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소말리아 해적과의 '전쟁'

악명높은 해적 소굴 '아덴만'… 유럽·UN 강력 응징, 선박 호위

2008-12-01     필립 레이마리 | 라디오프랑스 인터내셔널 기자

 우크라이나 화물선 파이나호가 지난 10월 25일 케냐 군에 인도될 125mm포와 소련제 T-72 공격용 탱크 30여 대를 싣고 케냐의 몸바사로 향하다가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됐다. 해적들은 단순한 해적 행위 차원을 넘어 교전까지 벌여 파이나 호를 억류하고 1천360만 유로에 달하는 몸값을 요구했다. 현재 파이나 호는 소말리아 북동부 푼트 랜드주의 호비오 항 앞에 억류되어 있다. 이 곳은 푼트 랜드주가 1998년 8월 일방적으로 자치를 선언하고 사실상 독립한 지역이다. 파이나 호가 억류된 지 이틀이 지나자, 미 해군 함대가 소말리아내 대량 살상무기의 반입을 막기 위해 주변 지역에 배치됐다.
 
 '민감한 화물' 수송선 집중 공격
 그보다 12일 앞서 해적들은 소말리아 해안에서 750km 거리에 있던 프랑스 참치잡이 어선 르드레넥 호에 로켓포를 발사한 바 있다. 다행히 프랑스 어선은 공격을 피했지만 인도양 서쪽에서 작업하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참치잡이 어선 55척(선원 2천명, 어획량 2만 톤)은 세이셸 쪽으로 물러가야 했다. 해적들은 주로 홍콩과 필리핀의 화학약품 수송선이나 이탈리아와 일본의 유조선 같은 소위 '민감한' 화물을 실은 선박들을 납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크루즈여객선 르포낭 호가 납치된 데 이어, 9월엔 호화 요트 카레 다스 호가 피해를 입는 등 프랑스 선박 두 척도 납치되고 인질극이 벌어졌다. 이 때 프랑스 해군은 사상 처음으로 12명의 해적들을 체포, 프랑스로 이송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사건 당시 소말리아 해안의 '전쟁 포로들'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범죄에 대해서는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당시 몇몇 언론은 사르코지 대통령을 '프랑스의 인디아나 존스'라고 부르며 조롱하기도 했다.
 소말리아에서 7천km 떨어진 프랑스 감옥에 수감되어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12명의 소말리아 해적들에 대해 사르코지 대통령은 "그들에 대한 형 집행이 약속되어야 본국으로 송환될 수 있을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그러나 해적 측 변호인들은 "해적이라기보다 염소치기나 어부들처럼 보이는 이 수감자들이 프랑스 법망 안에 갇혀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해적 행위의 폐해 때문에 이들의 운명은 관심거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 9월에만 10여척의 화물선이 해적들에 납치되어 푼트 랜드 해안에 억류되어 있고, 130여 명이 인질로 잡혀 있다. 국제해양사무국에 따르면 소말리아 해적들은 지난 1월부터 10월까지 60건의 강도 행위를 통해 1천800만 유로의 몸값을 챙겼다.
 인도양과 홍해 사이의 전략적 통로인 아덴만은 해적들이 선호하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 되었다. 이전에는 말라카 해협이나 기니 만이 위험 지역이었다.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원유의 절반이 소말리아와 예멘 사이의 해상통로를 통과한다. 매년 1만6천 척, 하루 40여 척 꼴이다.
 
 '군소 무장집단' 돈벌이로 횡행
 2000년대 초만 해도 어부 또는 해안경비대 출신 10여 명이 우발적으로 해적 행위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다가 해적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푼트 랜드 자치 지역의 몇몇 인사들의 지원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쉽게 돈을 벌어들이자, 해적들이 '황금시장'을 찾아 모여들었고, 인도양의 에일 항이나 호비오 항, 아덴만의 알울라 같은 작은 항구 도시들을 중심으로 '소말리아 머린'이나 '코스티 가드' 같은 해적 집단이 형성됐다.
 2006년 소말리아에서 정권을 잡은 이슬람법정연대는 해적행위 퇴치 방안을 모색했다. 그러나 유수프 압둘라히 과도 정부와의 무력 투쟁에 개입된 몇몇 해적 지도자들은 내전과 폭동을 돈벌이에 이용했다.
 소말리아 임시 정부에 맞서고 있는 '셰밥'의 무크타르 로보우 대변인은 파이나 호 납치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그는 "일반 교역 선박을 검문하는 것은 범죄이나, 알라의 적들에게 넘겨질 무기를 수송하는 선박을 납치하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며 특히 이디오피아로 무기를 수송하는 화물선을 침몰시키거나 불태울 것을 해적들에게 호소했다.
 반면에 대부분 이슬람주의자들인 야당연합 소말리아재해방동맹(ARLS)을 이끌고 있는 셰이크 샤리프는 무법자들이 탐욕 때문에 "가증스런 공격"을 범하고 있으며, 모든 국가들이 "소말리아에서 무법자들을 퇴치하도록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엔 해적질은 배고프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벌이는 일로 여겨졌다. 그러다가 '투자자'들이 생기고, 자금망이 형성되고, 위치 추적팀이 조직되어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 수천 척의 작은 배들을 내보내는 '모선(母船)'을 가지게 되면서 인질 억류는 작은 산업이 되었다. 인질들의 거액 몸값은 내전을 치르고 있는 각 집단 우두머리들의 욕심을 날로 가중시켰다. 결국 해적들은 소말리아의 끝나지 않는 내전에 물자를 공급하는 동시에 세계 상거래를 마비시키고 있는 셈이다.  
 


 주변국·소말리아 반군, 해적 배후
 소말리아 과도 정부를 지지하는 이디오피아와 달리 소말리아 무장 반군을 지지하고 있는 에리트레아 정부는 해적에게 납치된 몇몇 선박들이 '강도질'과 유사한 활동을 하기에 이르렀다고 암시하기도 했다. 에리트레아 정부는 특히 해외의 어업 관련 기업들이 "소말리아의 주권을 침해하면서 어업 자원을 약탈한다"고 비난했다. 에리트레아의 이런 태도는 "해적 행위가 소말리아의 풍부한 수자원을 착취하는 서구 트롤선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고 주장하는 파이나 호 납치해적단 대변인의 입장과 유사하다.
 대부분의 해적공격의 시발점이 되는 이른바 푼트 랜드 '자치 정부'는 이중 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 법으로도 해적들에게 사형까지 언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적집단과 이해 관계가 얽혀 있는 자치 정부 내 몇몇 인사들은 해적들을 저지할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다른 한편으론 10여 년 전부터 각국으로부터 외면당해온 푼트 랜드 '자치 정부'는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방안을 꾸준히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서구 및 유엔, 본격 '소탕' 나서
 지난 6월 유엔안보리의 '1816결의안' 투표는 해적 행위 퇴치를 위한 첫 번째 국제적 제스처라고 할 수 있다. 1982년 자메이카의 몬테고베이에서 채택된 유엔해양권협약은 영해와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에 대한 연안국의 주권을 인정하고, 원양에서만 해적행위 단속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와 미국은 이에 저촉되는 규정을 담은 '1816결의안'을 밀어붙여 통과시킨 것이다. 인도네시아 같은 국가들은 전례가 될 것을 우려하며 결정을 주저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소말리아 과도정부의 승인 하에 "해적 행위와 무장 강도 행위를 진압할 목적"으로 전함이 소말리아 영해 내에 진입하는 것이 허용됐다. 하지만 이 '추적권'에는 해적 기지와 항구 감시 장치 설치권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프랑스와 스페인은 '국제해양경찰' 창설을 주장했고 이 계획을 유엔과 유럽연합에게 떠넘겼다. 유럽연합은 10월 1~2일 프랑스에서 열린 유럽 국방장관 회담에서 동참 의사를 표명한  10개 회원국과 함께 11월에 감독 해군을 창설, 파병할 것을 합의했다. 파이나 호 피랍 후 인도양에 초계정을 급파한 러시아는 미국과 유럽과 마찬가지로 유엔결의안 범위 내에서 해적에 대항하는 행동을 취하기를 희망했다.
 12척의 미국·유럽 선박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150'도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인 작전명과 같은 '항구적 자유'라는 이름을 내걸고 임무를 확대 수행하고 있다. '태스크포스150'은 지난 8월 24일부터 밥엘만뎁 해협 부근 항로를 통제하기 위해 소말리아와 예멘 사이의 아덴 만 600만㎢에 달하는 지역을 '해양순찰지역'으로 정했다.
 또한 유럽연합 내 대책반은 세계식량계획(WFP) 같은 단체들의 화물 수송을 호위하기 위해 이 지역에 주둔하는 유럽 해군의 '권한'을 확대할 계획이다. 프랑스, 덴마크, 캐나다 해군은 수차례 해적들의 공격을 받은 WFP수송선을 2007년 11월부터 호위하고 있다. WFP 식량수송 덕에 매월 100만 명의 소말리아인들이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 있으며, 연말까지 그 숫자는 250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선박호위·해적 소탕, 어려움 많아
 넓은 바다에서 체계적인 군사적 보호란 애초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공격 대상이 되는 선박, 특히 운항 속도가 느리고 무거운 선박, 그리고 '민감한' 화물을 운송하는 선박들을 호위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이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해적들은 레이더, 선박자동식별장치(AIS), 위성항법장치 등 현대적인 위치 측정 수단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보호 선박에 맞춰 속도가 느린데다 비용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는 호위대는 해적들에게 쉽게 노출될 위험이 있다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또한 자리를 이동해가며 예망이나 낚시를 이용해 단독으로 참치를 잡는 어선에게는 호위 자체가 쉽지 않다.
 프랑스 상선들은 해당 선주들이 동의할 경우 본국 해군의 호위를 받을 수 있다. 해군이 선박의 뒤를 따라다니고, 필요하면 앞서 인도하기도 한다. 따라서 피습을 당할 경우 작전 개입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국제해양사무국은 무기 수송선들에게 레이더 경계와 감시를 소홀히 하지 말고 소말리아 해안에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운항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미국, 러시아, 이스라엘 상선들은 방어용 무기를 갑판위에 설치해둔다. 하지만 대부분의 해운회사와 원양어업 회사들은 이런 관행을 꺼리며, 특히 프랑스에서는 사설 경비 자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예멘은 인근 해안에서 해적이 기승을 부리자 지난 9월 아덴 등 3곳에 해적 퇴치 기지를 설치했다. 프랑스 사설 경호 회사인 세코펙스(Secopex)는 해안경비대를 창설하기 위해 소말리아 정부와 계약을 맺었고, 미국과 영국의 경비업체들 역시 앞다퉈 '바다의 용병'이라 불리는 군 경비대를 제공하기 위해 나섰다.
 
 소말리아 재통일, 연안국 공조가 해법
 국제사회의 골칫거리인 해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푼트 랜드를 정치적으로 인정하거나 소말리아 재통일문제를 검토하고, 17년간의 내전으로 황폐해진 소말리아에 대해 국제적인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5년 전만 해도 연간 50여 건의 해적 습격이 일어나던 인도양 동부의 말라카 해협에 '평화 정착'이 가능했던 것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연안국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순찰을 분담했기에 가능했다. 물론 열강들 간의 협조가 필요하지만, 소말리아의 경우 그것만으론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국제적 관심을 높이고 연안국간 공조를 강화하는 한편, 일각에서는 어부냐 해적이냐를 두고 갈등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해안경비학교 창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번역|김계영 canari62@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