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미국 내 유대인들의 지지를 잃는다면

2019-04-30     에릭 알터만 l 언론인

이스라엘 정부와 미국 내 유대인들의 관계는 이제 끝장났다.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극우로 돌아섰고, 미국 내 유대인들은 진보진영 내에 더 견고하게 뿌리를 내렸다. 팔레스타인과 오랫동안 연대해온 미국의 흑인운동가들처럼, 이제 미국의 유대인들은 ‘워싱턴이 지지하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식민정책을 비난하고 나섰다.

 

2018년 5월 14일, 예루살렘의 새 미국대사관 이전 행사에 초청된 하객 명단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의 옆에 개신교 목사인 존 해지와 로버트 제프리스가 자리한 것이다. 존 해지는 아돌프 히틀러를 ‘신의 집행자’(1)로 여겼고, 로버트 제프리스는 유대인들은 죄다 지옥에 떨어질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현재는 두 사람 모두 미국 사회, 즉 보수적 시오니즘 사회에서 이스라엘에 가장 우호적인 기류를 독려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2)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

카지노업계의 재벌, 셸던 애덜슨과 미리엄 애덜슨 부부도 참석했다.(3) 이들은 2016년에 8,200만 달러를, 2018년 선거 때는 1억 1,300만 달러를 공화당에 내놓은 거물급 후원자다. 이 부부는 보수적인 네타냐후 정부에 한결같은 지지를 표하고 있다. 이를테면 미리엄 애덜슨은 최근 ‘비비’(베냐민의 약칭)를 위한 선전물 <이스라엘 하욤>의 발행인으로 나섰는데, 이 매체의 재정은 대부분 남편 셸던 애덜슨이 지원하고 있다.  

한편, 참석자 명단에 진보적 유대인들의 이름은 없었다. 행사에 초대받지 못한 것이다. 진보적 유대인들은 미국에서 다수를 차지한다. 2018년 11월 중간선거 출구조사 결과, 유대인 유권자의 3/4이 민주당 후보자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와 네타냐후 총리의 공통점은 애덜슨 부부와 시오니스트 기독교인들로부터 지지를 받는다는 것 외에도 또 있다. 자신들의 실패를 음모이론으로 정당화하는 수법을 즐긴다는 점 또한 이들의 닮은 점이다. 

이들은 유럽과 미국에서 나타나는 반유대주의의 상승기류에 대해서 놀랍게도 느슨한 태도를 보였다. 2017년 8월 네오 나치주의자들은 “우리는 유대인들이 우리를 대신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샬러츠빌에서 시위를 벌였다. 당시 시위자 한 명이 반인종차별주의를 주장하는 반대 집회자들 속으로 자동차를 타고 돌진해 여성 시위자 한 명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트럼프는 이 사태에 대해, “극우주의자들 중에는 좋은 사람들도 있다”고 발언함으로써 두 진영이 대립하게 만들었다.

이스라엘 총리 측에서는 사건 3일 후에야 행동에 나섰고, 미국 대통령의 이름은 언급조차 하지 않은 채 트위터로 간략한 입장을 밝히는 데 그쳤다. 트럼프가 종종 딸 이방카와 사위를 대리인으로 내세우듯, 네타냐후 총리 역시 정치적 지지를 호소하는 책무를 자기 아들에게 맡기곤 한다. 그의 아들 야이르 네타냐후는 SNS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네오 나치는 과거에 속해 있다. 이들 종족은 사라지고 있다. 반대로 이스라엘(저자의 관점에서는 미국 포함)을 증오하는 ‘반인종주의 패거리’와 ‘블랙 라이브즈 매터(Black Lives Matter: 흑인 민권운동) 패거리’는 점점 강해지고 있으며, 미국의 대학들과 사회 전반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2018년 10월 27일에는, 트럼프 열혈 지지자 하나가 피츠버그의 유대교 회당(시너고그)에서 총기를 난사해 유대인 11명을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이스라엘 정부 대표자들은 따로 방문요청을 받지 않았음에도 시급히 범죄현장을 방문했다. 그들은 이번에도 사건의 책임이 미국 대통령의 발언에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 다시금 좌파에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이스라엘의 교육부 및 해외동포부(디아스포라) 장관이자, 극우주의 종교정당 ‘유대인의 집’ 당수인 나프탈리 베네트는 반명예훼손연맹(Anti-Defamation League)이 트럼프 당선 이후 극우 반유대주의가 증가했다는 통계를 제시하자 이를 (증거 하나 없이) 반박했다. 

한편 뉴욕 주재 이스라엘 총영사인 다니 다얀 측에서는 영국 노동당 당수인 제레미 코빈의 ‘반유대주의’적 언행들(2012년의 유대인 비하 발언, 2016년 이스라엘 정부를 IS에 비유한 발언, 최근에는 노동당 당규에 반유대주의를 반대하는 문구를 명문화하자는 국제 홀로코스트추모위원회의 제안을 거절한 것)을 들먹이지 않았다. 이는 피츠버그 유대인 공동체가 트럼프에 대한 항의 표시로 조직한 침묵시위와 대치되는 것이다. 

 

둘로 갈라진 유대인들과 ‘6일 전쟁’

최근의 조사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여준다.(4) 즉, 친 극우 성향의 정부가 정권을 장악한 이스라엘의 유대인들과, 언제나 진보진영 쪽으로 더 기울어 있던 미국 내 유대인들 사이에 심각한 단절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다수 이스라엘인들은 버락 오바마를 증오했고, 이제는 트럼프에 열광하며 요르단강 서안지구(팔레스타인 자치구역)에 대한 식민정책과 무제한 점유를 지지하는 정당들에 찬성표를 던지고 있다. 반대로 미국 내 유대인들의 압도적 다수는 오바마를 지지했고 이스라엘의 식민 정책을 규탄한다. 미국의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정치적으로 진보주의를 따르는 쪽과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진영으로 나뉘었다. 

1948년 이전의 미국에서는 유대 ‘민족’이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생각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었다. 특히 지식인층에서도 영향력이 강한 독일 출신의 부유한 유대인들은 그런 생각을 불편하게 여겼다. 대개 개혁주의 성향의 이들은 시오니즘을 불신했다. 그들은 무엇보다 유다이즘을 하나의 종교로 여겼기 때문이다(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된 시오니즘은, 유다이즘보다 극단적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다-역주). 종교와 전통을 중시해온 유대인들은 헤브루 왕국의 도래는 인간이 아니라 신이 관할하는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에 시오니즘을 거부했었다. 그러나 그들의 태도는 1945년 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로 바뀌었다.  

이스라엘이 다시 건국된 1948년 이후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는 30년간 이어졌다. 미국 내 유대인들은 기자, 지식인, 정치지도자, 예술가 등 공개적 발언을 낼 수 있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새 국가의 탄생을 쉬지 않고 축하했다.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나 독립 언론인 이사도어 파인슈타인 스톤(1989년 작고)처럼 이런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들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두 사람은 수십 년간 이스라엘이 아랍계 소수민족을 대하는 방식이나 팔레스타인 난민문제 해결을 완강히 거부하는 태도를 끊임없이 비판했다.(5)

1967년 이스라엘이 아랍과의 6일 전쟁에서 승리하자 축제 분위기는 극에 달했고, 심지어 미국 내 유대인들도 환희에 들떴다. 전쟁을 앞두고 이스라엘에 대한 가말 압델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의 발언에 기겁한 유대인들은 ‘제2의 홀로코스트’가 자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냈다(나세르의 반 이스라엘 행보는 아랍 민족주의를 자극해 이집트 주도하에 아랍을 통일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아랍군대가 무너지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봤다. 전쟁이 종식되고 두 달 뒤, 아서 헤르츠버그 랍비는 이렇게 말했다.

“6일 전쟁은 한 번도 단합된 모습을 보인 적 없는 미국의 유대인들을 하나로 만들었다. 과거 자기와 상관없는 일이라며 무관심했던 많은 유대인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서구의 어떤 신학으로도 이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다. 대다수 유대인들은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을 경험했다. (…)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유대인들의 정서적 충성에 촉매제가 됐을 수도 있고, 유대인의 정체성을 지키는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6)

그럼에도 좌파에 동조하는 젊은이들이 주축을 이룬 소수 유대인들은 점점 이런 경향에서 벗어나고 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이들이 팔레스타인, 베트남, 알제리, 쿠바뿐 아니라 미국 흑인사회에서 일어난 혁명의 뜻에 공감하고, 반제국주의적 투쟁을 부흥시키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소수 세력은 전혀 정치적 파장을 일으키지 못했으며, 의회나 백악관은 말할 것도 없고 유대교 전문기관들이나 시너고그(유대교에서 집회와 예배의 장소로 쓰는 회당-역주)에서 대표직을 맡지도 못했다.  

 

“왜 유대인들이 진보주의자인가?”

1977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메나헴 베긴이 이끄는 민족주의 정당 리쿠드(Likoud)가 이스라엘 노동당의 장기 집권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노동당 주요 인사들은 미국 유대인 공동체 내에서 영웅 대접을 받아왔다. 군인, 대학생, 키부츠 설립자들은 한 손으로는 ‘사막을 비옥하게 만들고’ 다른 손으로는 기관총을 들고 이스라엘을 보호해줄 존재들로 보였다. 그러나 베긴은 이런 이상과는 전혀 동떨어진 인물이었다. 아랍인들에게 비호의적인 그의 태도(베긴은 아랍인들을 뒤떨어진 민족이라고 봤다), 철저한 식민 정책지지 때문에 미국 내 유대인들과 조국 간의 신혼의 단꿈은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과 사브라 및 차틸라 난민캠프 대학살은 이러한 결별에 쐐기를 박았다. 사상 처음으로 미국의 대형 언론들은 이스라엘인들에게 불리한 방식으로 사건을 다뤘다. <뉴욕타임스>는 몇몇 저명한 랍비들과 한목소리로 이스라엘이 자행한 1982년 여름의 베이루트 포위 공격을 규탄했다. 앤터니 루이스를 따라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밝힌 기자들은 1979년 에드워드 W. 사이드가 발표한 『팔레스타인의 문제(The Quenstion of Palestine)』에서 영향을 받아 팔레스타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출판물들을 쏟아냈다. 

진보 성향의 신문들(<더 네이션> <뉴욕 리뷰 오브 북스>)이 이스라엘 우파에 동조하는 보수적 간행물들에 맞서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이스라엘을 무조건적으로 추종하는 마티 페레츠의 <더 뉴 리퍼블릭>, 미국 유대인 위원회가 소유한 <코멘터리>가 그것이다. <코멘터리>의 편집장은 신보수주의자이자 유대인인 노먼 포도레츠가 차지했다. 특히 텔아비브가 군사 및 교육 분야에서 남아공 및 남미 독재 국가들과 맺은 긴밀한 협력관계는 미국 내 진보주의 유대인들의 환멸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오로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신보수주의 성향의 유대인들은 교우들이 민주당에 투표하려는 생각을 포기하게끔 자주 설득했다. 동포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데 여념이 없던 포도레츠는 2008년 <코멘터리>에서 이렇게 자문했다. “왜 유대인들이 진보주의자인가?”(7) 이 질문은 1967년 같은 매체에서 밀턴 힘멜파브가 이미 제기한 것이다.

그는 이런 성향이 오해의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봤다. 즉 미국의 유대인들은 사회에서 자신들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잘못 알고 있고, 이스라엘의 진짜 친구가 누구인지 분간을 못 한다는 것이다. 2012년에 보수주의 유대 단체인 유대인공화당연합은 ‘내 양심의 가책’이라고 이름 붙인 홍보전을 벌였다. 이 캠페인의 자금은 애덜슨이 지원했고, 그 목적은 미국 내 유대인들을 공화당으로 돌아서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시도는, 이번에도 실패로 돌아갔다. 

퓨리서치센터의 ‘종교 및 공공생활’ 부서는 2013년에 미국 내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유례없이 광범위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3,500건의 수준 높은 인터뷰, 7만 건의 컴퓨터 설문조사).(8) 이 조사에서는 다수의 대상자들이 답변한 설문조사 결과를 조합해, ‘유대인’이라는 집단의 정체성을 규정했다. 이를테면 종교적 관행,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 인본주의적 가치,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보존하려는 의지, 이스라엘에 대한 호감도, 음식과 유머 감각까지 언급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보수 정치에 애정을 보이거나 이스라엘의 식민 정책을 고수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지지한다는 입장은 특히 18~29세의 젊은 유대인을 중심으로 매년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다 총체적으로, 퓨리서치센터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완벽한 태세전환을 집중 조명했다. 2001년에는 이들의 48%가 이스라엘을 지지했고 18%가 팔레스타인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이제는 35%가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19%가 이스라엘을 지지한다.(9) 미국의 젊은 유대인들이 결성한 ‘이프낫나우(IfNotNow)’와 ‘제이스트리트유(J Street의 대학 지부)’ 같은 단체들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및 식민 정책을 혐오한다. 이스라엘 좌파 일간지 <하레츠>를 읽는 이들 단체들은 인권을 수호하고 식민 정책을 비판하는 ‘브레이킹 더 사일런스’ ‘더 뉴 이스라엘 펀드’ ‘베첼렘’ ‘몰래드’ ‘피스나우’ 및 온라인 발행물 <+972> 등의 단체들과 협력을 희망하고 있다. 

그럼에도 네타냐후 정부는 트럼프와, 전 세계 극우주의자들의 지지에 만족한다. 그리고 그가 배신자로 여기는 미국 내 유대인들과 진보주의자들에게, 굳이 지지받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글·에릭 알터만 Eric Alterman
기자

번역·조민영
번역위원

 

(1) David Usborne, ‘McCain forced to ditch pastor who claimed God sent Hitler’, <The Independent>, 런던, 2008년 5월 24일에서 인용.

(2) Ibrahim Warde, ‘Il ne peut y avoir de paix avant l’avènement du Messie(메시아의 강림 이전에 평화는 없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2년 9월호 참조. 

(3) Devin O’Connor, ‘Casino tycoon Sheldon Adelson threatens to cut off Republican Party following midterm losses’, Casino.org, 2018년 12월 5일, www.casino.org

(4) 특히 William A. Galston, ‘The fracturing of the Jewish people’, <The Wall Street Journal>, 뉴욕, 2018년 6월 12일 참조. 

(5)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7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집단 이주가 이어졌다. Micheline Paunet, ‘La naissance de la question des réfugiés(난민 문제의 탄생’, in ‘Palestine. Un peuple, une colonisation(팔레스타인, 하나의 국민, 하나의 식민지)’, <마니에르 드 부아>, n°157, 2018년 2~3월호.

(6) Edward S. Shapiro, 『A Time for Healing: American Jewry since World War II』,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coll. <The Jewish People in America>, 볼티모어, 1992년.

(7) Norman Podhoretz, 『Why Are Jews Liberal?』, Random House, 뉴욕, 2009.

(8) ‘A portrait of Jewish Americans’, Pew Research Center, 워싱턴DC, 2013년 10월 1일.

(9) ‘Republicans and Democrats grow even further apart in views of Israel, Palestinians’, Pew Research Center, 2018년 1월 23일, www.people-pres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