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이 아니다, 복지정책이다!

2019-04-30     차기태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한국어판 편집장

최근 한국 사회에서 오가는 큰 쟁점 가운데 하나가 ‘포퓰리즘’ 논란이다. 정부가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지출을 조금씩 늘려나감에 따라, 포퓰리즘의 폐해가 우려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진실로 포퓰리즘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면 당연히 경계해야 하지만, 과연 그런지 차분하고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최근 복지확대가 경제를 왜곡시킬 만큼 심각한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서울 등 대도시에서 흔한 모습 가운데 하나가 폐지 줍는 노인이다. 사무실이나 집 앞에 폐지를 내놓으면 노인들이 어디선가 낡은 리어카를 끌고 나타나 걷어간다. 게다가 요즘은 폐지 가격도 떨어졌다니, 노인들의 벌이도 줄었을 듯하다. 한국 노인들의 어려움은 차가운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2016년 기준으로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43.7%에 이르렀다. 소득수준이 중위소득의 50%에 미달하는 빈곤선 이하의 노인이 절반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EU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라트비아는 22.9%로, 한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2015년 기준 한국의 75세 이상 고용률은 17.9%로 비교 가능한 OECD 25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이제 쉬어야 할 나이임에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노인이 5명 중 1명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8.3%에 불과하고, 덴마크를 비롯해 프랑스 벨기에 독일 등 주요 유럽국가들은 1% 안팎이다. 이들 유럽국가의 노인들은 황혼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반면, 한국의 노인들은 쉬지 못하는 현실인 것이다. 준비 없이 은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식의 도움마저 받지 못할 경우 노인들에게는 대안이 없다. 피곤한 노구를 이끌고 폐지라도 줍지 않을 수 없다. 끊임없이 돌을 밀어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보다 슬프고 고달픈 마지막 여정이다. 

한국 사회에서 삶이 힘겨운 것은 노인들뿐만이 아니다. 청년인 학생들, 중년의 부모들도 힘겹다. 부모들은 대개 자식 키우느라 허리가 휘는 고통을 참으며 삶을 이어간다. 일해서 벌어들이는 소득은 늘지 않고 격차는 커지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어쩌면 ‘삶 가운데 있는 지옥’일지 모른다.  

한국의 가계소득 격차는 꾸준히 확대되고 있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에서 가장 큰 편에 속한다. 최근 연합뉴스에 이와 관련된 내용이 보도됐다. 국가통계포털을 통해 공개된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의하면, 가계소득 상위 10% 경곗값을 하위 10% 경곗값으로 나눈 10분위수 배율(P90/P10)이 2016년 5.73배에서 2017년 5.79배로 높아졌다. 쉽게 말해 상위 10% 소득계층과 하위 10% 소득계층의 격차가 커졌다는 것이다. 이 배율은 OECD 36개 회원국 중 32위 수준이다. 

한국의 소득분배가 열악하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2인 이상 도시가구 기준 ‘소득 5분위 배율’이 1990년 3.72배에서 1997년 3.80배로 조금 높아졌다가 IMF 구제금융 이후 급격히 높아졌다. 1999년 4.62배로 조금 더 오르더니 2018년 4분기에는 5.47배로 더욱 높아졌다. 이 배율은 최상위 20%의 평균소득을 최하위 20%의 평균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19년 전에는 최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의 4배에 미치지 못했는데, 지난해에는 5.5배로 높아졌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공적연금이나 기초연금, 사회보험 등 여러 형태로 저소득층 지원에 힘썼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던 것이다. 

숫자나열은 그만하고 싶다. 다만 경제학 연구와 강의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지니계수’ 하나만 더 살펴보자. 시장소득 기준 1996년 0.3033이던 지니계수는 2006년 0.3583, 2016년 0.4018로 거듭 상승했다. 이 역시 소득격차가 더 커졌음을 뜻한다. 이로 인해 중산층도 당연히 약화됐다. 이는 어느 지표를 봐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중산층 약화는 요즘 미국이나 유럽 등 전 세계가 겪고 있는 현상이요, 고민거리다. 한국의 경우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소득분배가 계속 악화되고 중산층이 무너졌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지난해 8월 한국노동연구원의 한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의 노동소득분배율은 1996년 66.12%에서 2016년 56.24%로 하락했다. 분석대상 OECD 20개 회원국 중 가장 큰 낙폭이었다.

 

넉넉한 국가, 가난한 국민

이는 IMF 구제금융을 받고 외환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기업과 자영업자의 구조조정과 파산, 대량해고나 임금삭감 등이 광범위하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또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남은 물론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대우가 고착화됐다. 정부의 내수진작 정책을 틈타 부동산가격마저 급등해 중산층과 저소득계층을 더욱 옥좼다. 2017년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섰지만, 그런 위업을 실감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국가는 부유해졌지만, 국민은 여전히 가난하다. 

이렇게 저소득층의 생활이 어려워지고 소득 격차가 커짐에 따라 여러 가지 문제가 파생된다. 삶의 질에 불균형이 깊어지고 계층 간 대립과 갈등도 가중된다. 1천 개의 펜이 있다 해도, 그 해악과 문제점을 다 열거할 수 없을 것이다. 

추상적인 논리는 차치하고, 실용주의적인 관점에서도 현재 상황을 더 두고 볼 수 없다. 국민경제의 활력을 좀먹기 때문이다. 이 상태로는 더 이상의 경제성장도 기대하기 어렵다. 중산층 이하 저소득층의 살림이 어렵기에 구매력이 생기지 않고 따라서 국내 수요가 살아나지 않는다. 한국이 최근 몇 년 동안 2%대의 저성장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한국 경제가 부진해지고 있다고 진단한 이유도 다름 아닌 ‘수요부족’이다. 수출수요는 해외에서 한국 상품을 사겠다는 것이니, 스스로의 통제범위 바깥에 있다. 이에 비해 내수는 국내 투자와 소비에서 발생한다. 국내 투자수요라도 왕성하면 괜찮다. 2017년까지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투자활동이 비교적 활발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반도체 투자 감소 및 자동차와 조선 등 주력산업의 경쟁력 약화로 말미암아 투자수요도 약해졌다. 

최근 모든 제조업의 가동률은 70%선을 조금 웃도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내 주요 산업분야에서 생산능력은 이미 충분하고,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확장됐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당분간 투자수요의 획기적인 증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국내수요의 또 다른 부분은 소비수요다. 소비수요를 형성하는 여러 요인 가운데 부동산 경기는 정부의 억제책으로 말미암아 당분간 약해질지언정 되살아나기는 어렵다. 이에 비해 민간소비는 거의 전적으로 국민의 생활수준, 삶의 질에 의해 좌우된다. 그런데 지금 소비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중산층과 서민의 생활수준이 향상되지 않고 있다. 그러니 내수가 살아날 수가 없는 것이다.

 

국민 삶의 질 낮아 내수도 빈곤

한국 경제는 오랫동안 수출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최근에는 수출의존도가 더 높아졌다. 덕분에 한국은 2018년 수출 6천억 달러를 돌파하면서 세계 6위에 올라섰다. 그럼에도 한국경제는 지난해에도 2%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수출중심의 성장정책에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대목이다. 

산업연구원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더 이상 수출에 의존하는 성장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침체된 내수를 살려 수출과 내수의 균형을 도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런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내수회복이 절실하다. 내수가 살아나려면 취업과 소득이 늘어나고 삶의 질이 향상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는 가계소득이 허약하다. 취업난과 임금격차 등으로 말미암아 소득이 낮을 뿐만 아니라 주거비와 교육비 의료비 등 짊어져야 할 비용부담이 무척 크다. 힘들여 벌어들인 소득의 상당 부분이 이런 기본적인 ‘생존비용’으로 빠져나간다. 내수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런 생존비용을 절감해 주는 것이 긴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국가의 재정지원 필요성이 제기된다. 재정지출을 통해 국민들의 생존비용을 덜어주고 취약계층과 저소득층의 삶을 부축해 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침체상태에 빠져 있는 내수를 살리기 위한 유력한 방안이라 할 수 있다. 

국가재정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여러 가지가 있다. 국방과 치안은 기본이고, 도로와 철도 학교 등 사회기반시설을 짓는 것도 국가의 기본책무다. 이런 투자를 통해 노임을 살포하고 필요한 기자재를 조달함으로써 내수를 일으킨다.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이런 역할을 나름대로 잘해왔다. 그 결과 중요한 사회기반시설은 대부분 지어졌다. 앞으로도 필요한 것은 계속해야 하겠으나, 시급한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기존의 시설을 유지보수하면서 불의의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시급하지 않은 시설까지 깊이 계산해 보지도 않고 투자한 결과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것도 허다하다. 유지보수 비용만 헛되이 들어간다. 

따라서 이제는 이렇게 눈에 보이는 ‘시설’보다는 국민들의 삶을 부축하기 위한 ‘투자’가 더 필요하다. 단순히 복지를 위한 것이 아니다. 생존비용 부담을 가볍게 함으로써 국민들이 새로운 활력을 얻고 경제생활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 결과는 내수 증대로 이어진다.   

일례로, 고등학교 무상교육을 들어보자. 지금까지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맹국 가운데 유일하게 무상교육을 하지 않았다. 이로 인한 부담이 서민들의 삶을 힘겹게 하는 한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 진입을 눈앞에 둔 나라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교 무상교육을 전면 시행하는 데 소요되는 예산은 한해 2조 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2018년 국가예산이 470조 원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2조 원이 그다지 큰 부담은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이제까지 재정부담을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야 실시하기로 결심했다. 그야말로 만시지탄이다. 고교 무상교육은 올해 2학기 고등학교 3학년 학생부터 시작해 2021년에 전면 시행된다. 무상교육을 실현하면 가구당 연간 약 158만 원의 소득효과가 있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이런 금액이 소득이 높은 사람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민들에게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그렇게 생긴 여유자금이 다른 곳으로 가는 것도 아니다. 결국은 내수 확대라는 결실로 돌아온다.

최근 정부에 새로 시행하는 몇 가지 복지제도 역시 내수 회복에 유익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동수당도 이 가운데 하나다. 아동수당은 지난해 9월부터 0∼5세 아동을 둔 소득 하위 90%까지의 가구에 월 10만 원씩 지급되기 시작했다. 올해 4월부터는 소득과 관계없이 6세 미만의 모든 아동으로 확대됐다. 9월부터는 대상자가 만 7세 미만으로 늘어난다.

한국형 실업부조를 도입하기로 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정부는 청년들에게 이미 월 50만 원씩 최대 6개월 동안 구직수당을 지급하는 제도를 3월부터 시행하기 시작했다. 실업부조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사회안전망 개선위원회가 노·사·정 합의를 거쳐 구직자의 생계 보장과 취업 지원을 위한 ‘한국형 실업부조’를 도입하기로 했다. 시행 여부는 앞으로 국회 논의과정 등을 지켜봐야 한다. 취지대로 시행되면,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 구직자 최대 50만 명에게 1인당 월 50만 원씩 최대 6개월 동안 구직수당을 지급하게 된다.  

이밖에 문재인 정부에 들어 각종 복지정책이 꾸준히 강화되고 있다. 이를테면 결식아동 급식단가를 올려주고, 저소득층 노인의료비 부담을 경감해 주기로 했다. 또 아동양육시설 등에서 자라다가 만 18세에 이르러 보호기간이 끝난 청소년들에게 월 30만 원씩 자립수당을 지급한다는 방침도 확정됐다. 지방자치단체들도 독자적인 복지정책들을 시행하고 있다. 서울시는 2017년 7월부터 청년의 취업활동을 지원할 목적으로 월 50만 원씩 2~6개월 지급하고 있다. 강원도는 육아기본수당을 월 30만 원씩 새로 지급하기로 했고, 경기도는 만 24세 청년에게 분기별로 25만 원씩 연간 최대 100만 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청년기본소득 시행을 준비 중이다. 경기도 안산시는 관내 모든 대학생들의 등록금 가운데 절반을 내줄 계획이라고 한다. 전남 강진에 이어 해남군 등 일부 지역에서는 ‘농민수당’을 지급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 복지정책은 대체로 기본적이고 최소한의 요구에 부응하는 수준이다. 특히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초보단계라고 할 수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고경환 선임연구위원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우리나라 공공사회복지지출은 GDP 대비 10.45%로 OECD 평균(24.1%)의 43% 수준이다. 다시 말해 한국의 복지지출은 아직 멀었다는 것이다. 다만 복지비용 증가속도가 굉장히 빠른 것은 사실이다. 이를테면 2019년 보건복지 예산은 161조 원으로 전년 대비 11.3% 늘어났다. 총예산 증가율 9.5%를 다소 웃돈다. 또 공공사회복지지출은 지난 16년간(2000~2016년) 연평균 11.8% 증가해 GDP 증가율 6.1%를 상회한다. 공공사회복지지출은 201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8.22%에서 2015년 10.16%, 2016년 10.45%로 계속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소홀히 했던 사회복지 투자를 뒤늦게 보강하려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세금도 목표 이상으로 걷혔기에 이 같은 증가가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초과 세수가 최근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는 없다. 따라서 앞으로 복지비용 증가속도와 세수증가 추이는 면밀히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복지지출 확대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있어왔다. 도덕적 해이와 태만을 조장하고 근로의욕을 저하시킨다는 등의 주장이다. 재정운영이 방만해질 가능성도 흔히 거론되는 우려사항이다. 한마디로 ‘복지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다. 

 

가뭄에 홍수를 염려하는 ‘포퓰리즘’ 논란

복지포퓰리즘으로 흐를 가능성을 경계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그런 비판을 하기에는 아직 한국의 복지수준은 열악하다. 지금 복지포퓰리즘을 염려한다는 것은 저수지에 물이 절반도 차지 않았는데, 홍수를 염려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재정수요 급증으로 인한 재정적자 급증도 염려할 수준으로부터 아직은 멀다. 국제적으로 가장 흔히 비교되는 지표가 GDP 대비 국가채무의 비율이다. 지난 2015년 기준으로 한 비율을 보면 일본은 무려 249%에 이른다. 미국과 이탈리아도 110%를 넘는다. 영국과 프랑스가 80%대이고 독일은 이보다 약간 낮은 76%다. G20국가 평균도 81%를 헤아린다. 

이에 비해 한국은 40%도 안 된다. 올해 예산에서도 국가채무는 지난해보다 32조여 원 늘어나지만 GDP 대비 비율은 39.5%에서 39.4%로 도리어 낮아진다. 세수가 기대만큼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것이다. 세수가 기대만큼 늘지 않으면 이 비율이 더 높아질 가능성은 있다. 그렇지만 그 비율이 40%를 넘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정부와 전문가 그리고 국민들 사이에 ‘40%’라는 비율이 일종의 심리적 마지노선 역할을 한다. 이 비율을 넘어서려면 정부가 그 이유를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 국회와 경제전문가, 언론 등 감시하는 눈길도 많다. 따라서 비율은 당분간 지켜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하나의 우려사항은 인플레이션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복지를 위해 무조건 정부지출을 확대하면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 물가가 급등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옳은 지적이다. 경험적인 사례도 많다. 최근의 베네수엘라나 짐바브웨처럼 복지지출이 너무 많았던 탓에 재정이 방만해지고 물가급등에 시달린 나라가 적지 않다. 그렇지만 중앙은행이 제 역할을 다해 풀려나간 돈을 제때에 흡수하기만 한다면 이는 큰 문제가 아니다. 복지를 위한 지출이 늘어나더라도 대신 불요불급한 재정지출을 줄이면 된다. 

특히 한국에서는 인플레이션은 복지지출과 무관하게 일어나곤 했다. 이를테면 1970년대 한국의 물가급등과 경제불안은 급속한 중화학공업화와 고도성장을 위한 방만한 경제운용 때문이었다. 반면 경기는 시들어갔다. 그래서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용어가 널리 회자됐다. 그런 경제불안이 결국 박정희 전 대통령의 피살과 이듬해 신군부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1980년대 후반기의 ‘3저호황’으로 인한 무역흑자를 관리하는 데 실패한 탓에 극심한 부동산투기가 초래되기도 했다. 

돌아보면, 국내에서 복지지출로 인한 포퓰리즘과 재정파탄이 가까운 시일 안에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간혹 제기되는 포퓰리즘 비판은 다분히 정치적인 공세의 성격이 짙다. 복지확대에 대한 요구를 원천봉쇄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공격하려는 논리다. 시대는 분명히 바뀌었다. ‘빨갱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것이 국민들 사이에 별다른 호소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포퓰리즘 공세는 그런 원색적인 공격을 대신할, 또 다른 색깔론 공세라 해도 좋을 듯하다.  

한국에서 포퓰리즘 논란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계기는 지난 2011년 무상급식 논란이었다. 경기도에서 학교에 무상급식을 실시하겠다고 하자 서울시에서도 비슷한 요구가 거세가 일어났다. 이에 대해 당시 오세훈 시장이 전면 무상급식을 거부하고 ‘차등시행론’으로 맞섰다. 오 시장은 자신의 자리까지 걸고 주민투표를 실시한 끝에 물러났다. 결국 보궐선거로 당선된 박원순 시장이 무상급식을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은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 유아 무상보육을 내걸었다. 이는 사실 더 조급한 정책이었다. 그럼에도 선거에서 이기겠다는 집착이 강한 나머지 들고나왔다. 결국 선거에서 승리하고 정책은 시행됐다. 유아 무상보육이 그토록 시급한 정책이었는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은 없었다. 이렇듯 복지정책이 본래의 취지와 달리 정치세력에 의해 악용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과도한 복지로 인한 포퓰리즘 논란은 앞으로 언제든 새로운 불쏘시개를 얻을 가능성이 있다. 모종의 계기만 생기면 복지정책에 대해 포퓰리즘으로 낙인찍고 매도하는 목소리가 드높아질 수 있다. 

가장 큰 잣대는 아마도 GDP 대비 국가부채일 가능성이 크다. 최근 정부가 복지확대를 추진하면서도 국가부채 비율이 40%를 넘지 않도록 관리해 왔다. 따라서 비판론자도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단지 국가부채가 과도하게 늘어나서는 안 된다는 따위의 경고만 내놓는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최근 한국과 호주, 독일 등을 지목해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정책을 쓰라고 권유하고 있다고 미국 신문 <월스트리트>에서 보도한 바 있다. 재정여력이 있는 데도 쓰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 권고대로라면, 한국 정부는 복지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50~60% 또는 그 이상 늘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만약 그 비율이 40%를 넘어서면 논란의 차원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곧바로 국가재정이 부도 위기에 몰렸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보수와 진보를 자처하는 진영 사이의 전면적인 대립이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면 정부가 복지를 확대하려는 정책에는 제동이 걸리고, 정권유지도 어려워진다. 따라서 정부가 복지를 확대하는 중에도 이 비율은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공허한 논란과 비판을 야기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포퓰리즘의 또 다른 가능성은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이다. 현재 국내에 취업하러 들어온 외국인노동자는 150만 명에 육박한다. 이들은 한국인이 기피하는 3D업종을 거의 떠맡다시피 한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이들을 공격하는 주장이나 행동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의 청년실업률이 높고, 전반적으로 고용사정이 나쁘다고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비판은 약하다. 국내 노동자들은 평균 학력이 높은 데다가 3D업종은 기피하는 경향이 강한데, 외국인 노동자들이 궂은일을 대신 맡아서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경제사정이 앞으로 더 악화될 경우 이들을 매도하는 목소리나 움직임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요즘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는 이민자 반대론처럼 외국인 노동자들을 내보내라는 요구가 제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것은 말하자면 ‘극우포퓰리즘’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나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도 이와 유사한 사고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SOC포퓰리즘 더 조심해야

결국 한국에서는 아직 ‘포퓰리즘’이라고 낙인찍을 만한 일은 거의 없었다. 최근 복지지출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포퓰리즘이라고 할 만큼 과도한 것도 아니다. 단지 너무나 빈약한 복지를 확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복지확대로 인한 경제왜곡도 거의 엿보이지 않는다. 비교적 양호한 재정건전성이 유지되고 있고, 경제성장률도 연간 2%대를 이탈하지 않았다. 

물론 지나치면 부작용이 커지면서 포퓰리즘적인 폐해가 나타날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한국 정부도 맹목적인 복지확대는 자제하고 있다. 그 어떤 복지정책을 제시할 때마다 재원대책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 재원이 마련될 자신이 없으면 아무리 필요한 복지정책이라도 도입하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복지포퓰리즘’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사실상 원천봉쇄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는 관대하다. 성장을 위해 예비타당성조사를 상당 부분 면제하고, 그 조건과 기준도 앞으로 완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치권도 부추긴다. 선거에서 득표에 유리하다는 계산 때문이다. 사실은 바로 이런 과정에서 불필요한 재정투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더 크다. 이야말로 ‘SOC포퓰리즘’이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포퓰리즘이다. 진정 한국이 앞으로 조심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런 ‘SOC 포퓰리즘’이 아닐까?   

 

SOC 포퓰리즘의 서글픈 현실

2017년 11월 발생한 포항지진은 인근에 지어진 지열발전소에 의해 촉발된 것으로 드러났다. 지열발전소는 2010년 당시 이명박 정부가 민간기관 등과 함께 총 470억 원 이상을 투입해 지었다가 큰 상처만 남겼다. 

2018년 국정감사 기간 윤호중(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배포한 자료에 의하면, 최근 10년간 건설을 완료한 고속도로 10개 노선의 13개 구간 중 12개 구간의 실제 교통량이 예측수요를 밑돌았다. 동해선 주문진∼속초 구간의 교통량이 예측치의 29%에 그친 것을 비롯해 대부분 2/3 이하였다. 이렇게 경제성을 무시한 투자 등으로 한국도로공사의 재무구조는 악화하고 있다. 도로공사의 법정자본금은 지난 2015년 30조 원에서 35조 원으로 늘어났지만, 거의 말라가고 있다. 올해 안에 법정자본금을 증액해야 할 형편이다. 

그러자 정부는 사회간접자본 예산을 감축하려 하지만, 국회에서 뒤집어지기 일쑤다. 2019년 예산에서도 정부는 애초 2018년보다 줄어든 18조 5천억 원을 책정했지만, 국회 심의과정에서 19조 7천억 원으로 늘어났다. 맑은 물에 흙탕물이 섞이듯, 정치권 실세들의 지역구 예산 챙기기도 한몫했다. 

반면 쌀 소득 보전 직불금 예산,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 한부모가족 복지시설지원 등 복지 예산은 삭감됐다. 이 모두가 무모한 인프라투자와 SOC 포퓰리즘이 빚어낸 서글픈 장면들이다.  

 

글·차기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한국어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