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가 문화민주화에 헌신하는 이유

2019-04-30     에블린 피에예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국가의 부채상환 능력을 평가해 정치적 흐름을 바꿔 놓기도 하는 국제신용평가사의 수장이었던 금융가가, 문화민주화에 헌신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마크 라드레이 드 라샤리에르의 이상적인 헌신에 정말로 상업적 목적은 없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좋은 집안 출신임에도 젊은 시절 무일푼이었던 한 남자가 프랑스에서 손꼽는 부자로 등극했다. 그의 대단한 인생 역정은 프랑스가 능력 위주 사회임을 알려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무일푼 청년에서 억만장자가 되는 데 성공한 그는 문화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감동적인 그의 스토리는 악의적인 루머와 달리 이 세계의 부유층들이 일반시민들을 등한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대단한 모험담의 주인공인 마크 라드레이 드 라샤리에르는 1940년도에 태어났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라 르뷔 데 두 몽드’ 잡지사에서 보수 공화당 대선후보인 프랑수아 피용 전 총리의 부인 페넬로페 피용을 형식적으로 채용해, 한시적으로 높은 보수를 지급했던 스캔들로 유명해졌다. 이 사건을 그의 특정 정치성향에 대한 애착으로 한정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프랑수아 피용 가족과도 친분이 있지만 프랑수아 올랑드와도 친분이 두텁고, 당파를 초월해 이상을 실현하고자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목표는 항상 프랑스를 더욱 조화롭게 만드는 데 공헌하고, 차별과 투쟁하는 것이었다.”(1)

라샤리에르는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한 후 엥도수에즈 은행(La banque Indosuez)에 입사했으며 그 후에는 로레알(L'Oréal) 그룹의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했고 1991년 자본금 1억 5천 1억 유로의 홀딩 컴퍼니 피말락(Fimalac)을 설립했다. 그 후 그는 금융서비스 사업에 역점을 뒀다. 특히 그가 설립한 피치(Fitch Ratings)사는 세계 3대 국제신용평가기관 중 하나로, 이후에 그는 조금씩 지분을 매각해 나갔다. 프랑스와 스위스 카지노산업의 리더 그룹인 바리에르(Barrière)사의 지분 40%와 수많은 부동산까지 소유한 그는, 일견 수익성 없어 보이는 ‘문화’ 산업을 매우 중요시하며 투자를 시작했다.

루브르 박물관, 케 브랑리-자크 시라크 박물관의 후원자인 그는 특히 루브르 아부다비 사업에 크게 기여했다. 이는 허영심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문화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그 이유로 그는 “정부가 더 이상 우리의 대형 박물관들을 도울 수단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기부로 받을 수 있는 절세혜택도 포기했다(<파리마치>, 2018년 2월 27일). 

라샤리에르는 루브르 박물관의 ‘그리스·에트루리아·로마 고대유적’관의 파트너이기도 하다. 그는 2017년 4월 22일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이들 문명은 유럽 문명의 토대다. 또한, 루브르 아부다비는 문화의 존엄한 평등성을 증명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 또한, 그 자신의 소신을 실천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 값비싼 예술품들의 구매를 승인하는 역할을 하는 예술위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을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라샤리에르의 이런 이타주의는,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나 프랑수아 피노 회장이 자신의 박물관을 만드는 것처럼, 나르시시스트의 선택처럼 비치기도 한다. 물론 라드레이 드 라샤리에르는 사업가이자 쇼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으로서 매표소를 비롯해 예술에이전트, 공연제작, 순회공연, 수많은 제니스(Zénith) 공연장과 파리의 플레옐(Pleyel) 공연장에 이르기까지 문화산업 전반에 손을 대고 있다. 쟝 르노, 크리스티앙 클라비에, 프랑크 뒤보스, 셀린 디옹, 줄리앙 크렉, 미렌느 파르메, 그랑 콥 말라드, 스트로메, 도미니크 A 등 유명 아티스트들과 공연을 함께함으로써, 그는 프랑스의 국위선양에 공헌할 수 있었다. 라 마들렌 마리니, 라 포르트 상-마르탕과 같은 파리의 극장에서는 좋은 연극작품들이 그의 지원금 덕분에 상영될 수 있었다. 2013년 브르타뉴 국립극장에서 필리 토레통 연출의 희극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가 막을 올렸고, 2016년도에는 포르트 상-마르탕 극장에서도 재공연됐다.

‘프랑스 공연예술계의 선봉장’(프랑스 경제일간지 <레제코>, 2018년 2월 6일)인 그는 문화의 사회적 측면 또한 등한시하지 않았다. 그는 2006년 문화와 다양성 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홈페이지에 나와 있듯이 기회의 평등과 사회적 결집에 공헌하겠다는 대의를 앞세워 설립됐다. 또한 학위 취득에만 몰두하는 저소득층 출신 청년들이 우수한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연출가 장 미셸 리브, 국립 박물관 예술 위원회 의장 프라신느 마리아니 뒤크레이, 대학교수 질 케펠, 라 쿠르뇌브 고교의 교장 레기 갈르강, 갤러리스트 다니엘 템플롱 등이 포함된 운영위원회의 지휘하에, 재단은 학생들에게 예술가를 만날 기회를 준다. 그리고 예술 그랑제콜(영화영상학교 Fémis, 미술학교 Boulle등)의 입시 준비를 도와주며, 라드레이 드 라샤리에르의 친구인 배우 자멜 드부즈의 후원하에 즉흥공연의 기회를 주고 있다. 3,500명의 학생들이 재단의 수혜자다. 비록 예술 그랑제콜 합격에 있어서는 성과가 다소 부진할지라도 재단의 활동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 있는 성공을 거뒀다. 

라드레이 드 라샤리에르의 딸인 엘레오노르가 운영하고 있는 이 재단은 문화부, 교육부와 3자 파트너쉽을 맺으며 공적 분야에 민간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문화와 다양성 재단은 공교육과 차별화된 프로그램으로 예술교육의 흐름을 바꿨다. 재단 창립 10주년 기념행사의 날, 나자 발로 벨카셈 교육부 장관과 오드레이 아주레이 문화부 장관은 입을 모아 말했다. “이 재단은 두 부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파트너이며, 이 재단과 함께 두 부처는 문화예술 교육과정에서 즉흥공연을 중요한 교구로 활용할 수 있었다.” 

동시에 라드레이 드 라샤리에르는 웨비디어(Webedia)를 프랑스 최고의 온라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또한 퓨어피플(PurePeople), 알로시네(Allociné), 오버블로그(OverBlog), 쥬비데오닷컴(Jeuxvideo.com) 등의 온라인 기업도 소유하고 있다. 또한 그는 노르망과 시프리앙같은 인기 있는 유튜버(크리에이터)들의 웹 기업을 인수했다. 그는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일종의 작은 디즈니, 즉 게임, 애니메이션, 스포츠, 상품 및 광고기획 등을 제공하는 작은 디즈니를 건설할 목적으로 이들을 인수했다(<르 피가로>, 2018년 4월 11일). 

이를 당국이 싫어할 이유는 없다. 공동창립한 영화사 엘르미아(Elemiah)와 공동으로 영화 <보이지 않는 것들(Les invisibles)>을 제작한, 이 남자의 상업적이면서도 이상적인 계산을 어떻게 의심할 수 있겠는가? 2018년도에 루이 줄리앙 쁘띠가 연출한 영화 <보이지 않는 것들>은 사회복지사와 노숙자 여성들을 그린 영화다. 자키 클럽(상류층 경마클럽-역주)의 멤버이자 프랑스 재벌 공제회의 회원이며, 2017년 시가총액 25억 유로의 피말락(Fimalac)을 소유한 남자가 “마음의 힘을 사로잡지 않고서는 경제력을 얻을 수 없다”(2)라고 확언하는데, 어떻게 그를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눈물 날만큼 그를 비웃는 것은 비뚤어진 영혼뿐일 것이다. 

 

 

글·에블린 피에예 Evelyne Pieiller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김영란    
번역위원

 

(1) Marc Ladreit de Lacharrière, ‘Nous sommes le bras séculier du ministère de la culture 우리는 문화부 안의 세속적인 조직이다’, <르몽드>, 2017년 4월 22일.

(2) Michel Guerrin, ‘Marc Ladreit de Lacharrière, roi du show-bizNet 마크 라드레이 드 라샤리에르, 인터넷-쇼비지니스의 제왕’, <르몽드>, 2016년 4월 7일.