언급했다. 그러나 실제론 대부분의 역할을 지역 하부 기관들에 전가하고 있는 현실이다.

AU가 민주콩고 선거에 개입한 것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아프리카의 위기를 해결하려는 전례 없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물론 AU 의장직을 맡았던 르완다 대통령 폴 카가메의 정치적 성향도 이 시도와 관련이 있다. 카가메(투치족 출신)는 자신이 반감을 품고 있는 카빌라(후투족 출신)가 후투족 반군을 민주콩고에 받아들였다고 비판했다. 이는 카빌라가 12월 15일에 북부 키부 주의 부나가나 마을에서 민주콩고 정부군에 의해 체포된 르완다해방민주세력(FDLR, 후투족)의 대변인인 이그나스 은카카 대령과 정보부장인 테오필 아베가 중령을 특별사면하기 위한 제스처였을 것이다. 

결국 아프리카는 17%의 득표율도 채우지 못한 후보의 승리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과연 민주콩고 국민들 또한, 파율루 후보가 ‘쿠데타’라고 규정한 선거를 용인할 수 있을까? 
 

글·프랑수아 미세 François Misser
언론인

번역·이보미
번역위원

 

(1) François Misser, ‘L’Église congolaise contre Kabila(가톨릭, 조세프 카빌라에 대항하는 콩고의 마지막 보루)’,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4월호‧한국어판 2018년 5월호.
(2) Tierno Monénembo, ‘En Afrique, le retour des présidents à vie(포스트 식민주의에 물든 아프리카 ‘올드보이들’의 귀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5년 12월호.
(3) Sabine Cessou, ‘Transition à haut risque en République démocratique du Congo’,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6년 12월.
(4) République du Congo. Les expulsions collectives de ressortissants de la la RDC pourraient constituer des crimes contre l’humanité’, <Amnesty International>, 2015년 7월 2일.
(5) François Misser, ‘La Saga d’Inga. L’histoire des barrages du fleuve Congo’, <L’Harmattan> - Musée royal d’Afrique centrale, coll. ‘Cahiers africains’, Paris-Tervuren(Belgique), 2013년.
(6) Déclaration sur les principes régissant les élections démocratiques en Afrique, <OUA/UA>, Durban, 2002년 7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