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제르 사막 한 가운데 버려진 난민들
아가데즈, 이주민들의 유럽 진입을 가로막는 방어지대
어느 수요일 아침, 나른하고 무기력한 기운이 아가데즈 버스터미널을 에워싸고 있다. 오뉴월 더위가 문턱까지 찾아왔음을 실감케 하는 날씨다. 새벽부터 도시 전체에 먼지 장막이 드리워져 있다. 하지만 버스터미널에 인적이 드문 이유를 날씨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인적이 끊긴 지 이미 오래입니다”라고 이곳 창구 직원이 한탄하듯 말했다. 그리고는 “북으로 떠나는 사람들은 좀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요”라고 덧붙이며 돗자리 위에 곤히 잠들어 있는 동료직원 곁에 슬며시 몸을 뉘었다.
니제르 북부의 요충도시인 아가데즈는 관광업체 사이에서 ‘사막의 문’이라 불리고 있지만 그런 수식어는 옛말이 된 지 오래다. 과거 니제르 북동부의 작은 마을인 디르쿠와 리비아로 향하는 이송차의 기착지였던 중앙터미널은 이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던 심장부였다. 매주 월요일이면 수십 대에서 많을 때는 200여 대에 이르는 이송차량이 가축과 사람을 싣고 사막을 향해 출발하곤 했다. 차량에 몸을 실은 사람들의 상당수는 서아프리카 출신이었고, 그중 일부는 중부 또는 동부 아프리카 출신이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리비아를 목적지로 삼고 있었다.
개중에는 운이 좋아 유럽으로 넘어가는 이들도 있었다. 당시 군의 호위를 받아가며 리비아 국경까지 이동하곤 했던 이주민 이송차량은 탑승객들에게는 부푼 꿈이었고, 아가데즈 주민들에게는 삶을 영위하게 하는 활력소 그 자체였다. 이곳의 유명한 사회운동가 마하만 사누시 씨는 “이주사업이 이 도시 전체를 먹여 살렸으니까요”라며 한숨 섞인 탄식을 내뱉었다. 당시 이주사업은 합법이었기 때문에 수송을 업으로 삼던 사람들은 대로변에 버젓이 가게를 열고, 세금을 내며 사업을 영위했다. 하지만 법률 제2015-36호가 제정되면서 이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
재앙과도 같은 ‘불법 이주 관련 법’
2015년 5월 26일에 도입된 이 ‘불법 이주 관련 법’은 니제르 북부 지역에 밀어닥친 재앙과도 같았다. 여느 사업이나 다를 바 없던 이주알선업이 하루아침에 불법 활동으로 바뀌었고, 수십 명에 달하는 청년들이 투옥되기도 했다. 2015년은 EU가 이민을 정책의제로 설정하고, ‘발레타 정상회담’을 열어 저개발 국가에서 유입되는 대량 난민 사태에 대처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세운 해이기도 하다.
몰타의 수도 발레타에 모인 28개 EU 회원국은 아프리카 정부의 협조를 통해 불법 이주 방지책을 ‘외주화’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EU는 ‘협력국’을 설득할 방법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가난한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들이 정부 차원에서 유럽으로 몰려드는 불법 이주를 차단하는 데 ‘협조’한다면, 그 대가로 20억 유로 이상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EU는 ‘불법 이주 및 아프리카 난민 현상을 초래하는 근본 원인에 대처’하기 위한 ‘아프리카 긴급신탁기금(Emergency Trust Fund for Africa·ETF)’을 조성해, 유럽집행위원회가 통상 ‘맞춤형 협력’이라고 부르는 틀 안에서 나이지리아, 세네갈, 에티오피아, 말리, 그리고 니제르가 펼치는 각종 활동을 지원하기로 했다.(1)
알제리, 리비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니제르는 EU가 설계한 전략에서 핵심을 차지한다. 2011년 프랑스-영국 연합군에 의해 카다피 정권이 붕괴한 이후 아가데즈는 유럽대륙 진입을 시도하는 이주민들의 주요한 경유지로 부상했다. 2016년에는 북아프리카로 이동하는 40만여 명의 이주민들이 아가데즈를 거쳤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이동했다.(2) 이에 따라 지난 2015년부터 EU는 아가데즈를 반(反)이민 정책의 주요 표적으로 삼고 있다. 유엔개발계획(UNDP)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인 니제르는 국경지대를 둘러싼 갖가지 위험요인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남동부는 이슬람 과격 단체 보코하람이, 북서부는 말리 무장단체가, 북쪽은 투부족 민병대가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 프랑스파 인사인 마하마두 이수푸 니제르 대통령은 재원과 군사적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EU는 니제르에 3년에 걸쳐 아프리카 긴급신탁기금(ETF) 2억 6,620만 유로를 배정하기로 했는데, 이는 그 어느 아프리카 국가보다 많은 수준이다. EU는 공식담화를 통해 개발원조와 인신매매 근절을 내세웠지만 정작 비정한 속내는 밝히지 않았다. 이는 다름 아닌, 필요하면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유럽으로 들어오는 이주민의 흐름을 저지하겠다는 강한 의지다.
긴급신탁기금 일부는 국가를 재건하고 국경을 통제하는 데 사용된다. 불법 이주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엘리트 부대를 창설해 나이지리아의 경비대를 보강하고 ‘불법’ 이주와 연계된 범죄망을 단속하기 위한 ‘합동조사단(ECI)’ 구축이 이에 해당한다. 2012년 발족한 EU의 시민역량강화사업(EuCAP-Niger)은 아가데즈에 안테나를 설치하는 임무에 참여했다. 해당 사업의 일환으로 구성된 ‘불법 이주감시 부대’는 2015년부터 경비대의 훈련을 주관하고 관련 자료를 배포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유럽 각지에서 파견된 경찰단은 현장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정보를 수집하고 기술적 전문 지식을 전달하는 일만 맡고 있다.
이주에 관한 유럽의 정책의제 설정과 니제르의 법률 제2015-36호 제정은 사실상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됐다고 볼 수 있다. 니제르 정부 내에서는 어떠한 반발도 일지 않았다. EU가 이 법률을 마련하는 과정에 입김을 넣어 적극적으로 관여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 정부가 직접 개입해 이 법률의 일부분을 작성했기 때문이다. 해당 법의 이행을 총괄하는 대통령 직속 기관인 ‘고등평화유지국(HACP)’의 국장을 맡고 있는 마하마두 아부 타르카 장군은 “그런 압력이 실제로 있었다”라고 시인하면서 덧붙였다. “하지만 이는 정부 차원에서 전부터 고민하던 문제였습니다. 2012년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한 이주 문제는 정부의 주요 관심사가 됐기 때문이지요. 정부도 처음에는 이주알선 사업을 용인했습니다. 대다수 아가데즈 주민이 이주민들 덕분에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주알선은 어느새 암거래의 원천이 되고 말았습니다. EU가 ‘돈을 주겠노라’ 했을 때, 니제르 정부는 그 기회를 잡아야 했어요.” 그리고 니제르의 속담을 인용해 부연했다. “우물 안에 갇히면 위에서 내려오는 것은 뭐든 달게 받기 마련이죠. 설령 그것이 뱀일지라도 말입니다.”
법에 의하면, 금전적 또는 물질적 대가를 받고 밀입국 또는 출국을 알선할 경우, 5년에서 10년 이하의 징역 및 최대 5백만 세파프랑(CFA: 7,630유로 상당)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해외에 체류하는 동안 거처, 식사, 의류를 제공하는 경우에도 2년에서 5년 사이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2016년부터 검거된 운전자나 ‘이주알선업자’의 수는 300여 명, 운행정지 명령이 내려진 차량의 수는 300여 대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법률의 입안자들은 개별 이주민이 아닌 알선업자를 단속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리비아, 알제리, 유럽으로까지 이주하기를 꿈꾸며 니제르를 떠나려 시도했던 이들에게는 이 또한 징벌이나 다름없다. 니제르 국적을 증명할 수 없거나 아가데즈 너머 북쪽의 디르쿠 일대, 즉 알제리-리비아 국경에서 불과 몇백 킬로미터 떨어진 이 지대를 이동하는 사람은 잠재적 불법 이주자로 간주되고 있다. 이제 단순 혐의만으로도 남부 지대로 차를 돌리도록 강제할 수 있으며, 일부는 비록 짧은 기간이라도 감옥에서 형을 살게 될 수도 있다. 2018년 10월, UN 이주민 인권 특별보고관 펠리페 곤살레스 모랄레스는 “현실에 적용된 이 법은 아가데즈 북쪽으로 이동하는 행위를 사실상 금하고 있다. 아울러, 불명확한 법률 규정과 강압적인 법의 적용 방식은, 이주민을 보호하기보다는 이주 자체를 범죄화하고 있다. 그 결과, 이주민들이 몸을 더 깊이 숨기게 함으로써 이들을 더 취약한 인권의 사각지대로 내몰고 있다”라고 지적했다.(3)
사막 한가운데 버려지는 이주민들
EU에 있어 이 정책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비용을 치러야 했을까? EU 시민역량강화사업(EuCAP-Niger)에 의하면, 이탈리아에 유입된 이주민의 수가 3년 만에 85% 감소했다. 아가데즈를 거친 이주민의 수는 2016년 하루 350명에서 2018년에는 100명 이하로 감소했다. 디르쿠와 리비아 국경을 맞대고 있는 사막의 마을인 세게딘의 검문소를 통과한 인원은 2016년 29만 명에서 2017년 3만 3,000명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금지조치가 그렇듯, 이주 시도는 끊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는 방법으로 이동하고 있을 뿐이다. 이동 인구를 파악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니제르에 거주하며 이주민 수송 현상을 면밀히 추적한 한 연구자(익명을 요구)에 의하면, 타격을 받은 이들은 대부분 ‘영세’한 운송업자였으며, 정치적 연줄을 가지고 경비대에 뇌물을 줄 여력이 있는 이들은 사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부패가 만연한 이 나라에서는 이주민 1인당 수천 세파프랑이면 순찰대의 침묵을 살 수 있는 셈이다.
양성적으로 이뤄지던 활동이 음성화되면서 통제 불능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송 차량은 단속이 심한 주요 이동 경로를 피해 더 험한 길을 택해야 한다. 이주민들이 한 곳에 머물며 숙식하는 아가데즈의 임시거처, 이른바 ‘게토(공동 거류지, ghetto)’는 불법으로 운영되면서 흡사 감옥과도 같은 모습을 띠기도 하며, 이주민들은 발각이 두려워 외출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밀입국비용은 3배나 뛰었다. 경찰의 접근에 놀란 이주민 이송차량 운전자들은 이주민들을 사막 한가운데 버려둔 채로 줄행랑을 치기도 한다. 간혹 그렇게 버려지는 이들 중에는 어린이들도 포함돼 있다.(4) 그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은 악화됐다. 몇몇 연구에 의하면, 아가데즈 가계의 절반 이상이 이주알선 사업으로 생업을 유지했고, 밀수꾼, 중계인, ‘게토’ 운영자, 차량 운전사 등 6천여 개의 일자리가 이주알선업에 직간접적으로 얽혀있었다. 그 외에도 요리사, 상인, 운전기사, 그리고 그 식구 등 수천 명의 생계가 간접적으로 이 일과 연관돼 있었다.
모하메드 압둘 카데르 씨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아가데즈 유적지 인근에서 살고 있는 그를 사람들은 대부분 ‘보스(Boss)’라고 부른다. 올해 48세인 그는 아가데즈에서 태어났고 리비아에서 한동안 거주했다. 1990년대 말부터 이주알선 일을 시작했는데, 당시 이 사업은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말리를 거쳐 모리타니와 모로코에 이르는 도로는 투아레그족의 반란으로 폐쇄된 상태였다.(5) 니제르가 유일한 통로가 된 것이다. 여러 교역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있는 아가데즈는 예로부터 소금, 노예, 가축이 거쳐 가는 중심지였다. ‘보스’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렇게 해서 2002년에 여행사를 세웠습니다. 버스터미널 인근에 사무실을 개설했죠. 각지에서 버스를 타고 아가데즈에 도착한 이주민들은 이곳에 모여 덤프트럭으로 갈아타고 디르쿠까지 이동했었지요. 디르쿠에 이르면 이 사람들은 사륜구동차에 몸을 싣고 리비아로 넘어가곤 했습니다.” 여러 해에 걸쳐 이용자의 수는 계속 늘어났고, ‘보스’는 나이지리아, 가나, 감비아, 세네갈, 부르키나파소까지 사업망을 확장해나갔다. 이주민이 아가데즈에 도착하면 출발 직전까지 제반 서류작업과 숙박, 식사 등 모든 일을 여행사에서 도맡아 처리했다. “이런 일들은 이주알선 사업의 일상적인 업무였어요. 거래 고객인 상대국의 ‘중계인’과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용 고객인 이주민들이 안전하고 건강한 상태로 현지에 도착하도록 만전을 기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사업을 지속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는 오늘날의 ‘이주알선’이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띤다는 사실을 암시하며 이처럼 부연한 것이었다.
모든 일이 마치 시계처럼 잘 짜여 돌아갔다. 이주 대상자들이 아가데즈 관문소에 도착하면, 경찰에 소정의 비공식 통행세를 냈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면 여행사에서 이들을 인솔해 ‘게토’로 이동했다.(6) 그리고 이주민들은 아가데즈를 떠나는 시점에 관문소에 또 한 차례 세금을 냈는데, 이 돈은 공동체를 운영하는 예산으로 활용됐다. 한 사람 앞에 부과되는 1,100세파프랑(1.67유로)이라는 금액은 비교적 소소한 액수였기에 이주민들에게 큰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아가데즈 시는 일주일에 300만 세파프랑에서 많게는 700만 세파프랑에 이르는 세수를 거둘 수 있었다. 그렇게 거둬들인 이익은 다양한 공동체 사업의 재원으로 활용됐다.
이런 규칙과 가격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곤 했다. 이주민들은 리비아에 도달하면 15만 세파프랑(230유로)을 지급해야 했다. 대다수 아프리카인에게도 적지 않은 가격이지만 니제르인에게는 전 재산이나 다름없을 만큼 큰 액수다. ‘보스’는 “그렇게 해서 상당한 수익을 올렸어요”라고 시인했다. “사업이 한창 잘 나갈 때는 직원만 15명을 거느리기도 했어요. 매주 400명에서 450명의 이주민을 리비아로 실어 날랐고, 주당 500만 세파프랑(7,630유로)을 거둬들였습니다.” 이주민 이송차가 이동하는 매주 월요일이면 은행과 송금대행업체는 분주하기가 이를 데 없었고, 시장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차량이 출발지를 떠날 때마다 여행사는 차량에 탑승한 이주민의 성명과 국적이 적힌 서류를 경찰에 제출해야 했다. 정부는 내전을 종식하는 방편으로 1990년대에 무장투쟁을 벌였던 투아레그족과 투부족 반군들이 이주알선 사업에 동참하도록 독려하기도 했다. “이들은 차량은 있지만, 일거리가 없었고, 도로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라고 모하메드 아나코 씨는 주장한다. 한때 투아레그 반군의 초대 지도자(1991~1995년) 중 한 명이었지만 현재 아가데즈 시의 지역 의회 의장으로 있는 그는 ‘고등평화유지국(HACP)’을 이끌던 당시에 이 전환 조치를 고안해냈다.
“사실상 정부가 나서서 과거 반군으로 활동한 이들이 이송 활동에 참여하도록 촉구한 것입니다. 운송 차량에 적용되는 세금을 면제하고 사업 용도로 차량을 등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했지요. 이 당시까지만 해도 이주알선 사업은 완전히 합법이었고, 사업자들은 사막을 지나는 수송 현황을 정부에 낱낱이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상황이 기울기 시작한 것은 2011년 카다피 축출 이후다. 유럽에 공조해 ‘해안 경비대’ 역할을 자청했던 카다피 정권이 이주민들의 유럽 진입을 통제하는 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리비아에서 바다를 건너 유럽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주민들은 리비아에 마음껏 머무를 수 있었다. 일자리는 충분했고 보수도 넉넉했다. “카다피의 몰락으로 유럽으로 가는 문이 열렸고, 순식간에 기류가 바뀌었어요. 이주를 희망하는 사람의 수가 점점 많아지면서 이주알선 사업이 상승 기류를 타게 됐거든요”라고 ‘보스’는 회상했다. 2013년과 2016년 사이에 아가데즈를 거쳐 간 이주민의 수는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아가데즈 경찰청은 같은 시기 도시 내에서 운영되던 ‘게토’의 수가 70개 처에 이르기도 했다고 집계했다.
범죄자 취급을 받는 알선업자들
‘보스’는 이 시기를 경쟁이 격화된 시점으로 기억한다. 리비아에 진출한 많은 수의 니제르인은 내전과 극심한 혼란이 가라앉자 이주알선업으로 눈을 돌렸다. 이 일에 새로 가담한 이들은 기존에 구축된 질서를 따르지 않았다. 그들은 사막 한복판에서 이주민들로부터 돈을 갈취하거나, 곤경에 처한 상황에서 이주민들을 사막에 버리고 사라지거나, 갈취를 목적으로 접근한 민병대에 이들을 팔아넘기는 데에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한 행정감찰관은 이들의 관행을 언급하며 “양심도 법도 없는 무뢰한들”이라고 비난했다. 각종 암거래(마약, 담배, 무기)까지 더해진 이런 범죄 행위는 정부 당국의 개입뿐 아니라 EU의 정책에 대한 니제르 정부의 협조를 부추기는 촉매제가 됐다.
‘보스’의 경우처럼, 모하메드 D 씨가 소유한 아가데즈 외곽의 ‘게토’는 인적이 끊긴 채 텅 비어있다. 안뜰의 담벼락에는 이전 고객들의 이름, 전화번호 같은 흔적이 아직 남아있다.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라며 전직 알선인 모하메드 씨가 볼멘소리로 투덜댔다. “차량 두 대를 압류당했어요. 6개월 동안 구금 생활을 하기도 했고요. 지금은 아무런 수입 없이 살고 있습니다.” 호황기에 벌어둔 돈은 어찌 된 걸까? “저와 온 가족이 재산을 다 탕진했어요.”
아무런 예고도 없이 법이 단행된 만큼 좌절과 상실감도 클 수밖에 없다. 아가데즈에서는 누구도 언질을 받지 못했다. 한 알선인이 기억을 더듬어 당시의 정황을 설명했다. “그날은 월요일이었어요. 아가데즈를 빠져나가는 길목 어귀에서 이주민을 태운 모든 차량이 대거 체포됐습니다. 당시 우리는 사막에서 보안상의 문제가 발생했다고만 생각했었죠.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운전자들은 그대로 철창신세가 됐고, 차량에는 운행정지 명령이 내려졌어요. 법률 제정에 관한 설명은 사후에 이뤄졌고요.”
이주알선 금지 정책에 반대하지는 않는다고 밝힌 아나코 씨는 정부 당국이 지역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해당 활동을 대체할 대책을 전혀 마련하지 않은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업종 전환을 위한 여건 조성과 같은 차선책을 마련해 뒀어야 합니다. EU의 자금 지원을 받는 사업은 언젠가는 성과를 낼 수도 있겠지만, 결실을 얻기까지 대체 몇 년이 걸릴까요? 문제는 지금 당장 일거리가 필요한 사람들이 대다수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있어요.”
1980년대 아가데즈는 테네레 사막, 빌마의 모래언덕, 그리고 아이르 산을 탐험하기 위해 유럽과 미국에서 온 수천 명의 관광객이 찾아드는 도시였다. 그 무렵 이 도시의 하루하루는 국제공항의 활주로에 착륙하는 대형 항공기의 착륙 일정에 맞춰 돌아가곤 했다. 그러나 2007년 제2차 투아레그 반란에 이어 프랑스 외무부가 적색 지역(공식적으로는 여행 자제 지역)으로 아가데즈를 분류함에 따라 관광객의 발이 끊겼다. 니제르의 다른 산업처럼 우라늄 광산 개발도 내리막을 걷고 있다.(7)
EU는 아프리카 긴급신탁기금(ETF) 사업의 하나로 이주알선 사업 종사자들의 재사회화 사업에 800만 유로(전체 기금의 5%)를 기탁했다. ‘아가데즈의 신속한 경제 촉진계획(약어는 Paiera: 값을 치를 것, 비용을 낼 것이라는 의미도 있음-역주)’이라 불리는 이 사업은 이름부터 잘못 지어졌다. 원칙상 ‘전직 알선인’들은 자신의 재사회화를 증빙하는 서류가 승인될 경우 150만 세파프랑(2,290유로)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서류 검토에는 긴 시일이 소요된다. 전체 제출 서류 5,000여 건 중 처리가 완료된 서류는 400여 건에 불과하다. 1,500여 건의 서류는 거부됐는데, 대다수가 ‘게토’와 차량 소유주들이 제출한 서류다.
EU는 이주알선 사업자들이 특권을 누린 것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활동 자체를 범죄시하기도 한다(이들이 수년 동안 니제르인들의 평균 생활수준에 비해 월등히 많은 수익을 올린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EU 시민역량강화사업(EuCAP-Niger) 책임자들은 이주알선이 “인신매매와 다를 바 없으며, 이주 알선으로 부당이득을 취한 이들은 동포들의 피눈물로 돈을 벌어들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강조했다. 물론 과거 알선인 중에는 범죄자도 있겠지만, 현실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아주 상반된다. 앞에서 언급한 연구자는 이주 알선인들이 분명 많은 돈을 벌었지만, 그들이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근원적 이유는 사헬지역의 정치, 경제적 불안정이며,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터무니없는 착취의 결과물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법률이 제정되기 이전의 이주알선 가격은 적정 수준이었습니다. 알선업자들이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분야의 경제 규모와 높은 이주 수요에 있습니다.”
전직 이주알선인 바쉬르 암마 씨는 현재 ‘전직 이주알선업 종사자 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다. 이는 출자자, 정부, 전직 이주알선 사업자를 연계하기 위해 2016년에 설립된 조직이다. 자신이 이끄는 여러 축구팀이 매일 훈련하는 아가데즈 축구 경기장의 관리자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한 암마 씨는 지원금 수혜자를 결정하는 심사 과정에 폐단이 있었음을 밝혔다. “일부 신청자 중에는 이주알선업에 전혀 종사하지 않았는데도, 탄탄한 혈연을 배경으로 지원금을 받기도 했으니까요.”
그는 “EU가 지역 경제를 교란하고, 사람들의 좌절감을 증폭시켰다. 우리는 속아 넘어갔다”라며 개탄했다. “신속한 지원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었죠. 하지만 지난 3년 동안 실제 지원금이 지급된 사례는 371건에 불과합니다. 이 사업이 우리에게 재사회화 기회를 제공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기껏해야 긴급 원조에 지나지 않아요. 이 사업을 통해 EU는 주당 500만 세파프랑의 수익을 올리던 사람들에게 150만 세파프랑을 내어주고 있단 말이죠! 그야말로 우스꽝스럽고 형편없는 조치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어찌 이를 재사회화를 위한 지원이라고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이주 알선업자에서 단속업자로
한편, 더 이상 일거리가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특히 청년들은? 범죄 행위는 이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도로 위의 강도단은 이주민들에게 몸값을 요구하고 있고, 전직 알선업자들은 돈이 되는 마약 밀수로 업종을 전환했으며, 니제르, 차드, 리비아 사이의 ‘세 국경 지대’에서 약탈행위를 서슴지 않는 수많은 무장단체에 용역을 제공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2016년, 아가데즈 동부의 카와르와 망가 지방에서 조직된 투부족 반란군은 법에 따라 집행된 차량 운행정지 명령을 해제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사막의 문’ 아가데즈를 통하는 이주는 아직 막을 내리지 않았다. 기이한 가역현상에 의해, 과거에는 남에서 북으로 향하던 이동의 요충지가 이제는 반대 방향으로 회귀하는 사람들의 주요한 환승 지점이 됐다. 2016년, 국제이주기구(IOM)는 아가데즈 북쪽 외곽에 알제리와 리비아에서 추방된 이들을 위한 난민 수용소를 설치했다. 2017년 UN난민기구(유엔 난민 고등판무관 사무소, UNHCR)는 아가데즈 남쪽으로 12km 떨어진 곳에 난민캠프를 설립해 열악한 처우를 피해 리비아를 떠나온 2,000여 명의 수단인 망명 신청자를 수용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난민 유입으로 아가데즈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난민들에게는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만, 정작 일자리를 상실한 우리의 문제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정의는 대체 어디서 찾아야 하는 걸까요?”라고 전직 알선인 모하메드 엘 하디는 말한다.
한때 이 도시에서 환대했던 이주민들은 이제 탐욕과 우려를 낳는 사회 분열의 근원으로 전락했다. 니제르의 법은 리비아로의 이주에 제재를 가할 뿐 아니라 이주민들이 아가데즈에 정착하는 것마저 어렵게 하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그 이유는 아가데즈 시민들이 인신매매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고발당할까 몸을 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이주 알선업자들은 이제 EU를 대신해 이주민들을 단속에 나서고 있으며, EU는 리비아에서처럼 니제르 민병대에 국경 통제를 위탁하고 있다. 불법 이주민 색출은 과거 한때 이주민들에게 도움을 주던 이들에게, 돈을 벌어들일 새로운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는 실정이다.(8)
글·레미 카라욜 Rémi Carayol
기자
번역‧이푸로라 poorora@daum.net
번역위원
(1) ‘Managing migration in all its aspects: progress under the European Agenda on migration(이주 문제 전방위 관리: EU의 정책의제인 이주 문제 해결 추진현황)’, 유럽집행위원회 보고서, 브뤼셀, 2018년 12월 4일.
(2) Jérôme Tubiana·Claudio Gramizzi, ‘Lost in Trans-nation. Tubu and other armed groups and smugglers along Libya’s Southern border(국가 간 행방불명. 리비아 남부 국경 지역에서 활동 중인 투부를 비롯한 기타 무장단체 및 밀수업자 현황)’, Small Arms Survey(소형무기 조사서), 제네바, 2018년 12월, www.smallarmssurvey.org.
(3) Felipe González Morales, ‘Déclaration de fin de mission du rapporteur spécial des Nations unies sur les droits de l’homme des migrants(2018년 10월 1일~10월 8일, UN 이주민 인권 특별보고관 니제르 방문 결과보고)’, UN 인권고등판무관실 제네바, 2018년 10월 8일, www.ohchr.org.
(4) Fransje Molenaar· Jérôme Tubiana· Clotilde Warin, ‘Caught in the middle. A human rights and peace-building approach to migration governance in the Sahel(중간지대. 사헬지역 이민 정책에 관한 인권 보장 및 평화 구축 접근법)’,클링겐델 연구소, 헤이그, 2018년 12월, www.clingendael.org.
(5) Philippe Baqué, ‘Des Touaregs doublement dépossédés(투아레그족에 대한 이중수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993년 2월.
(6) Julien Brachet, ‘Migrants, transporteurs et agents de l’État : rencontre sur l’axe Agadez-Sebha(이주민, 운송업자, 정부 관리: 아가데즈와 세바 그 중심에서)‘, <Autrepart>, 제36호, 마르세유, 2005년 4월.
(7) Juan Branco, ’Aux sources du scandale UraMin(우라민 사건의 발단)‘,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6년 11월.
(8) Fransje Molenaar· Nancy Ezzedinne, ’Southbound mixed movement to Niger. An analysis of changing dynamics and policy responses(남쪽으로 회귀하는 새로운 이주 흐름으로 복합적인 양상을 띠게 된 니제르. 변화양상 및 정책 대응의 분석)‘, 클링겐델 연구소, 2018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