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그리고 시선 돌리기

2019-04-30     피에르 랭베르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그것은 완벽에 가까운 논란이었다. 2017년 12월 11일 발표된 프랑스 디지털위원회(CNNUM)의 신규 구성원 명단은 소셜 미디어를 뜨겁게 달궜다. 정부의 자문기구로서 탄생한 디지털위원회는 2011년 출범 이후 대중의 무관심 속에서 개혁을 거듭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된 위원 명단 중 에세이스트이자 여러 방송에서 감독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해온 로카야 디알로가 포함돼 있다는 것이 알려지자, 사회당과 공화당 소속 의원들이 트위터를 통해 일제히 분노를 표한 것이다. 

 

 

사회운동가이기도 한 로카야 디알로가 프랑스 정부의 ‘제도적 인종차별’(1)을 비판하고 2004년 부르카 착용 금지법을 반대하며, 시사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를 비난하는 등 ‘용서받지 못할 잘못’을 저질러 왔다는 이유였다. 결국 디지털 담당 장관은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한발 뒤로 물러나 로카야 디알로의 임명을 48시간 만에 철회했다. 그러자 며칠 후인 12월 19일, 위원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위원들이 연대를 내세우며 사퇴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은 마치 동전을 넣으면 히트곡이 재생되는 주크박스처럼, 1990년대 초 이후 끊임없이 여러 정치인과 비평가들을 뒤흔들어온 ‘나의 세속주의(2)와 당신의 공동체주의 간의 대립’을 다시금 재생시켰다. 논란은 소셜 미디어에서 그치지 않고 각종 언론의 기사와 탄원서로 이어졌으며, 급기야는 미국의 <뉴욕타임스>에까지 관련 논평이 실렸다(2017년 12월 28일 자). 좌파로 분류되곤 하는 언론인, 지식인, 운동가들은 <리베라시옹>을 통해 “디지털위원회의 독립은 협상 불가한 사항”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저항”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2017년 12월 20일 자).

그런데 로카야 디알로의 발언을 문제 삼은 이번 해임 논란 뒤에는 용기를 내 탄원서에 참여한 서명인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던 또 다른 문제가 감춰져 있다. 해당 위원의 거취와 무관하게, 디지털위원회의 위원 구성 자체에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2017년 12월 8일의 법령에 따라 디지털위원회는 ‘경제 분야 출신’ 인사, 학계 인사, ‘시민사회’ 소속 인물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의 역할은 프랑스 정부에 디지털 분야 관련 자문을 제공하고, 마리 에클랑 위원장의 말을 빌리면, 더 나아가 “내일을 생각하는” 데 있다. 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적어도 신기술과 연관된 각종 전문분야의 대표 인물들이나 인터넷의 비상업적 사용을 주장하는 이들 등 다양한 세력을 결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2017년 12월 발표된 디지털위원회의 구성원들은 현재 프랑스 집권당인 ‘레퓌블리크 앙마르슈(LRM·전진하는 공화국)’의 세미나 참석명단과 별 다를 바 없었다. 게다가 남녀동수제가 정확하게 지켜졌으며 파격적인 인물 몇 명이 발탁됐다는 점 때문에 부각되지 않았지만, 이들은 집단적 동질성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위원 30명 중 기업의 대표나 고위급 임원은 15명에 달했지만, 조합원 출신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실상 이 모임은 마리 에클랑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었다. 컴퓨터공학자였던 그녀는 투자은행을 거쳐 경영인 로비단체 ‘프랑스 디지털’을 설립했으며, 뒤이어 벤처캐피털 기업을 공동 창립한 바 있다. 그런데 이 벤처캐피털의 투자자 중 무려 4명이 디지털위원회 구성원 명단에 포함됐다. 에클랑은 “투자펀드사 내 여성(및 소수계층의) 수가 커질수록 경영계 내 불평등은 더욱 줄어들 것”(<라트리뷴>, 2016년 11월 17일 자)이라고 주장한 바 있는데, 그 주장에 걸맞게 이번 디지털위원회 구성원 명단에는 힙합 랩퍼 출신의 경영인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해당 위원은 공교롭게도 마리 에클랑이 50만 유로를 투자했을 뿐 아니라 직접 이사를 맡고 있는 기업의 대표이기도 하다. 위원회의 공식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각 위원의 이해관계확인서를 통해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듯이, 엠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중요시하는 디지털 자본주의 발전을 위한 맞춤형 관련 기구 내부에 이런 ‘끼리끼리 문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은 적어도 로카야 디알로 해임 논란만큼의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문제다.

하지만 그런 논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저항’하는 이들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한 덕택에 말이다.   

 

 

글·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번역위원

 

(1) 제도적 인종차별: 각종 사회서비스 접근을 포함해 제도와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인종차별.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 아랍인이나 흑인은 백인보다 훨씬 빈번하게 경찰로부터 신분확인 요구를 받음-편집자 주
(2) 세속주의(세속 공화국): 국가는 어떠한 종교로부터도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프랑스의 중요한 이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