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 직전의 유럽제국은 어디로?

2019-04-30     볼프강 슈트렉 l 사회학자, 독일 막스플랑크사회연구소 명예소장

1986년 단일유럽의정서가 채택된 이후 최근 들어 보수주의와 민족주의적인 성향의 정치 세력들은 유럽을 떠나기 위한, 자신들의 계획을 실현하려 한다. 브렉시트로 상징되는 이 같은 탈(脫)유럽 움직임은 유럽연합 내에서 회원국 간의 갈등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이란 무엇인가? 유럽연합에 가장 가까운 개념은 자유주의 제국, 더 정확히 말하면 신자유주의 제국이다. 다시 말해 유럽연합은 중심에서 주변부로의 권력 분배 때문에 안정이 유지되는 명목상의 주권국가들로 구성된, 상하수직적인 조직을 이루는 집합체를 의미한다.

유럽연합의 중심부에는 독일이 자리한다. 독일은 프랑스와 함께 유럽의 단단한 중핵(Kerneuropa·독일, 프랑스, 베네룩스 국가 등 선진국으로만 구성된 핵심유럽)을 형성하며, 그 속에 숨으려 한다. 이런 시도는 지금까지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 실상 독일은 영국인들이 말하는 ‘대륙의 통합자’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그것이 진실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독일은 프랑스의 뒤에 숨어 권력을 행사하려 한다. 

미국을 필두로 하는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처럼, 독일도 스스로를 온정 넘치는 패권국이라고 자처한다(그리고 다른 국가들도 그렇게 생각해주기를 기대한다). 이들 국가는 자국이 이웃 국가들에 보편적인 상식과 도덕적 가치를 전파하는 일을 맡아, 그 비용까지 대신 짊어지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그것이 인류의 행복을 위해 감수해야 할 당연한 짐이라면서 말이다.(1)

독일과 유럽에서, 제국을 정당화하는 가치는 자유민주주의·입헌정치·개인의 자유, 한 마디로 정치자유주의의 가치들이다. 하지만 이 가치 안에는 시장의 자유, 경쟁의 자유도 포함돼 있다(본질적으로 그것은 경제자유주의, 현 상황을 더 정확히 표현하면, 신자유주의다). 제국은 적절한 때를 골라 이런 가치들을 중요한 가치로 앞세우곤 한다. 제국주의의 가치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것의 깊은 의미가 무엇인지, 특수한 상황에서 그 가치들을 어떻게 적용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모두 중심부를 차지한 패권국가의 특권이다. 패권국은 이런 특권에 힘입어 주변부 국가들에 호의를 베풀고는, 그 대가로 일종의 화폐 주조세를 부과할 권한을 누린다.

 

패권국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무늬뿐인 주권국가들 속에서 제국주의 국가가 강력한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정치적, 제도적 조정이 필요하다. 가령 주변부 국가들은 무엇보다 중심부의 특수한 체제와 가치를 본보기로 삼을 줄 아는 엘리트들에 의해 다스려질 필요가 있다. 이들이 중심부의 이익에 위배되지 않게 자국의 경제나 사회질서를 조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엘리트들이 권력을 유지하는 것은 제국의 생존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미국의 경험에서 보듯, 이런 구도를 유지하기 위해 때로는 민주적 가치와 경제적 자원은 물론, 더 나아가 인간의 생명까지도 대가로 치러진다.

종종 ‘약소국’이나 개발에 ‘뒤처진 나라’를 이끄는 엘리트들은 제국의 2류 회원국 지위를 얻고자 한다. 자국 사회에서 대중의 열광적 지지를 받기 힘든 ‘근대화’ 사업을 억지로 추진할 수 있도록 제국의 지도층이 자국에 강력한 힘을 실어주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제국이 앞세우는 대의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이면 제국은 이에 크게 기뻐하며, ‘가신국가’들에 야당 세력들을 견제할 온갖 이념적, 금전적, 군사적 수단을 제공해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자유주의 제국은 군사적 폭력이 아닌 도덕적 가치에 의해 사회의 결속력이 유지된다고 간주된다. 하지만 자고로 현실은 늘 이상과 괴리를 보이기 마련이다. 주변부의 지도층처럼 중심부의 지도층도 때때로 실수를 저지른다. 예를 들어, (유럽중앙은행/ECB의 은밀한 지원 하에) 늘 보조를 맞추어 움직이는 독일과 프랑스지만, 이들 국가는 정작 이탈리아에서 대중의 저항에 직면한 마테오 렌치 ‘개혁’ 정부가 권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힘을 쓰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프랑스인 입장에서 보면, 독일도 역시 프랑스 경제를 게르만화하려는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든 사람들과 ‘노란조끼’의 분노로부터 마크롱 정부를 보호할 능력이 없었다.

패권국도 국내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자유제국주의 체제 하에서, 독일 정부는 자국의 국익(혹은 스스로 자국의 국익이라 간주하는 것)을 수호할 때조차 그것이 민주주의에서 만인의 번영을 이룰 유익한 일이라는 인상을 줘야만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때때로 ‘가신국가’들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독일은, 2015년에는 전혀 가신국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당시 앙겔라 메르켈 정부는 인구 위기와 독일의 이미지 제고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이민 규제 강화 정책(기독민주당 의원들이 반대)에서 선회해 난민 무제한 수용 정책을 추구하려 했다.

보통은 독일이 더 이상 통제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혹은 국제법의 요구에 따르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워, 자국의 국경을 개방하기로 하면, 유럽연합 전체가 독일과 보조를 맞추기 마련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어떤 회원국도 독일의 뒤를 따르지 않았다. 프랑스를 비롯한 일부 국가는 침묵을 지켰고, 헝가리와 폴란드 등의 국가는 공개적으로 그것이 자국의 주권에 속하는 문제라며 반발했다. 그들은 국내정책과 관련해 그동안 관습적으로 따르던 규율, 즉 결코 타 정부(특히 패권국)를 곤란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자유제국주의의 규율을 저버렸다. 

메르켈은 결국 이 사태로 국내적 어려움에 처했고, 이후로도 줄곧 난국을 타개하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국가들은 제국의 대내외 정책을 둘러싸고 중심부 국가와 동유럽 국가 사이에 존재하던 고질적인 갈등을 더욱 부채질하는 역할을 했다. 이 사건은 이미 상존하는 유럽의 분열을 더욱 가중하는 결과를 낳았다. 다시 말해 서쪽으로는 영국, 그리고 남쪽으로는 단일화폐 도입을 계기로 남유럽 국가들과의 분열이 한층 가중됐다.

 

지속적 불평등, 자유주의 제국의 문제

자유주의 제국은 그 어떤 종류의 제국보다 지속적인 불평등 상태 때문에 더 많은 고통을 겪는 경향이 있다. 또한 옆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압박감에 끊임없이 시달리곤 한다. 자유주의 제국은 다른 회원국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능력이 없는 탓에 무력으로 다른 나라로부터 양보를 얻어낼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영국이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했을 때도 독일이나 프랑스가 브렉시트 사태를 막기 위해 영국의 섬들을 침공하겠다고 계획하는 일은 없었다. 지금까지 유럽연합은 평화를 구현해왔다. 그러나 독일의 입장에서, 혹은 프랑스와 독일의 입장에서, 영국과의 ‘합의이혼’은 결국 제국주의 규율을 무너뜨릴 위험이 높다. 제국주의 규율에 항거하는 다른 나라들도 충분히 영국의 전철을 밟아 유럽연합 탈퇴를 고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국이 상당 수준의 양보를 했다면 분명 영국의 탈퇴를 막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 경우 다른 나라들이 그동안 절대 협상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던 유럽연합의 규범(acquis communautaire·EU 출범 이후 축적된 조약과 관행, 법체계-역주)을 재협상하자고 요구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영국은 아무런 양보도 얻지 못한 채 유럽연합에 남을 것인지(무조건적인 항복), 아니면 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유럽연합을 떠날 것인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실상 영국이 독일과 함께 그동안 프랑스의 국가관리주의를 견제하며 (독일 입장에서) 시장경제에 긍정적인 일에 든든한 지원군이 돼줬다는 사실도 사태의 흐름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결국 브렉시트와 함께 이런 균형 관계는 깨졌다.

이런 사실을 명확히 인식한 프랑스는, 결국 영국이 탈퇴하기를 바라는 본심을 가까스로 숨긴 채 영국과의 협상에서 매우 강경한 태도를 고수했다. 프랑스는 결국 제국주의 규율이 무너질 것을 두려워하는 독일의 심리를 이용해, 원하던 것을 얻어냈다. 심지어 독일이 최대 규모의 수출 시장 중 한 곳을 잃게 되고, 영국의 지원 없이 홀로 프랑스의 야망을 견제해야 하는 상황에 몰릴 것을 크게 우려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독일은 프랑스의 뜻을 따르기로 결정하면서 결국 기회주의에 근거한 근시안적 의사결정(참으로 메르켈다운)을 내리고 만 것은 아닐까? 그로 인해 향후 몇 년 안에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진실이 무엇인지는 미래가 말해 주리라.

영국의 경우에도, 유럽연합 탈퇴가 민족주의적인 고려에 따른 결정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실책을 범한 것일 수도 있다. 브렉시트는 결국 프랑스를 유럽연합의 유일한 핵 강국이자 동시에,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의 유일한 상임이사국으로 만들어줄 것이 분명하다. 

독일은 한층 더 긴밀하게 통합된 유럽연합(이 경우 결국 독일의 강력한 경제력이 프랑스의 국익에 이용될 수도 있다) 안에서 최고의 ‘리더’가 되기를 꿈꾸는 프랑스의 야망에 양면적인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이런 독일의 감정에 대해 다른 국가들도 널리 동조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영국이 게임장을 떠나고 나면, 프랑스는 프랑스식 유럽통합안을 추구하도록 독일을 압박하며 유럽의 통합자 지위를 꿈꿀 것이다. 다시 말해 마크롱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럽 안의 주권적 프랑스’를 강제하려 할 것이다. 영국이 외부에서 이런 변화를 저지하기란 내부에서 이를 보이콧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우리는 이미 1960년대에 얼마나 열성적으로 드골 장군이 영국의 유럽경제공동체(EEC) 가입을 저지했는지 잘 알고 있다. 이 나라가 충분히 ‘유럽적’이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서 말이다.

 

경제적 팽창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제국을 통치하려면 무엇보다 경제적, 이념적 요소만이 아닌 전략지정학적(Geostrategic) 요소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특히 주변부 국가들의 상황을 널리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극주변부에 위치한 접경국가들의 안정은 특히 자본주의를 표방한 제국에는 경제적 팽창을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한 제국이 또 다른 제국과 인접해 있는 경우, 이 제국은 팽창주의를 추구하는지 아닌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언제나 협조적인 정부를 자신의 울타리 안에 두고, 비협조적인 정부는 멀리 축출하기 위해 값비싼 대가를 치르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각국의 엘리트들은 제국으로부터 멀리 떠나거나 혹은 다른 진영을 선택하겠다고 협박하며, 제국으로부터 더욱 값비싼 양보를 얻어내기도 한다. 비록 그들이 국내에서 추구하는 정책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한 경우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대표적인 예가 크로아티아와 루마니아다. 결국 여기에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군사적 힘(‘소프트 파워’, 영향력, 가치관의 힘과는 구분 지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이다. 이런 상황이더라도 자유주의 제국은 규율을 지키지 않는 인민을 상대로 직접 무력을 사용할 수가 없다. 

하지만 우호적인 정권에 대한 보호막 역할을 하며, 그들의 대립국가에 취할 정책적 수단을 제공해줄 수는 있다. 그러면 상대 이웃국가는 제국의 체스 말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데 대해 위협감을 느낄 것이다. 대신 그 대가로 패권국은 이 국가들에 일정한 양보를 요구할 수도 있다. 가령 유럽연합 내에서 갑론을박이 치열한 사안에 대해 자신들의 뜻을 지지해줄 것을 요구하는 식으로 말이다. 일례로 발트해 연안국가들은 독일군이 러시아를 위협할 수준까지 군사력을 전개하고 확대해주는 대가로, 난민 수용과 배분 문제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자유주의 제국의 중심부를 차지한 국가와 그 국민들은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충분히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결국 환상에 불과하다. 세상에 대포를 앞세우지 않은 패권이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사실상 메르켈 정부가 자국의 국방예산을 국민총생산(GNP) 대비 2% 수준으로, 약 2배 확대하기로 약속하며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요구에 무릎을 꿇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볼 수 있다. 실제로 이 목표치가 실현된다면, 독일의 국방 지출은 재래식 무기 구매와 개발을 포함해 러시아를 40%나 더 추월하게 만든다.

이런 현실은 발트해 국가나 폴란드 같은 나라들을 유럽연합 내에 묶어두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사실상 이 나라들의 눈에는 미국이라는 대안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덕분에 독일은 동유럽 회원국들로부터 어쩌면 가치관과 관련된 문제들(난민 문제 혹은 동성 결혼 문제)에 대해 양보나 포기를 얻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상황은 러시아가 핵전력을 현대화하는 빌미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미 러시아는 실제로도 그런 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국방예산이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2%라는 마법의 수치에 근접한 프랑스는 독일이 국방비를 2배 증강하는 대신, 경제력이 약화될 것을 기대할지 모른다(비록 프랑스가 무기 제조와 수출에 있어서는 독일과 협력하는 데 호의적일지라도 말이다). 더욱이 마크롱이 구상하는 유럽군 차원에서, 만일 독일이 독일유럽주의자들의 지지를 받아 재래식 군사력을 현저히 증강하기로 한다면, 지상군이 취약한 프랑스의 약점을 현저히 보완해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프랑스가 지상군이 취약한 이유는 핵전력에 예산을 더 치중하고 있기 때문인데, 자국의 우라늄이나 희토류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프랑스를 가로막는 서아프리카 내 이슬람주의 세력을 상대로는 핵전력을 사용하기가 어렵다.

 

세계화의 산물, ‘권위주의적 자유주의’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유럽제국(독일 혹은 프-독 제국)은 단순히 자유주의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신자유주의적이다. 대개 제국이란 으레 중심부를 표본으로 삼은 단일한 사회질서를 회원국들에 강요하기 마련이다. 유럽연합의 경우, 각 회원국의 경제를 관장하는 질서는 내수의 ‘4가지 자유’(재화, 자본, 서비스, 인간의 자유), 그리고 모든 회원국을 위한 통화가 돼야 한다고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명시된 유로화라는 이름의 독일식 단일통화다. 

그런 점에서 유럽연합은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가 구상한 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철저히 부합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란 개념의 핵심은 바로 ‘이소노미아’(법 앞에 모든 이가 평등함을 의미한다-역주)다. 다시 말해 주권을 지닌 여러 국민국가들 사이에 조화로운 시장 운영을 위해 완전히 동일한 법률 시스템을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2)

신자유주의의 아킬레스건은 단연코 ‘민주주의’이다. 이소노미아와 그 통화제도는 사실상 다수의 의지에 입각한, 대중을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가 정치경제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제약을 가한다. 신자유주의 제국에 속하는 각국 정부는 선거에서 불이익을 보지 않으면서도 자국의 시민들이 세계시장에 참여하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시민의 이익을 위해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설령 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라도). 어쨌거나 분명 그것은 자본 축적에는 유익한 일이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제국은 각국 정부에 보통선거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각종 국가 제도와 국제 제도를 갖추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신자유주의 국가는 자유로운 시장의 게임을 정치적으로 손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회세력과의 관계에서 보다 더 강경한 모습을 보여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이 바로 ‘권위주의적 자유주의’다. 이 정치 교리의 기원은 바이마르 공화국,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과 제3제국의 ‘황제법학자’(Kronjurist·나치 시대의 대표적 법률가로 악명이 높아 흔히 나치 시대의 황제법학자 혹은 계관법학자로 불렸다-역주)인 칼 슈미트가 우호적인 만남을 가진 시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3)  

권위주의적 자유주의는 흔히 강력한 국가체제를 이용해 자유 시장경제를 정치민주주의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한다.(4) 유럽연합에서 이 권위주의적 자유주의는 무엇보다 세계화의 산물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각국이 자국의 경제체제를 초국적 법원, 각료이사회, 혹은 중앙은행 등 규범 생산의 역할을 하는 국제기구들을 따르도록 일종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데서 비롯됐다. 그런 식으로 각국 정부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거나 혹은 감당하기를 원하지 않는 국가 차원의 주권수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세계화는 각국의 정부에 정통 정치학에서 이른바 ‘다중트랙외교’라고 부르는 수단을 제공해줬다.(5) 말하자면 각국의 행정부는 향후 국내 정책으로도 도입하게 될 온갖 국제적 사안에 대해 다자간 협상을 벌일 수 있게 됐다. 이런 점은 각국의 엘리트가 자유주의 제국에 대해 느끼는 매력 중 하나다. 특히나 금융자본주의가 경기침체로 본연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채 정당성을 잃어가고 있는 시대에서 이는 각국의 엘리트층에 매력적인 수단이 아닐 수 없다. “각국의 엘리트들은 초국적인 협정 혹은 정부 간 협정에 의지해 자국의 심층적인 문제들을 피해갈 수 있다.”

법학자 피터 람세이가 영국 지도층 출신자들이 고집스럽게 반 브렉시트 투쟁을 벌이는 이유를 설명하며 말했다. “유럽연합은 국가적 성격을 부인하는, 국가의 권위가 정치적 국가체제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국가들로 구성된 자발적 성격의 제국이다.”(6)

자유주의 제국에서 패권국의 지위를 유지하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독일이(프랑스와의 공동 행보 여부와 관계없이) 점점 더 패권국 역할을 오래 지속하기 힘들 것이라는 점은 명확해지고 있다. 소련과 미국이 동시에 보여준 바와 같이, 영토 확장은 언제나 제국에는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그러나 국방 문제와 관련해, 독일에선 여전히 평화주의 여론이 우세하고, 군사 파병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까지 의회의 승인을 까다롭게 받게 한 헌법적 특권도 폐지될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더욱이 그것이 독일 정치계의 이상적인 사윗감인 마크롱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말이다.

또한 우리는 그동안 독일의 강한 유로 정책으로 큰 피해를 본 지중해 국가들, 그리고 중앙유럽 국가들과 그 나라들을 이끄는 ‘친유럽’ 성향의 지도자들을 지원하고자 조성된 EU 구조기금 때문에, 제국의 추가 재정 부담이 점점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프랑스는 저조한 성장률과 높은 재정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결국 독일이 홀로 재정을 부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설령 재정 이전에 필요한 자금이 독일의 여력을 훨씬 능가하는 수준일지라도 말이다. 

2015년 난민 사태 이후, 독일을 위한 대안(AFD) 당은 독일 최대 야당으로 부상했다. AFD는 민족주의 성향을 지니지만, 이 당이 표방하는 정책을 볼 때 고립주의나 반제국주의의 성격을 지닌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독일의 자유주의 제국주의자들은 기이하게도 이 당을 ‘반유럽주의’ 정당으로 분류하곤 한다. 그러나 잠시 인종차별주의나 역사수정주의를 논외로 하면, 우리는 AFD가 보이는 민족주의 성향이 다른 나라들도 각자 자국의 뜻대로 행동할 자유를 지니므로 우리도 더 이상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값비싼 대가를 치를 수 없다는 거부감의 반영임을 깨닫게 된다. 

이런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가 있다. AFD 당이 러시아와 대립하기보다는 평화롭게 지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사실상 이런 태도는 독일 좌파당(Die Linke)과도 일맥상통한다. 특히 이들은 트럼프가 표방한 ‘미국 우선주의’와도 유사점이 많다. 애초 ‘미국 우선주의’는 힐러리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가 표방하는 자유 제국주의에서 단절해, 제국주의적이기보다는 오히려 고립주의적인 성격을 더 강하게 드러냈다.

 

 

글·볼프강 슈트렉Wolfgang Streek
사회학자. 독일 막스플랑크사회연구소 명예소장. 본 기사는 2019년 3월 6일 런던정경대 블로그에 필자가 게재한 글, ‘유럽연합은 자유주의 제국이고, 거의 몰락 직전에 있다(The European Union is a liberal empire, and it is about to fall)’을 수정한 것이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번역위원

 

(1) 패권 문제에 대해서는 Perry Anderson, 『The H-Word: The Perpeteia of Hegemony』, Verso, 런던과 뉴욕, 2017을 참조.

(2) Quinn Slobodian, 『Globalists: The End of Empire and the Birth of Neoliberalism』, Havard University Press, 캠브리지(매사추세츠), 2018년.

(3) ‘Heller, Schmitt and the Euro’, 『European Law Journal』, 제21권, 제3호, 호보컨(뉴저지), 2015년 5월.

(4) Andrew Gamble, 『The Free Economy and the Strong State: The Politics of Thatcherism』, Palgrave Macmillan, 런던, 1988년.

(5) Robert D. Putnam, ‘Diplomacy and domestic politics: The logic of two-level games’, 『International Organization』, 제42권, 제3호, 캠브리지, 1988년 여름.

(6) Peter Ramsay, ‘The EU is a default empire of nations in denial’, 런던정경대학 블로그, 2019년 3월 14일, http://blogs.lse.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