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에서 일어난 발칸인들의 시위 - 변두리 유럽을 휩쓴 저항의 바람

2019-03-29     장아르노 데렝스, 시몽 리코 l <쿠리에 데 발칸> 기자

2018년 12월 8일 이후 세르비아에서는 주말이면 수십만 명의 시민이 알렉산다르 부치치 정권을 규탄하기 위해 거리를 가득 채운다. 알바니아에서는 에디 라마 사민당 정권이 학생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빅토르 오르반이 집권한 헝가리에서도 시민의 분노가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모든 중앙유럽의 시민들이 동일한 정책에 불만을 품고 속속 결집 중이다.

 

올겨울 세르비아에는 새봄이 찾아왔다. 수십만 명의 시민이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정권을 규탄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1996~1997년과 비슷하게, 토요일마다 수많은 시위행렬이 베오그라드 거리를 가득 메운다. 2018년 12월 8일 처음 표출된 알렉산다르 부치치 대통령의 독재적이고 반사회적인 정책에 대한 반발은 이제 세르비아 도시 전체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베오그라드에서는 정권의 언론통제를 여실히 보여주는 상징물, 세르비아 국영방송사(RTS) 본사 앞을 긴 시위 행렬이 점거했다. 이번 시위대를 하나로 결속시킨 요구사항 중에 “RTS 뉴스의 공정보도”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시위대는 2018년 1월 16일 피살당한 코소보의 세르비아계 야당 정치인 올리베르 이바노비치의 죽음을 둘러싼 진상규명과 내무장관의 퇴진도 요구하고 있다. 1월 말, 영화배우 브라니슬라브 트리푸노비치는 “세르비아인은 30년 전에도 자유와 정의를 찾기 위해 거리로 나서야 했다. 이번 시위는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다. 이 기회마저 날려버린다면 이 나라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라며 목소리를 드높였다. 그는 베오그라드에서 시위 행렬이 가두 행진을 시작할 때면 짤막한 연설로 시위대를 독려하는가 하면, 현재 조용히 침묵만 지키는 각 원내 야당 지도자들을 향해서는 엄중한 경고를 날리기를 잊지 않는다. 세르비아좌파당(Levica Srbije) 대표 보르코 스테파노비치는 “시민들은 이제 기존에 집권했던 부정부패에 찌든 모든 정당들을 거부한다”고 말했다. 스테파노비치는 사실상 18년 11월 23일 쇠파이프 피습 사건의 피해자(괴한의 공격을 받고 머리 등을 다쳤다-역주)이자, 이번 시위의 도화선 역할을 한 인물이다.

시민의 불만은 비단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2000년대 집권한 여러 ‘민주주의’ 야당들도 현재 부치치가 추구하는 것과 비슷한 종류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해왔다. 인종차별주의적이며 호전적인 극우파 출신으로, 십여 년 전부터 유럽통합의 기수로 등장한(2025년 세르비아의 EU 가맹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새로운 베오그라드의 주인은 소수의 특권층에 기대어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 그의 보좌관들은 모든 이념의 좌표를 훌훌 벗어던지고, 그저 신속히 부를 쌓는 데만 혈안이 돼, 온갖 탄압과 후견주의를 바탕으로 국민의 고혈을 빨아대기 바쁘다.

최후의 야당성향 매체로 통하는 주간지 <브레메>의 기자 조바나 글리고리예빅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현 시위는 마침내 시민들의 두려움을 몰아냈다. 그동안 세르비아 시민들은 공연히 정권을 비판했다가 일자리를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그러나 이런 억압의 장벽에 서서히 균열이 가고 있다. 유럽연합 국가들은 부치치가 어떤 식으로 세르비아를 통치하고 있는지 잘 알지만, 그만이 오로지 세르비아나 혹은 역내의 안정을 담보할 유일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유럽연합의 지지를 기대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 상황은 1996년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1995년 12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쟁 종식을 위한 데이턴 평화협정이 체결된 직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는 서구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때처럼 지금도 서구는 부치치가 하심 타치 코소보 대통령과 ‘역사적인’ 협정을 맺고 코소보 문제를 해결할 인물이라고 기대한다. 이 세르비아의 국가수반은 1월 중순 고국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성대하게 맞이하는 등 푸틴과의 돈독한 관계를 만방에 과시하며 서구인들 사이에서 몸값을 올리는 아주 탁월한 재주를 발휘했다. 특히 그는 2012년 부총리로 국정 운영에 참여하게 된 직후에는 노동법 해체 등 세르비아 경제의 신자유주의 전향을 가속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노동유연화’와 새로운 세대의 등장

안전요원들이 걸치는 노란 조끼를 착용한 베오그라드의 한 학생은 “우리는 제발 정상적인 나라에서 살고 싶다. 오늘날 진보당원증이 없으면 일자리를 구하기도, 사업을 시작하기도 너무나 어렵기만 하다. 그래서 모두가 고국을 떠나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모든 발칸반도 국가들도 그렇지만, 현재 세르비아도 엑소더스 수준의 이주 물결로 몸살을 앓고 있다.(1) 그런 상황 속에서도, 아나 브르나비치 총리가 이끄는 내각은 연일 성장률 증가와 일자리 확대를 자찬하기에 바쁘다. 그러나 정부가 올린 성적은 기껏해야 외국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정부 지원금에 힘입은 결과에 불과하다. 게다가 외국기업들은 세르비아 정부가 주는 보조금을 챙긴 뒤 훌쩍 다른 나라로 떠나버리기 일쑤다. 

가장 최근의 예가 한국의 전선제조업체 유라코퍼레이션이었다. 이 회사는 레스코바츠 공장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 데 대해, 1인당 7,000유로의 지원금을 챙긴 뒤 부리나케 알바니아로 일부 생산시설을 이전해버렸다.(2) 최근 이처럼 발칸반도 지역에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생산시설들의 경우, 노동법은 쉽게 무시된다. ‘노동유연성’은 예사로 통하며,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월 200~300 유로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12월 알바니아에서는 공산주의 몰락 후 가장 큰 규모의 학생 시위가 일어났다.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이번 등록금인상 사태는 사실상 대학경쟁화 및 시장개방과 관련한 법률(지난해 에디 라마 사회민주주의 정권이 통과시킨 법률로 유럽연합의 대대적인 환호를 받기도 했다)이 배경이 돼 발생했다. 사실 2013년 집권한 라마 총리가 알바니아를 ‘현대화’하기 위해 생각해낸 비책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것은 바로 친사회당 기업가들의 배를 순식간에 불러줄 민관협력이었다. 

학생들의 분노는 분명하게 이런 정부의 방종을 정조준하고 있으며, 1991년 스탈린주의 공산체제가 붕괴한 이후 알바니아를 집권한 두 정당, 다시 말해 사회당과 그 적수인 민주당 모두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25년간 정부는 언제나 공공은 나쁜 것으로 폄하하고, 민간은 온갖 미덕으로 치장하기 바빴다. 그러나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는 것을, 학생시위를 통해 전문가들은 확인하고 있다. 마침내 새로운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라마 총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학생들의 요구에 여러 차례 무릎을 꿇고, 2018년 12월 28일 내각의 절반을 경질하는 등 후퇴하는 처지가 됐다. 알바니아에서는 경제활동인구가 계속 해외로 이탈 중이다(알바니아인은 프랑스에 망명신청을 가장 많이 하는 국민에 해당한다). 한편, 저항에 나선 학생들은 “내 나라에서 일하고 살 수 있게 해달라”며 목소리를 드높인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내 세르비아계 자치령인 스릅스카 공화국에서는, 수천 명의 시민들이 2018년 3월 17~18일 밤 의문사한 다비드 드라기체비치의 죽음을 둘러싼 진상규명과 정의구현을 요구하며, 밀로라드 도딕 정권에 주기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12월 말, 정부는 모든 집회를 금지하고 수십 명을 연행했다. 한편, 눈 위에 계속 초를 꽂으러 찾아드는 시민들을 해산하기 위해 진압경찰까지 투입했다. 오래전부터 서구의 지지를 받아 온 도딕(3)은 정권을 향한 모든 비판에 대해, “세르비아를 뒤흔들기 위한 수작”이라며 맹렬히 비판한다. 이것은 모든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의 민족주의 정당들이 종종 애용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즉 모든 불만을 부차적인 사안으로 만들기 위해 공포를 조장하며 끊임없이 위기를 양산해내는 수법이다.

모든 발칸반도 국가의 시민들은 이런 민족주의적이고 호전적인 수사학에 어느새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2014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시민총회(플리넘) 운동(4)에서, 2016년 미완성으로 끝난 마케도니아의 ‘색깔혁명’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똑같은 종류의 깊은 열망이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유럽 내 경제적·사회적 소외 상태를 벗어나, 어떻게든 고국에서도 인간답게 살아갈 가능성이 활짝 열리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이는, 현재에도 거대한 탈출행렬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처음에는 서유럽행을 꿈꾸며 이주 길에 오른다. 

그러나 대개는 헝가리, 슬로바키아, 체코 등에 주저앉고 만다. 이 나라들은 최근 몇 년간 서구기업에 저임금, ‘유연한’ 노동권(박스기사 참조) 등을 제공하는 하청공장들이 대폭 증가하면서, 새로운 변두리 유럽 공업지대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책에 대한 불만은 언제든 지역 전체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이 지역 시민들은 어느덧 평생 착취에 시달리며 쇠퇴의 길을 걷는, ‘2류 유럽인’으로 살아가는 데 진절머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글·장아르노 데렝스, 시몽 리코 Jean-Arnault Dérens, Simon Rico
<쿠리에 데 발캉> 기자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번역위원.

 

(1) Jean-Arnault Dérens. Laurent Geslin, ‘Cet exode qui dépeuple les Balkans(발칸반도를 떠나는 대규모 엑소더스 물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8년 6월호. 
(2) Nikola Radić, ‘Serbie: les Sud-Coréens de Yura (re)délocalisent en Albanie(세르비아: 알바니아로 (재)이전하는 유라의 한국인들)’, <Le Courrier des Balkans>, 2018년 9월 26일.
(3) ‘2010~2018년 스릅스카 공화국 대통령을 지낸 밀로라드 도딕은 2018년 10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대통령위원회 위원(중앙정부의 대통령 위원 3인은 각각 보스니아계,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계 출신으로 채워지며, 이들 3명의 위원은 8개월씩 번갈아가며, 국가원수인 대통령 위원회 위원장을 맡는다-역주)에 선출됐다. 그는 임기가 끝난 뒤에도 여전히 세르비아계 자치정부의 명실상부한 지도자로 남아 있다.
(4) Jean-Arnault Dérens, ‘La Bosnie enfin unie… contre les privatisations(마침내 하나가 된 보스니아… 민영화에 반기를 든 덕분에/ 한국어판 제목: 그래도 발칸의 봄은 찾아온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4년 3월호‧한국어판 4월호. 
                   

“우리는 노예가 될 수 없다!”

헝가리에서는 지난 1월 1일 시행된 노동시간 ‘유연화’ 법률이 전례 없는 저항운동과 노조 각성의 도화선이 되고 있다. 1989년 이전까지 오랫동안 일당체제와 연계되었으며, 이후로 저조한 가입률(전체 노동자의 9%)을 면치 못하고 있는 노동단체들이 어느새 정치 무대 전면에 복귀했다. 신세대 노조 지도자들은 빅토르 오르반 총리의 권위주의적인 통치 스타일과 ‘노예’법에 맞서기 위해 부다페스트에 수천 명의 시민을 결집하는 데 성공했다.

새 법률에 의하면, 경영주는 이미 주 40시간제로 일하는 노동자에게 연간 400시간까지 추가노동을 요구할 수 있다(이전에는 연장노동 허용시간이 250시간이었다. 더욱이 1990년대 초에는 대개 노동연장 시간이 144시간에 불과했다). 게다가, 수당지급도 최장 3년까지 유예할 수 있다. 헝가리 최대 노동자단체인 헝가리 전국노동조합연맹(MaSZSZ)은 이 새 노동법에 대해 “노동조건을 상당히 악화시키고, 노동자 착취 수준을 높이는”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2010년 피데스(헝가리시민동맹)당이 재집권한 이후 헝가리에서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수십 개 지방 도시에서 수백 명의 시민이 결집에 나선 것이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치고 있다.

“우리는 노예가 될 수 없다!”

민중을 ‘신자유주의’로부터 보호하는 수호자가 되겠다며 그동안 유럽연합,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등을 정조준해온 오르반 총리는 도리어 노동자의 권리를 제한하고, 노동조합을 주변부로 밀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노동법 손질에 열을 올려온 것이다. 그는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이 늘 하던 말처럼, “더 많이 벌기 위해 더 많이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제 “어리석은 행정상의 걸림돌을 제거”하겠다고 주장한다. 우연의 일치였는지, 이 법률이 채택된 지 3일 후인 12월 15일,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헝가리 대통령을 접견했다. 물론 방문목적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이 법은 역내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헝가리가 겪고 있는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피데스당이 내놓은 해법이다. 여러 인구학자들이 추산한 바에 의하면, 2010년 초 이후 고국을 떠난 헝가리인은 (전체 인구 980만 명 중) 6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가운데 35만 명이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로 일하러 떠났다.(1) 사실상 헝가리는 “준비가 잘 돼 있는 폴란드인이나 체코인, 혹은 우크라이나인에게 노동시장을 개방하겠다”고 밝힌 독일 같은 나라와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헝가리 경제부장관이 바라는 것처럼, “문화적으로 동화가 가능한 노동자들”을 충분히 끌어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노동자와 노조의 적극적인 행동 가능성을 높인다.(2) 가령 아우디 노동자 1만 3,000명은 1주일에 걸친 역사적인 파업 끝에 1월 31일 마침내 18% 임금인상안을 쟁취해냈다. 그보다 조금 앞서, 메르세데스벤츠 노동자 4,000명이 조립라인을 중단시키지도 않고서 20%의 임금을 인상 받을 수 있었다. 한편 보쉬의 노동자 7,000명도 협상을 시작한 지 불과 6시간 만에 경영진에 모든 요구사항을 관철시켰다. 

이번 노동법 개정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추가노동이 잦은 공무원 집단이다. 그들은 노동계의 이런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호시탐탐 총파업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일례로, 교사노조와 경찰노조는 파업위원회를 구성했다.  
 

 

글·코랑탱 레오타르 Corentin Léotard
<쿠리에 듀롭 상트랄> 기자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번역위원

 

(1) Corentin Léotard et Ludovic Lepeltier-Kutasi, ‘Un fonds de commerce pour les nationalistes hongrois(헝가리 인구 민족주의의 공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8년 6월호.
(2) Philippe Descamps, ‘Victoire ouvrière chez Volkswagen 경제 주권을 외치는 중앙유럽 노동자들(박스기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7년 9월호‧한국어판 2017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