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크 뉴스의 희생자, 트럼프

2019-04-30     세르주 알리미, 피에르 랭베르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에 선출된 이후, 전 세계 엘리트 언론인들은 크렘린이 백악관을 배후 조종한다는 음모론을 퍼뜨려왔다. 하지만 한 수사보고서가 이들의 노고를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냉철한 이성을 자랑하는 엘리트 언론인들이, 단체로 편집증에 걸린 것일까?

 

2019년 3월 24일은 유력언론에게 ‘검은 일요일’로 역사에 기록되리라. 이날, 미국 법무부 장관은 로버트 뮬러 특검 수사보고서를 간략하게 정리한 4쪽짜리 요약본을 발표했다. 그동안 뮬러 특검팀은 2016년 미대선 개입과 관련한 도널드 트럼프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의 유착(협조, 결탁 혹은 공모) 의혹을 2년 이상 수사해왔다. 그리고 마침내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결론적으로 특검은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캠프가 대선 개입을 목적으로 러시아 정부와 공모하거나 협조했다는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뮬러 검사는 민주당원들에게 경배까지 받는 인물이니만큼(한 인터넷사이트에서는 12.85유로에 ‘성인 로버트 뮬러를 위한 기도용 양초가 판매되기도 했다), 이 뉴욕의 억만장자인 트럼프에게 잘 보이려고 호의를 베푼 것이라고 의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뮬러 검사는 ‘보내기’ 버튼 클릭 한 방으로 순식간에 지난 10여 년 이래 가장 큰 파문을 일으킨 ‘가짜 뉴스들’을 줄줄이 반박한 셈이 됐다. 

이를테면 미국의 대통령이 2013년 모스크바 고급 호텔에서 섹스파티 행각을 벌인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동영상으로 곤란에 빠져 러시아에 협박을 당하고 있다거나, 심지어 ‘푸틴의 꼭두각시’ 신세가 되고 말았다는 따위의 뉴스들을 말이다. 사실 유력 신문사들은 그동안 아주 신이 나서 ‘콤프로마트’(유명 인사의 비윤리적인 행위를 수집 또는 녹화해 협박하는 행위-역주)라는 러시아어 표현을 앵무새처럼 무한 반복하기 바빴다. 2017년 초 이후, 이른바 ‘러시아게이트’가 이처럼 세계적인 권위지로 통하는 각종 언론매체의 사설란을 뜨겁게 달궜다.(1) 

 

미국의 대통령은 러시아의 스파이?

“우리는 미국의 대통령이 적대국의 스파이라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 마이클 푸크스가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2017년 12월 28일)에서 설명했다. 6개월 뒤에는 <뉴욕매거진>(2018년 7월 9일)이 트럼프와 푸틴의 헬싱키 정상회담을 “러시아정보국 신입요원과 지령자 간의 만남”이라고 묘사했다. ‘좌파’ 방송으로 통하는 <MSNBC>의 유명 진행자 레이첼 메도우는, 트럼프의 모든 정책들(아프가니스탄 혹은 시리아 철군 계획, 대북 협상 등)이 사실상 그가 러시아 지령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추가 증거들이라고 논평했다. 메도우는 헬싱키 정상회담 직후 “누군가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의 국익에 봉사하기 위해 미국의 대통령직에 올랐을 가능성(2018년 7월 16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놀라운 상상력을 자랑하는 <타임> 매거진도 같은 시기 미국 대통령의 모습이 러시아 대통령으로 둔갑하는 인형 속 인형 마트료시카 인형을 표지 사진으로 내걸었다(‘모두가 차르의 사람: 어떻게 푸틴의 올리가르히들이 트럼프 캠프에 침투했는가?’, 2018년 10월 1일 자).

한편 <ABC> 방송(2018년 4월 12일)에서는 트럼프에게서 쫓겨난 전직 연방수사국(FBI) 국장 제임스 코미가 출연해 미국의 지식인 계급이 기뻐 날뛸 만한 가설 하나를 제시했다. “나는 현 미국 대통령이 2013년 서로의 몸에 소변을 보는 매춘부들과 함께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비록 나는 모르는 일이지만.” 그처럼 1960~1970년대 수많은 반인종차별주의 운동가들의 암살에 앞장을 섰던 한 수사기관의 책임자들이 진보방송을 널리 활보(지금도 여전히)하며, 민주주의의 존속에 관해 한 수 가르쳐주겠다고 저마다 떠들어댔다.

“트럼프가 푸틴의 하수인이 아니라면, 그 어느 때보다도 본인이 분명하게 진실을 입증해 보여야 할 때다.” 2018년 3월 21일 <뉴욕타임스>의 한 사설이 트럼프를 향해 호통을 쳤다. 그러나 이 신문은 정작 반역죄 여부를 입증해야 하는 것은 언론 스스로의 몫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린 듯 보였다. 그로부터 6개월 뒤, 이 일간지는 다시금 거의 대하소설에 버금가는 장편 기사를 게재한 후, 트럼프가 러시아에 조종당하고 있음을 지나치게 경박하다 싶을 정도로 암시하는, 줄에 묶인 손을 묘사한 흐릿한 사진을 곁들였다.

기사의 논조는 가히 세계가 파충류나 비밀 결사조직 일루미나티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다는 음모론자들의 어투를 연상시켰다. “비록 우리가 증명할 수도, 반증할 수도 없지만, 푸틴 대통령이 자신의 팬인 트럼프에게 대통령직을 안겨주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할 만한 이유는 수없이 많다.”(2018년 9월 20일) 이런 탐사기술이라면 가히 퓰리처상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해 정말로 이 일간지는 퓰리처상을 받았다.

‘러시아게이트’ 사건과 함께, <제임스 본드>의 시나리오작가조차 기괴하다고 여길 만한 음모론이 여기저기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이런 음모론의 근원은 정작 마케도니아의 트롤들(마케도니아의 소도시 벨레스는 친트럼프 성향의 악의적 가짜 뉴스가 쏟아진 진원지로 유명하다-역주)도, ‘알트라이트’(극단적 백인 우월주의에 기반한 미국의 온라인 보수 세력으로, 반세계화, 반이민, 반유대주의, 반이슬람, 반페미니즘, 백인 우월주의 등을 주요 기조로 한다-역주)의 운동원들도 아니었다. 그것은 자유주의 언론의 거친 심장이었다. 거만하고도 계도적인 직업윤리가 고동을 치는 그들의 심장 말이다. 가령 <뉴욕타임스>, <이코노미스트>, <워싱턴포스트> 같은 종이언론과 <CNN>, <MSNBC>, <아르테>, <BBC>등 방송국들까지 가세했다. 심지어 <리베라시옹>, <르몽드>, <가디안>까지 대열에 동참했다. 

한 마디로, 그것은 가장 학식이 높고, 가장 고상하고, 가장 유력한 사회계층을 고객으로 삼는 언론인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혹은 브렉시트 투표와 트럼프 선출이 이슈가 된 2016년 이후로 온통 ‘가짜 뉴스’에 대한 성토로 모든 기사를 도배하다시피 했던 미디어들이라고도 말할 수 있었다. 트럼프와 러시아와의 공모 의혹을 씻어내는 데 기여한 뮬러 보고서는 그동안 이 언론들에서 매우 소중히 다뤄지던 핵심서사를 파괴해버렸다. 뉴미디어를 상대로 그들이 다시금 정당성을 회복하는 것은 물론, 무엇보다 막대한 돈도 벌어들일 수 있게 해준(특히 미국 내에서) 그 핵심서사를 말이다.

결국 자승자박의 꼴이 된 이 언론들은 실망감을 연출해 보여야만 했다. 다른 경우였다면 이것은 세계적인 스캔들에 버금갈 일이었다(어쨌거나 가짜뉴스와의 투쟁은 자유민주주의가 공식적으로 선결과제로 삼는 문제이지 않은가).

 

‘신중’과 ‘교란’으로 요약되는 언론의 태도

그렇다면 이 언론매체들은 뮬러 특검의 수사 결과에 대해 어떤 식으로 보도했을까? 과연 열병 같은 편집증이 유력언론의 편집국을 줄줄이 감염시켰던 사실을 인정했을까? 2016년 이후 줄곧 러시아게이트와 관련한 가짜 뉴스를 비판해온 글렌 그린월드나 맷 타이비와 같은 일부 좌파 저격수들 외에도,(2) 미국의 일부 기자들은 “미 언론에 얼마 남지 않은 신뢰마저 무너뜨릴 집단 최면에 무릎을 꿇었다”고 시인했다(리 스미스, <태블릿>, 2019년 3월 27일).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언론사는 그보다 조금 더 간결하게 “그럴 만한 보도 가치가 있는 일은 아니었다”(<월스트리트 저널>, 2019년 4월 18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자는 참패 사실을 부인했다. “우리는 그 (법무부 장관의) 서한이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전적으로 말이다. 그것은 하등 의미가 없다.”(2019년 3월 29일) <MSNBC> 진행자 조 스카버러는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뮬러 수사보고서가 발표된 뒤, 가상의 음모론을 옹호하던 사람들은 트럼프가 종종 권위를 악용해 자신의 신경을 거스르는 수사를 방해하려고 시도했고, 그가 항상 정직하거나 섬세한 태도를 보인 것은 아니라는 특검결과 내용에 집중했다. 하지만 뮬러의 수사 결과가 실제 별 의미가 없었던 거라면, 굳이 이렇게 요란을 떨며 2년여에 걸쳐 수사를 벌일 일은 아니었다.

프랑스 언론의 뮬러 보고서 관련 보도 태도는 딱 두 단어로 요약됐다. 그것은 ‘신중’과 ‘교란’이었다. ‘가짜 뉴스’와의 투쟁에 선봉장으로 널리 활약한 공영라디오방송 <프랑스앵테르>의 경우, 미디어 전문가인 소니아 드빌리에는 일일 방송 ‘에디토 M’이나 혹은 ‘랭스탕 M’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동료들의 참패 소식을 다루는 데 할애하지 않았다. 반면 그녀는 ‘클럽 도로테’(4월 4일)의 역사와 같은 훨씬 더 중대하거나, 혹은 훨씬 더 방송국 성향에 친화적인 주제들을 소개하느라 바빴다. 가령 ‘언론인들의 분노’(4월 19일), ‘고통받는 헝가리 언론’(4월 12일), 혹은 더 나아가 ‘가짜 뉴스’(트럼프 지지자들과 민족주의 우파가 생산한)를 주제로 <프랑스5> 방송이 야심차게 준비한 ‘슈퍼 웰 메이드급’ 다큐멘터리 시리즈 중 한 편인 ‘거짓말 공장’(4월 5일)이 대표적인 예였다. 

<프랑스 앵테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제오폴리티크(지정학)’ 코너의 새 진행자 피에르 아스키는 전임 진행자 베르나르 게타가 유럽의회 선거에 여당 후보로 출마한 이후로는 마치 러시아게이트 참패 사태에 도통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3월 24일 사건이 터지고 3주가 지났는데도, 이 사건을 청취자들에게 전달해야 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으니 말이다. 사실상 ‘국경 없는 기자회’의 협회장이기까지 한 그가 말이다.

물론 <르몽드>(2019년 3월 26일)는 이 사건을 1면에서 다루는 성의를 보이기는 했다. “러시아 수사 첫 결과 발표로 승리를 거둔 트럼프.” 하지만 다음 날, 곧바로 이 일간지의 사설은 3년 넘게 끌어온 트럼프의 러시아 게이트 수사 결과를 두고 참으로 기이한 결론을 도출했다. “미국의 시스템은 잘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뉴욕타임스>의 한 논객은 이번 사태를 놓고 <르몽드>와는 정반대의 결론을 이끌어냈다. 논객 로스 다우닷은 권력의 균형을 위해 일한다는 모든 인사들(정치, 언론, 사법, 치안 등의 분야)이 “정작 본인은 그에 저항한다고 굳게 믿으면서도, 실제로는 일종의 음모론이 가미된 이 대안 현실에 온 에너지를 쏟아” 부은 셈이었다고 지적했다(2019년 3월 26일). 

 

“러시아가 아프리카 독재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인터넷 세계 깊은 곳에 암약하는 음모론자들은 모든 이들의 조롱을 받지만, 정작 ‘편집증에 빠진 중앙부’는 합법성과 지식인계급, 권위라는 이른바 권력의 무기에 기대어 활동한다. 그런 의미에서 편집증에 빠진 중앙부는 그들이 그토록 맞서 싸우고자 하는 민족주의 우파만큼이나 민주주의 사회의 공적인 삶을 위협한다고 볼 수 있다. “중심부가 이처럼 미국이나 서구의 제도가 매우 선하고, 이 제도를 대표하는 사람들 역시 기본적으로는 지혜롭고 애국심이 강하다고 믿는 한, 그들은 언제나 국외의 큰 적과 국내의 급진주의 세력에 대해서만 예민하게 경각심을 높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두 세력이 합동으로 행동하는 것에 가장 큰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중독 증세가 심할수록, 지혜는 더욱 무력해진다. 유럽과 미국의 언론사 편집국들은 그리 오래지 않아 다우닷의 진단이 얼마나 정확했던가를 몸소 입증해 보였다. 미디어계의 체르노빌 사태가 일어난 지 8일 뒤 <르몽드>는 ‘해외 러시아 조직망과 그 영향력에 대한 시리즈’를 게재했다. 그 가운데 특히 러시아와 극우의 관계를 조명한 기사를 비중 있게 다뤘다. 이에 질세라 <라 크루아>도 ‘5월 26일 실시될 유럽 선거의 향방에 영향을 미칠 만한 가짜 뉴스들’을 추적하는 데 앞장섰다. 이 신문사는 가짜 뉴스를 양산하는 유력한 용의자로 ‘러시아인들’을 지목했다.

마치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악의 제국의 수도, 모스크바”를 주제로 한 온갖 기사들이 봇물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4월 2일, <뉴욕타임스>의 국제판은 ‘러시아는 왜 우크라이나 전기공 암살을 명령했는가?’라는 표제의 기사를 내놓았다. 다음날에는 러시아가 촘촘히 마수를 뻗어가며 온갖 공작을 펼치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현실을 또다시 ‘1면 기사’로 조명했다. 그리고 다시 24시간이 지난 뒤에는 아예 대륙을 옮겨, “아프리카에서 부상 중인 러시아, 서구를 바짝 긴장시키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타전했다. 러시아가 미국에 비해 볼품없고 부실한 무기를 아프리카에 판매하며 ‘독재자들’을 지원하고 있다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그러나 어쨌거나 자유주의 언론의 다음 성배가 될 주제를 (아주 긴 기사를 곁들여) 아주 짧은 표제로 요약한 것은 유력매체 <타임>이었다. 사실상 트럼프와 푸틴 간의 악의적 공모 사태를 둘러싼 강박적 관심이 사라져버린 다음이니, 그 자리를 대신할 다음 타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러시아의 또 다른 음모”였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미국 버클리대 정치학 박사 출신으로 파리 8대학 정치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1992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합류한 뒤 2008년 이그나시오 라모네의 뒤를 이어 발행인 겸 편집인 자리에 올랐다. 신자유주의 문제, 특히 경제와 사회,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 신자유주의가 미치는 영향과 그 폐해를 집중 조명해 왔다.

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미디어비평 행동단체 ‘Acrimed’에서 활동 중이며, 대안언론 <르플랑베(Le Plan B)>를 발행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Libération, de Sartre à Rothschild 해방, 사르트르에서 로스차일드까지』(Raisons d'agir, 2005) 등이 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번역위원

 

(1) Serge Halimi, ‘러시아의 꼭두각시(Marionnettes russe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7년 1월호. / Aaron Maté, ‘강박증에서 편집증까지, 러시아의 개입(Ingérence russe, de l'obsession à la paranoia)’,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7년 12월호.

(2) Glenn Greenwald, ‘Robert Mueller did not merely reject the Trump-Russia conspiracy theories. He obliterated them’, <The Intecept>, 2019년 4월 18일, http://theintercept.com/Matt Taibbi, ‘It's official: Russiagate is this generation'sWMD’, <Hate Inc>, 2019년 3월 23일, http://tabbi.substac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