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계주 모임, 돈가방 들고 튀어라
[Corée]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떠들썩하게 열리고 있다. 정부는 G20 정상회의가 우리나라의 ‘국격’을 상승시키고, 아주 유의미한 ‘알맹이’ 있는 회의라고 선전한다. 하지만 G0 정상회의의 합의가 제대로 된 합의인지,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제대로 ‘선전’하지 않고 있다.
위기 해결이 아닌 위기 떠넘기기
G20 정상회의의 애초 목적은 누가 뭐래도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한 공동 대응이다. 실제 G20은 경제위기가 닥치자 대규모 재정지출과 구제금융으로 급한 불을 껐는데, 문제는 막대한 자금 대부분이 노동자와 서민의 삶을 지원하기보다는 은행과 금융기관, 대기업을 살리는 데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그동안 위험한 투기로 엄청난 이익을 챙겼지만, 위기가 발생하자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오히려 각종 금융 지원만 받았다.
G20의 큰 문제는 바로 이 부분이다. 즉 위기를 해결하려 모였지만, 위기를 책임져야 하는 집단에 최소한의 책임도 묻지 못하는 것이다. 사모펀드, 헤지펀드, 그리고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책은 말만 무성했지 아직까지 이행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이번 위기 과정에서 경제체제 전체를 일순간에 붕괴시키는 심각한 뇌관이 될 수 있는 것으로 판명된 대형 금융기관과 겸업화(1)에 대한 규제책은 아예 논의조차 못하고 있다. 그나마 최소한의 책임을 묻는 방안으로 논의하는 은행세, 금융활동세, 금융거래세 등은 논의만 무성할 뿐 합의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는 은행세와 금융거래세는 아예 안건에서 배제했다. 투기자본 규제에 대한 G20의 정치적 의지가 얼마나 부족한지 알 수 있다.
한편, 서울 G20 정상회의의 중요한 업적으로 국제통화기금(IMF) 개혁을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알맹이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IMF의 지분 6%를 선진국에서 개도국으로 이전하기로 합의했지만, 이런 결정은 현재 IMF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의미한 변화라고 보기 힘들다. IMF는 주식회사와 비슷하게 지분에 따라 투표권을 배분한다. 선진국은 IMF 투표권의 60% 이상을 장악해 절대적인 통제권을 행사하며, 특히 미국은 17.7% 지분으로 주요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2) 따라서 지분 6%를 선진국에서 개도국으로 이전하면 IMF가 좀더 민주적인 기구로 바뀔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여전히 선진국과 미국에 의해 좌지우지될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IMF에 세계경제를 다시 맡기는 게 옳은지를 근본적으로 물어야 한다.
G20이 사랑한 투기자본과 IMF
G20은 지난 6월 토론토 정상회의와 이번 서울 정상회의를 거치면서 처음에 보여주었던 호기로움을 거두고 다시 본연의 일상으로 돌아간 듯하다. G20 정상은 금융산업 규제 강화를 호기롭게 외쳤으나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대신 ‘긴축의 망령’을 되살리고 있다. 지난 6월 토론토에서 G20 정상은 향후 3년 동안 재정 적자를 50%까지 감축하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의 의미를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최근 노동자, 학생들의 대규모 시위로 화제가 되었던 프랑스가 대표적인 예다.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 정부는 ‘재정 건전성’ 확보라는 미명하에 퇴직연령을 현행 60살에서 62살로 연장하고, 100% 연금수령 개시 연령을 65살에서 67살로 늦추는 개악안을 강행했다. 하지만 재정이 악화된 주요한 이유는 대형 은행들을 구제하기 위해 투입된 막대한 공적자금에 있다. 그렇다면 은행을 포함한 부자와 자본에 대한 과감한 증세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결국 위기에 아무런 책임도 없는 노동자와 서민들이 위기에 따른 비용을 떠안은 것이다.
전 지구적 사회복지 축소 골몰
긴축정책은 연금 개악 등 사회복지제도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영국 정부는 이미 공공 부문 축소를 통한 재정 적자 감축이라는 계획을 공언하고 있다. G20의 긴축정책은 그렇지 않아도 경제위기로 충격을 겪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추가적인 고통을 가져다줄 것이다. 국가의 재정위기 문제는 부유층과 자본가에 대한 과감한 증세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노동자·서민을 위한 복지 비용과 공공 영역 축소를 통해 해결해서는 안 된다.
G20의 위기 해결책이란, 경제위기 책임을 사회적으로 떠넘기는 식이다. 그러면서도 G20은 국제노동기준 준수, 금융자본 규제, 좋은 일자리와 사회보장 확대 등에 관해 화려한 말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언급조차 화려한 말잔치로 끝날 뿐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G20 의장국이라며 온갖 선전을 해대면서도, 정작 정책적 측면에서 보면 G20의 ‘말잔치’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표> 참조).
의장국 대한민국, 유별난 역주행
이명박 정부는 G20 정상회의의 핵심 쟁점인 금융규제 방안에 대해 의장국으로서 회원국의 합의를 도출해내려는 적극적 노력과 정치적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국내적으로는 자본시장통합법이나 금산분리 완화 관련법을 통과시켜 은행의 대형화와 겸업화를 조장하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었다. 심지어 재벌이 은행을 소유할 수 있는 길까지 터주는 등 금융규제 완화의 길을 걸어왔다. 국제적으로 대형 금융기관의 체계적 위험성이 제기되고, 증권업과 은행업에 대한 겸업화의 문제점이 강조되는 현실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는 셈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위기를 핑계로 국제노동기준을 약화시키거나 무시하지 않겠다”는 G20 피츠버그 정상회의 합의문에도 불구하고 노동기본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 공공 부문에서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며, 파업을 이유로 형법상 업무방해죄가 적용돼 구속되는 사례도 여전하다. 또한 국제노동기구(ILO)는 노조 전임자 문제를 노사 자율에 맡기라고 했음에도, 노조법을 개악해서 전임자 임금 지급을 금지했다. 한국 정부는 ILO가 지정한 8가지 핵심 노동기준 중에서 4가지밖에 비준하지 않았다. 특히 한국이 비준하지 않은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은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활동을 보장하는 가장 기본적인 국제노동기준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노동기본권 보장 수준을 알 수 있다.
정부는 한국이 경제위기의 파고에 크게 휩쓸리지 않고 잘 극복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노동자와 서민 입장에서도 그런지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노동자와 민중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 2008년 3분기부터 2009년 4분기까지 1년 6개월 동안 실질임금은 하락했다. 실질임금의 하락이 장기간 지속된 사례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이명박 정부와 기업들은 임금 삭감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강요해, 특히 청년층 일자리의 임금을 크게 하락시켰지만 실제 고용 증대 효과는 없었다. 정부의 고용정책이란 ‘삽질’ 위주의 단순노무직이라는 지속 불가능한 불안정 일자리에 불과했다.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G20 정상회의와 더불어 다시금 사회적 쟁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한-미 FTA는 금융위기가 발발하기 이전에 추진됐고, 이것의 문제점은 그동안 수없이 지적됐다. 그중에서 금융위기의 원인과 해결책이 논의되는 이 시점에 주목해야 할 것은 한-미 FTA가 미국식 금융시스템을 모델로 삼아 고안됐다는 점이다. 한-미 FTA의 금융자유화 조항은 ‘신금융서비스’라는 이름으로 거의 모든 위험한 파생금융상품의 판매를 허용하고 있다. 이는 제2, 제3의 금융위기를 부르는 뇌관이 될 수도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를 비롯한 ‘자유’무역 체제도 이번 위기의 원인 제공자라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이번 위기의 근원에는 금융자본의 투기 활동을 보장한 ‘자유 투자’ 체제와, 초국적 기업이 세금이 낮고 법적·환경적 규제가 느슨한 곳을 자유롭게 찾아다닐 수 있도록 보장해준 자유무역 체제가 있다. 이 체제는 기업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지위를 부여했고, 노동자와 서민에게는 고용불안과 지속적인 임금 삭감 압력으로 다가왔다. 결국 모두에게 이로운 무역은 어떤 틀과 방식으로 진행돼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럼에도 G20은 전가의 보도처럼 자유무역을 외치고, WTO 협상 타결과 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무엇을 평가하고 무엇을 반성하고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G20 정상회의는 세계 금융·경제 위기에 대한 국제적 공조 속에서 탄생했다고 하지만, 절대다수 국가 특히 국제금융기구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저개발국과 남반구 국가들이 배제됐다는 점에서, 정당성과 대표성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대다수 저개발국가들의 이해를 반영하고, 노동자와 서민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포괄적이고 민주적인 국제 논의 구조가 필요하다.
노동기본권·사회보장 강화가 해법
G20 정상회의는 애초의 목적과는 달리 이미 ‘선진국들 간의 정치판’으로 변질되고 있다. 위기를 불러온 투기자본 규제는 뒷전이고, 남의 땅을 더 많이 빼앗기 위한 환율전쟁에 심혈을 기울인다. 나아가 국내 정치에 활용하는 카드 정도로 사고되고 있다. 세계경제가 미약하게나마 회복되는 듯하지만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남유럽 위기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민간금융 부문의 부실은 국가재정 부실로 이전되면서 위기의 규모와 폭이 확대되고 있다. 더구나 세계경제의 ‘미약한 회복’조차 위기를 초래한 자들의 호주머니가 아니라, 노동자의 호주머니에서 그 비용이 지불됐다. 금융자본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좋은 일자리와 노동기본권, 사회보장을 강화하는 것만이 위기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길이다. G20은 이 경로에서 이미 많이 벗어나버렸다.
글•이창근
G20대응민중행동 사무국장.
<각주>
(1) 은행 업무와 증권 업무를 함께 하는 것을 말하며, 미국식 금융시스템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이는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되었다.
(2) IMF에서 가장 중요한 18개 영역에 대한 결정에는 85%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에 17.7%의 투표권이 있기 때문에, 미국이 반대하면 이 영역에서 어떤 결정도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