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O, 지난 시대의 녹슨 울타리

2019-03-29     가브리엘 로방 l 외교관

NATO(나토, 북대서양조약기구)에 대한 프랑스의 입장을 고려할 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NATO는 왜 필요한가? 그리고 프랑스는 무엇을 위해 NATO에 남아있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고려해 볼 수 있다. 첫째, 정치적·역사적 측면에서 보면 상황은 명백하다. NATO는 더 이상 설립 당시의 목표들에 부합하지 않고, 냉전종식 후 부여했던 역할도 더 이상 수행하지 않는다. NATO는 구소련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1949년에 체결됐다. 오늘날 구소련은 해체됐고, 따라서 위협도 사라졌다. 한국전쟁 발발 후 구소련의 침공으로부터 서유럽을 보호하기 위한 NATO 통합군을 조직하면서 북대서양 동맹은 강화됐다. 그러나 구소련군은 사라졌고, 이를 대신한 러시아군은 프랑스로부터 동쪽으로 약 2천 km 거리에 주둔하고 있다. 

앙리 반테자 장군이 설명한 것처럼,(1) 냉전종식 후 NATO는 UN(국제연합)의 결의내용을 실행하는 조직처럼 행세했다. 그러나 이는 실상과 다르다. NATO는 UN의 위임을 자처했으나, 이는 2011년 리비아 내전 개입 시처럼 필요한 경우 UN의 권위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NATO는 경우에 따라 UN의 결의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UN에 해명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NATO는 UN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목적을 위해 UN으로부터 정당성을 유용할 뿐이다.  

2009년 NATO 통합군에 복귀한 프랑스는 이로써 마치 유럽안보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려 했다(1966년 프랑스는 NATO 통합군에서 탈퇴한 후 2009년 다시 복귀했다-역주). 그러나 프랑스가 이런 구실을 실제로 믿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어쨌거나 유럽의 방어체제 확립이 프랑스가 원하는 바였다면, 그런 전략은 실패로 끝났다. NATO가 아니고서는 유럽을 방어할 수가 없다면 유럽은 아무도 지킬 수 없다.

과연 유럽은 너무나 강력한 적들 때문에 스스로를 지킬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NATO는 프랑스가 필요로 하는 것들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둘째, 실용적인 측면에서는 다음과 같은 고려가 가능하다. 어쨌거나 NATO는 존재하는 실체이므로, NATO가 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보장하고, 필요한 일들에만 합의하기를 바랄 뿐이다.  

사실상 구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유럽을 군사적으로 통합하도록 강제할 요인은 사라졌고, NATO가 위험부담을 줄 일도 없다. 특히 우리를 원하지 않는 전쟁에 끌어들일 위험도 없다. 동시에 외교적인 측면에서 ‘NATO 안에서의 협의’라는 편리한 방식을 통해 미대륙과 유럽은 서로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동맹을 유지할 수 있다. 프랑스는 NATO에서 원하는 바를 주장할 수 있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이점이다.

하지만 과거에 프랑스가 NATO 통합군에서 탈퇴하고 회원국으로 남아있었던 때와 오늘날 통합군에 복귀한 상황 사이에는 미묘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회원국들 사이에서 의견 불의치가 있을 때, 통합군에서 탈퇴했을 때는 어려움 없이 의견을 달리할 수 있었다. 이 경우 다른 국가들의 동의 없이도 원칙대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통합군에 복귀한 이상 이런 권한은 제한된다. 만약 대다수가 동의한 사항에 대해 반대하는 경우, 이는 도전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결국 프랑스는 이런 상황을 피하려 할 것이고, 따라서 자유로운 행보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는 프랑스에 불리한 측면이다. 사실, 군사물자의 지원, 정보, 지휘체계, 인적자원의 상호이용, 군 장비 및 절차의 표준화와 같은 군사적 측면에서 NATO는 여러 분야에서 유용한 면도 있다. 허나 실용적 측면에서는 모든 것들이 이점과 불리한 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단지 어느 쪽을 우세하게 볼 것이냐의 문제일 뿐이다. NATO는 여러 가능성과 편리함을 제공한다. 그러나 그런 이점을 다른 방식으로 다른 곳에서 취할 수는 없는 것일까? 통합군에서 탈퇴해 회원국으로만 남았을 때의 정치적 이점들이 있다. 그러나 통합군에서 다시금 탈퇴를 번복한다면 정치적 대가가 따를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분명하지 않은 경우, 대부분은 현상유지를 선택한다. 현상유지는 불리한 측면을 최소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NATO, 어제와 오늘의 간극 속에서

우선 도의적 측면에서 NATO는 효율성만으로 따질 수 있는 수단이 아니다. 주의를 기울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NATO는 표방하는 기치가 있다. 프랑스가 합류하기 위해서는 그런 기치가 의미하는 바에 동의하는지를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세상은 변했다. 과거에는 도처에 분열된 진영들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각양각색의 주권국가들로 가득한 곳에서 NATO만이 지난 시대의 아성을 고수하려 한다. 

과거에는 NATO의 성벽은 든든한 보호를 제공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지배의 메시지만을 전파할 뿐이다. 과거의 연합은 동등했고 공고했으나, 이제 지나치게 외부로 뻗어 나가려 한다. 과거에는 현상유지와 평등한 관계를 목표로 했으나 오늘날에는 우월성을 내세우고 필요에 따라 제멋대로 개입하려 한다. 이전에는 영역 밖으로 침범하지 않았으나 이제는 우발적으로 활동분야를 정한다. 요약하면 과거에는 방어가 목적이었으나 이제는 패권이 목적이다. NATO 외부에서는 제국주의를 시행하면서 패권을 장악하고, 내부에서는 회원국들 사이의 형식적인 평등관계 이면에 막강한 권력을 가진 쪽과 그에 복종하는 쪽 사이의 패권행사가 나타난다. 이제는 흔적으로만 남은 과거의 NATO와 오늘날의 NATO 사이의 간극이 기만적인 주장들에 덮여 있다. 이미 우리는 유럽 방어 및 UN과 관련된 간극을 목격했다. 

이와 관련해 프랑스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세 가지 문제들이 있다. 첫째, 프랑스는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프랑스는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파리선언을 통해 그 점을 천명했다.(2) 그러나 모든 군사동맹이 그러하듯, NATO는 적이 필요하다. 러시아는 구소련의 뒤를 이어 NATO가 조준하는 적이다. 프랑스는 부득이하게 이런 반러시아 정서에 가담하게 된다. 둘째, 프랑스는 공정하고 호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로 보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NATO는 서구국가들을 다른 이미지로 보이게 한다. 바로 자신의 이익에 대한 악착스러운 추구를 인권 및 보편적 원칙들 아래 능숙하게 조작하는 고질적인 제국주의자이자 식민지 점령 국가들의 모습이다. 중국인들이 아프리카에서 이윤추구를 위한 사업만을 행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프랑스를 포함한 서구 국가들의 위선적인 행태들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훨씬 심각한 문제가 남아있다. 패권주의적 연합이라는 이미지는 프랑스인들에게도 남아있다. 오랫동안 구소련의 침공에서 기인한 두려움은 동맹국들에 ‘형제’라는 환상을 부여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우위를 점유한 한 국가와 그에 종속된 다른 국가들이 있을 뿐이다. 프랑스는 독립적 정책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려 하지만 소용없다. 이것이 마지막은 기만이다. 프랑스는 더 이상 유럽이나 근동, 그리고 다른 국가들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심지어 요격용 미사일 방어가 결과적으로 프랑스의 군사억제력을 약화시킨다는 사실조차 말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담하게 NATO의 유용성에 대한 의심을 표명했을 때, 프랑스를 포함한 그 어떤 유럽인도 NATO를 폐지하자고 말하지 못했다.      

프랑스인들은 프랑스가 더 이상 독자적인 정책노선을 표명하고자 시도조차 하지 않고 그럴 용기도 없다는 사실을 침울하게 체념하면서 받아들인다. 프랑스의 NATO 통합군 참여는 프랑스 독자노선이 소멸하게 된 원인이 아니라, 소멸의 증상이고 또 결과다. 프랑스는 그저 다른 모든 국가들처럼 무리들 속으로 들어갔다. 

이는 유감스럽지만 의심할 여지가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프랑스가 통합군 체제로 복귀하는 것에 유감을 표명하고, 이를 비난받을 행위라고 판단하는 이들조차 전 외무부장관인 위베르 베드린(1997~2002)의 말처럼 통합군에서 다시 탈퇴하는 것은 ‘선택사항이 될 수 없다’는 점에 동의하기 때문이다.(3) 프랑스는 통합군에서 벗어나기 위해 문만 열면 된다고 여겼으나,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프랑스는 덫에 갇혔다. 그리고 덫에서 벗어날 자유마저 상실했다. NATO로부터 철수하는 것은 물론 필요하지만, 그다지 위급한 일은 아니다. 이전에 풀어야 할 다른 과제들이 너무나 많다.   

 

글·가브리엘 로방 Gabriel Robin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위원회의 프랑스 상주대표(1987~1992)를 지냈다.

번역·권정아
번역위원.

 

(1) 지난 2월 파리에서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언급함.
(2) 유럽안보협력회의를 위한 파리정상회담 무렵(1990). 
(3) Régis Debray의 ‘나는 왜 프랑스 NATO복귀를 반대하는가(La France doit quitter ’OTAN)’ 기사와 그에 대한 응답인 Hubert Vederine의 ‘NATO, 프랑스 영향력 확대의 장’ 참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3년 3월호 및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