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에 ‘불복’ 전략으로 맞서라

2019-03-29     토마 게놀레  정치학자

유럽연합에 불복해야 하는가? 만약 불복해야 한다면, 어떤 방법이 있는가? 유럽의 좌파세력은 현행조약들이 사회적 진보정책을 제재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이에 맞서는 전략 역시 별다른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의 전임 재무장관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초국가적 운동만이 유럽연합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프랑스 앵수미즈의 후보인 토마 게놀레는 유럽연합 조약들의 즉각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유럽연합(EU)은 회원국들에 집단의 의사를 무조건적으로 강요하는 초국가 기구가 아니다. 또한, 유럽의 통치권을 쥐고 있는 연방국가도 아니다. 실상 유럽연합은 하나의 국제기구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그랬던 것처럼, 유럽연합 역시 여러 협약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사실 유럽연합 회원국의 통치권은 회원국 각자에 있으며, 이들이 유럽연합의 규정을 준수하는 것은 단지 유럽연합의 협약들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럽연합의 규정에 불복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이런 불복을 선택적 이탈권 혹은 옵트아웃(Opt-outs)이라고 한다. 개별 회원국은 유럽연합의 일부 규정을 따르지 않겠다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먼저 개별 회원국은 협약체결 초기에 옵트아웃 행사 여부를 협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국경개방을 정한 암스테르담 조약(1997)이 체결되면서 솅겐 협약(유럽 국가들 내에서 비자나 여권 심사 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정한 협약-역주)이 유럽연합 규정으로 통합됐다. 그러나 영국과 아일랜드는 이 규정을 따르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초기 옵트아웃 협상에 해당한다. 또한 협약체결 후 추후에 옵트아웃을 행사할 수도 있다. 

유럽연합 사회법에 옵트아웃을 행사한 영국이 바로 이런 경우다. 개별 회원국은 교섭과정을 거치지 않고 옵트아웃을 결정할 수도 있다. 2003년에 스웨덴은 유로화 채택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투표 결과, 유권자의 56%가 유로화 가입에 반대했고 스웨덴은 유로화를 도입하지 않겠다고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유럽위원회)에 고지했다. 이것이 바로 교섭과정 없는 ‘옵트아웃’이라 할 수 있다. 유럽위원회는 스웨덴의 결정에 전격적으로 대응했고, 이를 즉시 합법화했다. 

다소 노골적이라 할 또 다른 형태의 불복은 유럽연합 규정을 무시하고, 강대국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모든 제재를 회피하는 것이다. 독일이 이 경우에 해당하는데, 독일은 조세 및 소셜 덤핑을 이용해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2014년 독일의 흑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7.7%에 달했다.(1) 이는 유럽연합 회원국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3년 평균 국내총생산의 6%를 초과할 수 없다는 유럽연합 규정에 어긋난다. 따라서 유럽연합법 제1176/2011호에 따라 독일은 마땅히 제재를 받아야 한다. 

옵트아웃이라는 불복 방법에 덧붙여, 새로운 조약을 구상하는 방안도 있다. 1992년 마스트리흐트 조약(유럽연합의 탄생을 승인한 조약)이 체결된 이후, 암스테르담 조약(유럽 통합에 대한 기본 조약), 니스 조약(유럽연합 확대와 신규 회원국 가입에 따른 제도개혁을 합의한 조약), 리스본 조약(유럽연합 개정 조약)뿐 아니라 예산 관련 조약이 잇따랐다. 달리 말해, 새 조약의 체결이 절대 불가능할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평균 5년마다 새 조약이 탄생한 것이다.  

 

새로운 형식의 유럽, 언제든 가능하다!

새로운 형식의 유럽은 전적으로, 언제든지 건설될 수 있다. 유럽에는 유럽연합이라는 기구만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에는 그 기능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으면서 서로 중복되거나 병존하는 기구들이 여럿 있다. 일례로 유럽연합 말고도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등을 언급할 수 있겠다. 유럽연합과 유럽평의회(민주주의와 인권 수호, 법치를 위해 힘쓰는 유럽의 국제기구. 각국 정부에 정책 지침을 제공하나, 구속력 있는 법률을 제정하지는 않는다-역주)가 공존하듯, 여러 기구가 나란히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브렉시트는 중대한 옵트아웃의 행사나, 유럽연합 전체를 위한 새 조약의 채택을 협상하는 일이 불가능함을 입증하는 사례로 볼 수 없다. 실제로 영국이 국민투표 결과 52%의 찬성으로 유럽연합에서 일방적 탈퇴를 결정하기 전까지, 이와 관련한 논의는 전혀 없었다. 

현행 유럽연합 조약 및 이전의 모든 조약은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만장일치로 동의해야만 변경할 수 있으며, 아예 개정 절차를 고려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 개혁이 절대 불가능하다고 미리 단정하는 것은 오류다. 과거의 사례를 보면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만장일치의 개정 절차를 활용하는 대신, 여러 조약들을 겹겹이 체결함으로써 돌파구를 마련했다. 앞서 설명한 불복종 전략은 프랑스 앵수미즈의 주요 교섭 상대인 다른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정부를 상대로 한 하나의 외교적 전략이다. 모든 국가는 잠재적으로 동맹인 동시에 적국이다. 다시 말해 우리 당은 세력관계 및 변화무쌍한 동맹 관계 두 측면 모두에 기초한 협상절차에 돌입할 것이다. 우리의 교섭 상대들도 입을 굳게 다문 채 멍하니 있지는 않을 것이므로, 협상의 최종결과물은 우리가 시도한 상호작용의 결실이 될 것이다. 따라서 예측가능한 시나리오를 몇 가지 준비해둠으로써 모든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유럽연합의 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프랑스 앵수미즈나, 지지기반이 더 넓은 정치권력이 투표를 통해 권력을 잡는 날이면, 이 전략은 시행이 개시될 것이다. 이렇게 새로 집권한 정부는 유럽연합의 다른 회원국들에 현행 조약을 대체하는 유럽연합 재건 조약을 채택하자고 제안할 것이다.(2) 이 제안에는 우리가 필요하다고 보는 생태학적·사회적 변화가 포함될 것이다. 우리가 제안하는 경제 및 에너지 시스템의 생태학적 전환은 계획을 통해, 의무적으로 시행돼야 한다. 일반적인 농업정책은 생산력 위주의 농업에서, 농민 본인이 환경에 책임을 지는 농업으로 전환돼야 하며 이는 쿼터제에 기초해야 한다. 또한 유럽의 연대적 보호주의를 수립해야 한다. 즉 다른 경제 대국들에 새로운 공정무역 조약을 제안하고, 생산 및 운송의 경제적·사회적·생태학적 여건에 따라 수입에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 

또한 긴축재정을 강요하는 조항을 폐지하고, 유럽연합 전체에서 조세 및 사회적 통합을 다시금 추진해야 한다. 공공 서비스를 과점시장으로 변질시켜버리는 강제적 민영화 정책은 중단돼야 하며,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이미 민영화의 영향을 받은 서비스들을 다시 국유화해야 한다. 시민 감사제도를 통해 ‘악성 부채’ 비율을 평가하려면 공공부채 상환에 대한 모라토리엄이 필요하다. 각국 정부들에 대한 유럽중앙은행(ECB)의 간섭과 지배도 사라져야 한다. 통화정책의 우선순위는 완전 고용, 생태학적 이행, 그리고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부채상환이 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금융 시스템을 통제하려면 단기성 외환거래에 대한 과세(토빈세)와, 상업은행 및 위탁은행의 엄격한 분리가 확립돼야 한다.  

앞서 언급한 전략에 따라, 우리는 중기적인 목표를 잡고 새 유럽 조약에 이 전략을 포함하는 데 만족할 수도 있고, 이 전략의 즉각적인 적용을 필수조건으로 내세울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협상의 원칙 그 자체에는 100% 만족이란 있을 수 없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국민투표를 통해 의사표명을 함으로써 협상의 결실에 찬성과 반대를 결정하는 것은 프랑스 국민들의 몫이다.   

 

프랑스 앵수미즈의 세 가지 시나리오

협상의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유럽연합의 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프랑스 앵수미즈는 당의 정책 프로그램인 ‘모두의 미래’(L’Avenir en commun)의 시행을 막는 모든 규정에 불복종할 것이다. 즉, 이는 일방적이고 일시적인 옵트아웃이 될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다음의 세 가지 해결방안이다.  

첫 번째 방안은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유럽연합 개혁 조약을 채택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안은 프랑스 및 프랑스의 당초 제안에 찬성한 모든 국가들이 집단적 옵트아웃을 행사하기로 합의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국가들은 자국의 정책 시행을 막는 유럽연합의 모든 규제에서 벗어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해당하는 국가들의 목록은 현 정권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므로, 당연히 지금 상황에서는 목록을 작성할 수 없다.  

세 번째 방안은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즉 ‘우리의 유럽 측 파트너들’과 협상을 중단하는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 유럽연합 내의 지정학적 권력관계를 고려할 때, ‘우리의 유럽 측 파트너’라는 표현은 독일 정부를 완곡하게 지칭한 것이므로 부득이하게 따옴표로 표시했다. 독일은 프랑스가 개시한 협상을 중단할 수 있는 유일한 강대국이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전략에 따라 프랑스와 그 동맹국들이 새로운 유럽을 건설하기 위해서 유럽연합 조약에서 탈퇴한다면, 이 악순환을 시작한 책임은 파리가 아닌 베를린에 있다. 범위를 더 확대해본다면 여기에는 유럽연합에 가입하지 않은 유럽 국가들과 지중해 남부의 일부 국가들도 포함된다. 

이 세 가지 시나리오가 실현될 확률은 각기 다르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대부분의 유럽연합 회원국 정부들이 반사회적이고 반생태학적인 노선을 걷고 있으므로 실현 가능성이 작다.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1965년에 드골 장군의 예(‘뤽상부르 타협’)는 한 회원국이 불복종(‘결석 전술’)을 통해 새로운 규정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3)

두 번째 방안은 실현 가능성이 꽤 높다. 유럽연합 창설 초기부터 편차가 심한 정책들이 이미 옵트아웃을 이용해 해결됐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에 포르투갈은 긴축재정 ‘권고’를 무시하고 별 어려움 없이 경제·사회 정책을 시행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방안은, 중대한 옵트아웃을 행사했을 때 납득할 만한 절충안이 나올 수 없다면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렇지만 프랑스 앵수미즈는 세 번째 경우를 가정한 대비책을 마련해둬야 하며, 그래야만 하는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하나는, 과거 여러 차례 권력의지를 드러냈던 독일이 최근에도 권력의지를 보임으로써, 유럽에 심각한 분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예컨대 북대서양조약기구가 과거 바르샤바조약기구에 속했던 국가들로까지 확대되는 것을 러시아가 우려하는 상황에서, 독일은 러시아와 갈등이 격화될 위험을 무릅쓰고 유럽 통합을 향한 강한 행보를 보여준 것이다. 또한, 그리스의 인도적 재앙에 대해 긴축정책을 밀어붙이는 견인차 역할을 한 것도 독일이었다. 그러므로 베를린이 유럽대륙을 또다시 정치적 위기 속으로 몰아넣을 것에 대비해야 한다. 

두 번째 이유는, 모든 조약에서 만족스런 합의를 이끌어내려면 ‘테이블 밖의 해법’, 즉 협상이 중단될 경우 빠져나갈 수 있는 출구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실제로 그 출구를 사용할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만약의 경우를 예측하지 않는다면, 우리 측은 협상을 포기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음을 상대방에게 무방비로 노출하게 될 것이다. 이는 상대방에게 협상을 중단할 충분한 구실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2015년 그리스에서 긴축정책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한 총리 알렉시스 치프라스의 운명을 경고로 삼아야 한다. 협상이 중단될 경우, 유럽연합 조약에서 탈퇴한다는 결정은 극히 현실성이 있고, 광범위한 옵트아웃을 성사시킬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진다는 점을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토마 게놀레 Thomas Guénolé
정치학자, 프랑스 앵수미즈 정치교육학교 공동책임자.

번역·조민영 sandbird@hanmail.net
번역위원.

 

(1) Henri Sterdyniak, ‘Faut-il sanctionner les excédents allemands?(독일의 흑자를 제재해야 할 것인가?)’, OFCE(프랑스 경기 분석 연구소), 2015년 2월 26일, www.ofce.sciences-po.fr
(2) ‘Plan A. Proposer une refondation démocratique, sociale et écologique des traités européens par la renégociation(플랜 A, 재협상을 통한 유럽연합 조약의 민주적이고 사회적이며 생태학적인 재건을 제안하다)’, L’Avenir en commun(모두의 미래), https://laec.fr
(3) 1966년 1월, 드골 장군은 내각에서 절대 과반수이상(만장일치가 아님)의 득표를 통한 통과를 막고, 예산 권한의 의회 이전을 막기 위해 6개월간 출석을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