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평화로 가는 가시밭길

2019-04-30     피에르 베르냉 l 대학강사 겸 독립 연구원

언론과 외교계는 오랫동안 예멘 내전을 가볍게 여긴 것 같다. 인도적 위기가 확산되고, 무력 투쟁이 악화되고, 2018년 10월 터키 이스탄불 소재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에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암살되면서 상황이 변했다.

아랍연합군을 주도하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점차 국제사회의 압박이 커지고 있는데, 연합군은 2015년 3월부터 소수 자이드파(시아파의 한 분파)인 후티 반군에 의해 사임한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대통령 정권의 회복을 목표로 삼고 있다. 현장상황이 달라지진 않았으나,(1) 그곳에서 발생하는 전범에 대한 비난이 거세졌으며(2)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신뢰를 크게 잃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엘리자베트 바댕테르가 최대 주주로 있는 퍼블리시스 그룹(프랑스 광고회사)이나 미국 민주당 관계자들이 설립한 글로버 파크 등 거대 홍보업체의 도움을 받아 근대화의 주역 이미지를 만들려 했지만 실패했다.(3)

사우디 왕국에 무기를 판매하는 문제가 서구 강대국 내 언론을 뜨겁게 달궜다.(4) 제레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는 이미 지난 2018년 3월 테리사 메이 총리가 전범자와 ‘결탁’했다고 비난한 바 있다(2012∼ 2016년 영국이 수출한 무기 중 48%를 사우디에 팔았다-역주). 미국에서 예멘 내전과 관련해 2018년 12월 13일 열린 의회 투표에서 연합군 군사지원 중단안이 가결됐고, 통상적으로 군사 지원에 찬성하는 공화당 소속 의원이 다수인 상원에서도 비슷한 입장을 밝혔다. 이 뒤를 이어 스페인, 독일, 유럽 의회도 서둘러 무기수출 금지 조치를 발표했다.(5) 하지만 서방 강대국들에 있어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연합군과 연계된 아랍에미리트와의 무기거래는 여전히 체면을 떨어뜨리는 행위다.

2018년 12월 스톡홀름 외곽에서 열린 예멘 평화회담은 영국 출신 마틴 그리피스 UN 특사가 거둔 첫 번째 성취였다. 석 달 전 스위스에서 예정됐던 회담이 후티 반군 대표단이 도착하기도 전에 무산되면서 내전 당사국들은 18개월도 넘게 협상 테이블에 함께 자리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국제적 분위기가 갖춰지면서 예멘 내전에서 최대 전략 요충지인 홍해 연안의 항구도시 호데이다의 휴전과 전쟁포로 교환 등 얼마간의 진전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 후 요르단이나 쿠웨이트에서 새로운 협상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내전이 시작된 이후 거의 볼 수 없었던 낙관론이 확산되고 있다.

스웨덴 회담은 후티 반군이 점령 중인 호데이다 항구가 2018년 6월 공습당한 후, 세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시작됐다. 그때부터 후티 반군은 북부 고원 지대에 있는 자신들의 사회적, 종교적 거점을 제외한 지역에서 물러날 준비를 한 듯하다. 주민 대부분이 수니파로 장시간 주전선을 이루던 타이즈에서도 전투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반군 세력의 포화는 점점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후티 반군이 전쟁에서 패한 것은 아니다. 현시점에서 아랍연합군의 지원을 받는 수니파가 단언하는 것처럼, 연합군의 승리를 운운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후티 반군의 세력 확장, 그 배경은?

4년 전부터 후티 반군은 놀랄 만큼 세력을 확장했다. 고립된 산지에서 수도까지 밀고 내려온 과정과 주민 대다수가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지역(수니파 거주지 등)에서 벌어진 전투의 내용 등을 살펴보면 그들의 교전력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2017년 12월 후티 반군은 자신들과 전략적으로 손을 잡았다가 배신한 알리 압둘라 살레 전임 대통령을 암살했다. 이는 당시에는 치명적인 실수로 인식됐다. 그러나 30년이 넘게 예멘을 이끌던 지도자가 암살됐다는 충격에도 불구하고 반군에 대한 저항은 거의 없었다. 이로써 그들이 국가기관과 자원을 얼마나 장악해 나갔는지, 그들의 사상적 동원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보여준 셈이었다. 반군은 북부 거점, 자신들을 전폭 지지하는 부족들이 밀집한 지역인 사다, 사나, 다마르 등을 중심으로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6)

처음에는 주변세력(7)이었던 반군단체가,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든든하게 군장을 갖춘, 게다가 미국, 영국, 프랑스의 지원을 받는 연합군과 맞서게 됐을까? 베르트랑 바디의 표현을 빌리면, ‘권력의 무능력’(8) 때문이다. 이는 베트남에서 이라크를 거쳐 아프가니스탄까지, 이제는 예멘에서도 ‘거대’ 정부가 ‘소규모’ 전투에서 패하는 이유다. 많은 이들의 예상과는 달리,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은 UN 보고서(9)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의 영토에 정기적으로 장거리 미사일을 발포하지만, 대규모는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후티 반군의 힘은 민족주의를 들어 설명할 수 있다. 예언자의 후손이라는 혈통을 앞세운, 기세등등한 지도자 압둘말리크 알후티(반군단체의 이름은 그의 성에서 따왔다)의 연설 모습에선 카리스마가 엿보인다. 그는 “사우디의 공격은 예멘 사람들의 자유와 존엄에 대한 열망을 짓밟으려는 목적으로 자행되는 폭력”이라고 비난했다. 그의 무장단체가 지배하는 지역에서는 미국의 영향력과 사우디의 내정간섭에 저항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또한, 북부 고원지대 거주민들 고유의 정체성을 인정해달라는 요구도 거세다.

20년 전 등장한 후티 반군은, 자이드파(이란 국민 대부분이 신자인 시아파의 한 분파)라는 종교적 뿌리를 통해, 또한 거세지는 반(反)사우디아라비아 물결에 힘입어 많은 이들의 동조를 얻어냈다. 반대편에서는 반군이 1962년 붕괴한 이맘 중심의 군주제를 부활시키려 한다고 지적하지만, 이런 비난이 그들의 지지층 결집력을 약화시킬 수는 없었다.

후티 반군의 위태로운 재정(그들이 통치하는 지역의 공무원들 대부분이 거의 2년 전부터 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다)에도 불구하고, 유사 정부 형태를 유지해 왔다는 사실이 그들에 대한 신뢰감을 높였다. 또한 남부 아덴 지역에 비해, 그들이 지배하는 지역이 더 안전하다는 인식도 강하다. 그들의 뿌리를 고려하면, 그들을 정치판에 적극적으로 개입시키지 않고서는 내전이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반대파들은 후티 반군의 주요 책임자 중 일부가 부패 문제에 연루됐다고 비난하고 있다. 또한 후티 반군이 자신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가혹하게 제압하는 모습은, 자신들이 공포정치를 바탕으로 결집돼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티 반군이 통치하는 지역에서 반대세력의 저항이 크지 않다는 점은 평화와 안정 확보에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도부가 결정을 내리면, 중앙집권화된 구조 덕택에 쉽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반(反)후티 대열의 사분오열된 모습

그러나 UN 안보리가 2015년 4월 채택한,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끄는 연합군의 법적 한계에 관한 결의 2216호는 이런 정황을 고려하지 않았다. 이 결의는 하디 대통령의 주장을 지지하며 지금은 무기한으로 연기된 선거가 실시될 때까지 그를 국가수반으로 삼고, 후티 반군에 조건 없는 퇴각과 무장해제를 요구했다. 현지 현실에 더 적합한 결의를 채택하려는 시도(가령 2018년 말 영국의 결의안)는 사우디 외교관들의 방해공작으로 무산됐다. 그 결과, UN은 명백히 시대에 뒤처진, 헛된 노력을 거듭하게 됐다. 2019년 1월 16일 결의 2452호가 채택됐지만, 이 결의는 부차적인 사안만 다루고 있어서 예멘 내전을 해결하려는 국제사회의 법적 조직구조를 전혀 개편하지 못했다.

예멘 현실과 괴리를 보이는 또 다른 문제는, UN이 집중하고 있는 협상에서 남부지역의 분열에 따른 난관은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상 UN 주도 협상은 북부의 정세에 집중돼 있다. 협상에서 남부 분리주의 운동 대표들을 배제한 것은 분명 심각한 허점이다. 분리 독립을 원하는 이들 세력(수니파)은 2017년부터 아랍에미리트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는 남부과도정치위원회를 설립해 조직을 갖추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은 (본인도 남부 출신인) 하디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들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또한 지리적, 사상적으로 살라피스트 무장조직과 남부 사회주의 정권 시절을 그리워하는 집단으로 분열된 상태다.

게다가 후티 반군이 지배하는 지역 외에는, 이해당사자들 각자의 의도가 복잡하게 뒤엉켜있다.(10) 호데이다 전선에서 연합 중인 남부 분리주의 단체와 살레 전임 대통령의 측근, 특히 조카인 타레크 무함마드 살레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타이즈 내 이슬람주의 분파 간 마찰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간 전략적 견해 차이까지 반(反)후티 대열의 사분오열된 모습을 보여준다. 조만간 이들은 각자의 본심을 드러낼 것이다. 그런데 UN 안보리 결의 2216호가 제시한 협상의 틀은 이런 문제들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 이런 허점은 정부 재건을 방해하며, 알카에다와 연관된 무장 이슬람주의 세력에게 이용당할 위험이 있다.(11)

국가 차원의 협상과 양자 협상 방식은 또 다른 균열을 낳고 있다. 이런 협상 방식은 예멘 내전이 예멘 주민들만의 문제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아랍연합군의 폭격에 따른 피해 등 예멘 내전은 주변 지역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도양으로 통하는 길을 확보하려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의 해안지대를 장악하려는 아랍에미리트. 이 연합군의 주요 세력은 혼란과 비난을 부르는 게임을 벌이고 있다. 특히 국제앰네스티가 밝혀낸 바에 의하면, 서방 국가에서 아랍에미리트연합에 판매한 무기가 다시 예멘 남부 민병대에 넘어갔는데, 그중에는 ‘테러리스트’로 분류되는 세력도 있다.(12)

예멘 재건의 순간이 오면, 연합군의 두 중추세력은 공식적인 다자간 협약을 통해 그 흐름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지역 국가들이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그리고 예멘 문제에서 발을 뺄 수 없도록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함께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할 것이다.  

 

 

글·피에르 베르냉 Pierre Bernin 
대학강사 겸 독립 연구원.

번역‧서희정mysthj@gmail.com
번역위원

 

(1) Laurent Bonnefoy, 『Le Yémen. De l’Arabie heureuse à la guerre(예멘, 아라비아반도의 행복한 나라에서 전쟁터가 되기까지)』, Fayard, Paris, 2017.

(2) ‘Yémen: des experts onusiens soulignent des crimes possibles de guerre commis par des parties au conflit(예멘, 국제연합 전문가들이 분쟁 당사자들의 전범자행 가능성을 지적하다)’, UN 인권고등판무관실 보고서, Geneva, 2018년 8월 28일.

(3) Florence Beaugé, ‘Une libération très calculée pour les Saoudiennes(사우디, 위로부터 시작된 여성 해방)’,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6월호, 한국어판 2018년 7월호.

(4) Philippe Leymarie, ‘L'éthique s’invite dans les ventes d’armes à l’Arabie saoudite(대 사우디아라비아 무기 거래 문제에 윤리가 눈을 뜨다)’, 온라인 국방 세계, 2018년 9월 19일, https://blog.mondediplo.net

(5) 각각 2018년 9월 4일, 10월 20일, 11월 14일.

(6) Marieke Brandt, 『Tribes and Politics in Yemen : A History of the Houthi Conflict』, Hurst & Co., London, 2017.

(7) Pierre Bernin, ‘Les guerres cachées du Yémen(예멘, 종파전쟁에서 부족전쟁으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9년 10월호, 한국어판 2010년 2월호.

(8) Bertrand Badie, <L’Impuissance de la puissance. Essai sur les nouvelles relations internationales(권력의 무능력. 새로운 국제 관계에 관한 소고)>, Fayard, coll. ‘L’espace du politique’, Paris, 2004.

(9) ‘Letter dated 26 January 2018 from the panel of experts on Yemen mandated by Security Council resolution 2342 (2017) addressed to the president of the Security Council’, UN 안전보장이사회, 2018년 1월 26일.

(10) Helen Lackner, ‘Tous ceux qui veulent que la guerre au Yémen continue(예멘 내전이 지속되길 바라는 이들에 대해)’, Orient XXI, 2018년 10월 31일, https://orientxxi.info

(11) Bushra Al-Maqtari, ‘Les évolutions du militantisme salafiste à Taez(타이즈 내 살라피스트 무장 활동의 변천)’, Franck Mermier이 편집한 <Yémen. Écrire la guerre(예멘, 전쟁을 쓰다)>에 수록, Classiques Garnier, Paris, 2018.

(12) ‘When weapons go astray. The deadly new threat of arms diversions to militias in Yemen’, Amnesty International, London, 2019년 2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