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계몽주의, 퇴행적 정신승리법

2010-12-03     지브 스턴헬

‘특정한 정체성 및 그 정체성과 관련한 문화를 존중하고, 진보적 이데올로기는 불신하며, 보편성을 자부하는 합리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현대 정치 무대에 올리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정치적 감성이다. 이런 조류는 민주주의의 원칙인 ‘선택 주체’로서 자주적 개인이라는 개념에 반대하며 18세기에 처음 등장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계몽주의 가치를 둘러싼 싸움은 두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변함없이 확고하게 지속되고 있다. 18세기 철학자들이 직면한 주요 문제들이 오늘날까지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과연 우리가 사는 사회는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체인가, 아니면 단순히 시민이 모인 집단에 불과한가? 국가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가? 하나의 국가 공동체를 정의해주는 것은 정치와 법적인 면인가, 아니면 역사와 문화인가? 문화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 그것은 또 모두에게 공통적인 부분인가, 아니면 모두를 구분하는 부분인가? 지금 존재하는 세계만이 우리가 고려할 수 있는 유일한 세계인가? 현재의 사회질서를 변화시키는 건 정당한가, 아니면 파국으로 치닫는 길인가? 이런 의문에 대한 답변에는 ‘인간’이라는 개념이 걸려 있다. 지금까지 기세등등하고 집요한 반계몽주의 조류가 내세우는 정치사상은 개인을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에 의해서만 의미를 갖고 추상적 보편성이 아닌 구체적 개별성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인간을 서로 구별·구분·분리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이성만의 문제로 돌릴 수 없고, 그보다 더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한 인간의 정체성도 이런 구체적 개별성에서부터 만들어진다.

그들은 왜 ‘정체성’ 논쟁을 일으킬까

프랑스를 비롯한 도처에서 다시금 의제로 등장한 ‘정체성’ 문제는 드니 디드로와 장 르 롱 달랑베르의 <백과전서>에 ‘국가’를 계몽주의에 입각해 “특정 경계 안에 들어가는 특정 면적의 한 국가에서 거주하며 동일 정부를 따르는 상당수의 국민”으로 정의한 이후, 단 한 번도 그 자취를 감춘 적이 없다.(1) 디드로와 달랑베르의 정의에서 역사와 문화, 언어, 그리고 종교에 관한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없었다. 개별성을 뛰어넘은 시민이라는 존재는 그렇게 해서 세상에 등장한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유대인과 흑인 노예가 혁명에 의해 해방되었고, 근대 역사상 처음으로 동일 정부를 따르는 동일 국가의 거주민이 모두 동일법의 지배를 받으며 법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이 되었다.

이런 정치적·법률적 국가관은 프랑스혁명 초기에 살아남지 못하고, 루소와 볼테르의 맞수였던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의 개념에 의해 무너진다. 칸트를 비판하고 이데올로기적 민족주의를 창시한 위대한 독일 사상가 헤르더에 따르면, 국가는 하나의 자연현상이며, 언어로써 표현되는 특유의 영혼과 마음을 가진 살아 있는 유기체이다. 나무가 있어야만 나뭇잎과 나뭇가지가 존재하듯이, 인간 또한 국가에 의해 존재가 가능하다. 거의 부족적 차원의 이 동질적 단위에는 인성과 성격이 있으며, 역사가 이를 더욱 고귀하게 만들어준다.

개인에 우선하는 공동체와 조상?

19세기와 20세기를 폭풍같이 휩쓸고 지나간 민족주의는 지금도 명맥이 유지된다. 민족주의가 프랑스혁명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프랑스혁명은 국가가 이미 하나의 현실인 상태에서 주권 이양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디드로와 달랑베르는 개인이 모여 국가라는 집단이 형성되었다는 쪽으로 방향을 틀며, 이런 현실에 정치적·법률적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했다. 인간이 역사와 문화에 의해 특정 결정론의 포로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칸트도 마찬가지지만, 이들에게 계몽주의는 개인이 성숙해가는 과정이며, 역사의 구속에서 벗어나 근대를 탄생시킨 밑절미였다. 그 뒤로 지금까지 계몽주의 사상에서 개인의 이익은 모든 정치적·사회적 행동의 최종 목적이었다. 반면 19세기와 20세기의 반계몽주의자들에게 공동체는 개인에 우선하며, 개인은 무엇보다 과거의 계승자로 간주된다. 조상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우리라는 존재를 만든 것이다.

만일 정치인 니콜라 사르코지(프랑스 국적의 헝가리계), 지식인 알랭 핀키엘크라우트(극우적 성향을 띤 유대인 출신의 프랑스 철학자 겸 작가), 이슬람주의자, 이스라엘의 유대교 민족주의자, 신보수주의자 등이 겉보기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싸움을 벌인다면, 이는 헤르더 쪽 주장처럼 각자가 그리고 각 역사적 공동체가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고유한 ‘문화’를 가졌다는 뜻이며, 바로 이 점이 우선시된다는 얘기다. 만일 국민이 역사적·문화적 공동체라면 ‘역사적’ 프랑스인으로서의 자질이 하나의 절대적 가치가 되는 반면, 프랑스 시민으로서의 자질은 상대적 가치밖에 되지 않는다. 국민의 개념이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단순한 법률적 범주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시’(Vichy·독일 나치의 괴뢰정권) 정부의 인종차별법 이후 65년이 지난 지금, 자칫하면 귀화 ‘외국인’의 프랑스 국적 취소가 고려될 수도 있다. 조지 오웰도 같은 말을 할 테지만, 이런 개념 덕분에 문득 일부 시민은 평등의 개념이 흐려지는 걸 느낄 수 있다. 핑키엘크로트는 자신을 프랑스 왕실의 랭스성당 대관식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문화적 유산을 위임받은 사람으로 인식한다.(2) 하지만 샤를 모라스(열렬한 왕정주의와 국가주의를 주창한 프랑스 철학자로, 제2차 세계대전 뒤 나치 부역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음)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순전히 우연찮게 프랑스에서 태어난 폴란드계 유대인일 뿐이다. 오늘날 핑키엘크로트는 차별의 공격에서 벗어나 있지만, 아랍인과 그외 무슬림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서구 우파-극단 무슬림의 상동성

의외로 이 우파들과 극단적 무슬림 운동가들은 주요 가치를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다. 양쪽 모두 문화적 소속감을 중시하고 역사적 ‘자아’를 주장하며, 실제든 가공이든 과거에 정체성의 기반을 두고 있다. 또한 자신의 문화적 공동체가 무언가 고유한 면모를 갖고 있어서 어느 시대든 본연의 모습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둘 사이의 개념적 유사성은 백과전서파보다 더 크다. 그러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문화의 비침투성’이라는 본질적 문제에 대해 집권 우파를 호되게 공격한다. 우파와는 반대로 이슬람주의는 유대교나 기독교에서의 다른 원리주의와 마찬가지로 분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쯤에서 다문화주의 및 문화적 특수성을 추구하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짚어봐야 할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런 성향은 보편적 가치를 약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선구자인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는 문화적 다원주의의 반인본주의적·반보편주의적 소명을 알고 있었다. 각 문화에 모방할 수 없는 독창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모든 형태의 차별을 반대하는 투쟁은 삶을 중시하는 심미적·정신적 가치가 바로 특수성 덕분에 만들어졌음에도, 이 오래된 개별적 특수성을 파괴하는 (일원화된) 세계 문명으로 인류를 끌고 가는 운동의 성격을 띤다.”(3)

정교분리까지 적으로 돌리고

현대 신보수주의 이론가 다니엘 벨에게는 ‘신은 죽었다’는 말이 곧 ‘사회가 죽었다’는 걸 뜻한다. 그런데 계몽주의에 기반해 권위의 중심을 성스러운 것에서 불경스러운 것으로 옮긴 근대적 문화는 일련의 궁극적 가치 혹은 일상생활에서의 만족 등을 초월적 수준에서 제공하지 못한다. 그 무엇도 사회의식으로서의 종교를 대체하지 못하며, 도덕적 혹은 초월적 윤리가 결핍된 ‘신자본주의’가 나타나거나 미국적 가치가 상실되는 곳에서 반쾌락주의 문화가 출현했다면, 이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의 약화와 무관치 않다.(4)

이같은 입장인 어빙 크리스톨은 2009년 9월 사망한 정치사상가다. 그는 이슬람주의자나 이스라엘 종교 민족주의자의 발언이라 해도 손색없을 말투로 “종교적 측면이 빠진 보수주의는 근거가 없으며, 정교분리는 적이나 다름없다”고 호소했다. 이 세계가 가능한 한 최선의 세계며, 그 안에서 존속되는 악은 필요악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악 앞에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알아봐야 한다. 크리스톨에게는 바로 이것이야말로 신보수주의가 긍지를 가질 만한 부분이다. 그는 미국인에게 “경제적 난관이나 사회문제는 정신적 문제며, 종교가 그 열쇠를 쥐고 있다”고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신보수주의자들이 왜 종교 보수파와 쉽게 손잡을 수 있었는지, 이들이 어떻게 함께 대중적 보수주의를 만들 수 있었는지 알게 된다. 미국의 우파와 이스라엘의 민족주의·종교주의·병합주의 우파, 세계 곳곳의 이슬람주의자 등은 남다른 근대성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들은 결속 공동체의 이상적 형태로 국가를 바라본다. 이 공동체는 신을 향하고 있고, 막강한 객관적 존재이자 그 원동력은 개인의 의지나 이성과 무관하다. 인간에게는 성스러운 대상, 복종할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물론 계몽주의와 반대되는 미래적 관점을 전제한다. 무엇이든 다시 세운다는 건 큰 죄악이 될 수밖에 없으며, 내재적으로 패배 요소를 안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프랑스 신보수파를 포함한 신보수주의자들은 프랑스혁명을 악마적 현상으로 바라보며, 이를 영국의 명예혁명이나 미국의 독립혁명과 대비시킨다. 그런데 앞의 세 혁명은 모두 전에 없던 체제를 수립한 건설적 사건이었다. 미국의 독립선언과 프랑스의 인권선언은 동일한 원칙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지만 영국·미국과 프랑스의 사례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거리가 생겨야 했다. 그래서 전자의 경우 단순한 체제 변화로 고대의 자유를 복원한 혁명이 됐고, 후자의 경우 신과 문명에 등을 돌려 이전 6세기간의 역사를 지워버린 혁명이 됐다.

프랑스혁명은 악마적 사태라고?

20세기의 참혹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두 정치적 전통 사이의 대립은 계속된다. 보편주의와 합리주의를 방어하려면 그 사안에 걸맞은 시급하고 복잡한 과제가 하나 남는다. 그것은 자주적 시민으로 구성된 ‘국가’의 근간을 다지기 위해 어떻게 지속적으로 노력하느냐는 것이다.

글•지브 스턴헬 Zeev Sternhell
예루살렘 히브리대학 명예교수. 주요 저서로 <반계몽주의 전통: 18세기에서 냉전까지>(Les anti-Lumières: une tradition du XVIIIe siècle à la guerre froide·Paris·Gallimard·Folio·2010) 등이 있다.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요 역서로 <미래를 심는 사람> 등이 있다.

<각주>
(1) <백과전서: 과학·예술·기술 이론 사전>, vol.44, p.221, 1781.
(2) 2009년 12월 17일자 <르누벨옵세르바퇴르>에 게재된 알랭 바디우와의 대담 참조.
(3)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 <먼 시선> Plon, p.47, Paris, 1971. 1956년 유네스코 학술집 <The Race Question in Modern Science>, pp.125~132, <Race and History> 참조.
(4) Daniel Bell, <The Cultural Contradictions of Capitalism>, Basic Books, XXVII pp.155~158, XXIV p.85, pp.69~79, New York, 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