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회화의 도전, 데이비드 호크니

2019-03-29     김지연 l 예술에세이스트

그림은 우리를 매혹하고, 우리가 보는 것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해줍니다.

세상의 모든 훌륭한 화가들은 우리 주변의 세상을 보이는 것보다

한층 섬세하게, 한층 흥미롭고 불가사의하게 만들어주지요. 

 

- 데이비드 호크니(마틴 게이퍼드, 「다시, 그림이다」 중에서)

꼭 지금과 같은 봄날이었다. 평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런던의 왕립미술원(Royal Academy of Arts) 앞에 늘어선 줄은 쉽사리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겨우 입장한 전시장 내부는 더 많은 관람객으로 붐볐다. 인기 가수의 콘서트가 아니라,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전시였다. 반 고흐나 마티스처럼 이미 거장으로 추대돼 미술사에 기록된 작가의 전시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선 인파는 국내외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현존작가의 대규모 전시 또한, 국내에서도 볼 수 있는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존작가의 전시에 줄을 서서 기다려야 겨우 입장 가능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날 본 풍경은 달랐다. 현재 진행형인 작가의 전시를 보기 위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수많은 인파가 몰렸고, 그 속에는 호크니의 전시를 보기 위해 멀리서 날아온 나와 같은 외국인들까지 섞여 있었다. 모두가 경이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진지하게 작품을 이야기했다. 이토록 사랑받는 호크니는 대체 어떤 작가일까. 

데이비드 호크니는 1937년 영국 요크셔 지역의 브랫포드에서 태어났다. 런던의 왕립예술대학(Royal College of Art)을 수석 졸업했으며, 영국 젊은 팝아트의 기수로 일찍부터 성공을 누렸다. 재학 시절부터 이미 그림을 판매할 정도로 이름이 알려졌다고 한다. 26세에 첫 개인전을 열었고, 32세에 런던의 주요 갤러리 중 하나인 화이트 채플 갤러리에서 첫 회고전을 가진다. 그는 60년대 영국 팝아트 운동의 주요 멤버로 활약하기 시작해, 자연주의를 시도하고, 반고흐의 소재와 기법에 영향을 받거나 피카소의 입체주의를 따랐던 시기를 거쳐 지금은 어떤 사조라고 규정지을 수 없는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했다.(1)

수영장 그림과 밝은 색조의 풍경화, 개성 있는 초상화로 널리 알려진 호크니의 재능은 회화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사진과 판화와 같은 유사 장르는 물론, 무대디자인과 의상, 잡지 디자인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의 공감각적 능력과 밝고 자유로운, 그러나 균형 잡힌 색채감각은 어디서나 빛을 발했다. 또한 회화이론에 관한 다수의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지금도 암스테르담의 반고흐 미술관에서 <호크니-반 고흐: 자연의 기쁨>전이 열리는 중이다. 또한 호크니가 머물며 작업하고 있는 고향 요크셔의 솔트밀 아트센터에서는, 2017년부터 시작된 풍경화 전시 <데이비드 호크니: 봄의 도착>이 2020년까지 계속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열기는 마침내 국내에까지 이어져 마침내 지난 3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데이비드 호크니>전을 개최했다. 8월 4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과 영국의 테이트 브리튼이 공동으로 기획한 호크니의 회고전으로서 시기별 주요작품 80여 점을 소개하며 동시대 거장의 일생에 걸친 작품세계를 조명하고자 한다. 특히 대표작인 <더 큰 첨벙>(1967)과 <아카틀란 호텔>시리즈(1984~5)를 직접 만날 기회다. 전시에 등장하는 이미지 중 우리에게 가장 익숙할 <더 큰 첨벙>은 호크니가 캘리포니아에서 머무는 동안 그린 작품이다. 

 

영국 미술계와 동성애자로서의 삶에 답답함을 느끼던 호크니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미국으로 떠났고, 노년에 고향 요크셔로 돌아가기 전까지 약 30여 년간 캘리포니아에서 지냈다. 그는 드로잉하듯 자유롭게 그리는 방식을 새롭게 발견했고, 대표작 수영장 시리즈와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한 풍경화들은 여기서 탄생했다. 그중 하나인 <더 큰 첨벙>은 뜨거운 캘리포니아의 햇살이 내리쬐는 한낮의 고요한 수영장을 그리고 있다. 정적인 구성의 그림 속에서 불규칙하게 흩어지는 하얀 물방울들은 갑작스레 ‘첨벙!’ 소리가 들리는 동적인 순간으로 관객을 이끈다. 다이빙에 걸린 시간은 고작 2초에 불과했으나, 호크니가 그 순간의 생동감을 표현하는 데는 무려 2주가 걸렸다고 한다. 

밝은 색채로 눈길을 끄는 호크니의 작품들은 군더더기 없이 말끔해 보이지만, 그 안에 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풍경도 그렇지만 호크니가 그린 초상화 속 인물들은 제각각 삶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호크니가 대상의 다양한 면을 그려내려고 시도했기 때문일 것이다. ‘얼굴이란 천 개의 사진을 봐야 아는’ 것이라고 했다.(2) 그처럼 대상이 가진 모습은 매번 다르다. 그래서 같은 대상이나 장소라도 보는 사람이나 가진 기억에 따라서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다.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루앙 대성당’을 제대로 보는 방법은, 자리에서 일어나 성당으로 똑바로 걸어간 후 성당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오는 것이라고 했다.(3) 호크니가 좋아한다는 이 일화처럼, 한 방향에서 평면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찬찬히 둘러보며 입체적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대상이 제대로 보인다. 

우리는 사진이 세상을 온전하게 보여준다고 여기지만, 사실 인간은 그보다 더 다양한 감각으로 세상을 본다. 객관적인 시각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사진 이미지에 의존하면 모두가 비슷한 방식으로만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호크니의 생각이다. 그는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주관적, 심리적 시각을 드러낼 수 있는 회화가 사진보다 대상을 더 잘 보여준다고 했다. 호크니는 한 가지 대상이나 풍경을 찍은 사진 여러 장을 조합해 작품을 구성하는 ‘포토 콜라주’ 기법(4)에도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이것이 사진이라는 매체를 하나의 드로잉 기법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포토 콜라주도 하나의 회화인 것이다. 

 

회화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 사진이라는 매체를 활용했던 것처럼, 호크니는 새롭게 등장하는 매체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1980년대부터 복사기와 팩스기, 컴퓨터 프로그램, 폴라로이드 필름을 이용한 드로잉 작업을 했다. 또한, 미술작품이 갤러리나 미술관을 통하지 않고 대중에게 전송·확산되는 방식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그는 70세가 넘은 나이에 아이폰으로 간단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2010년도에는 마침내 아이패드를 손에 쥐기에 이른다. 

찰나의 풍경을 놓치지 않기 위해 평소에도 언제나 작은 그림 도구들을 지니고 다녔다는 호크니는 아이패드에 강력하게 매료된다. 주머니에 아이패드만 있다면 연필은 물론 물감과 붓, 심지어 끝도 없이 확장가능한 스케치북까지 준비된 셈이었다. 그는 아이패드를 이용해 주변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고, 이를 지인들에게 선물로 전송하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전송이 가능한 드로잉은 마치 영화의 대중화와 같은 혁신을 의미했다. 

게다가 아이패드에 그린 그림은 과정을 재생하는 것이 가능한데, 몇 번의 손가락 터치로 다시 하얀 화면이 등장하고 기존에 그렸던 선과 색채가 차례로 나타난다. 이것은 일종의 드로잉 퍼포먼스이기도 하면서, 호크니에게는 자신이 그리는 방식을 실제로 관찰하며 더 경제적으로 그릴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아이패드는 단순히 편리한 물건이 아니라 호크니가 새로운 예술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준 매체였다. 현재 아이패드는 호크니의 주요한 작업도구 중 하나다. 회고전에 아이패드 드로잉이 꼭 등장하는 것은 물론, 이들로만 기획된 전시가 따로 열리기도 한다. 미술평론가 마틴 게이퍼드(Martin Gayford)는 호크니와의 대화를 정리한 책 『다시, 그림이다』에서 그에게 ‘아이폰을 지닌 터너’라는 별명을 붙여 줬다. 

여든이 넘은 노장이 여전히 활기차게, 무려 아이패드를 이용해 그리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자신의 작품세계를 유지하면서 세상을 바꾸는 것들과 여전히 소통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하지만 호크니에게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가 변함없이 궁금해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의 모습, 사람들이 그것을 바라보고 또 재현하는 방식이다. 그는 여전히 그리는 기쁨을 간직한 채 그 질문의 답을 구하고 있다. 새로운 매체는 단지 과정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이다. 

누군가는 호크니의 작품이 다루는 소재, 즉 풍경이나 실내, 초상화 등이 가볍다고, 혹은 회화라는 양식 자체가 낡았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호크니는 그린다는 것이 본질이 무엇인지, 작품으로써 되묻는다. 본다는 것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매일 다른 것이므로 풍경은 아직도 낡지 않았다. 실험을 계속하는 한 회화에는 여전히 새로운 것이 있다. 그의 그림이 낡은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본질은 어떤 순간에도 바래지 않고 제빛을 낸다. 

새로운 매체가 가진 장점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다시 회화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지금도 고향 요크셔에서 어떤 날은 거대한 캔버스에, 어떤 날은 아이패드에 풍경화를 그린다. 후기작으로 갈수록 더 밝은색으로 빛나는 그의 회화는 타성으로 가벼워진 것이 아니라, 어깨에 잔뜩 실었던 힘을 뺀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겠다. 그는 여전히 새로워지기를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전성기를 ‘봄’이라고 말한다면, 81세의 호크니는 아직도 봄을 향해 가는 중일 것이다.   

 

글·김지연
예술에세이스트

 

(1) 마르코 리빙스턴, 『데이비드 호크니』, 시공아트, 2013
(2) 김유정, 「밤이 조금만 짤럿드면」(1936), 『원본 김유정 전집』, 강, 2012
(3) 마틴 게이퍼드, 『다시, 그림이다』, 디자인하우스, 2018
(4) 호크니가 포토 콜라주 기법으로 제작한 대표작으로는 <피어블러섬 고속도로(Pearblossom Highway)>(1986)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