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산업, 세금 먹는 기생충? '터무니 없는 오해'

'비영리 활동의 잊혀진 미덕' 되살려야…'잉여가치'와 다른 '이용가치'제공

2008-12-01     장 마리 아리베이 | 경제학자

요즘 공공 분야의 적자가 심각한데도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되레 공공 서비스, 사회보장에 대한 공세가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세금이 너무 높고 공공 산업이 하는 일 없이 기생충처럼 국가 돈이나 빨아 먹고 있다는 생각을 대체로 하고 있다. 이 같은 생각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 공공 산업 분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시장성이 없는 무형 서비스를 생산하면서 세금과 납입금이나 받아먹고 있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한 술 더 떠 민영화란 매서운 칼날 앞에 수많은 종업원들이 잘려 나가고 부유층에게서 걷는 세금도 줄어들고 있다. 부유층 세금이 줄어들면서 필요한 예산을 채울 수가 없어 더욱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그야말로 공공 산업은 죽을 맛이다.
게다가 공공 산업은 납세자들에게 엄청난 부담이 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자유주의 경제를 주창하는 사람들은 유럽연합의 조세율이 평균 40.9%에 이르고, 프랑스는 44%에 달한다며 성토하고 있다.
흔히 민간업체들이 상품을 만들어 사업을 하고, 그들로부터 세금을 걷어 공공 분야에 자금을 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터무니없는 사실이다. 공공 분야에 대한 이 같은 오해는 정책 수행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공공 재정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화폐를 찍어야 하지만, 이런 오해로 인해 그럴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정부는 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릴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마스트리이트 조약이나 리스본 조약, 유럽연합의 기준 등은 물론, 금융위기에 대처하는 최근의 정책들 모두 그런 오해 섞인 제약을 두고 있다. 이는 더욱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경제 갉아먹는 존재' 시각이 문제
2년 전에 '대체 세계주의자'들이 내세운 슬로건은 '세계는 상품이 아니다'였다. 이는 세계가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그런데도 공교육, 국민 보건과 같은 공공 산업은 자본주의가 득세를 하고 민간자본이 활개를 치면서 위협을 받고 있다. 안타깝게도 자유주의 경제 논리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속내를 시원하게 밝혀낼 만한 이론이 현재로서는 전혀 없다.
심지어는 마르크스 이론마저, 상품을 생산하는 산업 분야가 이익을 내면 이에 대한 세금을 걷어 공공 산업의 자금을 충당해야 한다는 교리에 너무 얽매였다. 그렇다면 상품 생산성이 저하되면 공공 산업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마르크스의 이론처럼 모든 것을 국유화하며 공공 산업으로 만들 수도 없다. 이론대로라면 공공 산업이 존재하기 위해선 상품을 생산하여 돈이 마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공 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민간 산업에 종사하는 직장인들은 입장이 정반대일 만큼 다르지만, 그렇다고 공통점이 없는게 아니다. 문제는 어떤 시각에서 각자의 역할과 방법을 이해하느냐 하는 것이다.
우선 자유주의자들과 그 반대의 마르크스 신봉자들 모두 기존 시각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마르크스가 상품에 대해 분석을 시작하면서 세계가 상품화되는 것을 비판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기는 했으나, 기존의 마르크스 '이론'은 세계가 상품화 되는 현상을 막아주지는 못했다. 따라서 상황을 냉철하게 보는 경제 정책과 함께 공공 분야에 대한 이론이 새로 정립되어야 한다.
우선 공공 산업은 경제를 갉아먹는 존재가 아니라, 상품을 생산하는 분야와 함께 병존해야 하는 존재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케인즈 이론은 이미 고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소비가 줄어들면 정부가 개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소득이 줄어들수록 오히려 소비를 해야 산업이 움직이는 게 맞다. 경제학자 트리그베 호벨모는 정부가 추가로 공공 자금을 풀어 개입을 하면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런 생각과는 달리, 여전히 공공 산업은 공공 부문이 아닌, 상품을 생산하는 산업 부문에서 거두어들이는 세금 덕분에 자금을 마련한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말도 안 되는 논리다. 한 번 생각해 보라. 공공 분야가 점점 확대되면 상품 생산 부문이 아닌, 공공 분야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세금이 늘어나지 않겠나. 하지만 실제로는 대다수가 상품을 생산하는 산업에 붙은 세금 덕에 공공 산업이 자금을 확보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상품가치'와 무관한 '공공의 노동'
노동 그 자체에는 생산성이 없다. 노동이란 노사관계의 시각을 통해 정의할 수 있다. 즉, 두 가지를 분명히 구분하는 개념이 필요하다. 우선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용 가치(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와 교환 가치(축적할 수 있는 능력)를 구분한 개념을 참고해 보자. 부를 나타내는 첫 번째 가치를 두 번째 가치로 단순화시킬 수는 없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일반적인 노동 과정과 자본주의 노동 과정을 구분해 개념을 정의했다. 이용 가치를 만들어 내는 노동, 자본을 위해 상품 가치와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을 구분한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세 가지 노동이 서로 뒤섞여 있다. 첫 번째는 자본을 불릴 수 있는 상품 가치를 생산해 내는 샐러리맨들이 제공하는 노동이다.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두 번째는 교육과 공공 보건처럼 상품이 아닌 가치를 생산하지만 돈을 벌어들이는 공공 분야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이 제공하는 노동이다. 세 번째는 이윤 추구가 목적이 아닌 자원 봉사 분야에서 일 하는 사람들이 제공하는 노동이다. 이는 첫 번째 노동에게서 세금을 뜯어내 두 번째와 세 번째 노동이 생겨난 게 아니란 것을 보여준다.
다시 마르크스와 케인즈를 살펴보자. 민간 기업은 상품이 팔릴 수 있는 시장 판로를 예상한 다음 상품을 만들어 내기로 한다. 상품을 만들어 내기로 했으면 민간기업은 투자를 하고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며 일을 시킨다. 시장에 상품을 내 놓았을 때 잘 팔리면 시장판로에 대한 예상이 의미가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예상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에 비해 공공 분야에서는 국민이 무엇이 필요한지를 예상한 다음 투자를 한다.
민간기업과 공공 분야 모두 월급과 투자란 방식으로 돈을 투입하게 되며, 덕분에 경제가 돌아가고 제품과 공공 서비스가 만들어진다. 직원들은 월급을 받으면 필요한 물건을 사게 된다.
마찬가지로 국민이 합의하여 공공 서비스가 마련이 되면 국민은 계속해서 교육, 치안, 공공 서비스의 혜택을 받고자 세금을 낸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먼저 무형 제품, 즉 어떤 공공 서비스가 필요한 지 예상을 하고 그 다음에 공공 산업의 공무원들이 필요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 후 공공 서비스를 이용하는 국민이 세금을 낸다. 결코 공공 분야가 상품 생산 부문에 대한 세금 덕분에 먹고 사는 게 아니란 것이다.

 민간생산이 공공자금 제공? '헛소리'
따라서 상품 생산 부문의 세금이 있어서 공공 지출을 할 수 있는 돈이 마련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다. 왜 이런 오류가 나올까? 자금 마련과 세금 납입을 혼동해서 그렇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먼저 투자가 이루어지고 월급이 지급되어야 생산을 할 수 있으며 생산이 되어야 소비자들도 돈을 내고 구입한다. 그렇다면 공공 서비스 생산에 대해 세금이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국가가 필요한 돈을 대는 일이다. 자동차를 구입하는 소비자가 자동차 조립 공장에 돈을 대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납세자가 학교나 병원의 자금을 대는 건 아니다. 제품이든 아니든 일단 생산이 이루어져야 지급을 한다. 즉, 민간기업이든 공공 분야든 제품이나 공공 서비스를 만들어내야, 소비자가 돈을 내고 물건을 구입하거나 국민이 세금을 지불한다는 것이다. 결국 지불은 나중에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그리고 추가로 생산이 이루어져야 추가로 소득을 벌어들이고 추가로 저축이 이루어져, 다시 투자가 추가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문제를 논리적으로 다루어야 해답도 논리적으로 나올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는 화폐 경제인데 생산이 이루어지 않는데 돈을 거두어들일 수 있을까? 논리적으로 말도 안 된다. 그러므로 이렇게 생각을 해야 한다. 공공 서비스가 마련이 되고 투자가 이루어진 다음에 국민에게 세금을 거둘 수가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공무원들은 그저 앉아서 돈을 번다는 자유경제주의자들의 주장은 개념이 없으며 박물관으로 보내버려야 한다.
소비자가 물건을 사야 민간 기업이 계속해서 생산을 하듯이, 국민이 세금을 내야 공공 분야도 계속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자유경제주의자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 한 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 민간 분야에서 일 하는 사람들이 돈을 벌게 해 주지만 그 돈의 일부는 자본가들이 독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공 서비스를 위해 일하는 공무원들이 상품이 아닌 서비스를 창출해 돈을 벌어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말 그대로 자금 마련과 납세를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세금을 통해 돈을 빼앗아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아니다. 공공 서비스를 마련하느라 돈을 강제로 빼앗거나 횡령하는 게 아니다. 공공 서비스를 마련하고 제공해 그것에 상응한 돈을 정정당당히 받는 것이다.
르노가 투자를 한다고 푸조나 베올리아가 투자를 못 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공공 투자를 한다고 그 때문에 민간 분야가 투자를 못 하는 건 아니다. 공무원이 오로지 민간 분야가 벌어들이는 소득에서 일부를 받아 돈을 받고 있다는 주장은 잘못 된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가 민간 기업의 투자와 공공 분야의 투자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민간 기업이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고자 투자를 하고, 공공 분야도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투자를 해야 자본주의 경제가 돌아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공공 서비스 사업을 통해 이미 창출한 국내총생산(GDP)에서 세금을 걷고 있는 것이다.

 수정 필요한 '화폐정책 불개입' 정책
세금은 기존의 부에서 일부를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추가로 부를 창출했을 때 그것에 대해 정부가 매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경제주의자들이 비판하는 것처럼 세금은 산업 활동에서 돈을 가져가는 행위가 아니다. 반대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자본가들이 돈을 많이 벌면 당연히 뜯어가야 하는 것 또한 세금은 아니다.
인간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자본이나 공공활동을 통해 재화나 서비스를 만들어낸다. 자본이 있어야 생산되는 것도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민간 분야가 공공 분야를 먹여 살린다는 주장은 억지다. 공공 서비스가 벌어들인 돈은 제품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과 다르다.
회계사들이 공공 지출을 소비로 보지 않는 것도 문제다. 이에 속아서는 안 된다. 공공 지출은 인프라, 장비, 중간 소비를 위한 것이므로 직원에게 지불하는 월급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민간기업의 가불이나 공기업의 가불이나 다를 게 없다. 다르게 취급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말이다. 어쨌든 둘다 직원들을 위한 지출이 아닌가. 생산을 해야 돈을 벌어 들여 지출할 수 있다.
지유경제주의자들이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이 점을 잊고 있으니 답답하다. 시장을 통해 돈을 벌어들이고자 생산을 하는 것이나, 민주주의에 따라 국민이 원하는 공공 서비스를 마련하기 위해 생산을 하는 것이나 모두 똑같다.
여기서는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관계에서 생각해야 한다.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관계는 자본주의 경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부유한 사람들은 세금을 많이 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돈을 내주는 자선 사업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화폐 정책 또한 유럽 중앙은행과 유럽조약 때문에 역할을 못한다. 유럽조약에 따르면 정부는 중앙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공공지출에 필요한 돈을 마련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정부로선 필요한 지출을 하고 싶어도 돈을 마련할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자유경제주의자들은 이윤을 가져다주지 않는 공공 분야의 생산을 위해 화폐를 찍어 자금을 마련한다는 논리를 배격하고 있다. 그러므로 정부는 자본가들에게서 돈을 빌려 적자를 메울 수 밖에 없다. 자본가들은 은행에서 대출을 쉽게 받아 정부에 돈을 빌려 준다. 이렇게 해서 프랑스에서는 공공분야에 납입하는 소득세의 80% 이상이 민간 채권자에게 지불하는 이자로 날아가고 있다.

 공공 분야, 민간 분야와 병존하는 존재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공공 분야가 민간 기업이 벌어들이는 돈의 일부로 부를 축적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공공 분야도 필요한 노동력과 장비를 사용하여 나름대로 돈을 번다. 공공 분야는 국민에게 필요한 것을 만들어 내고자 노력하고,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국민은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경제주의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분명 말하건대, 공공 분야의 생산의 개념에 대해 확실히 알아야만, 사회가 '상품화'되는 과정을 막기 위해선 어떤 부와 가치가 필요한지 파악할 수 있다. 자유경제주의자의 이론은 이 같은 부와 가치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다.
반면에 자본주의에 적대적인 이론 또한 자본주의의 모든 가치는 오로지 자본을 위한 가치로만 전락했다는 잘못된 생각을 품고 있다. 자유경제주의자들과 마르크주의자들이 오래 전부터 사용해 온 비판의 논리를 다시 검토해 봐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가 상품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는 경제를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공공 산업에 대한 자유경제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오해에서 벗어나면, 비로소 노동에 대한 마르크스의 의견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사회에 노동력이 제공되기에 노동이 존재한다"며 노동의 사회 기여 가치 자체를 높이 샀다. 그렇다면 단순히 상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 하는 노동을 제대로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 행복이야 말로 진정한 부가 아닌가. 그러므로 공공 분야가 창출하는 부를 민간 분야가 창출하는 부보다 못하다고 폄하해서는 안 된다. 
번역 | 이주영 ombre2@ilemonde.com

 


 

* 몽테스키외-보르도 4대학 경제학과 교수, <문제의 개발>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