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과 정주 사이로 난 여행길

[서평]

2010-11-05     모나 숄레

작가 니콜라 부비에와 화가 티에리 베르네가 주고받은 편지는 그들이 함께 쓴 책 <세계의 풍습>(L’Usage du Monde)이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를 보여준다. 1963년 출판된 <세계의 풍습>은 유고슬라비아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2년간의 긴 여정의 기록이다. 나중에 큰 동요를 경험하게 될 이 나라들의 현실을 열린 시각으로 탁월하게 묘사한 이 작품은, 여행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된다.

니콜라 부비에와 티에리 베르네가 함께 쓴 <세계의 풍습>(1)은 이제 독자 사이에서 고전이 되었다. 세계 곳곳을 누비는 여행자뿐 아니라 도서관의 ‘책벌레’에게도 필독서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책은 두 저자가 1953년부터 2년 동안 유고슬라비아, 터키, 이란, 아프가니스탄 등지를 여행하면서 느낀 감상을 글과 그림으로 남긴 기록이다. 두 젊은이는 자신이 태어난 제네바를 떠나 먼 곳을 구경하고 싶었다. 그들은 지나치리만큼 질서정연한 제네바의 일상을 떠나 피아트 토폴리노에 몸을 싣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떠난다. 당시 니콜라 부비에는 24살, 티에리 베르네는 26살이었다. 학교 교정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늘 여행의 꿈을 가슴에 간직해왔다. 부비에는 작가가 되고 싶었고, 베르네는 화가가 꿈이었다. <<원문 보기>>

길 위에서 쌓은 두 남자의 우정

그들의 여행은 실론 섬(지금의 스리랑카)에서 끝난다. 베르네는 그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아내와 함께 스위스로 돌아간다. 혼자 남은 부비에는 여행을 계속해 일본까지 간다. 이때의 경험은 그의 다른 두 책, <전갈 물고기>(2)(1982)와 <일본 여행기>(3)(1975)에 잘 묘사돼 있다. 1998년 세상을 떠난 뒤 늦게나마 작가로서 명성을 얻은 부비에의 그늘에 가려 베르네는 빛을 보지 못했다. 베르네가 21살 때 부비에에게 쓴 편지를 보면, 그는 그것을 예감했다는 걸 알 수 있다. “500년 뒤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말할까봐 걱정되는군. 아, 티에리 베르네! 니콜라 부비에 친구 말이지? 내 명성이 단지 네 친구였다는 사실에 국한되더라도 나는 별로 상관하지 않아. 이상하게도 네가 훌륭한 작가가 될 거라는 예감이 들어. 그것만으로도 내겐 큰 기쁨이야.”

부비에와 베르네가 주고받은 편지들이 최근 책으로 출판(4)되면서 베르네는 비로소 부비에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1993년 베르네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지속된 둘 사이의 끈끈한 우정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1956년 도쿄에 머물던 부비에는 베르네에게 보내는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방금 네 편지를 읽었어. 폭이 2만km나 되는 이 거대한 문 사이로 다소 우울한 단어 하나를 밀어넣고 싶어.” 이 두꺼운 서간집은 따뜻하고 생동감 넘치는- 때로는 열정에 가득한- 문장, 흥미로운 이야기, 깊이 있는 관찰과 생기 있는 묘사로 가득하다. 여러 차례 나눠 쓴 편지글은 마치 단편적인 단상처럼 보인다. 둘은 먼 곳에서 바라보는 상대의 시선에 의지해 각자의 삶을 꾸려가는 듯 보인다. 편지에 실린 그림들도 원본에 가깝게 복원됐다. 시적이거나 풍자적인, 때로는 외설적이기까지 한 스케치, 손으로 직접 그린 약도와 지도, 예쁘게 채색된 편지 봉투와 사진도 실렸다.

둘 사이의 편지는 당연히 <세계의 풍습>에 묘사된 여행이 중심 내용을 이룬다. 처음으로 여행 계획을 세울 때의 이야기(“나랑 인도 같이 갈래?”)에서부터 여행 중 겪은 중요한 경험이나 글에 대한 구상까지. “쿠추크(터키어로 ‘작다’는 뜻), 널 다시 보게 되어 기뻐.” 베르네는 스위스 귀국을 준비하고 있던 부비에에게 편지를 보낸다. “굉장한 여행이었어. 원자만큼 작은 그 경험 하나가 내 팔십 평생을 움직이는 에너지가 될 거야. (중략) 나는 우리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이 같은 느낌을 받기를 원해.” 그들은 함께 집필 중이던 책을 ‘세계의 책’이라고 불렀다. “세계의 책을 유용한 것으로 가득 채워야 한다. 정신적·실용적·기계적·의학적·예술적인 모든 측면에서 유용한 것들로.” 스리랑카에 체류 중인 부비에의 메모다. 부비에와 베르네의 여행 출발점은 베오그라드였다. 둘은 그곳에서 만나 베르네의 약혼녀 도움으로 조그만 자동차 안을 필요한 물건들로 ‘가득 채웠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토포’(피아트 토폴리노의 애칭)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을 밖으로 끄집어냈다. 그리고 한참이 걸려 짐을 정리해서 간신히 사람이 앉을 자리를 마련했다. 건포도가 몇 개 박힌 속이 꽉 찬 푸딩처럼 되어버린 자동차를 세관원도 감히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그 속에 손가락이라도 끼면 큰일일 테니까).”

‘토포’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이들과 함께한 충실한 동반자였다. “토포의 계기판에 키스를 보내.” 베르네는 혼자 남아 토포를 몰고 다니던 부비에에게 그렇게 썼다. 그들은 자동차 몸체에 페르시아 시인 하피즈의 사행시를 써놓았다. 그 조그만 자동차는 금세 이란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숙소에 돌아와보니 호기심에 가득 찬 무리가 자동차를 에워싸고 있었다. 경찰관 한 명은 혹시 무슨 반정부적인 구호라도 쓰여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해보려는 듯 문짝의 글귀를 열심히 읽고 있었다. 사람들은 다 함께 시구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집단 낭송회라도 열린 것 같았다. 굳은 표정들이 점점 밝아졌다. 행복한 표정으로 사람들이 차를 내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5)

편지에 담긴 또 하나의 여행기

부비에는 문화를 실용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 시적인 것과 실용적인 것은 조화를 이루며 공존한다. <세계의 풍습>을 처음 출판한 쥘리아르 출판사의 편집자는 책 판매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작가 미셸 뷔토르에게 서문을 부탁하자고 제안했다. 부비에는 망설이며 대답한다. “뷔토르가 서문을 쓰면 이 짚더미 같은 작품 위에 파리지앵의 모자를 씌우는 꼴이 될까 걱정입니다.” 그러나 두 젊은이의 작품 속에 나타난 그들의 박식함은 놀라운 수준이다. 부비에는 여행 중에 프랑스어권 모임 회원들에게 몽테뉴와 스탕달에 대한 강연을 해주고 약간의 돈을 벌기도 했다. 청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처럼 삶 자체와 삶에 대한 정신적 성찰이 조화를 이루는 성격은 그들이 주고받은 편지글- 뭘 먹었는지 무엇을 읽었는지 같은 자질구레한 일상이 두서없이 기록돼 있다-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두 사람은 편지를 통해 감상적인 인상의 단편들을 주고받는다. 베르네는 스위스로 돌아가기 전에 들른 사부아 지방에서 느낀 감상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비가 내리고 풀은 높았다. 개암나무에 티티새들이 앉았다.” 베르네의 편지를 읽고 부비에는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었다”고 고백한다. 부비에는 도쿄에서 베르네 부부에게 편지를 보냈다. “안녕, 친구들. 여기는 사방이 온통 흰색입니다. 내 방 종이 벽에 눈송이가 부딪히며 꿀벌처럼 윙윙거립니다.” 그는 글쓰기를 마치 육체노동처럼 묘사한다. “대패와 가위를 손에 들고 거친 글을 다듬고 싶다.” 몇 년 뒤 결혼한 그는 <전갈 물고기> 집필이 벽에 부딪힐 때마다 마당으로 나가 장작을 팼다. 당시 그는 제네바 근교 시골에 ‘오래된 지붕’이라고 이름 붙인 집에 살고 있었다. “1년 반 동안 규칙적으로 장작을 패면서 (중략) 내 안과 겉은 균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장작을 하나 팰 때마다 내 속에 맺혀 있던 매듭이 잘려나갔다.”(6)

은둔형 여행작가, 부비에

이 책에는 ‘유목의 욕망’과 ‘정주의 욕망’ 간의 긴장이 뚜렷이 드러난다. 실비안 뒤퓌는 리뷰 <유럽> 니콜라 부비에 특집호에 다음과 같이 썼다. “부비에는 사람들이 흔히 ‘여행작가’들에게 갖는 흔한 이미지와 달리 은둔형 작가이기도 했다.”(7) 부비에는 ‘붉은 방’이라고 이름 붙인 자신의 서재에 대한 글도 썼다.(8) 부비에는 이를테면 ‘블레즈 상드라르’면서 ‘마르셀 프루스트’였다.

스위스의 호수와 숲 사이에 아내와 함께 정착한 베르네는 부비에에게 다음과 같이 쓴다. “내 작업실 구석에 좋은 자리를 하나 찾았어. 네가 우리 집에 올 때를 대비해서 간이침대를 놓을 생각이야. 그 옆에는 작은 테이블과 램프를 놓아둘게. 물론 차와 책도 있을 거야. 그것들이 없으면 이 집은 어딘가 허전할 것 같아.” 부비에는 일본에서 그에게 답장을 쓴다. “네가 내 움직임에서 도움을 받았듯 나는 네 정지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네 질서정연한 삶이 내 삶을 살찌운다. 내 여행이 네게 영감을 주듯이. 나도 곧 너처럼 휴식 시간을 갖게 될 거야. 지금은 사람들을 만나 어울리면서 눈치를 보고, 사람들을 관찰하고 탐색하면서 남은 6개월을 최대한 즐길 생각이야.” 그 뒤 부비에는 베르네 부부의 빈집에서 휴식을 취한다. “나는 자기만의 공간에 칩거하는 시간을 1년 내내 전혀 갖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휴식을 통해 내 글쓰기는 몸집 큰 고양이가 몸을 돌리듯 새로운 깊이를 얻는다. (중략) 정적, 호수 위로 떨어지는 번개, 독서, 글쓰기, 잠, 바흐….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다가 형용사들을 입에 굴리며 퇴고 작업을 계속하는 것, 이것이 내 삶이다. 여행할 때와 똑같은 만큼의 열정으로 집에 머무는 것. (중략) 나는 소라게다. 나는 달팽이처럼 뼛속에 집을 가지고 있다. 오늘 저녁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다.”

“계속 써라, 남김없이 써라”

머물러 있든 움직이든 중요한 것은 세계와 깊은 합일을 이루는 것이다. 부비에와 베르네는 때로 지독한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우울함이 서글픔으로 끝나버리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들의 편지 속에서 행복을 향한 뜨거운 열망은 철학적 의미를 획득한다. “행복이란 이를테면 진정한 재능 같은 것이다. 물론 위대한 행복을 말하는 것이다. 종소리 같은 웃음소리를 말하는 게 아니다.” 부비에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베르네에게 쓴 말이다. 베르네는 “삶이란 참으로 격렬한 것”이라고 썼다. 베르네는 자신의 우울함을 “열광이라는 작은 왕국의 꼭대기에 오른 대가”라고 묘사했다. 어떤 우울함도 다음과 같은 확신을 그에게서 빼앗지 못했다. “계속 써라, 친구여. 그보다 더 아름다운 일은 없다. 모두 남김없이 써라.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길을 선택했다.”

글•모나 슐레 Mona Cholle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각주>
(1) Nicolas Bouvier, <세계의 풍습>, 삽화: 티에리 베르네, Petite bibliothéque Payot, 파리, 2001. 혹은 <OEuvres>, Gallimard, ‘Quarto’, 파리, 2004.
(2) Gallimard collection, <Folio>, 파리, 1996. 혹은 <OEuvres>, op. cit.
(3) Payot collection, <Petite Bibliothéque Payot>, 파리, 2001. 혹은 <OEuvres>, op. cit.
(4) Nicolas Bouvier & Thierry Vernet, <교차로에서 쓴 편지 1945~64>, Daniel Maggetti & Stéphane Pétermann 편집·주해, 제네바, 1650쪽, 39유로. 이후의 모든 인용문은 특별한 언급이 없을 경우 모두 이 책을 참조했다.
(5) Nicolas Bouvier, <세계의 풍습>, op. cit.
(6) Nicolas Bouvier, <길과 길 아닌 길>, op. cit.
(7) Sylviane Dupuis, ‘물고기-전갈을 잉태한 방’, <Europe>, n°974~975, 파리, 2010년 6~7월호.
(8) Nicolas Bouvier, <붉은 방>, Métropolis, 제네바, 1998. 혹은 <OEuvres>, op. c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