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별의 히치하이커 버락 오바마
버락 오바마와 민주당은 미국 경제와 사회정책 변화에 대한 유권자들의 강력한 요구로 2008년 집권했다. 수많은 사람이 오바마의 승리에 환호했다. 그러나 이 역사적인 기회는 민주당이 의회 중간선거에서 ‘대패한’ 오늘날, 오바마 대통령이 헛되이 날려버렸다는 결론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대통령 후보 당시 버락 오바마는 강력한 통치를 약속하고, 진보적인 변화를 실현시켜 희망을 되살리겠다고 다짐했다. 앨 고어나 존 케리와 달리 오바마는 시민 활동가들의 광범위한 연합을 대중운동을 닮은 뭔가로 움직이게 하는 데 성공했다. 오바마가 지핀 희망의 메시지에 고무된 수백만의 젊은이와 소수민족들이 그랬듯이, 회의적인 진보주의자 대다수는 민주당 예비선거 상대인 힐러리 클린턴보다 오바마를 지지했다.
아득해진 대선 때 오바마의 기억
선거 직후 오바마의 핵심 참모는 “국민은 심각한 위기를 헛되이 날려버리길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명백하게 밝히며 새 정부는 정치적 호기를 놓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금융·의료보험·미디어 개혁, 일자리 창출, 이 나라의 열악한 인프라를 개선할 대규모 경기부양책,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 부시 행정부에서 시작했으나 매듭짓지 못한 불의하면서도 이길 수 없는 전쟁의 종식. 미국 유권자들은 이 모든 변화에 대비했고, 오바마는 이를 실현시킬 것을 약속했다.
오바마가 취임했을 때 대부분의 정치 전문가들은 그가 물려받은 시대적 유산을 두 사람의 강력한 전임자인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로널드 레이건의 그것과 비교했다. 루스벨트와 레이건은 모두 전임자의 정책이 경제위기에 책임이 있다며 새 정책과 정치 어젠다가 필요하다는 명확한 정치적 메시지로 대통령이 됐다. 루스벨트는 1920년대 후반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한 사유재산과 자유시장의 보호에서 탈피해, 대대적인 국가정책 개편 일정을 시작하는 그 유명한 ‘첫 100일’에 시동을 걸었다. 이 정책들은 대공황을 종식시키는 데 별다른 기여를 하진 못했지만 국민복지와 장기 경제성장, 그리고 빈곤층과 중산층을 위한 소득의 재분배를 가능케 한 ‘제2의 뉴딜’에 기초가 됐다.
변혁 대신 중재, 단호함 대신 공손
1980년대 초반, 레이건이 두 자릿수 물가 상승과 10%가 넘는 실업률을 초래한 짧지만 격심한 불황에 직면해 이룩한 성과도 인상적이었다. 상·하 양원 중 한 곳만 지배한 상태에서 레이건은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레이건은 “뉴딜 시대는 끝났고 정부가 문제”라고 주장하며 대규모 감세와 규제 철폐, 그리고 의미 있는 예산 삭감을 얻어내기 위해 여론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그 뒤 공화당은 빌 클린턴 대통령 집권 초기 2년을 빼고는 25년 동안 다수당의 자리를 차지하며 미국을 꾸준히 보수화했다.
루스벨트와 레이건이 그랬듯이, 오바마 대통령도 단호한 정치적 변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자신의 집권 뒤에도 공화당은 실패로 판명된 옛 정책을 계속 고집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중재자가 되고, 공손하게 민주·공화 양당을 끌어안는 태도로 통치하며, 협상을 통해 정치적 변화를 모색하는 방안을 택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금융 분야를 처리한 방법을 보자. 2008년 가을과 2009년 겨울의 금융위기는 미국의 경제정책에서 분수령을 이루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였다. 오바마가 취임했을 때 월스트리트의 거대 은행에서 받은 엄청난 수준의 급여와 투자은행 및 은행의 부자 고객에 대한 정부의 구제 조치에 국민의 분노가 들끓었다. 미국의 공공정책은 다른 어떤 선진 민주국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금융자산 부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명백하게 드러난 금융 분야의 붕괴를 근원적인 사회적·정치적 불평등과 효율적으로 연계할 기회는 낮은 가지에 달린 과일처럼 따주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요컨대 옛 체제를 공격할 때가 무르익었던 것이다.
경제팀, 월스트리트 출신들이 장악
그럼에도 오바마는 경제 붕괴를 초래한 신자유주의 체제에 책임을 지우기보다 이를 감싸는 쪽을 택했다. 그는 첫 핵심 경제팀으로 월스트리트에 가까웠던 래리 서머스와 티머시 가이트너를 지명했다. 두 사람 모두 경제위기를 초래한 바로 그 정책과 관련이 있었다. 이에 반해 더 대담한 변화를 주장하던 저명한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들은 오바마 팀을 떠났다. 폴 크루그먼과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대표적인 예다. 오바마와 그의 참모들은 의미 있는 변화라고는 거의 없이, 평판이 형편없던 부시 행정부의 정부 자금에 의한 기업 구제 정책을 답습했다.
2008년 가을의 금융 구제는 보통의 미국인들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경기 후퇴로 고통받도록 놔두면서 ‘부패한 부자들’은 보호하려 했다는 점에서 대중의 분노를 자아냈다. 미국 정부의 구제 조치를 받은 여러 금융기관은 기록적인 고수익 행진을 이어갔다. 지난 10월 <블룸버그>는 골드만삭스가 직원 1인당 평균 37만706달러를 지급할 수 있는 자금을 마련했으며, 도이체방크가 직원 1인당 39만4499달러를 줄 수 있는 돈을 준비했다고 보도했다. 여기서 직원은 돈을 훨씬 적게 받는 보조 인력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전형적인 은행가들은 이들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받는다.(1)
국민 경제 안정엔 생색내기만
서민 노동자들의 형편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뒤 공식 실업률은 거의 10%까지 치솟았고, 20살 이상 흑인 남성의 실업률은 약 17%나 됐다. 그러나 이 수는 취업 희망을 버리지 않은 사람만 대상으로 해서 실제 실업률은 이보다 훨씬 높다. 예를 들어 최근의 한 연구는 2009년 밀워키에 있는 흑인 남성의 실업률이 53%나 된다고 밝혔다(백인 남성 실업률도 22%로, 역시 터무니없을 정도로 높았다).(2) 이런 상황에서 주택 융자금을 갚지 못한 사람들이 주택을 차압당하고, 통장이 텅텅 비며, 심각한 불안정에 노출되는 일이 일상화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은행에는 막대한 구제금융을 지원하면서 은행들이 위기에 몰린 사람들의 주택 융자금 상환 조건을 완화하지 않는 데는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일반 국민의 경제 안정을 위해 한 일은 무엇이 있는가? 오바마의 주요한 업적은 2009년 겨울 787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통과시킨 것이다. 그러나 그 규모는 서글플 정도로 부족했다. 지난 중간선거에서 오바마와 민주당은 경기부양책을 통과시키지 않았다면 미국의 상황이 더 악화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정부가 거의 8천억 달러를 헛되이 써버렸다고 반박한 공화당에 의해 어렵잖게 빛이 바랬다. 결국 오바마의 경기부양책이 경제를 살렸다고 말하는 유권자는 별로 없었다.
의료보험 개혁마저 껍데기만 남아
오바마가 더 큰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얻어내는 데 실패한 것은 그가 말한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의 금융 개혁으로 파산제도는 다소 개선됐지만, 파산 직전에 몰린 금융기관들의 나쁜 행동을 부추기던 ‘대마불사’론을 해소하는 데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다. 새로운 법규들은 경제가 2008년 이전보다 대형 은행에 더 많이 의존하게 만들 것이다.
지지 세력이 남아 있지 않다
2008년 선거 당시, 오바마가 신봉한 고결한 행동 원칙에 매력을 느꼈던 젊은 유권자들은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뒤 그 원칙을 따르지 못한 것에 크게 실망하고 있다. 그들은 또한 오바마의 국내 정책에도 실망하고 있다. 경기침체는 대학 교육을 받은 20~24살 젊은이들을 황폐하게 했으며, 이들의 실업률은 2007년 12월의 3%에서 최근 10% 가까이 높아졌다. 그럼에도 젊은 유권자를 위한 어떤 특별한 직업 프로그램도 없다. 오바마 정부에서는 (역시 젊은이에게 특히 중요한) 미디어 정책도 실종됐다. 대선 후보 당시 오바마는 ‘망 중립성’(Net Neutrality·통신사업자가 이용자에게 차별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는 원칙)을 주장하며 오늘날 미국인이 대부분의 유럽인보다 더 많은 돈을 내면서도 더 느린 서비스를 받고 있는 광대역 통신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대규모 투자를 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오바마의 로스쿨 친구인 줄리어스 게나초프스키가 이끄는 연방통신위원회는 정부가 그런 것처럼, 공화·민주 양당 협상과 소비자보다는 통신산업의 편의를 도모하는 것에만 끝없이 관심을 쏟고 있다.
오바마의 선거운동은 진보주의자들과 정부 정책에 불만을 품은 미국 시민을 움직이는 데 큰 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뒤 오바마는 자신의 승리가 가능하도록 도운 대규모 운동과는 관계 없기를 바라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이젠 이 운동의 핵심 구성원들도 더 이상 그를 지지하는 데 관심을 갖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글•에릭 클리넨버그 Eric Klinenberg 뉴욕대학 교수·사회학
제프 맨자 Jeff Manza 뉴욕대학 교수·사회학
번역•김종락 jrkkk@nate.com
<각주>
(1)www.bloomberg.com/news/2010-10-27/deutsche-bank-raises-investment-bank-bonus-pool-as-revenue-gains.html.
(2) badgerherald.com/news/2010/10/25/study_shows_milwauke.php.
(3) www.rollingstone.com/politics/news/12697/ 64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