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가 너의 지옥문을 열어야만 하는가

2019-03-29     유미화 l 바람저널리스트

저는 지금 그와 함께 지옥문 앞에 서 있습니다. 지옥문을 여는 열쇠를 제게 주십시오. 내 삶을 지옥으로 만든 그를 반드시 지옥에 보내야 합니다. 오히려 그를 위해서 이 문을 제가 열어야만 합니다. 

첫째, 그는 전형적인 받는 사람(Taker)입니다  

그는 제자리에서 칭얼거리며 마음을 요구하고 받기만 하는 사람입니다. 어쩌다 상대에게 마음을 줄 때도 상대 쪽으로 가 직접 건네주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에서 편할 대로 던지는 사람입니다. 상대가 그 마음을 받지 못하면 “그러게, 제대로 받았어야지”라며 상대에게 탓을 돌리는, 어른의 탈을 쓴 5세 아동입니다. 그의 마음은 옹졸하기 짝이 없습니다. 게다가 그는 스스로를 제국의 잘난 왕자라고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요리한 사람에게 고맙다고 하지는 못할망정, “오늘은 국이 좀 짜네”라며 식사 후 자리를 유유히 뜨는 것을 자랑스레 여깁니다. 

관계의 비(非)상호성을 지적받으면, 자신은 평생을 받으며 살아와서 주는 법을 모른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입니다. 굳이 주는 사람(Giver)이 되지 않아도 자신은 언필칭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으므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화분은 못 견디겠으면 떠나라”고 합니다. 하지만 화분은 제가 아니라 그입니다. 저는 화분을 인간으로 만들고자 최선을 다했으나, 언제나 되치기를 당할 뿐이었습니다. 그의 무지와 몰염치는 본인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이런 자는 지옥에서 응징을 받아야 합니다. 제자리에 1초도 앉지 못하게 하고 늘 몸뚱어리를 써서 움직이게 해야 합니다. 

 

둘째, 그는 공감 능력이 결여된 사람입니다

어느 날 제가 깊은 고민에 빠져 조언을 구하자 그는 놀랍게도 “힝 나 또 출장 잡혔어”라고 대답했습니다. 일이 너무 바빠 답하기를 잊은 걸까요? 글쎄요. 하루는 몸이 너무 뻐근하고 안 좋아 “나 어깨가 너무 뭉쳐서 움직이질 못하겠네”라고 말했고 돌아오는 대답은 “운동을 안 하는데 당연히 몸이 아프지. 그러게 내가 운동하랄 때 안 하더니…”였습니다. 제가 운동의 중요성을 몰라서 한 말일까요? 정작 본인은 꼬박꼬박 운동을 해서 제게 이따금씩 “나 다리가 너무 무거워서 못 걷겠어” 또는 “계속 앉아만 있었더니 허리가 너무 아파서 죽을 것 같아”라고 말하는 걸까요?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만이 정답이라 생각하고 자신이 본 적 없는 길들의 존재와 가치를 부정하는 자입니다. 이런 자에게 어떻게 연대를 바라겠습니까? 시도할 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칭얼거림이 아니면, 은근한 자랑 및 무시였습니다. 아무래도 공감 능력은 최소한의 인간됨이 아닌가 봅니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상대방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으려 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지옥에 가 자신과 함께 고통받는 자들의 울부짖음을 들으며 공감능력을 키워야만 합니다. 

 

셋째, 그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에 탁월합니다 

진지한 대화를 할 때면 그는 처음에는 제 말을 듣는 척했지만 곧바로 “근데 너도 잘못했잖아”라며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물론 그의 대단하신 논리에 따르면, 저 또한 잘못을 한 꼴이 됩니다. 그는 자신의 논리로 저를 고문했고 저는 늘 세뇌당했습니다. 분명 대화를 시작할 땐 그가 비난받을 사람이었는데 대화가 끝날 땐 항상 제가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이 돼 있었습니다. 이 반복되는 뜬금없는 비약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오직 제 기분 탓일까요? 저는 ‘내가 좀 예민하긴 하지’라던가 ‘난 그에 비해 논리력이 부족한 감성충이니까’ 등의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됐으며, 스스로를 그보다 부족한 사람으로 인지하는 그릇된 실수를 범하도록 조종당했습니다. 

저는 정말 그보다 논리적이지 못한 사람일까요? 저는 정말 세상을 꼬아서 바라보는 예민한 사람일까요? 사실 꼬인 건 그와 이 부조리한 세상이 아닐까요? 상대방이 스스로를 똑바로 볼 수 없게 만든 자는 반드시 지옥에 가 자신의 못남을 마주하고 자신이 해한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합니다. 

 

넷째, 그는 남성이 차별받는 사회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여성이 약자였음을 인정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뒤따르는 말이 그의 간장 종지만한 생각의 그릇을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이젠 아니지 않나? 요즘엔 오히려 남자가 역차별을 받는 것 같아.” 염라대왕님, 그는 신입사원 채용에 있어 여성채용 비율을 35%로 정해놓는 회사에 다닙니다. 올해는 그래도 비율이 많이 늘어난 거라고 씁쓸하다는 듯이 제게 직접 말해줬습니다. 구직 중에는 성별 채용 비율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고 남성 구직자로서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은 모두 활용하더니 취업 후에야 기득권층으로서 비율에 대한 유감을 표하고 있습니다. 

또 그는 명절날 설거지를 한 사촌 형을 두고 “요즘 남자들 살기 힘들어”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본인이 그리고 남성이 “세상 살기 힘든” 소수자라면 저렇게 웃으면서 농담 따먹기 하듯 말할 수 있을까요? 정말 남성이 소수자라면 제게 “왜 너는 나랑 안 자 줘?”라며 떼를 쓸 수 있을까요? 정말 남성이 기득권층이 아닌 소수자라면 그의 동성 친구의 성차별적 언행을 지적한 제게 “넌 너무 자기주장이 센 것 같아. 그리고 서로가 지향하는 페미니즘의 개념이 다른 것 같아. 우리 그만 헤어지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의 성은 김 씨이기도 하고 이 씨이기도 하며 박 씨, 정 씨, 한 씨이기도 합니다. 그의 이름은 지훈이기도 하고 형준이기도 하며 민혁, 정훈, 현우이기도 합니다. 그는 서울에 살고 있기도 하고 인천에 살고 있기도 하며 경기, 광주, 부산에 살고 있기도 합니다. 그와 함께하며 저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를 지옥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하지만 지옥에 가야 할 자는 제가 아니라 그입니다. 지옥은 인간의 탈을 쓴 쓰레기가 가야 할 곳이고 저는 마지막 순간까지 쓰레기를 인간으로 착각한 피해자일 뿐입니다. 수많은 사람들 중 하필 그를 만난 것은 과연 제 잘못일까요? 아니면 누구를 만났든 결국 전 그를 만나게 됐을까요? 뭐가 됐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한 그에게 마지막으로 꼭 해줄 말이 있습니다. 만나서 더러웠고 다신 보지 말자. 그러니 저는 그의 지옥문을 손수 열어주겠습니다.  

 

글·유미화
바람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