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주의자들의 속물근성

2019-04-30     세르주 알리미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미국은 20세기에 괄목할 만한 정치적 변혁을 이뤘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는, 도심에 거주하는 지식인들이 교육 혜택을 많이 받지 못한 이들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서민계급을 ‘좌파’ 지식인들과 대립시킴으로써,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했던 서민들을 집결시키고 그들의 표를 끌어오는 데 성공했다.
 

미국에서는 ‘지식인들’이 수천만 미국인들에게 선사한 영감보다, 우파의 ‘증오심 활용 작전’이 더 효과적이었다. 2004년 11월 대선 결과에서 조지 W. 부시는 대졸 학력의 중산층 백인 유권자층에서 민주당 후보와 표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았다. 그러나 부시는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유권자층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존 케리를 크게 앞질렀고, 결국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2년 후, 도널드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할 때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다.

18세기 말부터 미국에서는 ‘엘리트층’에 대해, ‘교만하고 사치스러우며, 가식적이고 속이기를 잘하고, 비현실적이며 고지식하고, 타인에게 의존적이며 유약하다’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1) 이런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보수적이고 종교를 중시하는 계층은 경제력을 갖춘 엘리트층에 대해선 너그러운 반면, 검소함과 미덕을 추구하고 애국주의적 공동체에 반대하는 ‘박식하지만 비현실적인’ 엘리트층에 대해선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엘리트주의에 극렬하게 반대하던 이들 역시, 소수 계몽주의자들 사이에서 공유되던 ‘지적 우월주의’ 성향을 이내 드러냈다.(2) 분석가들은 부시와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한 이유에 대해 “유권자들의 지능 지수가 떨어진 탓”이라고 주장했다. 공화당은 ‘보통 사람들의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지켜낸 데 위안을 삼았다.
 
오늘날 똑똑하고 교만한 엘리트층에 대한 비판은 우파, 나아가 ‘푸자드주의’를 추종하는 극우파의 단골 소재가 됐다. 사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초 미국의 노조운동가들이 자본가를 비판할 당시에는, 고위 공무원과 지식인 또한 그들의 적이었다. 게다가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고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논리를 앞세워 고용주를 변호하는 이들, 즉 대학교수와 언론 기자도 적으로 분류됐다.
 
1930년대부터 미국의 우파는 본격적으로 지식인들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미국 우파는 “지식인들은 종교적 윤리를 경시하고, 자신들을 중심으로 권력을 집중시키려 한다”고 주장하며 지식인들에 대한 근거 없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공화주의자들은 1929년 대공황으로 몰락한 ‘빅 비즈니스’ 세계와 관련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문화전쟁’ 개념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프롤레타리아화하려 했다.
 
1940년 웬델 윌키는,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고문들 모두가 도시 출신의 고학력자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의 주변을 보십시오. 우리의 검소한 미덕을 비웃는 냉소적인 지식인들입니다. 그들은 우리 민중들이 세상을 이해하기에 너무 멍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생각, 인텔리겐치아가 우리를 지배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 우리의 국가를 돌려주십시오. 미국은 우리의 것입니다.”(3)
 
그 후 조셉 매카시, 배리 골드워터, 조지 월리스, 리처드 닉슨, 로널드 레이건, 그리고 조지 W. 부시와 도널드 트럼프까지 가세하면서 이 주장에는 점차 힘이 실렸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조용한 다수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하며, 공무원·판사·전문가들의 결정과 지식인들의 교만한 태도를 지적하고 나섰다. 1975년, 레이건은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진실은, 미국인들이 상반된 두 개의 관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상가와 3류 화가를 믿는 쪽, 아니면 민중이 공유하는 지혜와 아메리칸 드림을 믿는 쪽 중에 말입니다. 전자는 더 많은 세금과 지출을 이야기하고, 후자는 민중의 긍정적인 힘을 이야기합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우리 미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신과 의사의 소견서, 교육자의 보고서, 관료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노동자의 신성한 노동, 기업가의 주체적인 행동, 성직자의 조언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4)
 
 

‘소박한’ 우파 부자들, 교만한 좌파 지식인들

‘관료’, ‘정신과 의사’, ‘교육자’, 비난의 대상이 되는 엘리트층은 자산가들이 아니라 지식인들이다. 미국의 우파는 ‘민중’에 속하는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재산이 아닌 취향이라고 주장한다.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W. 부시는 청바지 차림으로 자기 소유의 목장에서 벌초를 하다가 백만장자 기업인들을 맞이하곤 했다. 비평가이자 작가인 토마스 프랭크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보수주의자들이 사회적 계층을 분류하는 첫 번째 기준은 재산이나 출신, 직업이 아닙니다. 어떤 차를 몰고 어디에서 장을 보는지, 어떻게 기도하는지가 우선이고, 그다음이 직업과 소득입니다. 어떤 사람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속하는지 아닌지는 그가 하는 일 자체가 아니라 그가 겸손한지 아닌지에 따라 결정됩니다.”(5)

이쯤 되면 문화전쟁의 개념을 모방한 게 아닌가? 일부 좌파 지식인들이 정체성, 행동양식, 문화에 관한 난해한 연구에 몰두한 나머지, 사회적 쟁점을 희석시키지만 않았어도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6) 그런 가운데 민주당은 특권층의 혜택에 집착하면서 계층문제를 지속적으로 환기시켰다. 그리고 ‘진보주의자들’은 문화적 우월감을 드러내며 그들의 주장이 사실이었음을 확인시켜줬다. 예를 들어 1968년 앨라배마 주의 주지사이자 인종차별주의자였던 조지 월리스가 “나는 미식가가 아니다. 모든 음식에 케첩을 뿌린다”고 말했을 때, 지식인들의 반응을 보자. 엘리트 잡지인 <뉴욕 리뷰 오브 북스>는 다음과 같이 월리스의 말을 조롱했다. “그는 싸구려 호텔에서 싸구려 식사를 즐기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는 게 분명하다.” 

모든 이들이 맨해튼의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하버드대 교수와 만찬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좌파와 일부 민중들 간의 사회적 거리가 이처럼 멀어지게 된 것은 아마도 냉전을 기점으로부터였을 것이다. 1950년 2월 9일 조셉 매카시는 그 유명한 솔트레이크시티 연설을 했다. 당시 그는 ‘줄무늬 바지 차림의 교만한 외교관’이라 불리던 민주당 소속 딘 애치슨이 이끄는 정부 부처의 고위 공무원 57명이 소련의 입장을 옹호했다고 주장했다. 위스콘신 주의 공화당 상원의원 매카시가 언급한 이 57명은 과연 누구인가? 과거와 달리 이제는 혁명가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혜택, 즉 최고 수준의 주거환경과 교육, 공직을 제공받은 이들’이 사회질서를 위협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반역자들, 즉 ‘신과 조국(God and country)’을 중요시하고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똑똑한 청년들’의 반대편에는 누가 있을까? 노동자, 농부, 회사원, 소규모 자영업자들로 대변되는 미국의 서민층, 유럽에서 들여온 유토피아 사상 따위는 모르는 이들, 사회체제를 ‘신의 뜻’으로 여기고 지켜나가려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 고학력 엘리트층의 집산주의 이론을 이해할 수 없는 이들은, 자신이 태어난 국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가치관, 보이지 않는 손을 신뢰하고 따른다.

우파는 “번영과 정의가 외딴 연구실에서 얻어질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시장의 마법’이 그 무엇보다 훌륭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부의 재분배를 신성시하는 좌파 지식인들을 겨냥한 비판이다. 파리와 런던을 거쳐 예일대에서 학위를 받은 윌리엄 버클리는 매카시즘을 추종하는 대학교수였다. 그는 1951년, 소득의 재분배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동료 교수들 중 단 한 명도, 국민이 자발적으로 누군가에게 준 것을 빼앗는 행위가 반민주적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조 디마지오(전설적인 야구선수)의 야구경기를 보고 감동해서 자발적으로 그에게 10만 달러를 줬다면, 그리고 정부가 이 금액의 상당 부분을 가져간다면, 국민의 뜻에 위배되는 것은 어느 쪽일까요?

결론은 명백하다. 부유층과 다국적 기업은 민중들에게 선택받은 존재인 반면, 좌파 지식인들은 적이다. 그로부터 반세기 뒤에는 윌리엄 버클리가 이와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토마스 프랭크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시장이 그들을 위협하면 그것은 생산적인 것이고, 불가피하며, 민주적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부와 지식인들이 그런 행동을 하면 파괴적이고 계급적이며, 비논리적이고 전제적이라면서 비난을 퍼붓습니다.”(7) 그리고 민영화되고 시청률에 굴복하는 언론이 늘어나면서 이 같은 ‘시장의 포퓰리즘’은 점점 강화되고 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매카시즘은 미국 정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우선, 매카시즘을 토대로 우파는 종교 및 애국적 전통에 반대하는 지식수준이 높은 ‘새로운 계층’을 격렬하게 비판하면서 서민층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매카시즘은 진보주의 성향을 지닌 인텔리겐치아 특권층을 비판하면서 우파에게 엘리트층을 공격할 명분을 안겨줬다. 역사학자인 마이클 로긴은 분석했다. “매카시즘의 인기는 일부 지식인들로 하여금 시민의 자유와 민주적 권리를 수호함에 있어, 대중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심었습니다.”(8)

1950년대 미국 국민의 대다수는 개인의 자유에 관심이 없었다. 그 이후 선거에서도 공화당 후보들이 줄줄이 승리를 거둔 가운데(닉슨, 레이건, 조지 W. 부시, 그리고 트럼프까지) 미 국민들은 우파의 인종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 동성애 혐오, 민족주의와 근본주의를 묵인했다. 결국 보수당 전략가들이 이겼다. “그들은 좌파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좌파 덕택에 노조 활동을 보장받은 가톨릭교 노동자,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게 된 퇴역군인, 무상 고등교육의 기회를 제공받은 국가유공자들까지도 좌파를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9) 

민주당은 기존 지지층들이나, 이제 막 참정권을 얻은 소수 유권자들만으로는 당연히 선거에서 이길 수가 없었다. 매카시즘은 쇠퇴했으나, 인텔리겐차의 운명은 서민층이라는 암초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대부분의 전문가, 예술가, 교수들은 국민이 그들에게 제시한 충성서약에 두말없이 복종했다. 또한 그들은 특권을 유지하고 랜드 연구소와 CIA가 제공하는 혜택을 누리기 위해 눈을 감았고, 심지어 마녀사냥에 동참하기까지 했다. 최고의 지식인들은 무관용의 불길이 퍼지는 동안, 소방관이 되기는커녕 방화자 역할을 자처했다. 게다가 최고의 명문대를 졸업한 청년층과 중장년층은 “미국이 사회주의 국가가 되는 것을 막겠다”며 반역자 노릇을 자청하고 나섰다. 

그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우파가 세상을 지배할수록 우파의 욕심은 점점 더 커진다는 점이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미국 버클리대 정치학 박사 출신으로 파리 8대학 정치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1992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합류한 뒤 2008년 이그나시오 라모네의 뒤를 이어 발행인 겸 편집인 자리에 올랐다. 신자유주의 문제, 특히 경제와 사회,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 신자유주의가 미치는 영향과 그 폐해를 집중 조명해 왔다.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번역위원

 

(1) Michael Kazin, 『The Populist Persuasion: An American history』, Basic Books, New York, 1995

(2) ‘지적 차별’은 피에르 부르디외가 쓴 표현 ‘계급 대 계급(Classe contre classe)’(1983)을 인용한 것이며,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4년 4월호에 게재됐다.

(3) Serge Halimi, 『Le Grand Bond en arrière. Comment l'ordre libéral s'est imposé au monde(위대한 후퇴. 자유주의는 어떻게 세상을 사로잡았나)』개정판), Agone, Marseille, 2012

(4) 위의 책.

(5) Thomas Frank, 『What's the Matter With Kansas: How Conservatives Won the Heart of America』, Metropolitan Books, New York, 2004

(6) Russel Jacoby, 『Dogmatic Wisdom: How the Culture War Divert Education and Distract America』, Doubleday, New York, 1994

(7) Thomas Frank의 위의 저서.

(8) Michael Rogin, 『The Intellectuals and McCarthy: The Radical Specter』, The MIT Press, Boston, 1967

(9) Michael Kazin의 위의 저서.

*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자매 격월간지 <마니에르 드 부아> 4~5월호(N 164)에 게재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