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야 하나'… 혼돈의 땅, 누벨 칼레도니

150년 프랑스 식민지… '독립·자치, 노동, 환경 문제'로 갈등 심해

2008-12-01     크리스티앙 다르소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프랑스 정부는 해외에 거주하거나 정착하는 전직 고위 관료들에게 한시적인 은퇴 보조금 혜택을 주고 있다. 이는 기준 생활비의 1.75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 덕분에 은퇴자들은 일 년에 3~4개월 정도 해외에 머무르면서 이런 혜택을 입곤 한다. 본국을 포함한 모든 프랑스령 가운데 이곳 누벨 칼레도니가 인구에 비해 장군이나 대령의 비율이 가장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근 보조금 제도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긴 하지만 결과는 아직 미지수다.
인구 10만 명도 안되는 누메아에선 물도 전기도 없는 가시덤불 속에서 사는 소위 '무단 점유자'들이 도시 주변에 살고 있다. 이들은 약 1만 2천 명이 넘는데, 주로 누벨 칼레도니의 토착민인 카낙 족이나 토착어인 왈리시어 사용 부족이다. 이들은 기껏 도시 노무자나 가정부로 연명하고 있다.

 은퇴자 낙원… 이면엔 '차별'
그렇다고 누메아에 사는 모든 백인들이 부자는 아니다. 최근 이주해온 백인들은 임시직에 종사하거나 땅을 경작하며 산다. 그중 일부는 알제리 이주민인 카빌리아인들을 포함하여 1871년 폭동 이후 강제 이주해온 도형수들의 후손들이다.
얼마 전부터는 '태양과 이국적인 기회의 땅'이라는 매혹에 이끌려온 자들도 많다. 젊고 상당한 학력도 갖추고, 많은 월급을 바라지도 않으며 임시직이나 미신고 불법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들 대부분은 꽤 매력적인 노동력 계층을 형성한다. 이 새로운 입주자들은 가뜩이나 지금도 높지 않은 임금 수준을 더 끌어내리고 있다.
이 지역에선 노사분쟁 조정위원회가 존재하지 않고, 프랑스 노동법도 적용되지 않는다. 이 곳 프랑스 기업 연합회 격인 '메데프'는 기업들에게 노조 활동과 파업을 하는 노동자들을 통제할 것을 권고,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2008년에 초에 시작된 베올리아 그룹 소속사인 카르쉬드 직장 폐쇄 당시 일어난 과격한 진압은 이곳의 노동 현실을 잘 보여준 셈이다. 당시 회사 앞 대치 현장에서 보인 경찰의 행동은 나중에 총체적인 종합 감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결국은 시위자 쪽의 잘못이 더 크다며 피고 입장에 처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지난 4월 '카낙 노동자 및 착취 노동연맹(USTKE)' 회장은 6개월 실형, 그 참모 중 한 사람은 1년, 기타 간부 중 20명 이상이 3~6 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이들은 모두 3 년 동안 공민권을 박탈당했다. 프랑스 본국에선 이런 일로 이처럼 가중한 선고를 받는 경우는 없다.
항고심에서 비록 형이 감경되었지만, 공민권 박탈은 취소되지 않았다. 법원은 또 22명의 시위자들에게 13만 4천 유로에 달하는 금액을 국가에 보상하라고 언도했다.

 니켈 채굴 '환경 오염' 심각
또 다른 민감한 문제는 풍부한 광물 채굴과 이것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다. 이는 그야말로 속임수 혹은 협잡이나 다름 없다. 교토의정서 따위는 아예 누벨 칼레도니에 적용되지 않는다. 주민 1인당 이산화탄소 방출량이 미국을 앞선다는 서글픈 진기록도 있다.
그 원흉은 전 세계 매장량의 1/3에 달하는 니켈이다. 이는 끊임없는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 환경 단체인 메에 라하리는 170년 전 보르도에서 이 섬으로 이주, 정착한 채굴기업 발랑드 그룹과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다.
광물 채굴의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지난 1월엔 이 곳 북부 지방에서 코발트와 니켈, 크롬을 함유한 2만 1천 톤의 흙이 산호에 쌓였다. 이것이 산호초와 산호 동물들에게 미칠 영향은 자못 심각하다. 그런 가운데 브라질 발레 그룹 소속인 구로니켈사의 '구로배수관' 건설 공사가 환경단체들과 상원, 노동연맹 그리고 하천 연안 카낙 주민들의 반대로 중단되기도 했다.
이는 최근에 세계 유산으로 등록된 산호초 근처로 매일 니켈 처리용 물 1만 여 톤 이상을 흘러 보내는 배수관이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9월 말, 공사를 재개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졌으나, 합의 과정에 참여하지 않은 단체들의 반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뜨거운 감자… 독립이냐? 자치냐?
노동과 환경 문제 말고도 이 섬의 뜨거운 감자는 독립문제이다. 사실상 누벨 칼레도니는 프랑스와 관련, 독특한 지위를 갖고 있다.
2014년 그 최종적인 지위를 주민들에게 묻는다는 계획이 이미 서있다. 이 시점은 모든 현지인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2008년 5월은 이 섬의 독립 문제와 관련, 상당한 의미가 있는 달이었다. 전 사회당 정부의 총리였던 미쉘 로카르와 갓 해외영토 담당 정무 차관에 임명된 이브 예고가 며칠 사이에 잇달아 이곳을 방문했던 것이다.
로카르 전 총리는 누메아의 장-마리 치바우 문화센터 앞에 운집한 젊은이들 앞에서 자신이 1988년 우베아 학살 사건 이후 유혈 사태로 번질 갈등 상황을 종결 짓는 데 기여했음을 상기시키면서 연설을 시작했다.
"프랑스는 내가 부끄러워하는 몇 가지 잘못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도로도 건설했으며 학교와 병원도 지었습니다. 이에 비해 영국인들은 오로지 장사만 했으며 그들이 지나간 뒤로는 가난과 궁핍만을 남겼습니다. 가장 나쁜 것은  벨기에였습니다. 오늘날 르완다와 콩고를 보십시오."
또한 로카르는 독립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언급도 빠뜨리지 않았다. "칼레도니는 이미 독립되어 있습니다. 종전의 독립이란 개념은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클로비스 이래로 독립이란 화폐이며, 군대이며 정의입니다. 프랑스를 보십시오. 프랑스는 여러 나라에 공통의 화폐를 도입하고 자기의 군대를 다른 나라의 군대와 연합함으로써 더 강해졌습니다. 한 편으로는 독립을 손상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강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칼레도니 노동당 지도부의 자크 니테이지는 즉각 신랄한 반격에 나섰다. "당신이 옹호하는 그런 세계는 이미 '빈사' 상태에 있습니다. 이런 모습에서 무엇을 기대하시겠습니까? 진보·성장·대량 생산과 소비·분명 서방세계는 그런 혜택을 누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무엇이 남게 되나요? 그런 사이에 다국적 기업들이 니켈을 나눠 가질 것입니다. 더 이상 우리를 생각하는 척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우리 방식으로 세계에 나아가도록 내버려 두세요. 대지와 삶과 행복 그리고 필요한 것들에 대한 우리 방식의 만족과 행복을 갖고 형제들 사이에서 살아가도록 말입니다"  

 자치 지향 '왕당파', 독립주의자 대립
이에 비해 이브 예고 차관의 연설은 더 유연했으며 예견 가능한 것이었다. 그 만큼 말썽의 소지도 적었던 셈이다. 그는 카낙 족과 '사회주의 민족 해방 전선(FLNKS)', 보다 유연하고 합리적인 일부 노조, 노동당이나 착취 노동연맹 등 과격파들을 비교하며 현재의 사회적 합의에 근거한  진보를 논했다.
또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면세 조치가 칼레도니인들에게 새로운 선물이자 축복이 될 것이라고 과장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로카르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자치문제를 다룬 1988년의 마티뇽 합의 내용이 1998년 누메아 합의로 이어진 것을 높이 샀다. 또한 프랑스 공화국안에서의 자치권을 선호한다는 개인적 의견을 밝혔다.
이른바 '왕당파'와 독립주의자들의 생각이 충돌하고 있다. 전자는 카낙 족의 정통성, 그리고 오래전부터 이 땅에 정착한 사실이란 두 개의 정통성을 인정한다. 이는 특히 로카르를 위시한 프랑스 사회당과, 카낙 족, 그리고 '사회주의 민족 해방 전선(FLNKS)' 지도자들의 입장이다. 이들은 누메아 합의서 전문에 이와 유사한 내용을 집어넣었었다. 이런 입장이 백인, 폴리네시아, 아시아계 이민자 후손들의 선거인단 대다수를 구성하고 있다.
반대로 독립주의자들은 칼레도니의 상황이 무주택자가 아파트를 무단 점유한 상황과 같다고 보고 있다. "양 쪽 다 권리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아파트 소유자에게 정당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그 '무단 침입자'가 설사 150년 전에 강요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이 섬에 오게 되었다 해도, 진정한 소유자는 4천 년 전부터 이 땅에 살아온 카낙 족이라는 것이다. 유엔 총회도 1986년 누벨 칼레도니를 탈식민지화해야 할 나라로 등록했다는 것이다.

 갈등 현안 부각, '발전 모델' 모색도
그러나 프랑스 없인 칼레도니가 홀로 지낼 수 없는 것인가?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누메아 합의에서 예견된 자치권 이전은 더디게 진행된다. 게다가 프랑스는 유엔 결정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을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국방장관인 에르베 모렝은 얼마 전에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이 누벨 칼레도니를 사용할 수 있다는 조약에 서명했다. 또 국방 예산이 대폭 감축된 와중에도 이 조그만 군도에 할애된 예산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 밖에도 여러 투자 계획도 서있다.
2009년 초 지방 선거를 시작으로 이 섬엔 선거철이 다가오고 있다. 이는 분명 이 섬의 '불확실한 미래'를 한층 부각시킬 것이다. 제도권내의 독립주의자들이건, 우파이건 간에 모두가 과격한 노동당과 '카낙 노동자 및 착취 노동연맹(USTKE)'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고 있다.
후자는 2008년 처음으로 지방 선거에 나서, 총 33개 지역 가운데 14 곳에만 후보자를 냈음에도 33명을 당선시켰다. 이들은 이 군도의 피치 못할 문제들을 정면에서 호소하며, 이를 통한 발전 모델과 사회적 프로젝트를 모색한 것이다.
 번역|이진홍
  memosia@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