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문화와 다문화 만나게 하라

[Corée 특집] 세습, 다르게 대면하기

2010-11-05     박영자/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연구교수

김정일의 3남 김정은(1984년생)이 예측대로 ‘김일성 민족’(1995년 김정일이 공식화한 민족 담론)을 이끌 주체로 등장했다. 북한의 3대 세습이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단지 북한 내부의 권력 구조·이동 문제가 아닌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미래와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자본과 노동의 지구화, 세계의 공장·물류지가 된 아시아, 노동·결혼·교육 등으로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이동 등이 북한을 건너뛰고 생각하기에는 그 속도가 빠르고 지급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남북한·동아시아의 공간 횡단

현 시기에 지구화의 양대 특성은 ‘지구적 역동성’과 ‘지역생활세계’다.(1) 21세기는 생태환경·인간사회·문화의식까지 포괄하며, 초국적 차원에서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고 있다. 재생될 수 없는 자연자원 고갈, 문화적 갈등과 소외 확산, 사회 균열 다원화 등은 20세기 말 이후 약해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과다한 짐을 진 국가권력의 정치적 통제로는 해결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시장이 정치적 통제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순 없다. 시장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현실 축에 따라 가격 코드로 읽혀진 메시지에 반응할 뿐, ‘더 나은 인간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혁신과 조정 가치를 제시할 순 없다. 시장이 가리키는 가격 코드는 ‘생존을 위한 경쟁 방향’을 보여줄 순 있지만, ‘오늘의 위험을 줄이고 더 나은 내일을 향한 삶의 방향’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 남북한, 동아시아라는 공간 구획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전망하기 위해 무엇에서 시작해야 하는가? 필자는 ‘보편적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가치’를 제기한다. 인간이 원하는 수많은 가치 중 기본적인 가치는 생존, 웰빙, 자유, 정체성이다. 이 가치들은 인간이라는 유기체가 삶을 지속하는 데 보편적으로 필요하다. 이것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보편적 인간의 삶과 존엄은 상실될 수 있다. 이 기본적 필요 가치들이 다른 가치보다 더 깊게 인간의 삶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2)

이런 의미에서 하버마스가 제기한 지구적 역동성과 지역생활세계는 평화학자 요한 갈퉁이 주장한 ‘공간을 가로지르는 접근으로서의 발전’(3)이란 인간에 대한 전체론적 시각과 맞닿아 있다. 이 시각에 연계된 세 가지 가치가 △보편적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 필요 충족 △다양성 △공생이다. 다양성과 공생은 민주주의의 두 기둥으로서, 이것이 작동되는 정도는 한 사회의 체제 성숙도를 나타낸다. 다양하고 공생적일수록 수많은 위기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자기정화 능력이 높기 때문이다. ‘전위당 지도’와 ‘계획경제’를 운영 원리로 한 20세기 사회주의국가들이 뚜렷한 체제 전망 없이 이행 체제로 급전환된 주요 이유도 이 3대 가치를 실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3대 가치는 시대와 공간을 넘어선 보편적 인간 공동체 운영의 핵심 가치로 ‘공간을 가로지르는 인류 발전 전망’의 바탕이다.

다양성과 공생 발전, 불가능한가?

그렇다면 식민의 역사를 경험하지 않았던 제국으로서, ‘네이션’(Nation)이 곧 국가이자 민족이기에 그 구별의 유의미성이 낮은 라틴어·영어권 국가들에서 논하는 차이의 인정과 관용, 코즈모폴리턴 전망을 우리도 그대로 수용해야 하는가? 이쯤에서 필자는 김대중·노무현 정부하에서는 ‘남북협력론’에 의해, 이명박 정부하에서는 ‘북한 비상사태·붕괴론’에 의해 의사소통의 공론장에서 밀려난 민족과 통일 문제를 우리 공동체의 역사·현실·전망과 연계해 재호명할 것을 제안한다.

아래로부터의 근대국가를 수립하려 한 동학혁명을 일본군에게 진압하도록 허용한 부패하고 무능력한 조선 왕조의 패퇴와 그 후과로 40여 년의 식민사를 경험했고, 외부에 의한 불완전한 해방과 국민국가의 수립 및 분단과 6·25 전쟁을 경유하며 60년 이상 다양성과 공생을 모색할 수 없었던 한반도의 정체성을 재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의 퇴물로 인식되는 민족 담론·가치의 재구성이기도 하다.

단지 한반도의 특수성 때문만은 아니다. 차이의 인정과 관용의 정신으로 다문화 정책이 발전했다는 선진 자유주의국가 역시 다문화 가치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2000년대를 경유하며 민족주의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요구와 함께 네이션의 재호명을 추진하고 있다. 다문화주의의 후퇴가 이론과 정책 수준 둘 다에서 떠올랐기 때문이다. 특히 호주, 네덜란드, 영국이 대표적이다.(4) 미국·유럽·일본 등에서도 차이는 있지만 신민족주의가 부흥하고 있고, 톨레랑스의 프랑스에서도 2009년 대국민 국가정체성 관련 조사를 할 정도로 구별짓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그러므로 보편적 인간의 필요 가치로서 세계시민성과 한반도 특수성에 기초한 민족성의 재성찰을 통한, ‘단일문화와 다문화 분리를 넘어선 다양성과 공생 발전의 연대 가치’를 제기한다. 보편적 인간의 필요 가치를 실현하는 생활양식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부패왕조의 인민 배제→식민→전쟁과 분단→동원과 감시의 규율사회 및 적대적 갈등→소통의 불가능성과 정치권력 중심성→불완전한 정치 민주화와 부의 독재 심화→정치·경제 권력의 탐욕’ 등 한반도의 특수성을 재성찰하며, 공생 발전의 인간 공동체를 창출하려는 전망의 발굴이다.

먼저 필자는 민족 담론을 재구성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민족 개념이 형성된 유럽 민족주의는, 기독교의 절대신에 의해 정신·문화적으로 하나로 묶인 상태에서 이루어진 신분제적 절대위계를 극복하려는 계몽주의적 자유·평등·인권의 시도였다. 반면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민족주의는 오랜 농경문화의 생활 공동체에서 형성됐다. 한반도를 보면, ‘구한말 위정자들의 왕조 권력 지탱의 탐욕→동학→대한제국의 몰락과 식민 시기’를 경험하며 동의할 수 없는 권력에 대한 저항의식 및 자유·자립의 주체의식에서 민족주의가 발전했다. 따라서 식민 시기를 경험한 공동체에서 민족주의는 대개 역사·문화를 공유하는 인간 공동체로서 긍정적 이미지가 강하며, 국가주의는 지배·동원-규율·감시의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분단국가를 수립한 뒤 소수 권력자들의 이해에 따라 남북한 공히 민족주의가 경쟁과 배타의 지배 담론으로 진전됐지만, 민족은 한반도의 현재와 미래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직까지 살아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민족주의가 사회주의·자유주의와 달리 독립적인 현실 해석과 체제 전망을 밝히지 못하는 2차 이데올로기인 ‘상상물’이기에 더욱 그 유효성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민족에 대한 우리의 현실 인식은 어떠한지, 전망과 연계해 누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만드는가다.

민족주의가 배타적이라는 오해

대개 한국인들은 ‘단일민족주의와 순혈주의가 강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이질적 문화를 지닌 이주민에 대한 포용성이 낮거나 배타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2010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 민족주의가 상식적으로 논하는 것만큼 강할까? 민족 정체성의 한 구성 요소가 탈이념성이라고 할 때, 한국인, 특히 30대 이전 세대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북한(북한 주민)에 대한 무관심이나 통일에 대한 거부감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2007년 한국여성개발원이 ‘다문화 사회에 대한 한국인의 의식’을 조사한 결과, 한국인의 혈통주의적 정체성은 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혈통·민족보다는 정치적·실용적 근거에 의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다.(5) 같은 자료에 기초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탈북 이주민에 대한 적극적 조치에 부정적 인식이 강하고 정부 지원을 불평등하다고 의식하며, 미국이나 서유럽 출신에게는 개방적이지만 동아시아 저발전국 출신에게는 배타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20~30대에서 민족의식이 유의미하게 낮아, 이런 결과가 최근 정체성 변화를 반영한 것인지 순혈주의 의식이 단지 신화에 불과했음을 보여주는지를 두고 고민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6) 최근 발표된 다양한 국민의식 조사에서도 이와 유사한 결과가 나오고 있다.

그러므로 민족주의 때문에 다양성이 인정되지 않고 사회 통합에 장애가 있다는 생각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지구화·지역화 진전과 더불어 이미 다문화 사회로 진입한 한국 사회가 단일민족 문화를 강화할 수도 없고, 강화할 필요도 없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는 단일문화주의와 다문화주의의 분리를 넘어선 새로운 민족 연대성 구성, 인간 공동체의 다양성과 공생 발전의 가치를 제기하는 것이다. 단일문화와 다문화의 바탕이 되는 ‘민족성’과 ‘세계시민성’이 대립되는 개념인가? 이 둘은 제로섬게임의 양축이어서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분리 개념인가? 이에 대한 성찰 과정에서 필자는 ‘아니다’라는 답에 도달했다.

민족성과 세계시민성을 조화한다면

인간의 생활·역사·문화 공동체로서 민족은 아직까지 한반도의 현재와 미래의 다양한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살아 있는 ‘연대의 힘’을 가졌다. 그러나 6·25 전쟁과 적대적 분단질서 60년사에서 남북한 소수 권력의 체제 유지 및 강화 전략에 따라 상징이 조작된 민족의식은 재구성돼야 한다. 그 방향은 ‘소수 권력자가 아닌 다수 일상인에 의해’, ‘위가 아닌 아래로부터’, 생존·웰빙·자유·정체성 등 ‘보편적 인간의 필요 가치’에 따라 만들어져야 한다.

한반도의 민족적 연대와 세계시민의 보편적 필요 가치의 조화가 요구된다.(7) 그래야만 민족의 연대 가치는 정당성과 유효성을 가질 수 있다. 민족성과 세계시민성은 분리된 개념이 아니며, 세계적 발전 가치와 동떨어진 민족의 가치란 결국 도태되기 때문에 분리시켜서도 안 된다. 즉, 다수 생활인의 욕구와 공생·연대 의식에 기초해 단일문화·다문화 분리를 넘어서 보편적 인간의 필요 가치와 함께하는 민족 공동체를 창출해야 한다.

그럼 다시 현실로 돌아와보자. 북한의 3대 세습은 북한이 알아서 할 문제인가? 필자는 앞서 서술한 ‘보편적 인간의 필요’와 ‘다양성·공생·연대’ 가치를 기준으로 이에 대해 ‘아니다’라고 답한다.

글•박영자
정치학 박사. 북한의 정치·사회와 체제를 연구하고 있다.

<각주>
(1) Jurgen Habermas, Toward a Cosmopolitan Europe, Journal of Democracy, Volume14, n°4, pp.86~100, 2003.
(2) Johan Galtung, Transcend Transform: An introduction to conflict work, London: Pluto Press, p.2, 2004.
(3) 요한 갈퉁,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 들녘, p.390, p.406, 2000,
(4) Christian Joppke, <The retreat of multiculturalism in the liberal state: theory and policy>, The British Journal of Sociology Volume 55 Issue 2, p.237, 2004.
(5) 김이선 외, <다민족·다문화 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정책 패러다임 구축(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07.
(6) 최현, ‘한국인의 다문화 시티즌십’(Multicultural Citizenship), <시민사회와 NGO> 제5권 제2호,  p.147, 2007.
(7) Ulrich Beck, <Power in the Global Age: A new global political economy>, Translated by Kathleen Cross, Cambridge, Malden, Polity Press,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